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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드레킴 Oct 14. 2024

7. 아늑한 위로가 되어주었던 또 하나의 집

어릴 때부터 책으로 봐 왔던 ‘피사의 사탑’은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직접 눈으로 확인해보고 싶은 이탈리아의 유명한 건축물 유산이다.

피사의 사탑이 있는 피사는 이탈리아의 작은 시골마을인데 피사 대성당 옆에 세워진 이 기울어진 55미터의 종탑 하나로 수백 년간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는 관광 명소가 되었다. 친퀘테레를 떠나 두 시간 남짓 떨어져 있는 피사에 도착했다. 시골이라 골목골목이 좁고 숙소도 다른 도시에 비해 다양하지 않다. 우리의 목적은 크루즈를 타기 전 피사에서 하루 머물며 피사의 사탑과 '재미있는 사진 찍기'였다. 그래서 피사 대성당에서 최대한 가까운 곳으로 숙소를 잡았다. 숙소가 오래된 구시가지에 있다 보니 주차장도 따로 없어 근처에 갓길 주차를 한 후 체크인을 먼저 하고 돌아와 필요한 짐만 꺼낼 참이었다. 신랑은 여권과 지갑만 챙긴 후 지환이 손을 잡았고 난 잠든 려환이를 안고 움직이느라 소지품이 든 가방도 차에 두고 내렸다.

신랑이 예약해 둔 숙소는 고풍스러운 건물 7층에 있었는데 화이트 톤에 깜끔한 인테리어가 너무 고급지고 예뻤다. 특히 테라스 넘어 멀리 피사의 사탑도 살짝 보이는 게 만족스러운 난 신랑을 칭찬했다. 조식이 있고 주차장이 완비된 유명 호텔은 아니었지만 예쁜 숙소를 예약했다며 만족해했다. 체크인을 마치고 짐을 가지러 내려왔다. 차를 세워둔 골목으로 들어섰을 때에도 감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차 앞에 도착한 순간 느낌이 이상하다.


1초의 정적.


무언가 잘못 본 듯한 착각이 들었다.

다시 차를 확인했다.

우리 렌터카가 맞다.

내 입을 틀어막았다.

뒷문 차창이 깨져있고 우리의 수화물 트렁크와 앞자리 내 숄더백 뒷자리의 아이 배낭까지 남아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등골이 오싹하고 소름이 끼쳤다.

아직 어린 10살 지환이와 방금 잠에서 깬 7살 려환이는 어리벙벙했다.

신랑의 얼굴은 경직되고 우리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체크인하기 위해 손에 들고 있던 네 명의 여권과 신랑의 신용카드를 제외한 모든 게 사라진 직후였다.


이탈리아 경찰서를 방문하고 영사관에도 연락하고 호텔주인과 주변에 도움을 청했지만 그저 그들에게 우리 가족은 '운이 없는 여행객', '자주 일어나는 일을 좀 세게 당한 여행객' 일 뿐이었다.


캐리어 위에 널어놓았던 덜 마른 양말과 아이들 팬티, 여행 첫날 밀라노 호텔에서 체크인할 때 아이가 선물로 받은 작은 코끼리와 곰 인형 열쇠고리만 구멍 뚫린 차 안에 깨진 유리조각과 함께 널브러져 있었다.

참, 카메라도 남겨져 있었다. 신랑이 운전석과 보조석 사이 수납함에 넣어 두었던 '라이카 카메라'. 이 강도 놈들이 급한 마음에 수납함까지 열어보지는 못했나 보다.


뒤늦게 우리의 물건이 모두 사라진 걸 알게 돼 서럽게 울부짖는 아이들에게 "괜찮아! 찾을 수 있어", "정신 똑바로 차리자",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야" 등등 어떻게든 아이들을 진정시키려고 했지만 사실 그건 나 자신에게 하는 위로의 말이기도 했다.



그날 밤, 우리는 숙소에 빈털터리로 들어와 겨우 아이들을 진정시켜 재운 후 신랑과 마주 앉았다. 그제야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이들이 깰까 봐 소리 내어 울 수도 없었다. 신랑과 꼭 안고 서로를 위로하며 울기도 잠시 우리는 냉정해져야 했다.


12일간의 여행 중 이제 겨우 3일을 보냈고 당장 내일 기다리고 기다리던 크루즈 여행을 시작하는 날이다. 하지만 기본 생필품은커녕 멋진 여행을 위해 준비해 온 모든 것들이 사라진 상태다. 바보같이 왜 환전한 현금 200만 원은 트렁크에 넣어 뒀는지, 크루즈에서 멋진 화보 좀 찍어 보겠다고 출국날 새벽까지 밤이 새도록 햄프 가방들을 만들고 원피스 샘플까지 만들어 온 걸 생각하니 화가 치밀었다. 신랑은 업무가 바빠 노트북까지 들고 왔는데 그 강도들 완전 '물'만났다. 대략 따져만 봐도 우리의 피해액은 천만 원은 족히 되어 보였다.


우리는 결단이 필요했다.


이런 상황에 여행을 계속할 수 있을까?

그냥 여행을 중단하고 귀국할까?

아이들에게 이 상처를 어떻게 하면 빨리 아물게 할까?


꼬박 밤을 새우며 내린 우리의 결론은

'여행을 계속한다'였다.

그래! 여행은 인생의 짧은 단면이다.

여기서 포기할 수 없다.

아무도 다치지 않았고 우리에겐 여권과 신용카드가 남아 있지 않은가.

힘들고 슬프다고 중단하지 말고 다시 행복해질 수 있도록 여행을 계속하자.

축난 돈은 귀국해서 또 열심히 벌면 되겠지. 어떻게든 메꿔지겠지.


다음날, 아이들과 씩씩하게 아침을 맞이했다.

속은 여전히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쓰리고 상했지만 우린 웃으려고 노력했다.

틈날 때마다 아이들에게 곧 경찰이 우리의 짐을 찾아 줄 수 있을 거라고 희망찬 '거짓말'을 했다.

그리고, 한국에 도착하면 우리 짐이 먼저 도착해 있을 수도 있다며 아이들을 안심시켰다.


지난밤 펑펑 울어 부은 얼굴로 피사의 사탑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고 기념품 가게에 들어가 마그네틱도 샀다.

여행을 계속하려면 옷과 기본 생필품이 필요했다. 1인분이 아닌 4인분의 생필품.

우선 근처 중국인이 운영하는 상점에 가서 트렁크를 하나 샀다. 그리고는 열심히 신용카드를 긁어대기 시작했다. 크루즈 여행 때 필요한 옷들과 속옷, 양말은 물론 신발과 수영복도 샀다. 'Pretty women'이 된 기분이었다. 나에게 리처드기어는 없었지만 새로 장만한 캐리어에 물건이 하나씩 채워지니 마음도 조금씩 안정되었다.


드디어 크루즈 탈 시간이 왔다.

어쩌면 다행이다.

5박 6일 동안은 숙소를 옮기지 않아도 되고 맛집을 찾지 않아도 되고 그냥 배가 움직이는 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큰 상처를 안고 크루즈에 탑승했지만 왠지 안전하고 아늑한 집에 도착한 느낌이었다.

그리고 크루즈는 위로가 되어 줄 수 있을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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