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등급 받고 천국 가겠습니다
그렇게 화 내봐야 네 손해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나를 쏘아보며 우다다다 쏟아내는 부장이 안쓰러웠다. 적어도 처음엔 그랬다. 저 나이에 저렇게까지 화를 내면 수명이 줄어들지 않을까… 혈압 오시는 건 아닌가 몰라… 제가 당신의 수명을 깎아먹을 만큼 큰 잘못을 저질렀나요? 인간이 눈에서 광선을 뿜어낼 수 있었다면 나는 부장의 쌍라이트 빔을 맞고 진작에 쓰러져 있을지도 모른다.
코로나19로 예기치 못한 파장이 발생해 진행 중이던 사업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실상 해결방법이라고는 코로나가 잠잠해져 비정상화 상태인 것이 속히 정상화되기를 바랄 수밖에 없는 상황. 불가항력에 인간적 저항으로 안절부절못하며 최대한 일정을 맞출 수 있도록 상황을 살펴보지만 불가항력은 불가항력이다. 어디서부터 뒤틀렸는지 이 모든 게 내 탓이라며 몰아붙이는 저 사람에게 조금씩 미움이 돋아나기 시작한다.
처음에는 말꼬리를 자르며 질러대는 폭언에도 그러려니 했다. 무엇이 그렇게 마음에 안 드는지 몰라도 어디 한 번 속시원히 화 내보세요 하는 마음이었달까. 스스로도 이겨내지 못하는 듯한 화가 여러 차례 나에게로 쏟아지고 나서는 별 생각이 다 든다. 듣고 있는 나 또한 짜증이 갑자기 치솟았다가, 그래 내가 모지리지 자책도 했다가, 쏟아지는 독화살 같은 말들이 끝나기만을 멍하니 기다린다. 한글날을 앞두고 불경하게도 한국말을 잠시 모르는 상태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했었다. 독화살을 다발로 맞고도 이 정도면 태연하니 괜찮다 생각했는데 뒤늦게 욕지기가 솟는다. 말 하나로 이렇게 사람을 아프게 할 수도 있다. 참 새삼스러운 요즘이다.
누군가를 미워한다는 마음은 무엇일까. 내 삶에서 그다지 중요하지도 않은 사람을 애써 미워하는 게 가치가 있는 일인가? 이해할 수 없는 사건의 끈들이 얽혀버려 풀어낼 수 없는 타래가 되어버렸다. 이것도 지나가면 다 별것도 아닌 일, 이름조차 가물가물하여 있었는지도 모를 사람이 될 거라 생각하며 마음을 달래 본다. 아, 왜인지 모르게 '정교빈, 신애리 죽이고 지옥가겠다'던 아내의 유혹 속 그 파멸의 대사가 불현듯 떠오른다. 지옥행을 결심하게 되는 그 뒤틀린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기도.
이러나저러나 하나뿐인 내 인생 스쳐 지나가는 부장1 따위에 지옥행을 결심할 순 없지. 이 악물고 버텨보기로 한다. 이놈의 회사생활, 최대 위기 국면을 맞이하여 '네가 뭔데?' 정신과 '그러라 그래' 정신이 필요하다. 안쓰러움이 미움과 분노로 번져가지 않길 바라며 좋아하는 팟캐스터의 명언을 외쳐본다.
눈물 닦고 나면 다 에피소드!
2021년 10월의 차가운 밤에
오랜만에 쓰는 글이 이런 내용이라 상당히 애석한 K가 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