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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 부리다 큰코다친 사연

아는 비행기도 다시 물어보자.

by 왕드레킴

숙소로 돌아와 짐을 꾸렸다.

이제 다시 시드니로 돌아갈 시간. 울루루를 떠나는 게 너무 아쉽다.

묘한 매력으로 특별한 걸 하지 않아도 오래오래 더 머물고 싶은 신비한 울루루.

그 넓은 대륙에 한 가운데 있어 '세상의 배꼽'이라고 불리는데 왠지 어떤 섬에 와 있는 느낌이 들었다.

비행기 출발이 1시 30분이라 여유가 있으니 우린 마지막까지 알뜰히 시간을 써보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때마침 신랑한테 도착한 메시지를 보니 시드니행 비행기 편이 30분 지연되었다는 거다.

'잘됐네~ 조금 더 여유 있게 움직여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11시에 '디저리두 워크숍'이 있는데 악기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참여해 보면 좋을듯 싶었다. 우선 체크아웃을 하고 짐을 렌터카에 실었다. 어차피 에어즈락 리조트에서 공항까지 15분 거리이고 렌터카 반납도 공항 내에 차키만 반납함에 넣으면 되니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디저리두를 체험해 보는 시간은 야외에서 진행되어 좀 덥긴 했지만 새롭고 즐거운 시간이었다. 근데 예상보다 워크숍이 길어졌다. 공항으로 가는 길에 렌터카에 기름도 채워야 해서 워크숍이 끝나기 전에 일어나자고 사인을 보냈다.

조용히 빠져나와 리조트 옆 주유소에서 주유하는 동안 마지막으로 아이들에게 달달구리 간식도 사주고 플렛화이트 한 잔도 뽑아 마셨다. 주유소에서 마시는 모닝커피도 꽤 괜찮다.

온갖 여유를 부리며 도착한 공항, 차량에 있던 쓰레기까지 깔끔하게 정리하고는 출국장으로 향했다.

역시나 한가했다.

우리가 탑승할 젯스타 항공 카운터에 줄을 섰다. 우리가 1번이다.

잠시 후 항공사 직원들이 와서 체크인 수속이 시작되었다. 항공사 직원에게 여권을 내밀었더니 갸우뚱거리며 우리 얼굴을 한번 쳐다보더니 표정이 굳는다.


"죄송합니다. 시드니행 비행기는 탈 수 없어요. 15분 전에 수화물 벨트가 닫혔습니다."

"엥??? 뭐라고요???"


우린 안내받은 대로 지연된 비행기 출발 시간을 감안해서 공항에 도착했고 수속을 밟으러 왔는데 이게 무슨 말인가? 아직 이륙시간까지는 40분이나 남아 있는데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규정상 이륙시간이 지연되어도 수화물 수속 시간은 변함이 없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당장 오늘 저녁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 '레퀴엠' 오페라를 예약해 두었는데 등골이 오싹해진다.


"오늘 시드니에 가야해요. 꼭이요."

"Please~."


아무리 이야기를 반복해서 해봤지만, 오늘 시드니에 갈 수 없단다…. 무슨 방법이든 조치가 필요했다.


"매니저를 불러주세요"


실랑이를 부리는 사이에 우리 가족 뒤로 긴 줄이 늘어섰고 그 탑승객들은 시드니행 탑승객이 아닌 2시 30분 멜버른으로 가는 수속 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디저리두 워크숍에 주유까지 여유를 부리던 30분 전의 우리 가족을 떠올리니 얼마나 한심하기 짝이 없다.

잠시 후 매니저가 나왔다.


"쏘리. 하지만 규정상 도와드릴 수가 없습니다."


매니저의 설명은

1. 시드니행 탑승을 원하면 수화물을 버리고 탑승하든지

2. 2시 30분 비행기로, 멜버른으로 가서 저녁 8시에 다시 멜버른-시드니행 항공으로 갈아타고 가면 시드니에 밤 10시 30분에 도착할 수 있다.

는 게 현재로서는 최선이라고 했다.


혹시나 수화물만 다음 비행기에 실어서 나중에 공항에서 찾을 수 있는지를 물어봤지만 보안법상 안 된다고 했다.

결국, 우리 가족은 오페라 하우스의 공연 관람을 포기해야 했고, 다시 갈 일이 없을 거로 생각했던 멜버른 공항으로 다시 돌아 가게 되었다. 이를 위한 울루루-멜버른까지 항공권 $300 도 지출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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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 검사를 마치고 면세구역 탑승구 쪽으로 들어가니 시드니행 수속이 진행되고 있었다. 떠나는 그들을 보니 이렇게 허무하고 억울할 수가…. 내가 저 비행기를 타야 했는데 말이다.


속상해하는 날 보고 아이들이 다가와 안긴다.

"엄마, 우리는 괜찮아~ 걱정하지 말아요."

"이것도 여행이잖아~"

"우리 같이 있으니까 괜찮아"

"근데, 엄마 영어 엄청나게 잘한다…."


그래. 이것도 하나의 큰 경험이지. 아이들의 위로에 마음이 조금씩 가라앉는다.

그리고 우린 다시 멜버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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