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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유라 Dec 24. 2021

자동문이 그래쪄

사건은, 그것을 감당해낸 사람만을, 바꾼다.


기어이 이런 날이 올 줄 알았다.


크리스마스 캐럴을 듣고 있었다. 커피를 홀짝이는 중이었다. 뚜루루루루루. 낯선 번호의 전화가 왔다. 뭐지. 받을까 말까를 고민했다. 만약 드라마의 한 씬이었다면, 어서 받아! 받으라고!! 복선 깔린 음악이라도 깔렸지 싶다.



여기 아이가 울고 있는데요... 낯선듯 익숙한 내 몸이 먼저 반응했다. 벌떡. 침착해. 울고 있으니까 다행이야. 사고는 아니야. 울고 있는데 집에 못 들어간다네요. 통화 한 번 해보세요. 네네. 찬이야~~ 부지지지직. 찬이야~ 엄마야~ 찬이야~ 어.. 엄마.. 훌쩍. 부지지직. 엄마 문이 안 열려요. 집 앞에 온 거야~? 문이 안 열려요. 엉엉엉. 부지지지직. 몇 동 몇 호세요? 아. 제가 지금 내려가고 있어요. 말을 하며 내다보는 주차장엔 울먹이는 찬이가 있고, 우체국 아저씨가 있다. 아이고오. 감사합니다. 철렁하는 마음을 달래며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 속도가 이렇게나 느렸었나. 지이이이이잉.



엄마 왔다. 찬이야~ 토닥토닥 당장에라도 안아줄 생각으로 내달렸던 내 발걸음이 멈췄다. 열리자마자 화알짝 열릴 것으로 예상했던 공동현관문이 먹통이다. 머리통을 보고도 굳게 닫힌 현관문. 펄떡펄떡 뛰어봐도 반응이 없다. 응? 뭐지? 왜지? 우체국 아저씨도 당황했다. 열려라 참깨! 양팔을 허우적 대보지만 답이 없다. 응? 꿈쩍도 않는 자동문을 사이에 두고 너머에 선 아저씨와 당황스러운 눈빛을 맞교환했다. 옆엔 찬이가 울고 있었다. 열려라 참깨! 끙...



자동문이 탈선을 했다. 기차가 탈선을 하듯 자동문이 탈선했다. 헐. 관리실에 전화를 했다. 재빠르게 오셨다. 우리 찬이가 운다. 으헉. ㅠㅠ 오구오구 엄마 금방 열어줄게 울지 마. 눈앞에 찬이를 두고도 어찌할 수가 없다. 말해 뭐해. 어서 만나 안아줄밖에. 아저씨가 둘이면 탈선한 자동문 따위 쫙 밀어주면 끝나는 거야? 기대를 잔뜩 하며 지켜봤다. 끙차. 끙차~ 응? 꿈적도 않는다. 탈선한 자동문은 취해 잠든 남편만큼이나 무거웠다.



관리소장님은 온갖 궁리를 눈알에 담아 번쩍이는 무지개라도 보듯 눈동자로 아치형의 반원을 그리셨다. 옆라인 현관으로 들어가 옥상을 지나 우리 라인으로 넘어오시겠단다. 헉. 그거 위험한 거 아니에요? 막 미션 임파써블 같고, 잘못하다간 7층 높이 옥상에서 무슨 일이라도 날 듯하다. 소장님의 안위가 심히 염려된다는 표정을 지으며, 무어라도 당장 해보세요라고 속으로 빌었다. 유리문 너머 소장님이 내 전화번호를 물으셨다. 번호를 딴 소장님은 옆 라인 옥상으로 가서 전화할 테니 이쪽 옥상으로 올라가서 받으란다. 어.. 네.. 찬이야~ 엄마가 금방 문 열어줄게. 좀만 기다려~ 눈물범벅 찬이 얼굴은 제대로 보지도 못하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올라가는데 찬이 우는 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으앙;;; 울어도 난 올라갈밖에 도리가 없다. 올라가며 같이 울었다. 으앙~



굳게 닫힌 옥상 문 앞에 있으려니 찬이 우는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찬이야 울지 마 엄마 금방 열어줄게! 열린 옥상 창문에 대고 떠나가라 외쳤다. 옥상 문 앞에 있으려니 소장님 전화가 왔다. 비밀번호를 누르란다. 땡땡땡땡 어쩌구 샾. 띠리리리. 철커덕. 옆라인의 옥상으로 우리 라인의 옥상으로 건너오셨다.



우와. 엇! 그럼 저기 우리 아들도 그렇게 데리고 와도 되나요?! 네. 됩니다. 고맙습니다. 일단 아이가 울고 있으니 아이 먼저 데리고 오겠습니다. 꾸벅꾸벅. 하고선. 미션 파서블하게 엘리를 타고 옆라인 옥상을 통해 공동 현관문을 열었다. 옆라인 현관 비번은 알지 못해서 이 문이 닫히면 안 되기에 문을 붙들고 또다시 외쳤다. 찬이야~~~ 저 멀리 1~2호 라인 현관 앞에서 울고 있는 찬이가 보인다. 찬이야~~ 찬이야~~ 100미터 전방 엄마를 알아본 찬이가 울면서 달려왔다. 옆에서 같이 들어오지 못하고 서성이고 있는 5층 사는 아이에게도 같이 가자 했다.



두 아이를 데리고 옆라인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으로 올라와 우리 옥상으로 넘어왔다. 재밌지? 막 미로 탐방하는 거 같지? 이렇게도 갈 수 있어. 일루 와바바. 옥상에서 보는 바다도 기가 막히지?! 애써 여행이라도 온 듯 호들갑을 떨었다. 우리 쪽 옥상 문을 열어주고 5층 사는 아이는 집으로 들여보냈고, 나와 찬이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우리 층 번호를 누르는 순간, 찬이가 내 가슴에 와락 얼굴을 묻었다. 흐헝 ㅠㅠ 엄마가 없었어요. 흐헝. 문이 안 열렸어요. 흐헝. 오구오구오구 맘고생했구나. 아이고 이만큼 더 컸네.. 토닥토닥.






단축 수업인 줄 모르고 있었다. 엄마가 늘 기다리던 횡단보도 앞에 엄마가 없었단다. 찬이 딴에는 혼자서 집까지 씩씩하게 도착을 했는데, 하필 용기 내며 걸어온 오늘 현관문이 고장 났던 것. 비밀번호를 아무리 눌러도 열리지 않는 문 앞에 어쩔줄 몰라 울고만 있었던 것. 오늘따라 핸드폰도 없이 맘고생을 했던 것.



얼마나 울고 있었는진 모르겠지만 마침 지나가던 우체국 아저씨의 전화가 고마웠고, 엄마 전화번호 잘 이야기한 찬이가 대견했고, 바로 달려와준 소장님이 구세주 같고, 무사히 횡단보도를 건널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었으며, 처음으로 본 아파트 옥상에 눈물이 나고 그랬다. 



찬이가 편하게 들고 다닐 핸드폰 하나 장만해 줘야겠다. 지금 핸드폰이 너무 무거워서 안 그래도 거북목인 찬이가 목디스크 걸릴 판이라 차마 못 걸어주어겠더라. 늘 같이 다닌다고 초인종 누를 일이 없었는데, 초인종 누르는 법도 알려줘야겠다. 시련은 가끔 두근거리고 떨리고 무섭다가 벅차오른다.



다음 날, 찬이가 그랬다.

“엄마! 오늘은 횡단보도에서 (딱) 기다려요.”

찬이가 이만큼 또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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