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있는 세계>, 책을 읽는 이유
-흔들리지 않기 위해
우리가 읽는 책이 우리 머리를 주먹으로 한 대 쳐서
우리를 잠에서 깨우지 않는다면,
도대체 우리가 왜 그 책을 읽는 거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가 아니면 안 되는 거야.
-카프카가 1904년 1월 친구 오스카 폴락에게 보낸 편지 중에서
이 구절을 만난 뒤로 나를 혁신적으로 흔드는 책을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했었다.
나를 흔드는 책은 어떤 책인가?
유명한 저자의 유명한 고전. 이게 내 결론이었지만 그 책들은 쉽게 읽히지 않았다.
오늘 산을 내려오면서 '사람마다 볼 수 있는 세계가 얼마나 다른가' 생각했다.
등산을 하면서 꽃을 보는 사람도 있고, 선글라스를 쓰고 앞만 보며 가는 사람도 있다.
이 둘은 같은 길을 걸었을까?
나를 깨뜨리는, 나를 넘어선 세계를 본 것 같은 철학자들의 책을 읽지 못하는 나.
내가 재밌게 읽는 책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세계' 안에 있다.
한 사람이 품고 있는 세계가 이토록 다른 상황에서
해석의 옳고 그름에 관계없이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책이 얼마나 반가운 일인지.
나와 작가의 세계의 접함점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지.
그래서 좋다고 하는 책과 베스트셀러는 다르다.
읽었으면 하는 책과 읽는 책이 다르다.
우리는 공통점을 찾는 것에 더 익숙하고,
이해할 수 있는 세계 안에서 편안하다.
책이 꼭 도끼일 필요가 있을까?
책의 의무가 나를 흔들어 놓는 것일 이유가 있을까?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세상을 반복해서 이해하는 것도 의미 있다.
세상에 나 혼자가 아니라는 것, 비슷한 사람이 있다는 위로.
요즘 에세이가 인기 있는 이유.
나는 왜 책을 읽는가?
흔들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덜 흔들리기 위해서 책을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