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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줄넘기 Apr 13. 2023

상처를 싸매주는 마음

-<어둠을 걷는 아이들> 퐁과 참 사부 일화

  이야기는 남원의 교도소 안 망고나무 아래에서 시작한다. 이곳에 사는 퐁과 솜킷은 서로를 지켜주는 존재다. 퐁은 오랜 관찰을 통해 어떤 망고가 가장 먼저 익었는지 파악한다. 솜킷에게 망고가 떨어질 자리를 알려주자 마법처럼 솜킷에 품에 떨어진 망고. 망고를 뺏으려는 무리와 추격전을 벌인 끝에 온몸은 만신창이가 되지만 달콤한 망고를 맛보는데 성공한다. 

  

  교도소는 '열매는 나무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는다‘라는 논리로 수용자가 낳은 아이도 같이 수감한다. 엄마가 출소하거나 아이가 열세 살이 되어야 교도소에서 나갈 수 있다. 이런 규칙을 만든 건 총독이었다.


  차타나는 모든 것이 풍성한 도시였지만 큰 불이 나 도시의 모든 것이 타 재가 된다. 사람들이 절망에 빠져있을 때, 한 젊은이가 나타나 도시를 재건한다. 스스로 총독이 된 그는 불의 사용을 금지하고, 마법으로 빛을 만들어 불 대신 사용하게 한다. 


  퐁은 총독을 존경했다. 출소 후에 그의 곁에서 일을 하는 게 유일한 꿈이었다. 총독이 교도소를 방문한다는 말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총독이 방문하자 모처럼만에 교도소에 먹을 만한 음식이 차려진다. 한 무리의 아이들이 몸이 약한 솜킷의 그릇을 엎어 버리자 퐁은 그대로 날아가 솜킷을 지킨다. 


  이목이 퐁에게 집중되고, 총독이 나선다. 총독은 싸움의 연유를 묻지도 않고 '앞으로 착해지라'는 말을 한 뒤, 퐁의 귀에 대고 차갑게 속삭인다. 어둠에서 나온 자식은 어두울 수밖에 없다고. 이 말은 내내 퐁을 따라다니며 괴롭힌다. 


  탈출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적도 없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교도소를 벗어나게 된 퐁. 음식물 쓰레기통 안에서 연거푸 토하면서도 움직이지 않는다. 며칠을 굶은 퐁은 절의 음식을 훔쳐 먹으려는 순간 한 부인에게 어깨를 붙들린다.


  "너 이 녀석, 감히 스님 드실 음식을 훔쳐?"


  "아니에요, 스님이 제게 먹으라고 하셨어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이 술술 나온다. 스님들이 소란스러운 소리에 모여든다. 퐁은 ‘훔친 것도 나쁜데, 거짓말까지 했으니 나는 이제 죽었구나’하고 눈을 꼭 감는다.


  "스님, 이 녀석이 스님들 음식을 훔치고, 스님이 먹으라고 했다고 거짓말까지 합니다."


  이 말에 인파를 헤치고 노승이 등장한다.


  “제가 공양을 먼저 드리고 먹으라고 했는데, 이 녀석이 배가 고파 제가 한 말을 잘 듣지 못했나 봅니다."


  아이의 잘못된 행동을 가르치기 위해 옳고 그름부터 따지는 어른이 있고, 잘못을 덮어준 후 가르치는 어른이 있다. 전자의 어른은 분명히 옳은 말을 하는데, 듣는 아이는 자기 사정을 헤아려주지 않는 어른이 야속하다. 잘못한 것은 생각나지 않고, 억울한 마음만 든다. 후자의 어른은 '이 사람 뭐야?' 싶다. 자신의 처지를 알아주니 고마운 마음이 앞선다. 그가 하는 말이 귀에 들리고, 마음에 심긴다.


  교도소에서는 재소자 표시로 팔목에 지워지지 않는 파란 줄을 그었다. 노승은 퐁의 손목에 실팔찌를 하나씩 묶어 주며 기도한다. 수십 개의 축복을 빌어주며 손목에 실을 감아주니 퐁의 재소자 표시가 가려진다. 


  노승에게서 아이를 대하는 태도를 배운다. 하나, 그는 사람이 많은 곳에서 아이에게 창피주지 않았다. 다만 자신의 처소에 불러 함께 있었다. 둘, 노승은 아이를 추궁하지 않았다. 아이가 하는 거짓말을 중간에 끊지 않고, 귀를 기울여 들었다. 셋, 모든 이야기를 들은 후에 아이의 필요를 채워 주었다. 네가 처음으로 배워야 할 것이 있다고 말한 뒤, 훔친 꼬치에 가장 어울리는 소스를 찾아보자고 말한다.


  배를 채운 퐁에게 노승은 네가 원하는 길을 떠나도 좋고, 마을에 머물러도 좋다고 말해준다. 당신이 퐁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퐁은 자신이 세워놓았던 계획을 내려놓고, 그곳에 머문다. 사찰의 규칙을 자발적으로 배우고 지킨다. 비쩍 말랐던 퐁은 노승 곁에서 자신을 살찌운다. 


  아이는 자신을 가르치려던 총독에게서는 아무것도 배우지 못했다. 그의 비난에 되레 상처만 받았다. 아이는 자신의 상처를 싸매준 노승에게서 아마 많은 것을 배울 것이다. 아무것도 가르치려고 하지 않아도 아이는 노승의 삶을 흡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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