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일이다.
오늘은 울루루를 떠나야 하는 마지막 날인데 아직 계획했던 ‘울루루 한 바퀴’를 돌아보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 이틀 동안 갑자기 내린 뇌우를 동반한 비와 바람이 주원인이기도 하지만 아이들의 컨디션을 핑계삼은 어른들의 저질체력이 근본적인 이유였을까? 열정이 없었던 건 아닌데,,, 아쉽다.
아침 일찍 일어나 울루루에서의 마지막 일출을 맞이하며 더 아쉽지 않게 반바퀴라도 돌아보기로 했다.
어제 내린 폭우로 공기도 꽤 상쾌하고 기온도 아침에 운동삼아 걷기엔 딱이었다. 첫날 도착했던 Mala walk이 아닌 Mutitjulu Waterhole(폭포로 만들어진 호수)이 있는 Kuniya walk로 먼저 향했다. 우리나라 단군 신화처럼 이곳에도 신화가 있는데 쿠니야(여성 비단뱀)와 리루(독이 있는 갈색 뱀 인간) 사이의 치명적인 전투가 이곳에서 있었다고 한다. 폭포 쪽으로 들어가는 길은 며칠 연이어 있었던 폭우로 나무들이 많이 뽑히고 잘려있었다. 얼마나 센 바람이었는지,,, 만약 여기에 사람이 살거나 건물이 있다면 피해가 상당했을 거 같다.
폭포로 들어가다 보면 왼쪽에 동굴 벽화가 있다. 2만 년 전에 살던 원주민들의 벽화를 볼 수 있는데 굉장히 선명해 놀라움을 자아낸다. 벽화는 사냥하는 방법 등이 기록되어 있고 벽에 그림을 그리며 교육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폭포로 들어가는 길은 그야말로 붉은 진흙탕 범벅이다. 어릴 적 벽돌을 빻아 소꿉장난을 하던 딱 그 고춧가루 색이다. 안 그래도 좁은 길이 진흙 웅덩이로 여기저기 파여 있어 이미 신발은 엉망이지만 한 줄로 줄지어 들어가는 사람들은 기대감과 신비로움에 표정들이 좋다. 비가 내린 후라 폭포의 뷰가 굉장했다. 사막에 오아시스처럼 펼쳐진 무티출루 워터홀(Mutitjulu Waterhole)은 너무 아름답다. 파란 하늘아래 울루루 바위가 물아래로 연결되는 듯 선명한 라인을 만든다. 고요한 이 공간에서 우리 가족은 잠시 멈추어 감상에 빠진다.
쿠니아 산책로에서 나와 쿠니야(Kuniya) 산책로와 말라(Mala) 주차장을 연결하는 렁카타(Lungkata)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이 루트는 울루루 기본 산책로 중 지질학적으로 가장 인상적이고 시각적으로 다양한 구간 중 하나라고 한다. 오래전에 말라죽은 듯 보이는 나무들도 많을걸 보니 사막임은 사실이다. 하지만 울창한 숲길이 나오는 구간은 울루루만의 특이한 지형 때문인지 사막임을 잊게 하기도 한다. 산책로를 걷다 보면 곳곳에서 크고 작은 자연동굴을 발견할 수 있는데 우린 혹여나 딩고가 나올까 뒤꿈치를 들고 도망치듯 빠른 걸음을 걷기도 했다. 조금 더 가다 보면 사진 촬영 금지 팻말이 나온다.
이 구간은 현재에도 원주민이 신성시 여기고 제사를 지내기도 하는 곳이라 하여 촬영을 일체 금지하고 있다. 뭔가 더 특별한 부분이 있을까? 왜 하필 이 구간을 신성시 여길까? 하나의 바위는 오랜 시간 동안 부서지고 깨져 낙석도 꽤 많이 있었다. 이런 낙석도 함부로 만지가나 절대로 가져가서는 안된다고 했다. 촬영이 금지된 구간이 지날 무렵 아이들이 무언가를 발견했다.
새집이다. 그냥 새집이 아닌 수 천마리는 살고 있을 것처럼 보이는 많은 구멍들이 보인다. 수천 년 동안의 바람과 물의 침식으로 깎여 작고 큰 둥지로 만들어진 새들의 아파트인 셈인데 핀치새와 난킨 황조롱이 살고 있다. 예리한 조류 관찰자들은 둥지를 틀고 있는 검은 가슴 독수리나 황갈색 개구리입을 발견할 수도 있다고 하는데, 이 새들도 시조부터 이곳에 세대를 거슬러 오며 살아남은 원주민들과 같은 역사를 지니고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시간만 더 있었다면 울루루 한 바퀴를 완주할 만큼 곳곳이 다른 매력으로 파노라마틱한데 너무 아쉬웠다. 혹시나 다른 사람들이 울루루를 방문하게 된다면 꼭 한 바퀴 아니 두 바퀴 천천히 돌아볼 것을 추천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