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나 Dec 06. 2021

그 해의 햇맛, 그리고 끝맛

낙엽이 진 가을 뒤끝은 쓸쓸하다.


겨울을 재촉하는 비가 낙엽을 청소하듯


이리저리 뒹굴린다.


끝내 모든 잎을 떨구어낸 나무.


앙상한 뼈대같은 헐벗은 가지로


시린 겨울을 묵묵히 버틴다.



잎은 그저 화려한 외모에 불과할 뿐이다.


철 따라 색을 바꿔입는 유행일뿐


철 지난 옷은 어울리지 않듯이


과감히 정리해야 한다.


겨울의 나무에는 또 한 번의 시련이 있다.


잎을 떨군 것도 모자라 제몸을 깎는


가지치기 이다.


농부는 과감히 이미 힘을 다써버린 가지를 쳐내버린다.


열매 맺은 가지에서는 더이상 열매가 맺지 않기 때문이다.


잘린 가지는 자신의 임무를 정확히 다하고 미련없이 땅으로 돌아간다.


새롭게 태어날 생명을 위해 길을 내준다.


가지치기를 한 후 새로운 가지에서 새순이 돋는다.


선택은 온전히 농부의 몫이다.


새순이 나올 수 있는 가지를


정확히 고를 수 있어야 풍성한 수확을 기대할 수 있다.



때로는 수령이 다한 늙은 포도 나무


vieille vigne  새로운 나무로 대체하기도 한다.


나무의 나이가 먹어가면 더 깊은 맛을 주기도 하지만


더이상 생산력이 떨어진다.


올해 수확한 포도로 만든 와인으로


11월 3째주 목요일에 출시되는 보졸레 누보가 있다.


누보란 새로운 new 에 해당하는 불어 이다.


숙성이 되지 않은 와인으로 햇과일의 맛이 있다.


풋풋한 산미가 있으면 어떠랴.


그해의 즐거움을 미루지 않겠다는 마음이 아닐까.


지금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그 햇맛.


그 해의 맛을 굳이 묵혀서 새 해로 


기고 싶지 않은 것이다.


나는 인생의 행복을 유예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 얻을 수 없는 것은


다음에도 유효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한국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거짓말.


"다음에 보자"


그 다음은 오지 않기에.


한 해동안 그래도 별탈없이 잘 지내왔음을


자축하며 소박한 와인, 보졸레를 준비한다.




작가의 이전글 프렌치 오크통 VS 스틸 탱크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