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테네 여행 1
“굿모닝. 카푸치노 한잔 부탁해요."
배에서 마시는 마지막 커피다.
요가를 마치고 따뜻한 우유 거품이 잘 올라온 카푸치노 한잔을 주문했다. 아침마다 상쾌한 공기와 함께 배 위에서 즐기던 커피도 따뜻하게 준비된 접시에 예쁘게 장식하듯 골라먹던 조식도 마지막이라 그런지 나의 행동과 시선 하나하나가 의미 있다. 오늘의 특별한 일상을 눈과 마음에 잘 담아두고 싶었다. 마지막이라고 아침 공기에 차가워진 카푸치노의 마지막 남은 우유거품까지 호로록 대며 끝까지 마셨다.
"저는 아테네에서 내려요"
매일 아침 커피를 서빙해 주는 검은 피부의 카페지기에게 인사했다.
"아예 하선을 하는 건가요? 이제 굿바이인가요?"
"네. 매일 이렇게 맛있는 커피. 감사했어요. 그리울 거예요."
"오 아쉽군요. 하지만 아테네는 여행하기 좋은 곳이에요. 즐거운 시간 보내세요!"
8시 30분까지는 하선을 하는 게 원칙이지만 체크아웃을 도와준 제이드씨가 괜찮다며 조식도 넉넉히 먹고 천천히 시간을 보내다가 내리라며 귀띔해 준다. 10시가 다 되어 아테네로 기항지 관광을 위해 내리는 사람들과 함께 움직이니 우리도 왠지 오후에 배로 다시 돌아와야 할 것 같은 느낌이지만 터미널로 나오니 어젯밤에 내놓은 노랑, 보라, 하늘색 트렁크 3개가 나란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우버택시를 불렀다.
배에서 내리는 건 너무 아쉽지만 아크로폴리스가 보이는 전망 좋은 숙소로 예약을 해둬 무척 기대가 된다. 택시를 잡아 타고 시내로 들어가니 좁은 도로에 차가 막히고 복잡하다. 신랑은 여전히 땅이 흔들리는 거 같다며 어지러움을 호소하는데 나는 다른 이유로 정신이 없다. 바로 ‘그라피티’였다. 온갖 건물벽과 다리 밑, 난간, 버스, 심지어 유적지 방향을 알려주는 이정표까지 사방이 그라피티였다. 멋져 보이기는커녕 지저분하고 으스스한 분위기까지 느껴지기도 했다. 그동안 많은 도시들을 여행하며 보았던 그라피티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4천 년 전 서양 문명이 처음 발생했다는 이 고대 도시, 유물의 도시 아테네에 그라피티라니 정말 안 어울렸다. 설마 유적지에도?
그라피티는 1970년대 뉴욕 브롱스 빈민가 흑인과 푸에르토리코의 어린 십 대들 거리 낙서로 시작해 순식간에 전 세계적으로 확산된 힙합문화중 하나이다. 래퍼들이 랩으로 자신의 생각이나 불만을 표현하듯, 그라피티의 그림, 글자를 통해 생각, 감정을 표출하는 하나의 작품이다.
하지만 그리스에서 만난 그라피티는 장소를 불문하고 예술로 받아들이기에는 다소 어려운 작품(?)들이었다.
학교에서 그라피티 수업을 받다 여행을 온 둘째 아들은 처음엔 그라피티가 많다고 좋아했지만 장소를 불문하고 여기저기 그려져 지저분한 낙서들로 전락한 사실에 좀 실망한 눈치다. 택시 아저씨한테 물어보니 ’ 지나친 10대들의 장난이 현재는 도시의 심각한 문제‘라며 혀를 내두르셨다. 아테네 거리의 상점 주인들은 밤새 몰래 그려 놓은 그라피티를 지우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하셨다.
항구에서 20분쯤 달려 도착한 우리의 숙소는 그야말로 예술이었다.
고급 호텔은 아니었지만 아크로폴리스가 한눈에 보이는 1.2km 정도 떨어진 번화가에 위치한 곳으로 우리 방 7층에서 사진으로만 봤던 아크로폴리스가 한눈에 들어왔다. 아테네도 미코노스와 마찬가지로 11월부터 비수기로 접어들어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물론 숙소도 훨씬 저렴한 가격에 예약할 수 있었다. 짐만 대충 방에 옮겨놓고 서둘러 나왔다.
비수기로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관광객이 몰리는 유명한 유적지이기 때문이다. 숙소에서 나와 아크로폴리스가 있는 곳까지 통하는 길은 식당과 상점들이 이어져있어 걸어가는 우리의 눈이 바쁘다. 올리브 나무로 만든 가짜 월계관과 금장식을 2유로에 팔고 있는 노점상, 건물마다 있는 기념품샵엔 그리스 신화의 신전과 신들이 박물관처럼 장식되어 있었다.
튀르키예를 여행한 적은 없지만 많은 것들이 상당히 닮아 있는 느낌이었다. 향신료를 파는 상점이나 여기저기 보이는 파란 '악마의 눈'도 아테네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본래 그리스와 튀르키예는 한 나라나 다름이 없지만 오스만 제국과 두 나라 간의 전쟁을 거치면서 지금의 모습을 하게 되었다. 이 오랜 세월 동안 두 나라의 문화가 섞이고 닮을 수밖에 없다는 건 어쩜 당연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음식도 비슷하다. 미코노스에서 맛있게 먹었던 그리스의 정통 음식인 기로스는 그 맛과 모습이 튀르키예의 케밥과 많이 닮았다. 하지만 아테네에서 기로스를 케밥이랑 비교하는 건 아주 비매너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실제로 비슷한 조리법을 가지고 있어 기로스 식당에 가서 "오~ 케밥이랑 비슷하다."라고 말했다가 기로스 맛집 사장님의 화살 눈초리를 받기도 했다. 그리스인들은 기로스를 자국의 정통 요리이기 때문에 케밥과 비교하는 걸 끔찍하게 생각한다. 그들에겐 음식마저도 자존심이 걸린 문제로 상당히 예민해 보였다.
식사도 쇼핑도 유적지 탐방 후에 하기로 하고 모든 유혹을 뿌리치며 아빠를 따라 우리는 아크로폴리스가 있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아크로폴리스 입구로 가다 보면 오른쪽에 아레이오스 파고스 언덕이 나온다. 성경 속의 바울이 이곳에서 설교를 하고 이 말씀이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다고 했다. 고대 그리스에서 재판을 위한 고등 법원으로 사용했던 장소라고 했는데 지금은 아테네를 조망할 수 있는 작은 언덕으로 경치를 보기에 아주 좋은 장소이다.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장소라 언덕 위에 있는 바위들이 너무 미끄러웠다. 조심조심 자리를 잡고 앉으니 한눈에 들어오는 아테네의 전경이 일품이다. 오른쪽으로 더 높은 곳에 위치한 아크로 폴리스가 보인다. 아크로폴리스는 종교 중심지로 예배를 드리고 왕족과 고위층이 거주하는 장소로 사용되는 고대 대도시의 핵심이 되었으며 공동체의 중요한 중심지 역할을 했다. 그렇기 때문에 아테네에서는 아크로폴리스보다 높은 곳에 건물을 지을 수 없다고 한다.
<민주주의의 발상지>
아테네는 고대 그리스에서 민주주의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다. 기원전 6세기경, 아테네 인들은 직접적인 민주주의를 개발했는데 이는 도시 국가의 모든 시민들이 정부에 참여할 수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시민들은 공공 회의에 참석하여 법률을 제정하고 공무원을 선출했다.
민주주의는 그리스 사회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에도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모든 시민에게 평등한 권리를 주었고, 정부의 책임은 높아졌다. 그리스의 민주주의는 오늘날에도 많은 정부의 기반이 되고 있다.
아크로폴리스로 올라가 파르테논 신전을 영접했다.
도리스식 신전 건축의 백미는 바로 파르테논 신전(Parthenon). 유네스코가 지정한 제1호 문화유산이다. 유네스코를 상징하는 마크로 사용될 만큼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건축물로 꼽힌다. 아테네의 수호 여신 아테나에게 바친 파르테논 신전은 그리스어로 ‘처녀의 집’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이 멋진 신전은 안타깝게도 1687년 베네치아 전쟁 때 무기 저장고로 쓰이다가 폭발해 천장이 무너져 내렸고, 1822년 그리스 독립 전쟁을 치른 후 크게 훼손됐다. 거대한 돌기둥의 건축물은 많이 부서져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장엄함은 빛이 나고 있었다. 기둥의 양식에 따라 달라지는 시대와 문화들을 함께 찾아보는 재미가 솔솔 하다.
파르테논 신전의 북쪽 옆에 있는 에렉시온 신전은 아테나와 포세이돈을 기리기 위해 건설되었다. 이 신전은 6개의 카리아티드 여인상 기둥이 현관을 받치고 있는데 5개의 여인상 모두 모조품이고 진품은 보존을 위해 박물관에 보호되고 있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나머지 하나의 조각상은 런던 대영박물관에 있는데 오스만 제국 때 아테네가 정복당하면서 빼앗긴 유물이다. 대영 박물관에 매각이 되면서 영국의 소유가 되었지만 이 조각들은 그리스의 재산이라고 생각한다. 그리스 정부에서 자국으로 반환을 계속 요구하고 있지만 성과는 없다고 했다. 우리나라의 문화재도 일본에게 빼앗긴 게 너무나 많다고 들었기에 더욱 마음이 갔다.
헤로데스 아티쿠스 음악당(Herodes Atticus Odeum)은 아크로폴리스로 오르는 길목에 있는 음악당 겸 극장. 디오니소스 극장에 비해 비교적 원형에 가까운 온전한 형태를 띠고 있다. 2000년이 지난 지금도 매년 여름이면 다양한 공연이 열리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조수미 씨와 정명훈 씨가 공연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직접 공연관람의 기회는 없었지만 이렇게 온전히 남겨져 있다는 게 신기하기만 했다. 기원전 161년 로마에서 그리스로 귀화한 정치인 헤로데스 아티쿠스(Herodes Atticus)가 죽은 아내를 추모하며 지은 건축물로 그는 아테네 시민들에게 기꺼이 음악당을 기증했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막장드라마와도 같다. 당시 헤로데스는 최악의 인간성을 가진 폭력적인 사람으로 유명했는데 임신 8개월째인 아내도 그의 손에 의해 죽음을 당했다고 한다. 이 사실을 무마하기 위해 아내를 추모하는 뜻으로 이 음악당을 건축하고 또 아테네 시민들에게 무료개방을 하면서 무마하려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아빠가 전해주는 이야기들을 들으니 마냥 멋지게만 보이던 음악당도 아주 다른 시점에서 보니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