사랑하는 너의 결혼식 날, 너에게 쓰는 편지
친구야,
널 보면 ‘무해하다’라는 표현을 떠올리곤 해.
그건 때로 큰 걱정이 되기도, 또 따스한 위로가 되기도 해.
내가 대학생이 되고 직장인이 되었을 때, 그러니까 한 학년 아래인 네가 고등학생이었다가 아직 대학생이었을 때. 그 때 난 널 생각하면 걱정부터 됐어.
연하고 부드러운 네가, 무섭고 아픈 것들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상처 받을까봐. 혹시나 네가 너무 아파서 도움이 필요한데도, 다른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 않으려고 혼자 끙끙 앓고 있을까봐. 그런 걱정들 때문에 은근슬쩍 너의 안부를 살피곤 했어.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너의 무해함은 강함이라는 것을 깨달았어.
넌 작고 약한 것들에 마음 아파하고, 네 감정에 솔직하면서도 타인에 대한 따스함을 잃지 않지. 다정한 네가 세상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고 있던 거야. 보기만 해도 위로가 되는 너의 존재가 그렇게 나를,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몇 번이고 일으켜주었어.
그런 네가 너를 닮은 따스한 사람을 만나, 손을 꼭 잡고 새로운 삶을 꾸려가는 오늘이 꿈만 같아.
둘이 결혼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 동화 속 이야기 같았어.
그런 동화 있잖아, 악당도 없고, 아픈 사람도 없고, 고난이나 시련도 없는 이야기. 모두가 서로를 사랑하며,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세상. 그런 동화 속에서 공주님과 왕자님은 세상을 이롭게 하고, 훗날 별이 되어 영원히 사람들을 보살피지.
물론 현실은 동화와는 달라서, 가끔 나쁘거나 아픈 일들도 생기겠지만. 그래도 지금 네가 잡고 있는, 사랑하는 그 사람의 손을 놓지 않았으면 좋겠다. 두 사람은 이미 함께 많은 일들을 겪으면서도, 서로의 무해함을 지켜냈잖아. 서로에게 사랑의 증거가 되었잖아.
부끄럽지만, 철 없던 옛날에 사랑이나 신뢰에 대한 어마어마한 환상이 있었어.
같이 손 잡고 불구덩이도 뛰어들 수 있는 거, 낭떠러지에 몸을 던질 수 있는 거 말이야. 그런데 요즘은 철이 든 건지, 아니면 늙어(?)버린 건지, 조금 더 사소하고 일상적인 순간에서 사랑과 신뢰를 발견하곤 해.
예를 들면, 너무 추운 날 화장실에 다녀왔는데 따스한 핫팩이 든 주머니에 손을 넣어주는 순간.
혹은 엄청나게 취해버린 밤에도, 잊지 않고 전화를 걸어 다 꼬여버린 혀로 집에 가고 있다고 말하는 순간.
그게 불구덩이랑 낭떠러지 어쩌구 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인 것 같더라. 사랑이 아니라면 말야.
그리고 네가 그런 사랑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어.
반듯해서 절대 엉킬 일 없는 사랑.
캄캄한 동굴 속을 지나가는 것 같을 때에도, 곁에 있다는 것을 또렷하게 보고 느낄 수 있는 사랑.
어쩌면 네가 읽기엔부담스러울, 축사도 아닌데 자꾸만 아련해지는 글을 왜 쓰고 있을까 곰곰히 생각해봤어.
네 사랑이 아름답기 때문이었나봐. 사람들은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을 기록하고 기억하고 싶어하잖아. 그런 것들이 삶을 빛나게 만들고, 계속해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게 만드니까.
그래서 앞으로 시간이 많이 흐르고, 서로가 미워지기도 하고, 주변의 일들이 나를 괴롭히는 것만 같을 때가 온다면, 두 사람이 이 날을 기억했으면 좋겠어. 만약 세상의 일들로 기억이 희미해지는 순간이 온다면, 기꺼이 내가 증인이 될게.
새 출발을 축하하던 많은 사람들, 웃고 우시던 부모님의 얼굴, 그리고 마지막으로 - 그 모든 순간 놓지 않고 있었던 서로의 손을, 용감하면서도 무해한 서로의 마음을 본 증인.
정말 기쁜 날이야. 두 사람의 결혼을 축하해.
2024년의 아름다운 날에, 언제나 네 증인이 될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