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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녕 제주 Jun 01. 2020

 대동호텔의 품격

손님으로 대접받다

  제주 동문시장 건너편에 자리한 대동호텔은 관광명소인 동문시장이 가깝 하고 조용하다는 점에서 상당히 매력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SNS 상에서 특별히 유명하거나 최신의 시설을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직접 본 첫인상은 중소도시의 읍내에 가면 과거에는 지역의 명소로 자리매김한 곳이었으나 교통의 발달과 게스트하우스, 펜션을 중심으로 한 숙박문화의 변천과 함께 쇠락한 그런 호텔의 느낌이었다. 그렇게 화려하지 않은 이 호텔은「문경수의 과학탐험」에 등장하는데, 왠지 느낌이 좋아서 일부러 찾아가 보게 되었다.

방문 당시 2018 제주아트페어가 "여관방 아트페어"라는 주제로 열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 흔적이 남아있다.
호텔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빛내주는 작품들

이 호텔의 시설은 객관적으로 최신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깔끔하게 관리가 잘 되고 있었고, 복도 구석구석 예술작품들이 운치를 더해주는 데다가, 그냥 모르고 보면 일반적인 수석같이 생긴 화산탄(화산 폭발 후 화구에서 포출된 점성의 용암이 공중에서 비행하는 도중 바람의 저항에 의해 변형 작용을 받아서 고화되어 낙하한 돌덩이)이 여행객을 반기는 곳이다. 그래서 오히려 요즘 표현으로 클래식한 매력이 느껴진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호텔에 들어서자마자 체크인을 하면서 느끼게 되는 여행자를 향한 따뜻한 시선이었다. 내가 머물던 1박 2일 사이에도 프런트에는 여러분이 돌아가면서 앉아 계셨는데, 공통적으로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너무 따뜻했다. 여행을 다니면서 많은 숙박업소 주인들이나 프런트의 직원들을 만나봤고 운이 좋게도 친절하고 인심 좋은 분들도 많이 만나봤지만, 그중에서도 대동호텔의 직원들의 태도는 친절함을 넘어서서 품격이 느껴졌다. 말로 표현하기가 참 어려운데 사람에 대한 존중과 배려가 담겨 있는 모습인데, 그런 태도가 억지로 하는 것이라 몸에 배어있어서 행동 하나하나에 묻어 나오는 느낌이었다. 그런 그분들의 태도는 한 명의 여행자이자 인간으로서 내가 존중받고 대접받는 느낌을 들게 했고, 손님인 나도 그분들에게 존중의 눈빛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게 오래된 역사에서 나오는 품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분위기에 반해 제주시내에서 숙박할 일이 있으면 꼭 이곳에서 머무르게 된다.

 



배지근한 국수 한 그릇, 그리고 여유하나

 제주말로 “배지근하다”라는 말이 있다. 굳이 육지 말로 표현하면 맛이 깊어서 여운이 있는, 묵직하고 기름진데 담백하고 감칠맛 나는 그런 깊은 맛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딱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너무 화려하지 않고 재료의 맛이 잘 살아있지만 그러면서도 가볍지도 않은 맛을 뜻한다고 생각된다. 추운 날씨 속에 거문오름을 다녀온 후 먹은 보말  칼국수가 그 맛을 표현하기에 적합했다. 국물이 진하돼 담백하면서 재료의 감칠맛이 살아있는 그런 맛. 거문오름을 다녀온 추위가 녹아내렸다.




어느 부부의 사랑노래


모처럼 햇살이 비추는 날 바리스타가 나무다리 옆에 앉아 두 발 뻗고 커피를 마신다, 잉어 구경한다고 눈부신 햇살에 미간이 주름진다. 보고만 있다가 우산 하나를 펴 난간에 묶어주니 피서 왔다고 좋아한다. 그 모습에 또 어쩔 수 없이 일찍 문 닫고 바다로 야간 피서를 갔다. 제주에 살면서 좋은 점은 첩첩산중에 있다가도 바다가 보고 싶어 지면 후딱 내달려 금세 소원을 들어줄 수 있다는 거다.

 추운 겨울 난로 연통에서 피어오르는 연기에 끌려 들어갔던 카페 한편 벽면에 걸려있는 짧은 글하나. 물어보진 못했지만 사장님 남편이 쓴 것 같은데 이 얼마나 소박하게 아름다운 사랑노래인가. 너무 과하게 기름지지도 무심하지도 않은 달콤한 부부의 배지 근한 사랑노래. 마치 보물 찾기를 하다 찾은 작은 보물을 들고 미소 짓는 그런 기분. 어린아이가 수줍은 얼굴로 다가와 그 작은 고사리 손에 보물같이 가지고 있던 사탕을 내 손에  꼬옥 쥐어줄 때 그 마음이 느껴져서 짓게 되는 그런 작은 행복.

연통으로 연기가 피어오른다. 나그네가 저 온기를 거부할 수 있을까

 여행에서 대단한 경치를 보고 유명한 곳에서 사진을 찍고, 티비에 나온 맛집을 찾아가서 한참을 기다려 먹으며 즐기는 것도 여행의 맛이지만, 이런 작은 감동이 주는 행복도 여행이 주는 작지만 커다란 행복일 거라고 확신한다.

 오픈카를 타고 달리면서 제주의 에메랄드 빛 바다와 시원한 바닷바람을 느끼는 것도 제주의 여행이지만, 바닷가를 천천히 걷다가 우연히 듣게 되는 해녀의 숨비소리도 제주의 여행이 아닐까

 여행도 그렇고 인생도 그렇고 정답이 어디 있고 만능키가 어디 있을까. 내가 가진 열쇠로 이 문을 열면 행복이 나올 수 있다는 희망으로 매일매일 인생의 문을 하나씩 열어보는 과정이 아닐까. 행복으로 가는 만능키가 있다면 만능키를 가지지 못 한 사람은 얼마나 불행한 것인가


 영화 포레스트 검프에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온다. “Life is  like a box of chocolates. You never know what you gonna get”. (인생은 초콜릿 박스와 같아서 무엇을 얻을지 알 수 없다)

 초콜릿 박스에는 여러 가지 맛의 초콜릿이 들어있다. 초콜릿을 먹기 위해 손을 넣었을 때 그중에 달콤한 초콜릿이 나올 수도 있고, 알코올이 들어간 아이의 입장에서는 쓰디쓴 초콜릿이 나올 수도 있다. 초콜릿 박스에 손을 넣을 때는 달콤한 사탕이 나오길 기대하며 손을 넣는 것처럼 우리는 인생이 항상 달콤하길 바라지만 인생이 꼭 그렇게 달콤한 맛만 나오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삶은 어찌 보면 견뎌나가는 것의 연속일 때가 많다. 하지만 달콤한 사탕이 나오길 기다리며 손을 넣는 그 기분이 또 인생의 재미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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