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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름 Mar 31. 2022

[북유럽] Northern Lights를 찾아서-2

노던 라이트, 세상의 끝으로 떠난 여행


여기 오면 다 볼 줄 알았어요, 노던 라이트…



나르비크에서 트롬쇠로 향하는 길
창문 너머 보이는 트롬쇠의 야경



 나르비크에서 하루를 보낸 다음 날, 트롬쇠행 버스는 눈으로 덮인 흰색 산들을 지나, 북쪽을 향해 열심히 달려 밤이 되어서야 목적지에 도착했다. 사실 내가 정확히 지도의 어디쯤에 있는지 실감이 나지 않았는데, 구글맵을 볼 때마다 ‘와 내가 여기 있단 말이야?’ 싶을 정도로 정말, 정말 북쪽에 있었다.


 그런데 더 신기했던 건 이렇게나 북쪽에, 이렇게나 발전한 도시가 있다는 것이었다. 트롬쇠는 나르비크보다도 더 번화한 도시였다. 사방이 눈으로 뒤덮여있고 장갑을 벗으면 손이 금세 빨갛게 변하는 북쪽 지역에, 왜 사람들이 오게 되었고 어떻게 정착했는지 정말 신기했다.



트롬쇠의 위치
트롬쇠에 있는 교회와 미술관


 사방을 둘러봐도 눈밖에 보이지 않는 길을 지나 호텔에 짐을 풀기 시작한 날부터, 우리는 이곳에 온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끊임없이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여행이 늘 그렇듯 변수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눈’이었다.


 여행 계획 당시 해 이모티콘이 떠있었던 기상예보는 3일 내내 눈보라 모양의 이모티콘으로 바뀌어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트롬쇠에서 노던 라이트를 관찰할 수 있다는 포인트에 가보았지만 어두컴컴하고 희뿌연 하늘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트롬쇠의 노던 라이트 포인트. 오래 있으니까 무서웠음



‘우리 어떡하지?’

‘노던 라이트 보려고 여기까지 왔는데…?’



 허탕을 치고 돌아온 날 밤 숙소에서, 여전히 그치지 않는 눈을 보며 친구와 나는 비상 회의를 진행했다. 그러다 우리는 트롬쇠 관광안내 책자 속에서 '노던 라이트 투어'라는 문구를 발견했다. 투어의 가격은 국제 학생 할인을 받아 한화로 약 15만 원 내외였는데, 가난한 학생 여행자의 신분에서 15만 원은 선뜻 결제할 수 있는 돈이 아니었다.


 혹시나 눈이 그쳐 트롬쇠 시내에서도 노던 라이트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행복 회로를 잠시 굴려보았으나, 창밖에 쌓인 눈을 보고 이내 현실로 돌아왔다. 결국 우리는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확실한 방법을 선택하기로 결정하고 투어를 예약했다.



평생 볼 눈을 이때 다 본 것 같다



 그렇게 우리는 다음날 저녁, 노던 라이트 투어를 떠나는 버스에 탑승했다. 버스에 타니 정말 다양한 인종과 연령대의 사람들이 모여있었는데, 모두의 얼굴에는 설렘이 가득해 보였다.


 버스는 트롬쇠를 벗어나 2시간가량 열심히 달렸다. 구글 맵으로 위치를 확인하니 GPS 신호는 트롬쇠보다 더더욱 북쪽으로 향하고 있었고 창밖은 끝없이 어두컴컴했다.



흔들림 속에서도 뚜렷이 빛나는 별들



 포인트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사람들의 탄성이 여기저기에서 터져 나왔다. 세상에! 그렇게나 하늘이 나와 가까이 있다는 느낌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하늘에 별들이 빽빽하게 수놓아져 금세라도 나에게 쏟아져 내릴 것 같았다. 마치 바닥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이 별로 가득한 돔 형태의 천문학관에 들어온 느낌이었고 나는 정말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실감했다.


 감탄에 감탄을 하며 사람들은 주섬주섬 카메라를 설치하기 시작했고, 나도 노던 라이트를 사진으로 남기기 위해 카메라를 꺼냈다. 그런데 정말이지, 내 생에 그렇게 강렬한 추위는 처음이었다. 장갑을 벗는 순간, 엄청나게 날카로운 바람이 내 살을 뚫고 뼈 마디마디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오래 장갑을 벗고 있었다면 진심으로 동상에 걸릴 것만 같았다. '으 추워'를 연신 내뱉으며 가까스로 카메라를 모두 세팅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노던 라이트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까만 밤하늘에 펼쳐진 초록색의 춤



 추위에 덜덜 떨며 하늘을 봤지만 기다리던 노던 라이트는 보이지 않았다.

‘이대로 못 보고 돌아가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 무렵,



‘LOOK!!!’





 누군가 외치는 소리에 하늘을 올려다보니 드디어, 드디어 노던 라이트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토록 기다렸던 노던 라이트! 나는 놓치지 않고 사진을 찍기 위해 셔터를 눌러댔다. 까만 하늘에 초록색 줄기가 스멀스멀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이내 사라지고, 곧 또 다른 초록색 줄기가 나타나더니 사라지는 것을 반복했다. 무지개처럼 하늘에 가만히 떠있을 줄 알았던 나의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오히려 노던 라이트는 하늘에서 춤을 추다 사라졌다.


 사진을 충분히 찍은 후에는 이 아름다운 자연을 그대로 내 눈에 간직하고 싶어 카메라를 끄고 하늘만 계속 쳐다보았다. 수많은 별들 사이로 춤을 추고 사라지는 북극광을, 눈을 감아도 떠올릴 수 있도록.





 끊임없이 나타나던 초록빛이 잠시 동안 보이지 않자, 사람들은 하나둘씩 버스 속으로 대피하기 시작했다. 더 이상 야외에서 노던 라이트를 기다리기엔 정말 너어어어무 추웠기 때문이다. 나와 친구도 발을 동동 굴리며 탭댄스를 추다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버스에 올라탔다. 투어 회사에서 나누어주는 따뜻한 코코아를 홀짝홀짝 마시며 몸을 녹이고 있었는데, 어떤 할머니께서 버스에 올라타시더니 우리를 향해 다시 나오라고, 지금 하늘이 너무 예쁘다고 말씀해주셨다.


 마시던 코코아를 들고 다시 밖으로 나가보니, 아까보다 더 넓고 오래 지속되는 노던 라이트가 하늘을 수놓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괜스레 마음이 따뜻해졌다. 각각 다른 인종, 다른 세대, 다른 문화적 배경을 안고 살아왔어도 아름답고 거대한 자연 앞에서는 모든 경계가 허물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우리는 여행의 목적을 달성한 후, 다음날 시내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내다 트롬쇠를 떠날 수 있었다. 이후에는 트롬쇠에 오기까지의 세 가지 관문을 반복했다. 버스를 타고 다시 나르비크에 도착해 그곳에서 스톡홀름행 야간열차에 탑승했고, 올 때 미처 마무리하지 못했던 해리포터 시리즈를 정주행 하며 스웨덴으로 돌아왔다.



얼음축제가 한창이었던 트롬쇠 시내



 6박 7일의 여행 동안 열차에서는 제대로 씻지 못했고, 사실 관광하는 시간보다 이동하는 시간이 훨씬 길었다. 그리고 정말 말 그대로의 미친 추위와 눈폭풍에 맞서며 고생하기도 했지만, 노던 라이트를 찾아 떠났던 이 여정은 그 어떤 여행보다 즐거웠고 지금까지의 내 인생에서 가장 영화 같은 시간이었다.


 여전히 눈을 감아도 그려지는 초록빛 춤들의 향연과 그걸 바라보는 많은 이들의 설레는 모습을 떠올리면 미소가 지어진다. 몇십 년 지나 더 나이가 들었을 때, 언젠가는 다시 노던 라이트를 보기 위해 꼭 여행을 떠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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