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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나 Dec 20. 2021

가성비에 대한 오해와 진실


가성비라는 말 자체를 나는 믿지 않는다.
가격대비 성능? 
글쎄, 와인에서는 정확히 그 만큼의 돈값을 한다.

기능재가 아닌 심리재 이기 때문이다.


내가 얼마를 쓰느냐는 돈의 문제이기도 하고 가치의 문제이기도 하다.

와인에 5만원 이상을 쓰지못하면 2.3만원의 가격대가 형성되어 있는 칠레 와인 종류 밖에 사지 못한다.
다른 나라도 있으나 굳이 내가 칠레를 언급하는 이유는 많은 이들이 칠레 와인을 가성비로 꼽기 때문이다.

와인하면 칠레를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이 꼽게된 것은
사실, 영화 속 대사였다.

" 와인은 칠레가 좋지~~ "

하는 김수로의 허세 끼 아니 허당 끼에 넘어간 것이다.

편의점에서 쉽게 만나볼 수 있는 칠레 와인인 몬테스 알파, 1865는 한국에서 특히 잘 나가는 상품이다. 한국의 유통을 장악하여 초창기 마케팅에 성공하였다.

편의점이나 레스토랑이나 어디서든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부분이 주효했다.

그러나, 와인에 대한 소비자들의 수준이 높아지면서 점차 지역은 다양해 지고 있다.

요즘, 매장에서는 미국의 나파밸리 와인이 가장 잘 나간다.

브랜드 인지도가 있는 상품, 케이머스, 덕혼, 파니엔테 등은 10만원대를 훌쩍 넘는다.

좋은 와인에 대한 기준은 물론 사람마다 다르지만 가격이라는 것은 철저히 소비자의 니즈와 수요에 따라 책정되기 때문에 격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강남의 매장에 있다보니 아무래도 고급 와인 선물을 하려는 분들이 많이 찾아오신다.

백화점에서만 취급하는 명품 샤또의 빈티지 상품을 주문하신다.

그런데, 한 번은 고객님이 우문같은 질문을 했다.

" 몰라서 물어보는데, 백만원 대와

  2백만원 이상 상품의 맛이 어떻게 다른가요?"

고객의 입장에서는 비싼 선물을 하고 싶은데

그 만큼 맛이 두배가 되는 지 어떤지 알고 싶으셨던 것이다.

판매를 하는 어드바이저도 갑자기 당황하여 뭐라고 설명하기 뭐 했는지

"퀄리티가 다르죠, 고객님" 이란 말로 애매하게 얼버무렸다.

내가 대답을 한다면 이런 정도는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 와인의 가격은 여러가지 기준에서 책정이 됩니다. 와인의 맛 뿐 아니라 빈티지, 재배지역, 숙성 잠재력 등의 평가 부분이 있고

상품으로서의 희소가치, 브랜드 인지도,

메이커에 대한 신뢰, 수요와 공급의 측면 등 다각도로 가치를 가늠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와인은 그 만큼의 값어치를 한다고 생각한다.

와인을 테이블 와인으로 먹는 것과 명품의 가치로서 소장하고 더욱 진가를 발휘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다르다.

와인 경매가 소더비에서 이뤄지는 것을 보면 어떠한 사람들은 와인을 투자가치가 있는 아트작품 정도로  생각한다.

굳이 소장용이나 투자용이 아니더라도 와인을 음미하는 것에도  환경과 기대치에 따라 맛이 달라진다.

패스트 푸드 음식점에서 셀프로 음식을 트레이에 날라서 허겁지겁 먹을 때의 맛과

유명한 쉐프의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 소믈리에의 제대로된 서빙을 받아가며 식사를 하는 것은 격차가 크다.

음식이라는 것은 각자의 취향에 따른 주관의 영역이라 일반적인 평가를 내릴수 없지만

맛은 기분, 즉 심리적인 요인에 따라 그 평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에 비싸고 좋은 와인이라고 생각하면 그 맛이 더욱 훌륭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평소 생각하는 수준보다 더 많은 금액을 지불하면 그 만큼의 가치를 기대하고 좋은 와인이라는 긍정적인 믿음과 함께 와인을 소중히 여기게 된다.

와인 영업을 하는 어드바이저들도 사실은 그 많은 와인을 다 접해보지는 않았기에 와인을 권하는 것에 자신의 한계를 드러내기도 한다.

고객님께 가성비 좋은 와인을 추천한다면서 3~4만원대의 와인을 권하자 잘 차려입으신 중년의 신사분이 오히려 잖아하시며
몇 만원짜리가 어떻게 좋은 게 있나,

호텔에서 삼십 만원 하는 와인만 먹는데 십만원 이상은 먹어야지 하시면서 케이머스를 몇 병 고르셨다.

압구정이라는 상권 특성으로 고가의 와인이 잘 팔리는 것도 사실이지만 의외로 1만5천원 짜리만 사가시는 고객들도 많다.

대부분은 주부들로 데일리로 마시기 때문에 그저 값싸고 편한 일만원대의 와인을 찾으신다.

그 분들도 압구정 현대아파트에 사시는 오리지날 강남 주민인데도 와인을 음료수 정도의 취급 밖에 안한다.

특히, 미국에서 살아본 적이 있으신 분들이라 그 당시  캘리포니아 와인을 20불 남짓으로 사드셨던 경험이 있어 와인을 그 정도로만 생각하시는 것이다.

삼십 만원대의 고가 와인을 턱턱 잘 사는 고객층 중에는 젋은 30대가 많은데,먹고 마시는 것을 중시하는 젊은 층의 욕구가 반영된 것 같다.

그들에게 사치를 한다고 도덕적인 평가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사치가 아닌 가치인 것이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가치를 두는 것이 중요하지, 예전 세대들처럼 아끼고 아껴서 집 장만하고 노후 준비하는 것은 그들의 라이프 스타일이 아니다.

지금, 현재에 얻을 수 있는 가치를 중요시 하는 것이 어떤 측면에서는 더욱 합리적으로 느껴진다.

잡을 수 없는 미래의 불투명한 희망 보다는 현재의 확실한 행복에 중점을 두는 것이다.

내가 가치를 투자한 것에는 그만큼의 애정이 생긴다.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돈 쓰는 것이 아까워서  인색하게 굴면 상대방도 거기에 따라 마음이 반응하게 된다.

내가 그만큼의 가치를 못한다고 상대방이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라 믿는다.

부모님을 봐도 항상 자식에게 좋은 것만 먹이고 싶은 마음으로 애정을 주시지 않는가.

개인적인 생각일지는 몰라도 나는 먹는 데 인색한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다.

먹는다는 것은 가장 기본적인 욕구인데 그 기본을 충실히 하는 것에 왜 죄책감을 가져야 할까.

살기 위해서 먹는 것은 그저 때우는 것이고, 먹기 위해서 사는 것은 문화적인 욕구라고 생각한다.

기왕이면 좋은 음식을 좋은 사람과 함께 나누고 싶다.

불교에서도 가장 좋은 보시를 음식보시라고 한다.

연말 12월이 되자 많은 이들이 와인 선물을 고르기 위해 백화점 매장을 방문한다.

내가 추천하는 선물은 클래식한 멋이 있는 이탈리아 3대 명품 와인이다.

피에몬테 지역의 네비올로 품종으로 만든  '바롤로' 와인과 토스카나의  산지오베제 품종을 혁신적으로 육종한 '부르넬로 디 몬탈치노' 그리고  발폴리첼라의 아파시멘토 기법으로 만든 '아마로네' 이다.

와인을 선물 받은 이도 이태리 와인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한 층 와인의 품격있는 세계에 빠져들지 않을까 생각된다.

어제 매장에서는 선물용 5대 샤토 빈티지를 삼백육십오만원에 사가는 남성 고객이 있었는데

그의 부인은 우리 마실 것도 사자고 하며

삼만오천원 짜리 와인을 소박하게 골랐다.

그랬더니 앞선 가격에 충격받은 중학생 아들은

이렇게 싼 와인도 있나며 놀라워했다.


남에게 주는 선물만 명품급으로 챙기는데

그래도 자신을 위해서도 아끼지말고 좋은 와인 한 병 쯤은 사두면 어떨까?


퇴근 후 나는 논현동에 새롭게 오픈한 와인전문 매장 와인앤모어로 향했다.

오픈 특가로 바롤로 와인과 내가 그토록 찾았던

가야 프로미스 와인을  9만9천원 세트로 구매하였다.

신세계 엘앤비에서 직접 수입하는 와인이라 가능한 가격이었다.


좋은 와인을 사면 좋은 날이 올 것을 기다리게 된다.

어쩌면 좋은 와인을 마시는 날이 좋은 날인지도

모르겠다.


연말이 아쉽고 쓸쓸한 건 또 한 해가 지났다는 서글픔과 덧없음이  아닐까.

축구황제 펠레가 말했던 명언이 떠오른다.


" 지난 날의 영광은 어제 내린 눈과 같다"


어제 내린 함박눈에 거리가 반짝였던 것도 잠시.

다음 날은 여지없이 짓이겨진 눈뭉치로 얼룩진

빙판길을 맞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무심하게 또

조심하며 한 발짝 걸어간다.


들 뜰 것도 새로울 것도 없는 연말연시.

그래도 무심함과 조심함으로 잘 견디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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