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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드레킴 Dec 12. 2024

23. 망망대해에서 나를 찾기

미코노스를 떠나 아테네로 향한 크루즈는 밤 9시를 지나면서 다시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제는 멀미와 사고에 대한 두려움이 동반되었다면 오늘은 적어도 두려움은 없어진 상태라 그나마 견딜만했다. 사람은 뭐든지 처음이 힘들다. 두 번째 겪는 어지러움은 겪을 만한 것이다.

"내일 일출과 함께 요가를 하고 싶은데 자기가 사진 좀 찍어줄 수 있어요?"

"응, 찍어줄 수 있지. 깨워만 줘."

크루즈 여행을 하는 동안 매일 요가 수련을 했지만 사진으로 남기지 못해 아쉬웠는데 마지막날 아침에라도 배에서 내리기 전에 사진을 좀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밤이 깊어 갈수록 배는 다시 요동을 쳤다. 그리스 신화의 바다 괴물 케토가 우리 배를 움켜잡을 것만 같았다. 겨우 겨우 발란스를 잡으며 이삿짐 챙기듯 옷장에서 짐을 꺼내어 트렁크에 담았다. 울릉도로 향하는 것도 아닌데 크루즈에서 이틀 연속 뱃멀미를 하게 될 줄이야..



6:30 AM

알람이 울리지 않았는데도 눈이 번쩍 떠졌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잠결에 파도가 잠잠해지고 있다는 걸 느꼈던 거 같다. 잠잠해진 요람 속 포근한 이불 안에 좀 더 머물고 싶었지만 태양이 떠오르기 전에 서둘러 갑판으로 올라가야 했다.

"자기야~ 일어나~"

"으응~ 워우 난 땅이 아직 흔들리고 있는 느낌이야."

창밖을 보니 우리 배는 이미 아테네에 도착해 있다. 힘들게 일어난 신랑을 데리고 난 여행용 요가 매트를 왼쪽 겨드랑이에 끼고 진취적인 걸음으로 움직였다.

갑판 위에서 만난 아테네의 아침! 

아테네의 첫인상은 '대도시'이다. 사방을 둘러봐도 내가 상상하던 황토색의 유적지로 가득한 자연적인 배경은 어디에도 없었다. 

내가 생각한 마지막 명상의 장소는 사방이 탁 트인 수평선을 바라보며 떠오르는 태양을 호흡으로 맞이하는 것이었는데 사방은 건물들과 화물선들로 가득했다. 거기에 이른 아침 바람은 차갑기만 하다. 여행용 요가 매트를 폈는데 바람에 바로 펄럭이며 구겨졌다.

"내가 원하는 건 이게 아니었는데,,"

시무룩해하는 날 바라보던 신랑이 괜히 날씨 탓을 하며 도와준다.

"12층으로 올라가 볼까?"

농구 코트가 있는 방향으로 붉은 태양이 나오려는지 항구 뒤 건물들 틈으로 점점 색이 진해진다. 


여행을 하며 특별한 장소에서 요가 자세를 취하며 명상을 하는 짧은 순간은 나에겐 특별한 이벤트이다.

일상에서 만나는 수련의 시간은 하루를 건강하게 채워주는 '루틴'이 되고 여행 중 특별한 장소에서 만나는 수련 속의 나는 새로움을 찾고 목표를 만들어 주는 '모티브'가 되기도 한다. 흐트러지기 쉬운 나의 발란스를 요가 수련을 통해 여행 중에도 이어가려는 노력은 나 자신과의 약속이기도 하다. 


제이요가 선생님과의 수련시간을 떠올려본다. 멀리서 나지막하게 선생님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호흡합니다.

숨을 들이마실 때는 척추의 마디마디를 하나씩 세워보고 숨을 내쉴 때엔 아랫배에 있는 공기까지 모두 빼내어 몸을 가볍게 만들어 봅니다.


마시는 숨에 바깥에 있는 좋은 기운들이 모여 내 안으로 들어오고 내쉬는 숨에 나를 힘들게 하거나 불편하게 하는 것들을 밖으로 꺼내어봅니다.

천천히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쉽니다.


오늘도 내가 건강하게 호흡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명상 함으로써 나의 하루는 완전히 다른 하루를 만납니다. 


천천히 호흡을 이어갔다.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들을 만나면 나만의 호흡을 통해 정리하고 다시 차분하게 이어가는 건 내가 수련을 통해 배우고 또 실천하고 있는 모습이다.

눈을 감고 이번 크루즈 항해에서 넓고 아름다웠던 하늘과 맞닿은 바다를 떠올리고 코 끝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공기를 가슴속 깊이 넣어 주었다. 

눈을 떠 붉게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본다. 

태양을 바라보며 그려지는 내 몸에 집중해 본다. 

내가 오늘 이곳에 건강하게 서 있을 수 있음에 감사하고 나와 사랑하는 가족들에게 더욱 관대해지기로 약속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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