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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드레킴 Mar 07. 2024

이민자들의 세상 시드니

생각지 못한 저녁식사를 멜버른 공항에서 하고 다시 시드니행에 탑승했다. 시간을 금처럼 사용해도 부족한 여행에서 12시간을 공항과 하늘에서 허비해 버리니 입맛이 있을 리 없다. 나처럼 예민한 성격을 닮지 않아 다행인 두 아들과 먹성 좋은 신랑과 함께 도착한 시드니 공항의 시계는 이미 밤 10시 30분.

계획대로라면 오후 5시경 시드니에 도착 후 이민 와서 살고 있는 사촌동생이 우리 가족을 픽업해 오페라하우스로 바로 데려다주고 오페라 관람과 야경 감상 후 호텔로 돌아 올 시간과 거의 같은 시간이다.

애초에 사촌 동생이 픽업을 해줄 예정이어서 시드니공항에서 숙소까지의 교통편도 미리 알아보거나 예약하지 못했다. 시내까지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고 지하철(train)도 잘 연결되어 있어 자연스럽게 우린 공항 지하철역으로 이동했다. 그런데, 지하철역에 도착해 티켓을 구매하려고 보니 가격이 $18로 상당히 비쌌다.. 20분 거리라는데 왜 이렇게 비싼 거지? 시드니에 도착한 첫날 지하철을 타고 중앙역으로 이동할 때에도 이렇게 비싸지 않았는데 현타가 온다. 노선을 잘못 알고 있는 게 아닌지 티켓창구 직원에게 물어봤지만 그 가격이 맞단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T8노선은 공항세가 포함되어 있어서 시내를 도는 지하철 요금보다 훨씬 비싼 것이었다. 우리 가족은 4인이라 미리 알았더라면 우버를 부르는 게 훨씬 편리하고 절약인 셈인데 오늘은 밤늦은 시간까지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밤 11시가 넘어 도착한 호텔 지하에선 파티 중인지 뿜스뿜스 음악 소리가 시끄럽다. 내 지친 마음과 따로 움직이는 하루.

그래도 오늘 안에 도착한 게 어디냐며, 고생했다고 말해주는 듯한 리셉션 사인에 마음을 녹여본다.




호주의 아침은 빠르다.

많은 카페가 아침 6~7시면 오픈을 하고 흔히 우리가 말하는 브런치 메뉴들이 있는 즉, 카페 조식 문화가 발달되어 있다. 한국의 카페가 보통 9~10시에 오픈하는 것과 비교해 보면 호주 사람들은 상당히 아침형 인간인 셈이다.

우리도 아침형 인간이 되어 일찍 일어났다. 호주시민들처럼 아침식사를 근처 카페에서 하면 좋았겠지만 이 호텔의 조식은 가격 대비 훌륭하다는 평이 많아 신랑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소문대로 상당히 만족스러운 조식을 든든히 먹고 나와 소화도 시킬 겸 달링하버까지 걸었다.

어제와 다르게 기분이 좋다. 주말이지만 아침 8시가 지난 거리풍경은 활기가 넘친다. 오픈을 준비하는 상점들과 주말이지만 일하러 출근하는 듯 보이는 사람들. 하버로 조깅을 하는 사람들까지 다양하다. 다양한 인종의 사람들이 모여 대도시가 만들어진 시드니의 아침 풍경에서 파란 하늘에 상쾌한 공기가 아침형 문화를 만드는 중요한 요건이 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11월 19일인데 곳곳에 크리스마스 장식도 보인다.

그렇다. 호주의 크리스마스는 여름이다. 우리나라와 반대인 기후를 가진 호주는 지금 한창 한여름의 크리스마스를 준비 중이다. 그렇다면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반소매 옷을 입고 썰매가 아닌 윈드 서핑을 하고 나타나실까? 재미있지만 뭔가 어색한 상상도 해본다.

시드니에 오면 지하철 외에 꼭 경험해봐야 할 두 가지 교통수단이 더 있다. 바로 트램과 페리이다.

첫 번째 우리의 목적지는 달링하버 페리 선착장이다. 숙소에서 가까운 달링하버에서 오페라하우스가 있는 하버 브리지까지 페리를 타보기로 했다. 달링하버에 위치한 해양박물관을 지나면 피어몬트 베이(Pyrmont Bay)가 나오는데 이곳에서 루나파크가 있는 Milsons Point Wharf, 오페라하우스, 하버브리지가 있는 Circular Quay를 갈 수 있다.

패키지 관광객들이 많이 이용한다는 식사를 제공하는 유람선용 페리가 아닌 시드니 시민들이 출퇴근등 일반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는 페리이다. 페리나 트램을 포함한 시드니의 모든 교통수단은  교통카드인 오팔카드로 탑승이 가능한데 공항과 중앙역은 물론 지하철역이나 편의점(작은 마트)에서 구매가 가능하다.

어제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허둥지둥 달링하버 선착장 근처에 있는 편의점으로 뛰어가 1일권 오팔카드를 구매했다. 성인은 $17.80, 유스는 $8.90이다. 오팔카드는 이용방법을 잘 알고 가면 꽤 절약하며 시드니와 외곽 여행까지 할 수 있다. 페리의 경우엔 배를 타고 가며 주요 관광지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시간만 허락된다면 같은 노선도 낮에 한번 밤에 한번 타보는 것도 좋을 듯싶었다. 저렴한 가격으로 페리를 타고 가며 오페라하우스의 야경을 감상할 수 있으니 말이다.

페리에서 바라본 시드니 시내는 상당히 복잡해 보였다. 도로 위에 차도 빽빽하고 가는 곳마다 사람들도 바글거린다. 주말이라 그런지 대형 피에로의 얼굴문이 있는 루나파크의 모습도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아이들은 루나파크를 지나치며 놀이공원으로 목적지를 돌리고 싶었을 수도 있지만 페리를 타고 멀찌감치 여유 있게 바라보는 게 탁월한 선택이었을 수 있다. 30분 정도 유유자적(?) 페리를 타고 도착한 곳은 시드니에서 가장 번화한 곳 중 하나인 서큘러키 역이다. 부둣가로 서서히 들어가는데 옆에 대형 크루즈가 정박해 있다. 서큘러 키 역에 내리면 오른쪽은 록스(The Rocks), 왼쪽으로는 오페라 하우스까지 부둣가를 따라 산책로가 이어진다.

우리는 먼저 주말 록스마켓이 열리는 조지 스트리트로 향했다. 명품숍부터 공예품과 개인 작품들이 전시회처럼 펼쳐진 록스 마켓은 주말마다 열리는 야외 시장으로 볼 것과 먹을 것이 풍부하다. 하버 브리지를 바라보며 노천에서 먹는 점심도 꽤 매력적이다. 록스 마켓을 돌아보니 왜 시드니를 이민자들의 세상이라고 부르는지 조금 이해가 됐다.

공예품 노상 끝으로 늘어선 푸드트럭존엔 세계각국 음식이 모두 있는 것 같다. 스페인의 빠에야와 티르키에의 케밥, 이탈리아의 피자, 베트남 쌀국수, 일본의 초밥, 햄버거는 물론 한국의 회오리감자까지 정말 다양했다. 그리고, 이 푸드트럭 존에서 인상적인 점은 사람들이 정말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유럽여행 때 주말 마켓등에서 여유 있고 게으른듯한 느낌이 있었다면 이곳에선 활기가 넘치고 최선을 다해 일하는 모습이었다. 특히, 반미를 사기 위해 베트남 푸드트럭을 찾았을 때에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학생이 눈에 들어왔다. 안쪽에는 쉼 없이 고기를 굽는 어머니로 보이는 분에게 새로 들어온 오더를 넣으며 이 청년은 반미빵을 반으로 자르고 소스를 바른 후 각종 채소를 집어넣는다. 하나의 반미를 완성하는 모습이 거의 기계처럼 빠르고 정확하다. 그러면서도 친절은 기본이고 늘어선 주문까지 놓치지 않고 받는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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