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접수'한 신인류.

엠마 라두카누 US 오픈 우승한 날

by 송진

3년전 2018 US 오픈에서 우승을 차지한 선수와 그 시상식은 좀 어색했다. 우승은 분명 나오미 오사카가 했는데, 그 스포트라이트와 인터뷰 분량 등이 세리나 윌리엄스 일색이었다. 그 때 나오미는 정상을 차지한 주인공이었음에도 "세리나 같은 전설의 선수와 플레이하는 것 자체가 영광이었다"라는 식의, 전형적인 겸손한 말로 짧게 인터뷰했다. 당시 그는 남의 집에 처음 온 손님처럼 얌전했다. 그때 1997년생 오사카는 생일이 지나지 않아 스무살로 통했다.


이번 대회의 이변은 스물 셋이 된 그 오사카가 2회전(32강)에서 열 여덟(2002년생. 대회 기간 동안 생일을 맞아 열아홉이 됨) 레일라 페르난데스에게 지면서 시작됐다. 오사카는 올림픽을 비롯한 최근 대회에서 제 컨디션이 아니었는지는 몰라도, 3번시드였다. 페르난데스는 시드가 없었지만 그 스피드와 타이밍, 예측을 뛰어 넘는 코스 워크 등에서 상대를 앞섰다. 그는 상대적으로 작은 (1m 68cm) 키는 아랑곳하지 않고 케르버, 스비톨리나, 사발렌카 등 자신보다 체격이 월등한 상대를 물리쳤다. 그 스피드와 예리함이 달랐다. 준결승까지 그 상대는 모두 그 보다 일찍 태어난, '언니'였다.

그런 페르난데스가 결승에 이르러 처음으로 '언니가 아닌' 상대를 만났다. 동갑내기면서 두달 어린 엠마 라두카누다. 나오미 오사카가 US 오픈을 우승한 2018년, 윔블던 주니어때 상대로 만난 적이 있는 10대다. 라두카누는 시드가 없는 것은 물론 아예 예선을 거쳐 결승까지 왔다. 올해 윔블던에서 16강에 들더니, 이번 대회에서는 준결승까지 단 한세트도 내주지 않고 9경기를 완벽하게 이겼다.

경기전 코인 토스. 파란색 자켓을 입은 레전드 빌리 진 킹(왼쪽에서 두번째)이 보인다.


당돌한 10대, 부모가 다국적인 글로벌 신인류, 왼손 기관총(페르난데스)과 오른손 함포(라두카누)... 둘의 맞대결을 비유할 수 있는 다양한 수사가 있었다. 어떤 점은 공통분모로서, 어떤 점은 대척점에 있는 전혀 다름으로서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가장 큰 흐름은, 시드도 없는 그 10대 글로벌 신인류가 기성세대에게, 3년전 오사카처럼 겸손할 필요 없이 "이제 우리 세상, 맞죠?"라고 씩 웃으며 트로피를 가져가는 것이었다.

'대회 중계사 ESPN의 캐스터는 "그들은 (이 대회에) 참가하러 온 것이 아니다. 그들은 '접수'하러 왔다 (They are not here to take part, they are here to take OVER) "라고 말했다.


결승 승부는 고수의 승부가 그렇듯이 경기 운영과, 실수를 줄이는 것, 현명하게 냉정해 지는 것 등에서 갈라졌다. 이런 항목을 보면 경험, 노련함, 평정심 등이 먼저 떠오른다. 그리고 10대는 이 부분이 부족할 거라는 선입견을 갖게 된다. 두 선수의 플레이를 보기 전까지라면 말이다. 페르난데스는 준결승에서 사발렌카를 꺾을 때, 상대의 힘을 이용하는 경기운영으로 베테랑을 따돌렸다. 덕분에 지나치게 마음이 앞선 사발렌카가 실수가 많았고 끝난뒤 "내가 경기를 망쳤다"고 했다. 페르난데스는 영리했다. 오사카를 꺾을 때 부터 관중을 자기 편으로 만들었고 이날도 더 많은 응원을 받았다.

둘 다 침착했다. 그리고 겉으로 보기에는 페르난데스가 좀 더 '침착에 집착' 했다.

라두카누는 스트로크의 안정감에서 앞섰고 절제된 경기 운영을 위주로, 떄로는 과감하게 승부를 걸었다.

그런데 이날 상대 라두카누는 사발렌카가 아니었다. 같은 10대에, 같은 아시아계 엄마. 차분하고 그윽한 눈을 가진 그는 마인드셋이 단단했다. 서두르지 않았다. 경기 초반 쉬운 발리를 실수 한 뒤, 라두카두는 발리를 자제하고 공격찬스에서도 바운스 뒤 스매싱을 했다. 특히 1세트 게임스코어 4-4로 맞선 9번째 게임에서 30-15로 앞선 라두카누가 절제된 경기 운영으로 페르난데스의 리턴이 아웃되는 걸 기다리고 참아낼 때, 승부의 추가 기울었다.


경기 막판 페르난데스가 3-5로 따라붙고 또 한번의 브레이크를 노릴때 흐름이 끊어졌다. 라두카누에게 행운이었다. 하드코트에 넘어지면서 다리에서 피가 나 메디컬 타임아웃을 쓰게 된 것이었다. 그 3분의 시간은 타오르던 페르난데스의 흐름을 꺾었다.



시상식에서 USTA 의장 마이크 맥널티가 두 선수에게 축사를 하면서 등장한 단어는 이랬다.

composure, poise, grit, mind set. and...smile.


우리가 경기를 떠 올릴때 서브, 리턴, 스트로크, 푸트워크, 발리 어쩌고 하는 것과 다르다.

<사진 및 영상 = ESPN 중계 화면 캡처>







작가의 이전글사회의 야구 국가의 야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