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인앤아웃에서 후추 스프레이를 맛보다 - 2

후추 스프레이와의 짧고 뜨거웠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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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끈거리는 왼쪽 팔을 들여다보다 온갖 영어 욕설이 들려 고개를 들어보니, 후추 스프레이를 직격으로 맞은 남자 셋이 욕을 퍼부으며 눈을 뜨지 못하고 괴로워하고 있었다. 앞이 잘 안 보이니 비틀비틀거렸고, 물병을 가지고 있던 남자 한 명은 눈에 물을 콸콸 부어댔다. 그 사이 후추 스프레이를 뿌린 남자는 다시 자동차로 달려가 자신의 여자 친구와 함께 황급히 차에 올라탔다.

 더 웃겼던 것은 커플이 자동차를 몰고 주차장을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도로에 자동차가 많아 바로 빠져나가지 못하고 대기를 해야만 했던 것이다. 인앤아웃 직원들, 내부에 있던 방문객들도 밖으로 나와 모두가 함께 주차장에서 이 광경을 목격하고 있었다. 몇몇은 땅바닥에 주저앉아 괴로워하는 남자들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여기서 눈을 의심하는 일이 벌어졌다. 물을 눈에 부어댔던 그 남자가 엄청나게 큰, 케이크 상자 크기의 얼음을 들고 달려오더니…

퍽!

 그 얼음은 커플의 차 뒷 창문에 부딪히고 매우 큰 소리와 함께 바닥으로 떨어졌다. 자동차의 뒷 창문은 거미줄 모양의 원형으로 금이 갔다. 설마 차 안에서 나와 다시 싸우려나? 싶었지만, 때마침 신호가 바뀌었고 커플이 탄 자동차는 재빠르게 자동차 행진 속으로 사라졌다.

이..이게 머선일이고

 혹시나 이 글을 읽으면서 이야기의 사실 여부에 대해 의문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 나 역시 그때 그 상황의 사진이나 영상을 첨부하고 싶지만, 바로 앞에서 미국의 매운맛을 직관한 충격과 황당함으로 멍 때리며 쳐다보는 것 외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리고 더군다나, 내 코가 석자인 상황이었다.

 

 한 편의 미드 속 ‘여행자 1’이 되어 그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지만, 몸의 왼쪽 부분이 너무 화끈화끈 거려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남은 햄버거가 아까워 한 입 베어 물긴 했지만, 이미 햄버거는 후추 스프레이 맛으로 절여진 상태였다. 결국 나는 눈물을 머금고 남은 것들을 버려야만 했다.

LA에서 머물렀던 숙소

 숙소가 인앤아웃과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었던 것은 신의 한 수였던 것 같다. 빨리 씻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서 인앤아웃을 황급히 빠져나온 나는 숙소로 미친 듯이 빠르게 걸어갔고 바로 샤워실로 뛰어들었다. 왼쪽 팔과 얼굴을 찬물로 씻어내렸지만 화끈화끈 거림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고, 시간이 지나서야 조금씩 안정이 되기 시작했다.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라는 황당함과 함께 그 당시 선글라스를 끼고 있었던 게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선글라스를 끼고 있지 않았다면 나도 그 남자들처럼 그 자리에서 괴로워하며 엉엉 울고 있었을 게 틀림없다.

다음날 다시 먹은 인앤아웃 햄버거

 

 후추 스프레이와의 짧고 뜨거운 만남은 사건 발생 후 몇 시간이 지나서야 완전히 이별할 수 있었다. 이후 다행히 아무런 부작용이 없었고, 나는 다음날부터 다시 LA를 즐겁게 여행하기 시작했다. 눈물의 이별을 했던 햄버거를 맛보기 위해 ‘그’ 인앤아웃을 재방문했고, 이번에는 테이크아웃을 하여 숙소로 들고 와 아무의 방해도 받지 않고 전부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이제 이 에피소드는 LA 여행 얘기가 나오면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하나의 이야깃거리가 되었지만,
가끔 이 사건을 생각하면 여러 의문점들이 생긴다. 그들은 왜 싸웠던 걸까? 뭐가 그렇게 그들을 화나게 만들었을까? 그 남자는 그렇게 큰 얼음을 갑자기 어디서 들고 온 걸까? 그 후에 남자들은 어떻게 됐을까? 미국인들은 평소에 후추 스프레이 하나쯤은 기본으로 들고 다니나?

 만약 '그 남자가 자동차에서 후추 스프레이가 아닌 총을 꺼내왔다면 어떻게 되었을까?'하고 상상해보면 그저 정신이 아득해진다. 미국 여행을 하며 가장 크게 느꼈던 것 중 하나가 ‘미국 사람들은 자신의 의사를 정말 확실히, 적극적으로 표현하는구나’ 였는데, LA의 태양이 내리쬐는 대낮에 이런 일이 발생한다는 것에서 정말 다이내믹한(?) 미국을 경험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