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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우개연필 Nov 02. 2017

작가들이 말하는 글쓰기의 왕도

[그럼에도 작가로 살겠다면] 줄리언 반스, 커트 보니것, 스티븐 킹 외

"당연히 작가가 되지 않는 편이 편하다. 사람들은 대개 작가가 아니며, 작가가 아니라서 살면서 딱히 손해 보는 일도 없다." -줄리언 반스-

"젊은 작가들에게 충고하고 싶습니다. 젊을 때 다른 직업을 찾아보세요." -조 퀴넌-


책은 이런 종류의 충고로 가득하다. 작가로 데뷔하기 위해서 이런 글을 쓰라던지, 얼마큼 연습하면 작가가 될 수 있다던지, 넌 반드시 성공할 수 있으니 자신감을 가지라던지 하는 류의 이야기는 등장하지 않는다. 책장을 넘길수록, 작가 같은 것은 되지 않는 편이 신상에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은 작가가 되려는 사람들을 위해 쓰인 책이 아니다. 책에서 언급하는 수많은 난관과 괴로움에도 불구하고 이미 작가가 되어버린 사람들, 작가로 살지 않으면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 그럼에도 작가로 살겠다는 사람들을 위한 위로와 약간의 충고를 위한 책이다. 그러니 이 책을 읽으면서 작가의 꿈을 더욱 키워보겠다던 나의 희망사항은 산산이 부서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속내용과는 달리 책의 목차는 꽤 전문적이고 세부적인 창작의 방법을 알려주고 있는 듯이 짜여 있다. 인물, 대화, 장르, 문법&용법, 글감, 플롯, 문장부호, 스타일, 단어, 홍보, 출판&출판사 등 책을 쓰기 위해 필요한 이야기들을 해 주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내용은 이런 것들이다.

"자신이 쓰는 인물들에 대해서는 결코 충분히 알 수 없다."-윌리엄 서머싯 몸, [인물] 중에서

"음식 관련 글을 쓸 때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자질은 왕성한 식욕이다." -A.J. 리블링, [장르] 중에서


개그를 하려는 것일까. 자기의 위트를 자랑하려는 것일까. 책 속엔 이러한 충고들로 가득하다. 그리고 이 책만 보아서는 절대 어떻게 써야 할지 방향을 잡을 수 없게끔 하는 충고들이 많다. 예를 들어 [글감]에 관한 이야기에서 O. 헨리는 당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을 쓰라고 하고 바로 아래 문장에서 도널드 바셀미는 가장 두려워하는 것에 대해 쓰라고 한다. 이러니 만약 이 책을 읽고 글을 하나 써 보겠다고 나선 독자가 있다면 절대 어떤 글도 시작할 수 없다. 


나는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이 책이 작가를 길러내려는 목적 혹은 작가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좋은 글을 쓰기 위한 팁을 주려는 목적으로 쓰인 책이 아님을 점점 확신하게 되었다. 누구도 어떤 책을 읽고 자기의 글을 쓸 수는 없다. 혹시 만약 그렇다면 그 글은 그리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글은 아닐 것이다. 작가는 자기의 글을 쓰고, 그 방법은 누구도 말해줄 수 없는 자기의 방법이다. 혹 다른 작가와 겹치는 경험이 있을지는 몰라도 절대 완전히 똑같을 수는 없고 누구도 완전히 정확한 길을 알려줄 수도 없다. 책은 끊임없이 이런 이야기를 변주한다. 


그러니 이러한 목적에 맞게 책을 읽어 내려가면 이 책은 더할 나위 없이 흥미진진한 책이 된다. 이 책을 읽고 내가 어떻게 써야 할지에 대한 정답을 얻을 목적이 아니라 어차피 길은 정해져 있지 않으니 나만의 해답을 찾겠다는 목적, 더 나아가 이 책을 보고 해답을 찾게 되지 못할 가능성이 더 크니 다른 작가는 어떻게 말하는지에 대해 큰 관심 없이 한번 들어보겠다는 태도로 책을 읽으면 된다. 


이러한 태도로 책을 읽어 내려가면서 그중에 내 생각, 내가 하려는 바와 비슷한 문장이 등장하면 거기에 밑줄을 긋게 된다(물론 실제로 밑줄을 긋지는 못했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책이기 때문에). 


"글쓰기의 주제는 단 두 가지다. 삶과 죽음." -에드워드 올비 

"주제를 찾을 때는 가장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유일하게 사랑하는 것을 찾아야 한다." -애니 딜러드

"당신이 되었을지도 모를 사람이 되기에 결코 늦지 않았다." -조지 엘리엇

"최고의 글쓰기는 고쳐쓰기다." -E.B. 화이트

"여자가 소설을 쓰려면 돈, 그리고 자신만의 방이 있어야 한다." -버지니아 울프

"작가에게는 아무 일정도 없는 내일이 필요하다." -캐서린 드링커 보엔

"글을 쓰려는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엄청나게 진지한 자세이며, 다른 하나는 안타깝지만 재능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결국 필요한 것은 단순히 고독이다. 내면의 위대한 고독." -라이너 마리아 릴케

"좋은 책들부터 읽어라. 그렇지 않으면 좋은 책을 읽을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헨리 데리비드 소로

"미숙한 시인은 모방하고, 성숙한 시인은 훔친다." -T.S. 엘리엇

"소설을 쓰는 데는 세 가지 원칙이 있으나 불행히도 그 원칙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윌리엄 서머싯 몸

"글을 쓰는 유일한 방법은 잘 쓰는 것이고 어떻게 잘 쓰는가는 당신이 알아서 할 일이다." -A.J. 리블링

"비결 따위는 없다. 앉아서 글을 쓰기 시작하는 것이 전부다." -엘모어 레너드

"노력 없이 쓰인 글을 읽을 때는 대개 즐겁지가 않다." -새뮤얼 존슨

"비극을 쓸 때도 미소를 지어라." -헨리 밀러

"쓴 글을 자세히 읽어보고 특히 좋다고 생각되는 구절이 있으면 과감히 삭제하라." -새뮤얼 존슨

"사소한 것을 애무하라, 신성한 사소함을."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구체적일수록 보편적인 글이 나온다." -낸시 헤일

"나는 어니스트 헤밍웨이가 남긴 위대한 조언을 따르고 있다. 그는 늘 이렇게 말했다. 다음 판을 크게 벌이려면 흐름을 약간 탔을 때 끝내라고." -에드나 오브라이언

"정확한 단어와 거의 정확한 단어의 차이는 번개와 반딧불의 차이다." -마크 트웨인

"단어 하나를 덜어내도 무방하다면, 항상 그렇게 하라." -조지 오웰

"단어는 마치 안경과 같다. 더욱 선명하게 보여주거나, 그게 아니면 모든 것을 흐릿하게 만든다." -조제프 주베르

"매일 아침 자리에 앉아 글을 쓰는 과정이 한 사람을 작가로 만든다. 이걸 해내지 못하는 사람은 아마추어로 남는다." -제럴드 브레넌

"쓰고 싶지 않을 때에도 글을 써라. 쓰고 있는 글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에도, 별로인 글만 쓰게 될 때에도." -애거사 크리스티

"글을 쓸 수 없다는 두려움이 생겼을 때의 해법은 글을 쓰는 것이다." - 리처드 로즈


이러저러한 수많은 이야기를 늘어놓은 다음 마지막에 가서 바로 이 문장이 등장한다.

"젊은 작가들에게 조언을 해야만 한다면 나는 이렇게 말하겠다. 작가들이 글쓰기나 자기 자신에 대해 하는 말을 듣지 말라고." -릴리언 헬먼


결국 책은 열심히 읽었지만 마지막 조언을 따른다면 난 쓸데없는 짓을 한 셈이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어보길 잘했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읽는 내내 글쓰기에 관한 생각을, 그러니까 이 작가들의 생각과 내 생각을 계속 부딪혀 볼 수 있었다는 점이고 가장 중요한 것은 뭐라도 좀 더 써봐야겠다는 욕구가 생겼다는 점이다. 글쓰기에 관한 자세하고 친절한 안내 대신 그냥 쓰지 말라느니 재능 없으면 안 된다느니 하는 말을 잔뜩 읽고, 그럼에도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면 이 책은 참 좋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어떻게 하면 좋은 글을 쓸 수 있는지, 언제 써야 하고 어떤 것에 대해 써야 하는지, 이런 방법은 왜 안되고 저런 방법은 왜 치명적인지를 끊임없이 가르치는 책이었다면, 나는 아마도 글이고 뭐고 그냥 때려치워야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글쓰기의 가장 좋은 방법은 글을 쓰는 것 아니겠는가. 가장 좋은, 필수적인 길로 인도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나에게는 매우 괜찮은 책이었다. 언젠가 게으름에 빠져 허우적거릴 때 다시 찾아봐야겠다.


틈나는 시간에 잠깐씩 읽고 덮어 놓을만한 책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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