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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우개연필 Feb 22. 2021

다시 배낭을 살 뻔했다.

빌 브라이슨의 [나를 부르는 숲] 서평



내가 가져본 최초의 그리고 마지막 배낭은 콜롬비아사에서 만든 33리터짜리 남색 배낭이었다. 그 배낭에 두벌의 여벌 옷과 양말, 세면도구, 비상약, 책과 노트, 휴대폰 충전기 등의 잡다하고 소소한 물건을 가득 넣고 900km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었던 게 벌써 10년 전이다. 그 소중했던 배낭은 순례길을 다 마치고 스페인 여행을 하다가 버스에서 도둑을 만나 잃어버리고 말아서 지금은 내 기억 속과 몇 장의 사진 속에만 소중히 간직되어 있다.


생각을 해 봤다. 그 배낭이 나와 함께 서울로 돌아왔다면 난 그 배낭을 메고 또 여기저기를 돌아다녔을까? 그럴 것 같지는 않다. 그 이후로 내가 종종 했던 등산은 그저 반나절쯤 걸렸고 그런 길을 나서기에 33리터의 배낭은 너무 크다. 아마 남색 배낭이 나와 함께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고 해도 아마 그 배낭은 장롱 구석 어디쯤에서 쓸쓸히 잊혔을게 분명하다. 그러니 배낭으로서는, 여행 말미에 도난이 된 것이, 그래서 내 아련한 여행의 추억 속 대단히 큰 사건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편이 훨씬 인상적인 배낭생(배낭의 일생)이라고 여길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도난당한 이후의 배낭의 여생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으니, 배낭의 입장도 들어봐야 하겠지만.





책의 저자인 빌 브라이슨이 배낭과 텐트 등의 트레일 용품을 구매하러 매장을 가고 거기서 점원에게 어떤 이야기를 듣고 결국 어떤 물건들을 사 오게 되었는지, 그리고 트레일을 걸으면서 만나는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 속에 그 용품들이 얼마나 자주 등장하는지가 책에 나오는 걸 보면서 나는 내 잃어버린 배낭을 내내 생각했다. 트레일을 걷는 것과 순례길을 걷는 건 많이 다른 경험인 것이 분명하지만, 어쨌든 긴 시간을 걷는 여행에서 여행자가 몸에 지니고 다니는 물건은 단순히 물건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걸 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대화를 열어주는 아주 손쉬운 화젯거리라는 것도 말이다. 빌 아저씨는 이런 대화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았던 게 분명하지만 말이다.


애팔래치아 트레일(Appalachian Trail, AT)은 미국의 조지아 주에서 메인 주까지 14개 주를 관통하면서 블루 리지, 스모키즈, 컴벌랜즈, 그린 산맥, 화이트 산맥을 지나가면서 장거리 종주 등반의 원조로 불리는 길인데 장장 3,360km나 이어진다고 한다. 꽤 유명한 길인가 본데 미국에 대해 아는 바가 없는 나는 처음 듣는 이름이라며 생소해하며 책장을 열었다. 그렇게 책을 반쯤 읽다가 언젠가 봤던 영화 중에 한 여자가 배낭을 메고 숲길을 내내 걸어가는 [와일드]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꽤 인상 깊게 보았는데도 그게 이 애팔래치아 트레일에서 일어나는 일이라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아마도 그 영화의 분위기와 이 책의 분위기가 사뭇 달라서 그랬던 것 같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막 이혼을 하고 혼자 이 길을 걸으면서 자기 자신과 타인에 대한 발견과 그 속에서 일어나는 치유를 보여준다. 배경음악 없이 들리는 저벅저벅 발자국 소리가 인상 깊게 남아있다. 진지한 기분을 느끼게 하는 영화였다. 빌 브라이슨이 저자인 이 책에서는 일단, 시작부터 그런 분위기와 전혀 다르다. 브라이슨 씨가 이 길을 걷게 된 이유는 20년 만에 돌아온 미국, 자기 집 앞에 마침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었고 그 길을 걸어야겠다는 충동이 불끈 일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나서 그는 이 길을 걸을 이유를 찾는데 그중 하나가 이런 것이다.


군복 비슷한 등산복을 입고 사냥용 모자를 쓴 사나이들이 둘러앉아 들판에서 겪은 아찔한 경험에 대해서 얘기할 때 나는 더 이상 꾸어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 있지 않을 것이다. 잘 깎은 화강암과 같은 눈매로 지평선을 응시하면서 나지막하고 걸걸한 목소리로 "그래, 숲 속에서 단숨에 해치워버렸지"라고 일갈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애팔래치아 산맥이 온대지방에서 가장 다양하고 풍성한 수종을 자랑하는 위대한 숲들 중 하나인데 급격한 기후변화 속에서 사라질지도 모를 위기에 있다는 이야기는 어쩐지 핑계처럼 들리기도 했다. 숲 속에서 단숨에 해치워버렸다는 경험담을 나누기 위해 이 모험을 시작했다는 이야기가 훨씬 빌 브라이슨 답게 들렸달까. 물론 이 책은 단순히 시시껄렁한 저자의 농담으로만 채워져 있거나 자기 경험을 부풀려 술자리 만담으로 엮은 그런 책은 아니다. 책 속에서 저자는 기후변화와 애팔래치아 트레일이 역사, 미국의 산림파괴 현실, 트레일에서 만날 수 있는 수종과 동물 그리고 그 동물들이 멸종된 이야기, 트레일이 지나가는 어떤 도시들의 역사 등을 들려주며 폭넓은 지식과 견해를 드러내 보인다. 도대체 이런 이야기는 어디서 찾아낸 걸까 싶은 시시콜콜한 내용부터 미국 역사를 관통해가며 보여주는 산림파괴의 큰 그림까지 저자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조금 우울해지는 지점도 있지만 그마저도 날카롭지만 통쾌한 문체로 풀어내는 그의 글맛에 빠져들게 된다.




하지만 이 책의 주를 이루고 있는 내용은 빌이라는 아저씨가 오랜 친구 카츠라는 또 한 명의 아저씨와 함께 엄청 길고 고생스러운 트레일을 걸으면서 벌어진 사건과 감상이다. 걸으면서 거치는 지역과 숲의 역사를 자세히 짚어주기도 하는데 대부분 흑역사가 많고 그 이야기를 위트와 유머를 적절히 섞어 풀어내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게 페이지를 넘길 수 있기는 하지만 주된 이야기는 빌과 카츠가 충분한 사전 준비 없이 이 엄청난 종주를 지나오면서 겪는 사건과 격해지는 감정과 그 해소에 관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무엇을 주 내용과 부수적인 내용으로 볼 것인가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시간의 흐름에 맞게 두 남자가 길을 걷는 이야기를 주로 두고 그 중간중간에 저자가 느낀 감상과 역사 이야기를 끼워 넣은 거라고 볼 수도 있고 반대로 해박한 바탕으로 위트를 섞어가며 이야기하지만 사실은 가볍지 않은 역사와 환경파괴의 문제를 주로 두고 그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한 장치로 두 남자의 여행을 끌어온 것으로 읽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떻게 읽어도 술술 읽히는 책이라는 건 마찬가지다.


나는 애팔래치아 트레일 종주의 백미가 상실에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모든 경험이 바로 자신을 철저히 일상생활의 편리함에서 격리시키는 것, 그래서 가공 처리된 치즈나 사탕 한 봉지에 감읍하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 코카콜라 한 잔에 마치 처음 마셔보는 음료수인 것처럼 넋이 나갔고, 흰 빵으로 거의 오르가슴을 느낄 뻔했다.


빌과 카츠는 내가 한참 전에 읽었으며 빌 브라이슨이라는 작가에 빠져들게 만든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산책]에서도 등장한다. 이십 대에 카츠와 유럽여행을 하던 이야기가 책 속에 나오는데 고생스럽고 서로 잘 맞지 않는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여행 이후에 한참을 떨어져 지내다가 중년이 되어 빌이 트레일을 걷는다고 하자 카츠가 동행하게 되는데 오랜 친구이긴 하지만 한참 자기 생활을 하며 떨어져 지내던 두 중년 남성이 24시간을 함께 있으면서 힘든 여행을 하니 물론 평탄한 이야기가 펼쳐질 리가 없다. 카츠는 여행기의 개그코드를 담당하기 위해 등장한 조연 역할을 톡톡히 한다(두 남자가 서로를 조금씩 배려하게 되고 이해하게 되어가는 모습이 영화로 만들어도 재미있겠다 싶었는데 찾아보니 이미 만들어져 있더라는).




책의 시작에서 저자는 트레일에서 곰에게 습격을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자세히 풀어놓으면서 본인이 주변 사람에게 당한 것처럼 일단 독자들에게 겁을 주면서 이야기를 펼쳐간다. 하지만 나는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곰에게 물려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겁에 질리기는커녕 자꾸만 이 여행을 하려면 배낭이 몇 리터쯤 되어야 할까를 고민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아마 순례길을 걸을 때보다 훨씬 큰 가방을 가져가야 할지 모르겠다며, 장비를 하나씩 갖추기 전에 내가 지고 다닐 수 있을 것 같은 것 중에서 가장 큰 배낭을 먼저 사 둘까 고민하면서. 잘 쓴 여행기는 이렇게 사람을 붕 띄워 놓기도 하고 때로는 정말 비행기에 오르게 하기도 한다. 내가 10년 전에 순례길을 가게 된 것도 친구가 선물해 준 책 한 권이 발단이 된 충동적인 행동이었으니 말이다. 결과적으로는 참 잘한 일이었다고 여겨지는 충동과 행동이었다.


이 코로나 시대에 비행기는 무슨 비행기며 여행은 무슨 여행이겠냐만, 이 고비를 인류가 무사히 넘고 나면 다시 이 책을 펼쳐 들고 싶어 질지 모를 일이다. 어쩌면 먹을 거 입을 거 숙소까지 챙겨가지고 다니면서 언택트로 여행을 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바로 이 트레일을 걷는 일일지도 모르겠고 말이다. 그럴 용기가 아직 나에게 남아 있는지, 정말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일인지는 차치하고서라도.


하루 종일 마스크를 쓰고 있다가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고 따뜻한 이불속에 들어앉아서 애팔래치아 산맥의 탁 트인 경관과 맑은 공기를 상상해보고 싶은 지친 누군가에게 권한다. 중고나라에서 배낭을 검색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지도 모른다는 경고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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