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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드레킴 Feb 15. 2024

완벽했던 울루루의 일몰

비 내리는 사막? 흐린 날에도 실망시키지 않아요.


해가 쨍쨍한 오후엔 너무 더워서 할 일이 없기 때문에 리조트 안의 수영장을 이용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영을 하기보다는 썬베드에 앉아 책을 보거나 테닝을 하며 조금은 무료한 시간을 보낸다. 사람은 누구나 멍 때리는 시간이 필요하다는데 이곳이 멍 때리기에 아주 좋은 환경인 것 같았다. 하지만, 둘째 10살 려환이는 잠시도 가만히 있고 싶지 않아 한다. 도마뱀을 찾아 사막에 나가자는 아이를 겨우 달래어 수영장으로 갔다. 형아는 책을 읽고 싶어 해 내가 대신 놀아줘야 했지만 이런 더위의 물놀이는 나름 즐기는 편이다. 

수영장에서 잠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신랑이 어제 아쉬웠던 일몰을 오늘은 제대로 볼 수 있겠다며 맑은 하늘을 보며 기대심을 내보였다. 오늘은 일몰 관람도 좀 일찍 서둘러 가기로 했다. 어제처럼 울루루를 바라보며 훈제 치킨을 먹자는 의견에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아웃백 호텔&롯지(Outback Hotel & Lodge)



그런데,  오후 5시가 되니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마트로 가는데 갑자기 토네이도가 오는 듯한 모래바람이 휘몰아친다. 

아니 이건 또 무슨 상황이지?

한 시간 전까지만 해도 뜨겁게 내려쬐는 수영장에서 놀았는데,, 울루루의 기상 상황을 종잡을 수가 없었다.

신랑은 절망스러운 표정으로 기상 예보 사이트를 보고 있다.


"뭐래?"


"하~~~~ 정말,,,, 뇌우와 비구름이 잔뜩 덮여있어. 오늘 일몰 보기는 망했다."


어제도 천둥번개로 제대로 된 울루루의 해넘이를 보지 못했는데 ,,, 오늘도 그 기회가 없다고? 우린 내일 떠나야 하는데,,, 

말이 끝나기 무섭게 차 위로 우박이 쏟아진다. 그냥 작은 알갱이가 아닌 엄지손톱만큼 큰 우박이 무서운 소리를 내며 폭풍 같은 바람과 함께 내려친다. 

"엄마! 구름이 이동하는 속도가 비행기 가는 속도처럼 빨라~~~~"

슈퍼마켓 앞까지 겨우 갔지만 차에서 내리지도 못하고 블록버스터 영화 촬영 체험하러 온 사람들처럼 밖을 보며 소리를 질러댄다. 잠시 주춤해진 틈을 타 나만 내려 마켓으로 뛰어 들어갔다. 치킨과 빵등  몇 가지 빠르게 주어 담고는 계산대로 갔다. 계산대의 점원에게 물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에요~~~. 밖은 지금 굉장하더라고요. "


흥분한 나에 비해 점원의 반응은 차분했다. 


" 네~ 11월이잖아요. 가끔 있는 일이에요. 괜찮아질 거예요." 



우리는 일몰 관람을 우선 포기하고 숙소로 방향을 돌렸다. 침대에 몸을 던지며 신랑이 한숨을 내쉰다. 


"그래도 지금 가는 건 너무 위험해. 잘못하다 벼락이라도 맞으면 어떻게..."


30분쯤 지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 우박을 동반한 비가 그쳤다. 하지만 높은 건물이 없는 이곳에서는 창문에서도 육안으로 저 멀리 번개 치는 게 계속해서 보인다. 

" 기상 예보로는 저 구름이 한 시간 안에 이쪽을 지나갈 거 같아. 우리 나가보자!"

걱정이 되긴 했지만 신랑의 말을 따르기로 했다.


리조트를 빠져나와 울루루-카타추타 국립공원으로 들어가는 도로를 달리는데 깜쪽같이 하늘이 게이고 있다. 달리는 차 창문을 열었다. 원래도 깨끗한 공기지만 더운 기운까지 씻어준 비바람 때문에 청명한 공기와 시원한 바람이 새벽처럼 상쾌하다. 울루루로 가는 곳은 곳곳이 심하게 침수가 되어있었는데 그 침수로 고인 웅덩이마다 주변 풍경의 반영을 이루어 그림같이 멋진 장엄한 풍경을 연출한다. 

어제 일몰을 봤던 view point로 향했다. 

아직 남아있는 구름들 뒤로 해가 넘어가려는지 울루루는 점점 붉은 옷을 갈아입는다. 


"사막이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샘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야."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

사막에 웅덩이가 생길 정도로 비가 올 거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어쩜 어제와 오늘 갑작스러운 뇌우와 폭우로 당황스럽고 자칫 울루루의 멋진 일몰을 못 볼까 걱정했지만 오히려 운이 상당히 좋았다고 생각해 본다. 비구름은 맑은 날에는 볼 수 없는 바위 사이사이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붉고 짙은 또 다른 모습으로 보이는 울루루 바위는 환상 그 자체였다. 

황홀했던 두번째 울루루의 일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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