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동주 시인과 함께 마지막 순례를 떠난다 013
차 례
순례 序 / 4
순례 1 ~ 순례 105 / 5 ~ 125
순례 跋 / 126
순례 序
낮에는 꽃들이 촛불을 켜고
밤에는 별들이 촛불을 켠다
나의 심장에도 촛불을 켠다
평화공원에 누워있는
저 차가운 백비에
처음처럼
촛불의 이름을 새긴다
긴 잠에서 깨어나 목숨으로 만든 길 찾아간다
낮에는 꽃들이 심장을 켜고
밤에는 별들이 심장을 켠다
통일의 첫걸음을 찾아서
평화의 씨앗을 찾아서
봄의 어린 순교자를 찾아서
길에서 다시 피어난 애기동백과 함께 순례를 시작한다
순례 1
하늘에서 본다
한국과 중국과 일본 중간쯤
바다 위에 공 하나 떠 있다
손을 뻗친 손바닥 자국들이
비치볼에 가득 찍혀 있다
높은 하늘에서 본다
미국과 소련이 질러대던
럭비공 하나 떠 있다
축구공 하나 떠 있다
군화발로 함부로 차던
족구공 하나 떠 있다
더 높은 하늘에서 본다
미국이 상대선수를 바꾼다
미국과 중국이 야구를 한다
미국과 중국이 탁구를 한다
빠따로 수없이 얻어맞은
상처투성이 야구공 하나 있다
찌그러진 탁구공 하나 떠 있다
하늘에서 다시 본다
알이 하나 있다
알이 움직이고 있다
알에서 깨어나고 있다
가장 소중한 꽃 한 송이 피어난다
순례 2
오랜만에 빈 고향집에 돌아왔다
빈터에 꽃을 심다가 허리를 폈다
깨벅쟁이 친구 어머니가
감나무 아래 샘터에서 목욕을 하고 계신다
어머니와 친구는 오래전 흙이 되어
등목을 할 수 없다
나의 등과 친구 어머니 등에 손이 닿지 않는다
가만히 다시 내려다보니
내가 심은 꽃들이 등을 내밀고 있다
더 늦기 전에
뼈만 남은 저 감나무 말벗이라도 되어야겠다
순례 3
송악산 진지동굴 안에서 붉은박쥐 강의를 듣는다 알뜨르비행장 풀숲에서 붉은가슴염낭거미 수업을 듣는다 제로센비행기 격납고 앞에서 고추잠자리 말씀을 듣는다 섯알오름 학살터에서 소나무재선충 증언을 듣는다 동광리 헛묘 앞에서 선홍빛 꽃그늘로 쌓이는 정방폭포 소리에 젖는다
구억초등학교 옛터에 들러 김달삼과 김익렬 목소리도 들어보고 모슬포와 수월봉과 월령리 쪽으로 돌며 현장학습을 시작한다 한라산 백록담까지 구석구석 바람과 함께 찾아간다 그늘과 어둠을 샅샅이 뒤져본다 아직도 축축하고 어두운 동굴 속에 숨어있는 상형문자를 읽는다 사려니 숲길 따라 이덕구 산전에도 찾아가 빈 밥상에 차려진 햇빛도 받아보고 관덕정 앞 광장 바닥에서 피어나는 붉은 동백꽃도 만난다 선흘리 불칸낭 그늘에서 둥근 김밥을 나눠 먹고 잃어버린 마을을 찾아간다
애기동백을 따라오는 꽃빛 순례단이 반짝이고
배고픈 달을 따라오는 별빛 순례단이 피어난다
가슴마다 불씨를 옮겨주는 반딧불이 순례단이 환하다
순례 4
다랑쉬에는 다랑쉬마을이 들어있다
오름은 움푹해진 백록담도 품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평생 달과 함께 살았다
집들이 모두 불타고 굴속으로 들어갈 때에도
달과 함께 가재쑥부쟁이와 시호꽃을 피웠다
사람들이 다랑쉬굴 안에서 연기가 된 뒤에도
달은 잊지 않고 찾아와 섬잔대와 송장꽃을 피웠다
무쇠솥과 항아리와 놋수저와 신발만 남기고
열 한 명이 들려나와 바다로 떠난 이후에는
더 이상 아무도 들어갈 수 없다
어둠 속에는 아홉 살 아이가 울고 있는데
벗겨진 신발 찾으러 들어가 나오지 못하고 있는데
잠겨버린 어둠은 열리지 않는다
달이 찾아와 소리쳐 불러도 문이 열리지 않는다
곁에 있는 용눈이오름 아끈다랑쉬오름 높은오름
돛오름 둔지오름이 힘을 합쳐도 문을 열 수가 없다
남아있는 늙은 팽나무가 그저 바라볼 뿐
무너진 돌담도 집터도 우물터도 안으로 눈물 흘릴 뿐
달을 따라서 달의 고향으로 온 나도 그저
서로의 얼굴만 바라다 볼 뿐
순례 5
강 끝에, 서서 흐르는 강이 있다
당산나무가 아이들을 업어 키웠다
하늘로 가는 강이라고 말씀하시던
어머니는 밤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았다
강물을 따라 어머니를 찾아 나선 길
바다 건너 강 끝에도
하늘로 흐르는 강이 있었다
빛살처럼 눈부신 모습으로
강을 기어오르던 아이들이 떨어지고
퐁니 마을 야유나무 강물 속으로
피 묻은 총알 하나가 뛰어들었다
하늘로 오르던 강물이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다
내가 사는 강물 속으로
왈칵, 폭포수가 쏟아져 들어왔다
어머니 체취가 함께 밀려들었다
강정에서 무서운 소리가 들린다 강정천에서 헐레벌떡 몸만 겨우 빠져나온 은어들이 소개령에 대하여, 금족령에 대하여, 아직도 끝나지 않은 사삼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강정천 끝에도, 서서 흐르는 강이 있다 이제는 아이들을 업어 키우지 못하고, 바람만 업어 키우고 있다 허리가 너무 휘어서 하늘로 흐르지 못하는 강
오키나와로 가라고, 등을 후려치는 바람의 채찍에
구럼비 남쪽으로 활처럼 기울어지고 있는 여울목에서
나는 어머니처럼 붉은 알을 낳고 푸른 강물이 된다
순례 6
득음을 위한 독공이 한창이다
사과나무 속에서
고려청자 굽는 소리 들린다
조선백자 깨뜨리는 소리 들린다
수없이 많은 사금파리들이 쌓인다
사과나무 속에서
사과를 미리 빚어보고 구워보고 깎아본다
벚꽃 개나리 진달래 산수유
성질 급한 봄꽃들이 속옷 바람으로 뛰쳐나와도
사과나무는
진득하니 사과나무 속에서 사과만을 만들고 있다
울컥, 울혈을 토해내고 있다
순례 7
죽어서도 오백 년 천 년
쓰러지지 않는 나무가 있다
살아서도 투표용지 같은
잎들만 떨구는 나무가 있다
관덕정 앞 광장에
분홍달맞이꽃이 피어난다
꽃들의 가슴 속에
불씨가 숨어 있다
보도블럭을 들썩이는
뿌리들이 있다
화살 같은 햇살을 받으며
꽃들이 피어나고 있다
지금도 관덕정에서는
이재수의 목소리가 들린다
이덕구의 피냄새도 풍긴다
이승만 꼭두각시도 보인다
별들이 켜놓은 꽃불이 피어난다
꽃들이 켜놓은 혼불이 반짝인다
심장 같은 나뭇잎이 돋아난다
죽어서도 쓰러지지 않는 나무가 있다
죽어서도 집이 되어주는 나무가 있다
살아서도 심장에 촛불이 꺼진 사람들
살아서도 허수아비 그림자들이 많다
순례 8
칼바람 추위에 납작 엎드려 있던 쪽파들이
팔을 쭉쭉 뻗어 기지개를 켠다
눈송이인지 수선화 꽃잎인지 매화 꽃잎인지
새하얀 것들이
입춘 하늘을 온통 흔들어대고 있다
탐라국(耽羅國) 신들이 까마귀 궉새들 앞세우고
한라산 구상나무 숲으로 내려온다
동자복 미륵과 서자복 미륵이
용두암에서 헛기침을 크게 한다
신구간(新舊間)에 하늘 다녀온 탐라국 신들이
관덕정(觀德亭) 앞으로 내려온다
일만 팔천 신들이 시내까지 내려와 둘러보고 있다
제주목관아지(濟州牧官衙址)로 속속 모여들고 있다
신들과 사람들이 깃발 앞세우고 관덕정으로 몰려오고 있다
자청비가 앞에서 낭쉐를 끌고 온다
새로운 씨앗 뿌리려고 새 씨앗 가지고 자청비가 온다
바람신(風神) 영등할망도 함께 온다
어지러운 세상 한 번 뒤엎으려고 서둘러서 온다
바다도 뒤집고 하늘도 뒤집어 세상 한 번 바꾸려고 온다
천지왕 허락 받아 작심하고 불어온다
바다에도 뿌리고 땅에도 뿌리고 하늘에도 뿌리고
온 세상에 알토란같은 씨를 뿌리려고 풍요신이 온다
천지왕의 두 아들 대별왕과 소별왕이 함께 온다
해도 둘 달도 둘 혼돈의 세상
거대한 활로 하나씩 쏘아 없애고 송피가루 뿌려
천지 질서를 바로 잡았던 두 신이
큰 활 둘러메고 보무도 당당하게 씩씩하게 온다
자청비를 따라 문도령도 오고 정이 없는 정수남이도 온다
풍물패와 난장패와 걸궁패와 함께
세경신 세 명이 한꺼번에 몰려온다
탐라국을 손수 만든 설문대할망이 온다
옥황상제의 호기심 많은 셋째 딸이 온다
자식들 모두 불러 모아 오백장군들과 함께 온다
깃발에 쓰인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 선명하다
흔들릴 때마다 부자천하지대본(富者天下之大本)으로 펄럭인다
흔들릴 때마다 권력자천하지대본(權力者天下之大本)처럼 펄럭인다
북치고 꽹과리치고 나팔까지 불어대며 춤추며 몰려온다
신은 사람 같고 사람은 신 같이 파도치며 몰려온다
등불처럼 몰려온다 등대불처럼 몰려온다
환하게 불 밝히며 불빛처럼 몰려온다
신명나는 굿판에서 낭쉐 한 마리
백비 속으로 걸어서 들어간다
남원읍 의귀리 송령이골 지나 백비 속으로 들어간다
그 어둠 속에서 연못을 파기 시작한다
연꽃을 피우기 위해 뼈를 뽑아 뼈를 깎아
뼈의 송곳으로 연못을 파기 시작한다
뼈의 칼로 비문을 새기 듯
깊은 어둠 속에 연못을 파기 시작한다
관덕정(觀德亭) 앞 십자가에 매달려 지금껏 지켜보던 이덕구
신들을 따라 제주목관아지로 들어가지 않는다
사람들을 따라 탐라국 왕궁으로 입궐하지 않는다
주머니에 꽂혀있던 빛나는 숟가락 던져 버리고
『한라산』시집 한 권 펼쳐 들고 강정으로 달려간다
온통 하늘을 뒤흔들던 꽃잎들
백록담의 백록이 뛰어 오르고 오름마다 꽃들이 피어난다
순례 9
어느 시인이 ‘한 걸음씩 걸어서’ 가고 있다
나도 따라서 ‘한 걸음씩 걸어서’ 가고 있다
시인은 포아스 화산을 보며 시를 낭송한다
나는 포아스 화산을 보며 신의 시를 읽는다
코스타리카는 1948년에 군대를 폐지했다는데
우리나라는 언제쯤 군대를 폐지할 수 있을까
인디언의 땅을 정복한 사람들이
태평양을 건너 오키나와를 점령하고
제주도를 짓밟고
노근리를 학살하고
베트남을 공격하더니
이제 또 다시 한반도를 유린하려고 하는데
어느 시인은 평화를
‘총구에 꽂힌 한 송이 꽃’ 이라 말하고
나는
‘한 그릇의 따뜻한 말씀’ 이라 말한다
어느 아름다운 시인은 오늘도
백 년 넘은 괘종시계에 따뜻한 밥을 주고
나는 오늘도 벽시계가 되어
밤새도록 어두운 벽을 둥그렇게 뚫고 있다
순례 10
제주도 팽나무와
워싱턴 야자수가
나란히 서 있다
가지 많은 나무가 허리도 펴지 못하고 그늘을 가꾼다
가지 하나 없는 나무가 하늘 높이 탑만 쌓아 올린다
바람이 불어도 벌레들에게 젖을 물리며 숨소리를 어루만지고 있다
바람이 불면 우리들의 하늘을 들쑤시며 함부로 붓질을 해대고 있다
야자수 쪽에서 해가 떠오른다
키 큰 야자수 그림자가 팽나무 가슴을 관통한다
팽나무 쪽으로 해가 기울어진다
넓은 팽나무 그림자가 홀쭉한 야자수를 안아준다
워싱턴 야자수와
제주도 팽나무가
나란히 눕는다
순례 11
오후 네 시의 평화공원
온몸이 부서져 내린 보름달 부스러기들이
가을 억새꽃으로 피어나고 있다
다시 보름달을 함께 만들기 위하여
가을바람에 온몸을 내던지며
스스로를 반죽하는 저 빛나는 영혼들
아, 어머니가 밀어 만들어주시던
칼국수 반죽처럼
크고 둥글고 납작하게 늘어나는 흰 영혼의 숨소리들
평화공원에 아직은 달이 뜨지 않는다
무지개도 검은 무지개만 떠 있다
거친오름 기슭에 너무 많은 관이 묻혀있다
관들이 병풍으로 쌓여있는 위패봉안실 뒤로
행방불명자 비석들이
궤 속에 몸을 숨기고 고개만 내밀고 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지 이미 오래 되었건만
아직은 밤이 더 깊어져야만 하는 것일까
어머니가 끓여주신 칼국수 함께 먹으려면
우리들의 밤은 더 깊어져야만 하는 것일까
동굴 속 하얀 혼백의 관으로 누워 있는 저 백비에
저 많은 죽음이 통일의 첫걸음 이었다고
저 많은 통곡이 평화의 씨앗 이었다고
아직은 새길 수 없어
코스모스는 길 밖에서만 피어나고
어머니가 만드는 칼국수 반죽은 보름달이 되지 못한 채
검은 동굴 속에서 흰 관으로 묻혀 숙성되고 있다
순례 12
갈등(葛藤)의 숲이 있었다
소나무를 타고 올라가는 칡과 등나무가
서로를 미워하며 키만 키우고 있었다
소나무는 목숨에 대하여 말해 주었으나
가슴 속으로 흐르는 물길 소리를 듣지 못했다
소나무는 길을 알려주려고 숲과 숲을 이어주는
외나무다리가 되었다
뒤늦게 칡과 등나무는 서로의 강을 보았고
소나무가 말해주는 아름다운 길을 보았다
다투어 하늘로만 향하는 길을 틀어 강을 건넌다는 것은, 낭떠러지의 아득함과 절벽의 막막함으로 가는 길, 그래도 가야만 하는 우리들의 길
칡과 등나무는 외나무다리를 부여잡고 돌고 돌아
으르렁거리는 물살 위에서 겨우 손을 잡을 수 있었다
서로에게 가는 길은 멀고도 험난했으나
칡과 등나무는 서로를 안으면서 길이 되었다
먼 훗날 소나무 다리가 먼 길 떠난 뒤에도
칡과 등나무는 든든한 서로의 다리가 되리라
갈등(葛藤)의 다리가 강을 건너고 있다
순례 13
그때 불에 타버린 나무가 어찌
선흘리 후박나무 뿐이랴
차마, 눈 뜨고 보지 못한 나무가
어찌, 북촌리 팽나무 뿐이랴
불이야아~ 불이야아~ 불이야아~
아무리 소리쳐보아도 아무도 오지 않는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제발 살려만 주세요
아무리 빌어보아도 아무도 살려 주지 않는다
아무리 호소해보아도 누구 하나 살려주지 않는다
붉은 태양이 무섭다 푸른 하늘도 무섭다
밤하늘의 별들도 너무 뜨겁다
달은 지금도 그때 입은 상처가 선명하다
온 세상을 쉬지 않고 돌고 있는 달을 보아라
불이야, 를 뜨겁게 외치는 둥근 저 영혼을 보아라
잊을 수 없다 온 동네가 불타오르던 그날을 평생 잊을 수 없다 뜨거운 몸이 먼저 그날을 잊을 수가 없다 병든 사람이 문지방을 기어 나오다 불타오르고, 갓 낳은 아이를 끌어안고 쓰러진 젊은 엄마가 불타오르고, 대나무밭에 숨어 숨죽이며 지켜보던 눈빛이 불타오르고, 우리 안의 돼지가 불타오르고, 외양간의 소가 불타오르고, 닭들이 불타오르고……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던 그날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느냐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까지 쏘아 죽이며 온 동네에 불을 질러대던 사람들, 배고픈 개와 돼지들이 올레에 쓰러져 죽은 사람들을 뜯어 먹고, 그런 개와 돼지들을 또 다시 잡아먹는 사람들까지 모두 보아버렸으니, 어찌 멀쩡한 맨 정신으로 살 수 있었겠느냐
그러나 아, 온 동네가 불타오르는 밤하늘의 별들
이제 겨우 눈빛으로 보이기 시작한다
밤새 불이야, 를 외치며 쉬지 않는 달빛의 목소리에
하나 둘 눈을 뜨기 시작하는 어둠의 빛나는 눈빛들
밤이 깊을수록 더 깊은 어둠일수록, 더 밝은 별빛을 낳는다
순례 14
길이 아프다
아픈 길을 끌고 가는 길이 있다
아픈 길을 밟고 가는 길이 있다
붉은 가을 잎들이
가장 낮은 길을 찾아간다
겨울의 아픈 길을 어루만지며
뿌리를 찾은 붉은 마음
하늘로 가는 길을 따뜻하게 만들어 봄을 준비하고 있다
순례 15
심재산방에서 보니
나와 식물이 하나로 보인다
마음을 굶겨보니
몸의 속까지 다 보인다
나무의 뿌리는 땅 속에 있고
사람의 뿌리는 가슴 속에 있다
나무의 뿌리는 머리카락처럼 무성하고
사람의 뿌리는 알뿌리처럼 둥그렇다
알뿌리 같은 심장이 땅에 묻혀도
나의 가슴에는 피가 잘 돌아
나의 생각은 나무처럼 무성하게 잘 자랄 것만 같다
너덜너덜한 대동맥판막, 망가진 심장도
땅 속에서는 뿌리를 잘 내릴 것만 같다
좌망정에 앉으니
계곡에 숨겨놓은 배도 보이고
늪에 감추어둔 그물도 보인다
월라봉에서 날아오는 학의 긴 다리도 보이고
바다로 날아가는 오리의 짧은 다리도 보인다
산방산에 눌러앉은 구름도 보이고
강정으로 실려 가는 마징가 같은 케이슨도 보인다
다 보인다
심재산방 좌망정에 앉아 눈을 감으니
나무 기둥을 타고 올라가는
천 년의 강물에 빈 배 하나
하늘을 향해 가고 있다
빈 배 가득 하늘이 실려 간다
순례 16
한라산 어욱은 새가 되지 못하여
봄부터 베를 짜기 시작한다
초가지붕에도 오르지 못하여
베옷 한 벌 장만하기 시작한다
천둥 번개 요란한 여름에도
베틀소리 멈추지 않는다
새 옷 한 벌 얻어 입지 못하고
만가(輓歌)도 없이 숨 죽여 가신 님들
해 좋은 날, 어욱꽃 마을까지 내려온다
수의 한 벌 챙겨들고
요령소리 앞세우고
잃어버린 마을까지 잊지 않고 찾아온다
무너진 돌담 하나 대답이 없어
빈 상여 소리에
빈 수의 한 벌 흩어져 날아가고
갈 곳 잃은 바람의 곡비
온몸이 휘청거린다
뼈만 남은 한라산 억새
흰 눈 내려 헛묘에 묻히고
한라산 자락에는 해마다
메김소리 가득한 오름 하나씩 늘어난다
순례 17
해바라기가 귀를 기울인다
벼도 수수도 뻗어가던 길을 돌린다
하늘로 향하던 길들이 땅으로 휘어진다
뒤돌아서 보니 발자국 보인다
마음속에 벗어놓은 발자국들 어지럽다
가을바람에 해바라기 꽃잎이 마른다
나의 젖은 발자국들도 마른다
나는 지금껏 무엇을 위하여
갈팡질팡 살아왔던가
벗어놓은 신발부터 가지런히 놓아야겠다
가을바람에 매미소리 얇아지고 있다
남은 시간도 옅어지고 있다
내 가슴 속에도 사랑의 씨앗 하나 있을까
해바라기 씨앗처럼 잘 익어가고 있을까
겨울이 오면
나는 나의 봄을 어느 깊은 곳에 묻을까
바람이 분다
가을바람이 분다
어지러운 그림자부터 지우기 시작한다
여름내 모기들이 점령했던 풀밭으로 간다
계절도 나를 따라서 쉬지 않고 순례를 한다
내 마음 속 연못에서 종소리 들린다
연꽃잎 모두 날려 보내고 연밥이 익어간다
순례 18
섯알오름 연못에 연꽃이 없다
소나무들이 온 몸으로 젖으며
어깨를 들썩이고 있다
까치도 보이지 않고
까마귀도 보이지 않는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오작교가 보이지 않는다
두개골과 척추 뼈 하나씩만 묻히고
나머지 뼈와 살과 영혼들이
오름 어딘가에 흩어져
칠석날에도 만나지 못한 채
자꾸만 달과 별들을 부르고 있다
곁에 있는 백조일손묘역(百祖一孫墓域)에도
안장되지 못한 영혼들
섯알오름을 둘러싸고 있다
둥그렇게 에워싸고 있는 저
소나무들의 뿌리를 힘껏 잡아당기고 있다
길을 가던 달이 별들을 데리고 조문을 온다
소나무가 그들을 맞이한다
소나무들이 자꾸만 발목을 내려다본다
새벽이 조문을 오고 아침이 조문을 오고
동알오름쪽에서도
조문 오는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두 개의 연못이 해처럼 환해진다
섯알오름 연못에 오작교 같은 연꽃이 돋아나고 있다
순례 19
귀뚜라미가 운다
가을을 기다려온 사람들의 귀에는
울음소리도 아름답게 들린다
천사의 나팔꽃도 시들고
악마의 나팔꽃도 시든다
해를 따라다니던 해바라기 날개도 마르고
가슴 속 가득 피어난 별꽃 젖꼭지들도 이운다
고개 숙여 제 발목을 내려다보는 까만 눈동자
해바라기 씨앗에 젖을 물리던 별들이 떠난다
헛묘가 있는 동광 육거리에서 영어마을로 간다
무등이왓과 삼밭구석은 보이지 않는다
김익렬 연대장과 김달삼 무장대 총책이 만나
4·28평화회담을 했던 구억초등학교 찾아간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평화가 보이지 않는다
구억초등학교가 보이지 않는다
대정북공립초등학교가 보이지 않는다
노랑굴과 검은굴을 둘러보아도 항아리 하나 보이지 않는다
구억리에는 바람도 영어로만 말한다
붉은 노을 속으로 해가 지고
귀뚜라미가 다시 운다 아직은
바람의 말들을 알아들을 수 없어 나도 따라서 운다
순례 20
강이 바다로 간다
강이 하늘로 간다
강이 산으로 간다
흘러서 흐르는 것이 있다
흘러서 오르는 것이 있다
흘러서 머무는 것이 있다
순례 21
욕망이 자꾸만 미사일처럼 뻣뻣하게 일어선다
꿈속 검은 돌담에 긴 혓바닥 같은 숫돌을 꽂는다 물을 부어가며 쓱싹 쓱싹 누워 빛나는 식칼에 별빛이 박힌다 나는 늘 어미가 될 수 있는 자궁과 젖이 부러웠다 섬뜩하게 쏘아보는 칼날에 달빛이 베어진다 나는 조용히 두 눈을 감고 누워 꼿꼿한 욕망을 싹둑 잘라버린다 순식간에 붉은 동백꽃이 핀다
더 이상 새끼를 낳을 수 없는 나는 내부를 깨끗하게 비워내고 화분이 된다 불알 두 쪽과 내장이 밖에서 말라가는 사이 화분에 흙을 채운다 어머니를 내 몸 가득 채운다 잘 마른 씨앗 두 알 심고 물을 준다 화분 속 어머니의 자궁에서 새 싹이 돋는다 생명과 평화의 나무 두 그루 내 몸에서 자란다
순례 22
칡꽃이 환하게 피었다
등꽃은 지상을 밝히고
칡꽃은 하늘을 밝힌다
등나무는 시계방향으로 돌며 오르고
칡덩굴은 반시계방향으로 돌며 오른다
시계를 보니 둥그렇게 돌고 있다
시계바늘은 어느 쪽으로 돌고 있는가
(시계바늘은 왜 같은 쪽으로만 도는 것일까)
0시에서 출발하면 오른쪽일까
3시에서 출발하면 아래쪽일까
6시에서 출발하면 왼쪽일까
9시에서 출발하면 위쪽일까
시계바늘은 그냥 둥그렇게 돌고
칡은 칡이 좋아하는 쪽으로 돌고
등나무는 등나무가 좋아하는 쪽으로 돈다
사람들은 칡과 등나무를 보고
갈등(葛藤)이란 말을 만들었다
갈등이란 말을 만든 사람들은 서로 갈등하고
갈등이란 말을 모르는 칡과 등나무는
지상과 하늘까지 환하게 밝히며 잘들 살아간다
순례 23
제주도는 태생부터가 뜨거운 화산이 아니었더냐
너무 뜨거워 불덩이를 더 이상 가슴에 품지 못하고
그 뜨거운 돌덩이를 한꺼번에 토해버린 족속이 아니었더냐
아무리 세월이 흐른들
그 타고난 성정 어디 가겠느냐
저 푸른 한라산을 보아라
시커멓게 타버린 몸뚱이가 키워내는 저 푸른 숲을 보아라
저 넓고 푸른 제주 바다를 보아라
시뻘겋게 달아오른 가슴 식혀주는 저 파도 손길을 보아라
아무리 세월이 흐른들
그 깊고 뜨겁고 아름다운 성정이 어디 가겠느냐
언제라도 다시 뜨겁게 타오를 수 있는 사랑 어디 가겠느냐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흘러도
사랑과 평화를 온몸으로 품을 줄 아는 가슴 어디 가겠느냐
아무리 무섭고 흉악한 도적떼가 함부로 훔쳐간다고
어디 하루아침에 한라산이 닳아 없어지겠느냐
어디 하루 이틀에 제주바다가 말라 없어지겠느냐
우리 모두의 가슴 속에 함께 살아있는 사랑이 꺼지겠느냐
우리 모두의 핏줄 속으로 함께 흐르는 평화가 끊어지겠느냐
제주도는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화산의 후예들이 아니겠느냐
돌멩이 하나에도 뜨겁게 살아있는 그 기억들 쉽게 잊히겠느냐
바람 한 점에도 생생하게 살아있는 그 기억들 쉽게 멈추겠느냐
우리 가슴속 활화산이야말로 눈물로 키워낸 평화가 아니겠느냐
순례 24
알뜨르비행장에 파랑새 한 마리 착륙했다
단발머리 거인 소녀가 안고 온 파랑새 한 마리
하늘도 파랑새도 소녀도 옷도 모두가 대나무로 만들어졌다
소녀의 대나무 옷을 스치니
내 마음 속으로 대숲이 들어온다
파랑새도 함께 날아서 들어온다
대나무는 함부로 꽃을 피우지 않는다
한 계절에 한꺼번에 모두 다 자라고
남은 일평생 제 소리만을 가다듬는다
중간에 베어져 책꽃으로 피기도 하고
죽창 끝에서 피꽃을 피우기도 하지만
대나무의 소망은 오직 소리꽃으로 피는 것
한 백 년 쉬지 않고 소리 연습을 마치면
마침내 목이 터져 꽃 한 번 피우고
피리가 되어 가슴 속 파랑새를 불러내리라
순례 25
평화로 가는 길에 붉은 상사화 무리지어 피어난다
추석 다음날 오후 큰넓궤 찾아간다
큰넓궤에 살았던 사람들은 그 해 추석을 어떻게 지냈을까
아, 큰넓궤는 끝까지 눈을 감지 못한 어머니 눈동자처럼
나를 길에서 쏟아버린 어머니의 자궁처럼 나를 맞이한다
태양빛이 뜨거워 썼던 양산을 접고 입구를 들여다본다
자궁 속에서 나오는 시원한 바람
서늘한 바람이 가슴 속으로 파고든다
싸늘한 정신이 가슴 속을 후벼판다
이곳이 발각되어 볼레오름까지 올라갔던 사람들
그들을 두 달 동안 지켜주었던 입구의 종나무를 본다
그 종나무와 어울려 살고 있는 단풍나무를 본다
홍단풍은 봄부터 붉고 청단풍은 가을에도 푸르다
아, 입구가 너무 좁다 기어서도 들어가기 힘이든다
차마 돌아갈 수 없어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
거꾸로 찍혀있는 발자국처럼 거꾸로 들어간다
이미 흙이 되어버린
어머니의 눈동자 속으로, 자궁 속으로 기어서 들어간다
멀리, 나팔관에서 나팔소리 들려오고
어머니의 심장소리가 들린다
동굴 속 축축한 어둠이 양수처럼 나를 감싼다 이 곳에서
붉은 상사화 지는 것도 잊은 채
한 두어 달 어머니와 함께 종나무로 살다가 다시 태어나,
순례 26
봄이 오는 길목으로 동백꽃이 지고
바람이 정신없이 불기 시작했다
동박새는 더 깊은 곳으로 숨어들고
동백나무는 더욱 시퍼렇게 겁에 질렸다
봄에도 겨울바람이 불고
여름에도 겨울바람이 불었다
온 계절이 겨울바람으로 가득했다
새 해가 와도 봄은 오지 않았다
무자년 시월부터 이듬해 삼월까지
바람은 미쳐버리고
세상의 꽃들도 떨어져 밟혔다
꽃잎에서 흘러나온 피가 바다를 이루었다
동백나무는 모두 보았다
어린아이는 부모와 함께 죽고, 무서워서 숨으면 폭도라고 붙잡아가고, 술병 들고 제삿집 가다가 끌려가고, 키가 크니 산사람 같다며 잡아가고, 이발하던 이발사도 잡혀가고, 낚싯대 만드는 사람도 무기 만든다고 끌려가고, 조 이삭 따러 갔다가 죽고, 김매러 갔다가 죽고, 소여물 먹이다가 죽고, 도망가는 소 잡으러 갔다가 죽고, 설마 애기 업은 사람도 죽이랴 믿었다가 죽고, 안고 죽고, 업고 죽고, 아기 젖먹이다가 죽고, 우는 아기 입 틀어막다가 죽고, 도망가다가 죽고, 숨었다가 죽고, 더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가다가 죽고, 맞아 죽고, 찔려죽고, 총 맞아 죽고, 굶어 죽고, 얼어 죽고, 빠져 죽고, 불타 죽고, 묻혀 죽고, 죽고, 죽고, 죽고 아, 알 수 없는 떼죽음이여
세상은 온통 죽음 뿐
동백꽃도 떼로 죽고
동박새도 모두 죽고
그러나 아, 그 모진 세월에도
끝끝내 익어가는 동백 씨
그 단단한 씨앗을 뚫고 껍데기를 뚫고
수없이 짓밟혀 딱딱해진 땅을 들고 다시 일어나는 저 새싹들,
순례 27
눈이 온다 하늘이 온다
하늘의 식구였던 눈이 온다
하늘의 식구였던 하늘이 온다
눈이 쌓인다
하늘이 내려 쌓인다
큰일이다 큰일났다
발자국이 지워지지 않는다
오려거든
더 빨리 펑펑 쏟아 부어라
우리들이 벗어놓은
발자국 가득 쌓여 넘쳐버려라
거꾸로 벗어놓은 발자국이
차라리 하늘이 되어버려라
큰넓궤에서부터 따라오는 발자국이
자꾸만 우리들의 목숨을 따라오고 있다
왕오름을 지나고
이스렁오름을 지나고
어스렁오름을 지나고
산짐승도 내려가 텅 빈 볼레오름에 다 오도록
우리들의 발자국은 하늘이 되지 못하는구나
고봉밥이 되지 못하는구나
발자국 밥그릇에 하늘을 다 담지 못하는구나
아, 존자암의 염불소리도
부처님께 올리는 삼시 세 때 공양도
우리들의 발자국 그릇을 다 채워주지는 못하는구나
하늘의 눈꽃만 지상에 피어나
참나무들의 붉은 겨우살이 열매 눈빛이 더욱 붉어지더니
덜 채워진 하늘이 결국 붉게 엎어지고 마는구나
순례 28
정방폭포로 간다 정방폭포 앞바다로 간다 태평양으로 간다 혹시, 아는 사람이 뼈 한 조각이라도 가져왔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다시 고향으로 간다 동광리로 간다 무등이왓으로 간다 삼밭구석으로 간다 혹시, 살 한 점이라도 붙어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또 다시 낭떠러지 위로 간다 절벽의 바위를 뒤진다 폭포 아래 바위를 뒤지고 물속을 뒤지고 바다 속을 뒤지고 바다 속 물고기들을 뒤지고 물고기 뱃속을 뒤진다 혹시, 숨결 하나라도 만날 수 있을까 싶어서 허공 속을 뒤진다 더 높은 하늘을 뒤진다 구름 속을 뒤진다 빗방을 속을 뒤진다
뒤지다 눈이 멀어버린 사람들이 지상을 떠난 뒤에도, 집 앞으로 몰려든다 죽어서도 몸을 찾지 못한 영혼들이 작은 단서라도 얻어 들으려고 찾아든다 이렇게 찾아와 밤새 이야기하는 영혼들을, 살아있는 사람들은 목백일홍 이라고 말한다 백일홍 나무라고 말한다 배롱나무라고 말한다 그 곁에 있는 충혼묘지에도 백일기도하는 붉은 꽃이 있다 죽어서도 영혼을 찾지 못한 몸들이 있다 그리하여 여전히 순례를 멈출 수 없다
순례 29
등 뒤에서 안아주는 당신의 심장이
나의 잠든 심장을 흔들어 깨운다
어린 딸이 자전거 뒷자리에서
아버지 허리를 깊이 끌어안는다
나는 바람을 싣고
떡갈나무 숲으로 간다
떡갈나무 잎들이 날아
등을 끌어안으며 쌓인다
새들이 날아오르고
하늘의 등이 반짝인다
해의 등을 한 번 안으려고
달이 부지런히 가고 있다
등을 보인 것들이 더욱 깊어진다
순례 30
낙엽이 간절히 말한다
제발 저를 밟지 말아주세요
저는 아직 죽은 것이 아닙니다
저는 지금 순례 하는 중입니다
가장 깊고 아름다운 순례 길을
제발 함부로 밟지 말아주세요
나는 낙엽이 가는 길을 따라서 간다
순례 31
가을 아침 일찍 곶자왈 숲길을 걷는다
아픈 심장의 리듬에 맞추어 춤을 춘다
이제 밤에 술을 먹지 못하여 행복하다
하나로 부족하여 발의 심장이 돕는다
빨리 걸을 수 없어 자세히 들여다본다
오래도록 바라보면 닮아간다고 했던가
나도 이제 곶자왈 맹아림을 닮아간다
저마다 상처에서 다시 태어난 나무들
당당하게 숲을 이루어 버섯들 키운다
나는 순례 중인 낙엽을 밟지 않으려고
돌들을 밟고 시나브로 걸어 들어간다
딱따구리 소리에 올려다보니 낙엽 난다
상록수도 잎과 평생 함께 할 수는 없다
나뭇잎 따라 내려와 자세히 들여다보니
나뭇잎의 영혼을 들고 일어나는 버섯들
고개 들면 양치식물들의 싱싱한 호흡들
아, 나는 오늘도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
아파서 행복한 사람, 죽지 않고 살아서
테우리길 지나서 가시낭길을 걸어간다
숨골에서 숨소리가 들려온다
은신처였던 유적지에서 숨소리 들린다
숯가마의 거주지에서도 숨소리 들린디
밟고 있는 돌에서 지구 숨소리 들린다
상처도 이렇게 잘 익으면 숲이 되리라
아름다운 숲에서 나도 숲이 되고 싶다
아름다운 고승들처럼 숲으로 들고 싶다
숲의 끝까지 들어가 낙엽을 덮고 싶다
숲이 될 수 있는 나는 참 행복한 사람
순례 32
붉은 태양은 빨갱이인가
붉은 장미는 빨갱이인가
붉은 악마는 빨갱이인가
붉은 촛불은 빨갱이인가
붉은 태양은 다시 뜨고
붉은 장미는 다시 피고
붉은 악마는 다시 살고
붉은 촛불은 다시 켜고
붉은 피는 다시 흐른다
붉은 피가 흐르는
시체를 덮은
붉은 피에 물드는 태극기는
끝끝내 빨갱이인가
빨갛게 흔들리는 하늘인가
붉은 노을은 빨갱이인가
붉은 하늘은 빨갱이인가
붉은 노래는 빨갱이인가
붉은 화산은 빨갱이인가
붉은 바다는 빨갱이인가
붉은 파도는 빨갱이인가
붉은 마음은 빨갱이인가
붉은 죽음은 빨갱이인가
붉은 촛불이 어둠을 먹는다
순례 33
옥상 맨 바닥에 누워 하늘을 본다
등이 따뜻하니 하늘도 따뜻하게 보인다
나는 아직도 잘 모른다
내가 무엇인가를 볼 수 있다는 것
내가 무엇인가를 들을 수 있다는 것
내가 무엇인가를 느낄 수 있다는 것
눈은 어찌하여 볼 수 있게 되었을까
귀는 어찌하여 들을 수 있게 되었을까
마음은 어찌하여 느낄 수 있게 되었을까
별을 보니 별의 문구멍으로
하늘 너머까지 볼 수 있을 것만 같다
바람소리 들으니 바다 건너 파도소리까지 들릴 것만 같다
파도소리에서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가 들린다
등 밑 시멘트는 시나브로 허물어져 내리고
넓은 모래사장으로 남아 파도무늬를 새긴다
나는 아직도 잘 모른다
카메라는 왜 순식간에 어떤 풍경이라도 빨아들이는지
카메라는 왜 끊임없이 시간을 저장했다가 돌려주는지
카메라는 왜 당신을 번쩍 안아다가 나에게 보내주는지
어둠의 거울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나는 알 수가 없다
바다가 곁에서 말한다
너는 지금도 물방울 하나에 불과하나니
물방울 하나가 어찌 바다를 다 알 수 있겠느냐
순례 34
강물이 갑자기 황금빛으로 빛난다
의심스러워 물맛을 보니 꿀맛이다
큰 일 났다고 사람들에게 알리니
사람들은 몰려와 좋아라고 난리다
꿀맛에 취한 사람들이 흥얼거리며
꿀을 실어가서 비싸게 팔기도 하고
피부미용에 좋다며 강으로 뛰어든다
사람들은 늘 너무 늦게 알게 되리라
목이 마르고
물을 먹고 싶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깨닫게 되리라
꿀강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이라는 것을
강에서 물고기가 먼저 사라지고
일벌들의 시체가 떠내려 오기 시작한다
강물이 서서히 황금으로 변해가고 있다
순례 35
어머니는 베릿내 순비기꽃, 아버지는 한라산 참꽃, 할머니는 송령이골의 나팔꽃 이야기를 자주 하셨다
할아버지와 큰아버지가 한라산 올라가는 길은 참꽃이 참 많았었다고 말씀하시던 아버지는 그곳에서 참꽃을 자주 꺾어 오시고, 할머니 화전 안에서는 할아버지와 큰아버지 꽃이 자주 피었다 아버지는 늘 진달래를 참꽃이라고 말씀 하셨다
큰아버지는 할머니와 아버지를 겨우 빼돌리고 송령이골에 버려졌고, 미처 고향을 빠져나오지 못한 작은 할아버지 가족은, 아주 나중에 현의합장묘에 모셔졌고, 할아버지는 한라산 진달래 밭의 참꽃이 되셨다
피의 꽃으로 피어나는 난리가 끝나고 금족령이 풀려도, 한라산에 올라가 오소리를 잡아오시던 아버지는 언제나 오소리처럼 깊은 굴속에 숨어서 사셨다 지금도 송령이골 유골 방치 터에 박혀있는 전봇대처럼, 늘 양쪽 가슴에 못을 박고 사셨던 할머니는 결국 큰아버지 곁에 누우셨고, 그 묘지에 아버지는 한라산 참꽃을 심으셨다
송령이골에 배롱나무 세 그루 심었다 한라산 노루 발자국마다 참꽃 피어나기 전, 나도 뒤늦게 꽃을 심는다 강정으로 시집간 이모와 함께, 어머니 묘소에 순비기나무 심는다 나란히 누워계신 아버지 묘소에도 꽃을 심는다 한라산 참꽃을 심는다 멀리서, 천사의 나팔꽃 피어나는 소리 들린다
순례 36
새별오름 만큼 앞뒤가 다른 오름이 있을까
지난 정월 대보름 축제 때
새까맣게 태워졌던 기억을 다 잊고
환하게 맞아주는 저 억새꽃들
눈 맞추면 마음속까지 다 보일 듯하다
같은 날 죽은 부부가 합장된 사연
돌이끼 꽃 가득 핀 산담, 햇살이 기웃거린다
어느 쪽이 앞이고 어느 쪽이 뒤일까
어느 쪽이 삶이고 어느 쪽이 죽음일까
불길이 닿지 않은 쪽에서
달의 앞쪽과 달의 뒤쪽을 함께 본다
바다에서 한라산 쪽으로 바람이 분다
최영장군의 우렁찬 목소리가 멀리 들린다
무장대를 한라산 쪽으로 몰아가는 토벌대의 발자국소리도 들린다
죄 없이 쓰러지는 사람들의 밥그릇 소리도 들린다
밥그릇들이 어지럽게 엎어져 있다
정돈되지 못한 묘지들이 잃어버린 마을처럼 있다
햇살 가득한 공동묘지, 그러나
엎어진 밥그릇은 어느 것 하나 햇살을 담을 수 없다
순례 37
꿈속에서 시인을 만났다 내가 존경하는 시인이 장관이 되었다 장관이 된 이후에도 청렴하다는 소문이 자자하다
그 시인의 친구인 또 다른 시인은 대학교수다 친구가 장관이 되었는데 교수시인의 우편물이 급증하기 시작했다
학교에서 시인의 우편함을 더 크게 만들어주었으나 감당할 수 없다 처음에는 책과 돈 봉투가 든 소포들이 오더니 나중에는 옷 소포가 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역시 청렴한 교수시인은 소포를 뜯어보지 않았다 산처럼 쌓인 소포들을 학생들과 다른 교수들이 가져가기 시작했다
학생들과 교수들의 패션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남녀를 불문하고 기모노를 입기 시작했다 등짝마다 책가방이 아니라 돈 가방이 붙어 있었다
나는 그런 환경에 도저히 적응하지 못하고 꿈밖으로 걸어 나왔다 그런데 꿈 밖에서도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 없었다
어디에서 이렇게 많은 돼지들이 몰려온 것일까 평화생명학교 돼지감자들을 모조리 파먹어버리고 있다 꿀꿀꿀 쿨쿨쿨 꿀꿀꿀 쿨쿨쿨 한 번 몰려온 돼지들은 돌아갈 생각도 하지 않고 먹고 자고 먹고 자고 꿀꿀꿀 쿨쿨쿨……
순례 38
오래도록 연꽃을 바라보니
나는 연꽃이 되었다
오래도록 나무를 바라보니
연꽃은 목련꽃이 되었다
오래도록 산을 바라보니
목련은 산목련이 되었다
산목련 아래
따뜻한
나무의자 하나 있다
하늘이 내려와 앉을 때마다
함박웃음소리 남몰래 피어난다
순례 39
서귀포 화순해수욕장에 섬을 꿀꺽 삼켜버린
커다란 보아뱀 두 마리 살고 있다
산방산을 삼키고 부처의 고뇌를 삼켜버린
보아뱀 두 마리 오늘도 바다로 기어가고 있다
추사의 세한도를 삼켜버린 용머리 보아뱀
횟집과 민박집을 삼키고 부른 배로 기어가는
보아뱀 두 마리가 화산처럼 부글거리며
이어도로 가고 있다
나는 그 보아뱀이 삼켜버린 많은 전설들을 알고 있다
갈대숲의 새와 검은 쥐들과 취객이 토해 놓은
어둠과 욕망의 내력들을 다 알고 있다
보아뱀 뱃속에서 좌선하는 부처님과 추사가 코끼리 꼬리에 대하여
한담을 나누고 있다
가끔은 무지개의 뿌리 쪽으로 헤엄쳐 들어가는 보아뱀
바람이 거세어 배들이 피항 하는 화순항
바람이 거세질수록 화순 앞바다를
더욱 치열하게 기어가는 뜨거운 보아뱀 두 마리
지금 막 빠져나가고 있다
이어도로 가고 있다
순례 40
보아뱀이 훌쭉하다
산방산이 홀쭉하다
악어도 홀쭉하다
송악산도 홀쭉하다
한담을 나누시던
추사와 부처님은 어디로 가신 것일까
코끼리는 지금 어느 길을 걷고 있을까
형제섬을 토해 놓은 악어는 지금 무슨 생각에 잠겨있는가
더 홀쭉한 가파도를 물어뜯으려는 것일까
등을 무겁게 누르는 구름은 잡아먹지 못하고
손이 없는 긴 몸뚱어리만 꿈틀거리고 있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자장가 소리에
저승에서 이승으로 오는 검둥개는 보이지 않는다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흰둥개도 보이지 않는다
순례 41
모래밭에는 파도의 발자국이 있다
파도가 벗어놓은 신발들이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파도의 결이다
서로 안고 나누었던 숨결이 있다
모래톱을 걸으면 톱질하는 소리 들린다
나는 자리를 옮겨 돌밭으로 간다
돌밭에는 젖어있는 그림자만 보인다
그림자 사이로 밀려오는 목소리 들린다
오래도록 기다려온 보말들이 뒤척인다
돌 밑에 숨어 있던 작은 게들도 내다본다
저 큰 바위 밑에 있을 문어는 거동이 없다
고개 들어 바다를 본다
서서히 바다가 밀려온다
수평선에서부터 일렁이다가 울렁이다가
중간쯤부터 앞발을 살짝 살짝 들어보다가
두 손 두 발 하얗게 펼쳐 들고 덮친다
하지만 너무 서두르는 바람에
해안선에서는 정작 얌전한 짐승이 된다
돌과 돌 사이로 먼저 들어온 물길이
해안의 돌들을 어루만지며 깨운다
돌들은 이내 몸을 부드럽게 내어주고
함부로 버려진 날카로운 유리조각들도
스스로 뽑았던 칼날을 뭉그러뜨리고 있다
곁에서 인동꽃은 마지막까지 벌을 부르고
순비기꽃이 까맣고 둥그런 알을 낳고 있다
순례 42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의 길을 여행하고
만 명의 친구를 사귀어라*
하지만 나는
단 한 권의 책을 읽고
단 한 곳을 여행하고
단 한 사람만을 사귀고 싶다
나는 평생
단 한 권의 당신을 읽고
단 한 곳의 당신을 여행하고
단 한 사람, 당신만을 사랑하고 싶다
이것만이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 소망이다
* 讀萬卷書 行萬里路 交萬人友
순례 43
벌써 밤이 차다
보일러에서 귀뚜라미가 가을시를 읽는다
달빛 따라 알뜨르에 간다
늦은 달맞이꽃이 가을시를 쓴다
누군가 나를 슬쩍 들어올린다
늦은 애기달맞이꽃이 발바닥을 밀어올린다
기우뚱,
나는 가을시에 맞추어 가을 춤을 춘다
귀뚜라미와 달과 달맞이꽃 리듬에 맞추어
나의 시와 나의 심장이 춤을 춘다
애기달맞이꽃이 앞발을 살짝 들어 올려 이륙한다
파랑새 따라 올라가니 달이 되어 둥실둥실 떠간다
하늘에서 보니
섯알오름 두 개의 연못에
두 개의 달이 젖고 있다
순례 44
늦은 밤 섯알오름 알뜨르비행장
태평양의 징검다리 건너오느라
아침에도 잠이 잘 오지 않는다
창밖에서 새들이 자꾸 부른다
침대에서 왼쪽 옆으로 돌아 눕는다
오른손으로 창문을 열고 방충망까지 연다
빈 거미줄에서 거미 한 마리
늦잠을 즐기고 있다
감잎이 말라가고 벚나무 잎이 마른다
먹감은 아직 푸르고
젖꼭지나무 젖꼭지도 아직 푸르다
떫은 감을 핥다가
덜 익은 젖꼭지를 빨다가
새들이 향나무 향에 젖는다
내가 아직 이름을 모르는 참새만 한 새들
참새 보다 조금 더 큰 새들
더 높은 워싱턴 야자수에 까치가 집을 짓는다
그 까치집 뒤로 푸른 하늘 깊다
깊은 하늘 바다 위로 큰 심장구름 떠간다
저 심장에도 네 개의 빈 방이 있다
우리 집에도 네 개의 빈 방이 있다
새들이 서로의 입에 무엇인가를 넣어준다
서로의 입을 핥아주고 깃털을 다듬어준다
하늘에 빛나는 아침 비행기 날아간다
누군가는 켐트레일 이라고도 말한다
길어지는 구름 강이 하늘을 가른다
우리 집에는 분명히 아무도 없는데 등 뒤에서
누군가 나를 안는다 심장이 포개어져 따뜻하다
빛나는 비행기 한 대 심장 속으로 파고든다
켐트레일 끝에서 빛나는 큐피드 화살촉이 꽂힌다
순례 45
지렁이 한 마리 기어간다
흙만 파먹고 살던 지렁이가
아스팔트길을 기어간다
혼자 가는 순례길
너무 먼 삼보일배
더 이상 일어서지 못하고
길이 되어버린 지렁이 한 마리
지렁이 두 마리 흘러간다
함께 가는 순례길
한결 수월해진 삼보일배
길에서 말라버린 지렁이에게도
물 한 모금 나누어주며
리듬에 맞추어 춤을 추는 지렁이들
소문 듣고 나온 지렁이들
떼로 가는 순례길
하늘처럼 가벼워진 오체투지 삼보일배
강으로 흐르는 지렁이들
이제는 밟지 않아도
스스로 강물로 꿈틀거리는 지렁이들의 강
순례 46
여기도 가고
저기도 갔다
그에게도 가고
너에게도 갔다
하늘에도 가고
바다에도 갔다
어둠에도 가고
밝음에도 갔다
슬픔에도 가고
기쁨에도 갔다
시장에도 가고
사찰에도 갔다
온 세상 둘러보니
사랑이 제일이다
온 동네 살아보니
시인동네가 살만하다
모든 사람 만나 보니
당신 가슴 내 집이다
순례 47
가지 많은 팽나무 곁으로, 가지 없는 워싱턴야자수 한 그루 이사 와서 일기를 쓴다
그와 함께 살아온 것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그가 이사 할 때마다 늘 함께 이사를 다녔다 월라봉 아래 사랑밭에서 처음으로 살림을 차렸고, 꿈섬으로 같이 이사를 했다가, 이제는 드디어 꿈숲에 꿈처럼 정착하게 되었다
그를 만나기 전에 황개천 공원에 잠시 살았던 기억이 있다 1년 만에 뽑혀 길가에서 불태워졌던 기억을 잊을 수 없다 그를 만나지 못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뜨거운 불에 타서 이미 말라죽은 잎들과, 검은 숯이 되어버린 잎자루를 잘라주고, 가슴으로 안아다가 다시 사랑밭에 정성껏 심어주고, 불타는 갈증에 물까지 먹여 주었던 그의 손길을 잊을 수 없다
그렇게 사랑으로 심어진 모습을 보고 어떤 사람은 말했다 땅 속으로 파고드는 잉어 같다고 말했다 봉황의 뒤태 같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렇게 그의 가슴으로 살아난 몇 년 뒤 너무나 위태롭게, 검은 새 한 가족을 길러내기도 했다 세상물정 모르고 둥지를 잘 못 튼 그 검은 새 때문에, 얼마나 많은 밤을 뜬 눈으로 지새워야 했던가, 자꾸만 아래로 쳐지려는 잎자루는, 그 둥지를 떠받드느라 얼마나 온 힘을 다하여 버티었던가, 그 때의 뼈아프고 힘든 기억 때문에, 이제 다시는 어떤 새라도 가슴에 품지 않기로 작정했다 잎자루 가득 무서운 가시를 세워 달고, 새가 가슴 속으로 접근할 때마다 잎을 심하게 흔들어 내쫓았다 그리고 꿈섬에서의 생활은 그와 함께라도, 물이 너무 많아서 쉽지 않은 나날이었다 그리하여 꿈섬은 물을 좋아하는 연꽃과 토란에게 양보하고, 드디어 꿈숲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이사를 하면서 뿌리를 많이 다쳤지만, 곁에 든든한 팽나무가 있어서 그래도 안심이 좀 된다……
잎자루를 둘로 쪼개서, 제 가슴을 스스로 끌어안고 탑만 쌓아 올렸던 워싱턴야자수 한 그루, 저렇게도 많은 가지를 키울 줄 아는 팽나무를 보면서, 가지하나 키울 줄 몰랐던 지난날을 돌아보며 고개를 떨어뜨린다 그렇게 제 아랫도리를 내려다보니, 이제는 아이를 낳을 수 있을 만큼 엉덩이가 벌어져 있다 거친 잎자루가 벗겨져, 속옷까지 다 벗어버린, 속살 같은 엉덩이 위로 달팽이 한 마리 기어오르고 있다 제주배꼽털달팽이와 풀밭에서 함께 놀던 동양달팽이 한 마리, 알락하늘소를 따라 워싱턴야자수 엉덩이 위로 기어오르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운 두 뿔로 하늘을 들이받으며 오르고 있다
순례 48
제주도에는 만장굴보다 더 깊고 어두운 억장굴들이 많다
용암동굴과 해식동굴과 침식동굴들은 그래도 숨통이었지
그런데 말이야
환해장성을 따라 포문이 열려있는 진지동굴들을 좀 보라고
저것들이 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들이 판 거라고
군인들이 총칼 들이대고 파라는데 민간인들이 어쩌겠어
그뿐인가
제주도 오름마다 수 없이 많이 파놓은 저 진지동굴들을 보라고
저것들이 다 우리 조상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아니겠는가
저 굴을 파다가 죽은 사람들은 또 얼마나 많았겠는가
그런데 더 가관인 것은 말이야
숨 한 번 돌릴 틈도 없이 억장굴들을 파야만 했다는 거야
큰 동굴 작은 동굴 할 것 없이 숨어들 수밖에 없었지
동굴이며 궤며 심지어 숨골에까지라도
숨을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숨어들어 가야만 했었지
그렇게 말이야 글쎄 그렇게
온 가족이 들어가고 온 마을이 들어가고 온 제주도가
검은 동굴 속으로 걸어 들어가 지금도 나오지 못하고 있지
가끔은 그런 동굴 속에서
사람의 뼈들이 먼저 걸어 나오고 무쇠 솥이 나오고 숟가락이 나와도
사람들의 가슴 속으로 너무나 깊고 어둡고 차갑게 관통해 버린 억장굴
속에서 숨죽이고 있을 뿐 함부로 나와 볼 생각은 아예 못하고 있는 거지
지금 까지도 그 날의 총탄이 심장을 뚫어버린 억장굴에서
붉은 피가 서쪽 하늘을 뼈 속까지 물들이더니
이제는 피도 말라 어둠이 쏟아져 나온다 세상이 온통 밤으로 출렁거린다
억장이 다 무너지도록 억장굴은 깊고 아프다
순례 49
나는 너무 한 쪽에서만 보았구나
한 번 악어로 보이니
자꾸만 악어로만 보았구나
나는 악어도 모르면서
송악산까지도 악어로만 보았구나
이제는 앞에서도 보고 뒤에서도 보고
위에서도 보고 아래서도 보고
하늘에서도 보고 바다에서도 보리라
낮에도 보고 밤에도 보고
가까이에서 보고 멀리서도 보리라
송악산 가는 길에 다시 보니
형제섬의 다른 가족들도 보이고
파도 소리에서도
사람발자국소리 공룡발자국소리 들린다
물고기들의 울음소리까지 다 들린다
돈나무 길을 걸어 새와 억새 길을 걸어
소나무 길을 걸어 순비기나무 꽃길을 걸어
마라도와 가파도 전망대에서 바다를 본다
바다에도 별꽃들이 가득 피었다
빛나는 한치들은 오늘밤
저 치명적인 별빛을 덥석 물고 말리라
서귀포 쪽에도 대정 쪽에도 별빛이 가득하다
산방굴사 올라가는 빛나는 눈빛들도 보인다
사람은 아무도 없어서 긴 돌 의자에 눕는다
비행기도 별들 사이로 별이 되어 날아간다
지금보다 더 어두웠을 밤하늘을 바라보며
옛날 사람들은 얼마나 신기했을까
밤마다 켜지는 저 등불들을 보며
얼마나 많은 날개를 펴고 날아올라갔을까
나도 먼 하늘까지 날아올라 별빛으로 내려다본다
바다에서 불기둥이 솟아오르고
용암이 바다에 식어 쌓이고
무거운 돌들이 쌓이고 가벼운 돌들이 쌓이고
먼지들이 쌓이고 연기들까지 천천히 쌓인다
그리고 더 오래도록 파도는 마무리 작업을 계속한다
한 때 사람들이 절벽에 달라붙어 굴을 파다 죽고
산 깊은 곳까지 맨손으로 굴을 파다가 죽기도 한다
파도는 이제 그렇게 죽은 사람들의 해원 굿까지 한다
순례 50
개들이 빙 둘러서서 씩씩거리고 있다
개떼의 울타리 안에서
두 마리의 개가
다리에 힘을 주고 서로를 노려보고 있다
벌써 싸움이 오래 되었는지
뾰족한 이빨에 피가 묻어있고
얼굴과 몸통에도 상처가 깊다
지구 돌아가는 소리까지 다 들릴 듯
긴장감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그
순간,
한 마리 개가 삽시간에 솟구치더니
다른 개의 목덜미를 물고 사정없이 흔든다
누구 하나 찍소리 못하고 지켜보던 개들이
쓰러진 개에게 일제히 달려들어 물어뜯는다
지구가 한 쪽으로 조금 더 기운다
나는 비틀거리고 견치(犬齒)는 부드러운 혀를 깨문다
-------- 이하 생략 --------
순례 跋
序
1945년 해방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지배자가 일본에서 미국으로 바뀌었을 뿐
1946년 제주도에서는
완장을 바꿔 찬 친일경찰과 모리배와 대흉년이 있었다
1947년 제주도에서는
3·1절발포사건과 유례없는 민·관 총파업이 있었다
응원경찰과 서청이 몰려오고 대규모 검거와 고문이 있었다
1948년 제주도에서는
4·3무장봉기로 남한에서 유일하게 5·10선거가 무효처리 되었다
체면이 구겨진 미군정과 이승만 정권이 본격적으로 보복을 시작했다
1948년 10월부터 초토화 작전이 본격적으로 불을 붙였다
삼진·삼광 작전으로 무장대는 약화되었고 1949년 이덕구도 죽었다
1950년 6·25한국전쟁으로 다시 끌려간 사람들이 돌아오지 못했다
이 많은 세월과 죽음과 통곡을 하나의 이름으로 부를 수 있을까
사람들은 ‘제주4·3’이라 말한다
하지만 나는 ‘제주사삼’이라 말한다
우리들의 3월이 죽은 사건이라 말한다
우리들의 봄이 죽은 사건이라 말한다
4·3을 너무 강조하면 이데올로기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정통성과 인권문제로 가려면 3·1절을 앞세워야만 한다
모든 폭력을 거부하는 나는
신촌회의에서 결정한 무장투쟁을 반대한다
그리하여 나는 ‘제주4·3’이라 말하지 않고
‘제주3·1절발포사건’이라 말한다
그래야만 우리들의 적이 분명해진다
우리들의 적은 이념이 아니라 폭력이다
이념이 아니라 인권으로 접근해야만 길이 선명하게 보인다
완전한 자주독립을 외치던 3·1정신이 지금도
관덕정 앞에서 총을 맞고 쓰러져 피를 흘리고 있다
1
인디언의 땅을 정복한 사람들이
태평양을 건너기 시작한다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에
우라늄 235 원자폭탄이 떨어진다
죽음의 버섯구름이 태양을 가린다
1945년 8월 9일 나가사키에
플루토늄 239 폭탄이 또 떨어진다
하늘 가득 독버섯이 피어오른다
제주에서 항전을 준비하던 일본은 무조건 항복한다
우리나라 광복군은 아직 들어오기 전이다
미군의 전선은 단번에 38선까지 전진한다
제2의 오키나와를 염려하던 제주도는
통째로 미군의 손아귀에 들어간다
하지만 제주도 주민들은
오키나와의 주민이 되지 않기 위하여
쫓겨난 인디언이 되지 않기 위하여
자주 독립의 길을 찾아가고 있다
평화 통일의 길을 찾아가고 있다
평화를 꿈꾸며 서천꽃밭으로 가고 있다
2
내가 적을 만들면 나도 적이 된다
내가 동지를 만들면 나도 동지가 된다
내가 폭력을 쓰면 나도 폭력을 당한다
내가 평화의 길을 가면 모두가 평화롭다
너와 나는 언제나 적으로 살 것인가?
우리는 언제나 사랑으로 살 것인가?
평화는 평등의 나무에서 피어나는 꽃이다
평화는 평등의 마음에서 흘러나온 물이다
3
일장기가 펄럭이던 자리에 성조기가 우렁차다
몽고군이 지나가고 일본군이 지나가고
미군이 들어와 군홧발로 짓밟기 시작한다
양의 탈 속에 감추어진 늑대를 보지 못한 사람들은
쌀의 나라로 착각하고, 아름다운 나라로도 착각한다
친일 경찰들은 옷을 갈아입고 미군정의 경찰이 된다
친일파들은 그렇게 반공주의자로 변신하기 시작한다
4
고향을 떠났던 6만여 명의 제주 사람들이 돌아온다
하지만 고향에는 먹을 것이 없고 생필품이 부족하다
해방 이듬해, 1946년은 유례없는 대흉작까지 겹친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온 섬에 호열자까지 나돈다
흉년에 역병이라니,
민심은 극도로 흉흉하고 하늘이 원망스럽다
게다가 해방된 땅에 나타난 점령군 미군은
미곡 수집령을 내린다 일제 공출제도의 변형이다
주민들이 굶어 죽어 가는데, 보리 공출에
밀수품 단속을 빙자한 군정 관리들의 비리까지 늘어난다
1946년이 저물고, 해가 바뀌어도
도민들의 삶은 무겁기만 하다
제주도는 이제 거의 빈사상태가 된다
실오라기만 한 희망도 보이지 않는다
학생들이 펜을 놓고 교실 밖으로 뛰쳐나온다
학생들의 저항운동이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한다
일제 잔재 교육과 독재적인 교육을 반대하며 동맹휴학을 한다
학생운동은 1947년 접어들면서 펄펄 끓는다
2월 10일, 미군정청이 자리한 관덕정 광장에서
“조선의 식민지화를 양과자로부터 막아내자” 고 외친다
학생들의 격렬한 양과자 반대 시위가 벌어진다
제주 시내 중학생들
교내에서 시작된 학생운동이 사회운동으로 번져나간다
1947년 제주도의 양과자 수입 반대운동은 전국적인 화제가 된다
미군 보고서는 이 사건을
제주도에서 일어난 최초의 반미 시위로 규정한다
5
1947년 3월 1일 꽃샘추위 속, 하늘은 맑고 토요일이다
사람들이 제주북국민학교 운동장으로 밀물처럼 모여든다
제28주년 3·1절 기념 제주도대회가 열린다
제주 도민의 10분의 1이 넘는 제주 사람들이 모인다
다른 지역은 각 면 단위로 기념식을 하고
제주읍과 애월면과 조천면 사람들은 함께 모여서 한다
드디어 1947년 3월 1일 오전 11시, 제주북국민학교에서
역사적인 3·1절 기념행사가 열린다 기념식에서 안세훈은
“3·1혁명 정신을 계승하여 외세를 물리치고 조국의 자주통일 민주국가를 세우자”고 외친다
이어 각계 대표들이 나와 발언을 하면서 대회는 후끈 달아오른다
모여든 사람들은 목청껏 구호를 외친다
“삼상회의 결정 즉시 실천”
“미소공동위원회의 재개”
“3·1정신으로 통일 독립 전취하자”
“친일파를 처단하자”
“부패 경찰을 몰아내자”
“양과자를 먹지 말자”
이날 오후 2시께, 기념식을 마친 군중은 이런 구호와 함께
왓샤, 왓샤를 외치며 관덕정 광장으로 나가며 시위를 벌인다
시위 대열이 관덕정 광장을 거의 벗어난 2시 45분께
말을 탄 경관의 말발굽에 한 어린아이가 채여 쓰러진다
그런데도 기마 경관은 아무 일 없다는 듯 유유히 가려고 한다
성난 군중은 “저놈 잡아라” 소리치며 쫓아가고, 당황한 경관은
군중에 쫓기며 관덕정 옆 경찰서 쪽으로 말을 몰고 달려간다
바로 그 순간
팡팡, 파바방, 몇 발의 총성이 하늘을 찢는다
총소리에 놀란 군중들은 동요하기 시작한다
총소리는 관덕정 앞에 배치된 무장 경관과
경찰서 내 꼭대기 망루에서 일제히 울려 퍼진다
관덕정이 날아갈 듯 총성과 함께
시위를 구경하던 6명이 죽고 8명이 중상을 입는다
젖먹이를 안고 쓰러진 스물한 살의 젊은 어머니 박재옥과
북국민학교 6학년 허두용도 쓰러져 죽는다
부검 결과, 희생자 중 1명을 빼고 다른 5명은 모두
등에 총을 맞은 것으로 판명이 난다
희생된 이들은 시위대가 아니라 단순한 관람 군중 이다
‘3·1사건’은 이렇게 맑은 하늘의 날벼락으로 시작된다
관덕정 광장에서 울린 이 총성이 바로 비극의 시작이다
제주 사회는 잿빛 급물살로 빨려 들어가기 시작한다
경찰은 곧바로 통행금지령을 내린다
경찰은 ‘경찰서 습격 사건’으로 규정하고
상처 입은 사람들의 마음을 수습하려 하기보다 오히려
강경 대응 쪽으로만 몰아가려 하고 있다
경찰은 바로 다음 날부터 사람들을 잡아들인다
총을 쏜 행위는 애써 외면한 채 사람들을 잡아들인다
3월 2일 하루 동안 학생 25명을 연행한다
잡히면 무조건 구타와 고문을 한다는 소문이 바람처럼 휭휭 나돈다
경찰은
“시위 군중이 경찰서를 습격할 태세를 보여 불가피하게 발포하게 됐다”는
발포가 정당했다는 것을 내세운 성명을 발표한다
민심은 더 이상 억누를 수 없는 폭발 직전이 된다
“3·1사건 진상을 규명하라”
“3·1사건 발포 책임자를 처벌하라”
민중의 목소리는 점점 파도처럼 높아만 간다
그해 3월은 그렇게 시작된다
그날 이후 민중의 분노는 극에 달한다
그리하여 더 엄청난 비극이 발아하기 시작한다
6
1947년 3월 10일 총파업이 시작 된다
국내외에서 보기 드문 대규모 민·관 총파업 이다
제주도 사람들은 물질도, 밭일도 모두 손을 놓는다
총파업, 그것은
3월 1일 경찰의 발포에 저항하는 민중의 의사 표시다
총파업은 평화적이고 별 탈 없이 진행된다
하지만 곧 걷잡을 수 없는 후폭풍이 들이닥친다
경찰은 눈에 불을 켜고 총파업 주모자들을 잡아들이기 시작한다
미군정과 우익 세력에 대한 도민의 반감은 분노에 가까워진다
파업 중인 제주도청을 방문한 조병옥 경무부장은
공무원들에게 파업을 중지할 것을 요구하면서 말한다
“제주도 사람들은 사상적으로 불온하다”
“건국에 저해가 된다면 싹 쓸어버릴 수 있다”
조병옥은 경찰의 발포를 정당방위로 규정한다
더구나 3·1사건은 북한과 서로 짜고 공모한 사건이라며
제주도를 ‘빨갱이 섬’으로 몰아붙인다
조병옥이 제주에 들어온 다음 날
전남 응원 경찰, 전북 응원 경찰, 서북 청년회 단원들이 대거 날아든다
400명이 넘는 이들이 삼엄한 경계망을 펴고 파업 주모자들을 검거한다
이틀 사이 검거한 사람만 200여 명에 이른다
엿새 만에 서울로 돌아간 조병옥은
3·1절 발포사건의 발포는 정당했다는 담화문을 발표한다
총파업은 열흘이 지난 3월 20일을 전후해 잠잠해진다
하지만 검거된 사람이 500명에 달한다
미군정은 이렇게 3·1사건을 서둘러 마무리하고
고위 관리들을 극우 성향의 인물로 바꾸기 시작한다
군정 장관에 러셀 베로스 중령, 도지사에 유해진이 임명된다
이 좁은 섬은 순식간에 폭력과 긴장의 섬으로 변한다
‘서청’이라면 울던 아이도 눈을 크게 뜨고 숨을 죽일 정도다
젊은 여성을 희롱하는 일도 심심찮게 일어난다
서청의 도민에 대한 테러는 더 극성을 부린다
도민들의 우익에 대한 시선도 더 날카로워진다
유해진의 암살을 요구하는 전단이 나돌기 시작한다
미군 축출, 경찰 타도,
그리고 우익 저주를 요구하는 전단도 뿌려진다
3·1사건 직후부터 제주에 내려오기 시작한 서북청년회,
‘西北’이라고 쓰인 완장을 찬 이들은 자금 모금을 한다는 구실로
태극기나 이승만 사진 등을 주민들에게 강매하기도 한다
1947년 말부터는 경찰과 행정기관,
교육계에 근무하는 서청 단원이 늘어나고
‘좌익 척결’이란 이름 아래 서청에 의한 테러가 곳곳에서 발생한다
이러한 서청의 탄압은 도민들로 하여금 강한 반발을 불러온다
이렇게 서청은 무장대의 봉기를 일으키는 커다란 원인을 제공한다
3·1사건과 총파업, 이어진 대량 검거 사태
그야말로 제주도는 혼돈 그 자체가 된다
제주 섬은 점점 불안의 도가니가 된다
동서 냉전의 거대한 검은 그림자에 휩싸이고 있다
그렇게 또한 1947년이 불안하게 저물어 간다
해가 바뀌어도 희망의 싹은 보이지 않는다
3·1사건의 파장으로 붙잡힌 청년들이
극한 고문에 시달린다는 말이 섬을 떠돌아다닌다
그러한 고문의 증거가 곧바로 눈앞에 현실로 나타난다
7
다시 섬은 출렁거린다 1948년 3월
경찰에 연행되었던 20대 청년 3명이
경찰의 고문으로 숨지는 사건이 벌어진다
조천지서에 연행되었던 김용철
조천중학원 2학년 이었던 그가
유치장에 갇힌 지 이틀만인 3월 6일 숨진다
모진 매질을 당한 몸은 시커멓게 멍으로 덮여 있다
부검 결과 고문 때문이었음이 드러난다
미군정의 주목을 받은 이 사건은 방첩대가 직접 부검에 참관하고
미군정청 사법부 소속 민간인 변호사가
진상 조사를 위해 파견되기도 한다
3일 동안 전 학생과 주민이 모여 장례를 치르고 난 후
민심은 더욱 악화된다
민중들의 가슴은 확 달아오른다
많은 학생들의 가슴에 뜨거운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한다
조천중학원생들은 분노하고, 분노는 시위로 이어진다
“학생을 살려내라”
“우리도 맞아 죽을 것 아니냐”
사인 규명을 요구하며 저항한다
그렇게 시위는 사나워진다
“신탁통치 절대 반대”
전신주에 학생들이 밤중에 붙인 전단은
아침에 보면 파닥파닥 날리고 있다
이미 1947년에도 조천중학원 교사들이 자꾸 지서로 잡혀가자
책 보따리를 들고 지서로 줄줄이 몰려가
돌멩이를 던지며 항거하던 학생들 이다
도민들의 울분은 기름을 붓기만 하면 금방이라도 타오를 것 같다
이미 곪아 있던 것이 건드리기만 하면 곧 터질 태세다
미군정은 조천지서 경찰관 5명 전원을 구속해
사태를 진정시켜보려고 한다
하지만 모슬포지서에서 청년 양은하가 경찰의 고문으로 또 죽는다
그리고 죽음은 이어서 계속 된다 서청과 경찰에 붙잡힌
한림면 금릉리의 청년 박행구도 곤봉과 돌에 맞아 초주검 상태에서
끌려가다가 총살당한다 이런 충격적인 사건이 자꾸만 터져 나온다
3·1사건 이후 끔찍한 고문은 그렇게 자꾸만 고개를 쳐들고 있다
여기에 도지사 유해진과 서청의 횡포로
제주 사회는 더욱 긴장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다
그럴수록 도민들의 저항은 갈수록 거세진다
미군정의 조사 결과,
대부분의 제주도민을 좌익으로 규정한 유해진의
우익 강화 정책 같은 독선이
제주도민을 막다른 골목으로 내몰았다는 것이 밝혀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군정은 유해진을 유임시키고 만다
8
이즈음 한반도는 긴장된 모습이다
미국과 소련이 개입한 가운데 통일국가로 갈 것인가
아니면,
분단국가로 갈 것인가를 두고 극렬하게 대립하고 있다
미군정은 남한만의 단독선거인 5·10선거 강행을 결정하고
정국은 혼란으로 치닫고 있다
김구·김규식 등 민족 지도자들은 단독선거 반대에 나선다
그러나 미군정 수뇌부는 당시
이 격동하는 냉전의 흐름 속에서
단독정부 수립을 들고 나온 이승만을 선택한다
그들의 최대 관심사는 단독선거를 성공적으로 치러내는 것이다
때문에 미군정으로서는 유해진이 필요하다
좌익의 근거지로 보아온 제주도에서
좌익 세력을 탄압하는 극우파 유해진 지사의 정책이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선거에 필수적이라 생각한다
이때 미군정으로부터 철저한 탄압 대상이 된 좌파 계열의
남로당 제주도위원회는 갈등과 고민에 빠진다
결국, 저항하는 민심을 전국적으로 벌어진 5·10선거
반대 투쟁과 연계시키고자 한다 이러한 결정에는
민족 분단을 강하게 반대하는 대중의 분위기도 작용한다
남로당 제주도위원회 강경파는
‘5·10선거는 통일을 가로 막는다’는 논리를 편다
이것은 대중을 끌어들일 수 있는 좋은 명분이 된다
단독정부가 수립된다면 당이 존립할 수 있는 기반 자체가 무너지기 때문에 조직을 수호하는 차원에서도 필사적으로 단독선거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당시 좌익 신진 세력의 강경파 대표 인물은 20대의 청년 김달삼 이다
본명은 이승진, 대정중학원 교사다 그는 1947년 3·1사건 때
남로당 대정면당 조직부장으로 급부상한 인물이다
그는 무장투쟁이 결정된 다음에는
무장대 조직을 총괄하는 군사부 책임을 맡게 된다
급기야 남로당 제주도위원회는 움직이기 시작한다
남로당은 단독선거를 저지하기 위한 강력한 투쟁계획을 세운다
1948년 2월 7일을 기해 전국을 총파업으로 몰고 간
‘2·7구국투쟁’ 이 벌어진다
제주지역에서도 2·7 투쟁 방침에 따라
각 지역에서 시위 등 소요 사태가 발생한다
9
1948년 3월 초 조천면 신촌리 어느 민가에서
남로당 제주도위원회가 비밀리에 회의를 열고 있다
19명의 면당 책임자가 모인 이른바 ‘신촌회의’
이날의 논쟁은 지금의 사태에 대해 싸울 것인가
앉아서 더 지켜볼 것인가
강경파와 온건파
두 패로 갈린 채 칼날 같은 논쟁과 논쟁이 이어진다
한순간의 결정이 엄청난 유혈 사태를 몰고 올지도 모를 일이었기에
예민하고 엄정해야 한다
결과는 12대 7 강경파의 ‘나가서 싸우자’는 무장투쟁이 결정된다
섬의 생사를 가르는 중요한 이 회의가 진행되는 날
남로당 중앙당의 지령은 없다
무장봉기는 제주도위원회에서 단독으로 결정한다
그리고 무서운 그날이 오고 있다
긴장된 대지에도 꽃망울 환하게 벌어지는 4월이 온다
그러나 꽃 피는 소리로 술렁거려야 할 제주 섬은
숨소리까지 죽인 싸늘한 비장감으로 가득 차 있다
아, 신촌회의 그 회의에서 좀 더 신중한 결정이 나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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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4월 3일 새벽 2시, 한라산이 불을 켜고 있다
어미 같은 한라산이 품고 있는 오름들
볼록볼록 꾸물거리는 듯 그 봉우리마다
일제히 벌건 불이 올라온다
타오르던 불들은 한참 후에야 서서히 사라진다
그들은 밤새 그 시간을 기다렸을 것이다
그것은 소위 산으로 간 무장대가 피워 올리는 불, 봉화
남로당 제주도위원회가 주도한 무장봉기의 신호탄이다
봉화 신호가 떨어지자 무장대는 공격을 시작한다
도내 24개 경찰지서 가운데 12개의 지서와
서북청년회 숙소 등 우익 단체 요인의 집과 사무실이 표적이다
이날, 무장대는 제주도민들을 향해 2개의 성명을 발표한다
제주도민들에게 보내는 ‘호소문’과
경찰 공무원 대동청년단 단원들에게 보내는 ‘경고문’이다
시민 동포들이여!
경애하는 부모 형제들이여!
‘4·3’ 오늘은 당신님의 아들 딸 동생이 무기를 들고 일어섰습니다. 매국 단선 단정을 결사적으로 반대하고 조국의 통일 독립과 완전한 민족 해방을 위하여! 당신들의 고난과 불행을 강요하는 미제 식인종과 주구들의 학살 만행을 제거하기 위하여! 오늘 당신님들의 뼈에 사무친 원한을 풀기 위하여! 우리들은 무기를 들고 궐기하였습니다. 당신님들은 종국의 승리를 위하여 싸우는 우리들을 보위하고 우리와 함께 조국과 인민의 부르는 길에 궐기하여야 하겠습니다.
친애하는 경찰관들이여!
탄압이면 항쟁이다.
제주도 유격대는 인민들을 수호하며 동시에 인민과 같이 서고 있다.
양심 있는 경찰원들이여!
항쟁을 원치 않거든 인민의 편에 서라. 양심적인 공무원들이여!
하루 빨리 선을 타서 소여된 임무를 수행하고 직장을 지키며 악질 동료들과 끝까지 싸우라. 양심적인 경찰원, 대청원들이여! 당신들은 누구를 위하여 싸우는가? 조선 사람이라면 우리 강토를 짓밟는 외적을 물리쳐야 한다. 나라와 인민을 팔아먹고 애국자들을 학살하는 매국 매족노들을 거꾸러뜨려야 한다. 경찰원들이여! 총부리란 놈들에게 돌리라. 당신들의 부모형제들에게 총부리란 돌리지 말라. 양심적인 경찰원, 청년, 민주 인사들이여! 어서 빨리 인민의 편에 서라. 반미 구국 투쟁에 호응 궐기 하라.
“탄압이면 항쟁이다”
“단독선거·단독정부 수립을 결사적으로 반대한다”
“반미구국투쟁에 나서자”
이것이 두 성명의 요지다
호소문은 우선 경찰과 우익 청년단의
탄압에 저항하겠다는 뜻을 강하게 드러낸다
그것은 항쟁을 의미다
둘째는 경찰과 서청의 횡포에 맞서 싸우겠다는 데서 몇 걸음 더 나아가
단독선거, 단독정부를 해선 안 된다.
‘반쪽 조국은 안 된다’는,
통일 조국에 대한 간절한 소망을 깔고 있다
그러니까 통일 정부로 가야 한다는 것이 4·3의 구호다
셋째는 새로운 지배자로 등장한 미군정에 대한 저항
‘반미 투쟁’이라는, 정치적인 색채를 분명히 표출하고 있다
호소문에서 뚜렷하게 내세운 슬로건은
탄압에 저항하고,
통일국가 건립을 가로막는 5·10단독선거를 반대하며
외세에 저항한다는 것이다
이날 공격을 한 무장대는 300명가량
이들의 급습으로 민간인 8명과 경찰 4명, 무장대원 2명이 희생된다
미군정은 당혹스러워진다
4·3봉기 바로 전날은
주한미군 사령관 하지 중장이 산하 지휘관들에게
성공적인 선거 실시가 ‘미 사절단’의
핵심 성과라고 강조한 날 이었다
군정 장관이 선거 감시 및 집행에 책임이 있다는 내용의 전문을
지휘관들에게 보낸 다음 날 무장 봉기가 일어난 것이다
이날의 무장봉기는 제주 섬에 불어 닥칠 기나긴 피바람을 예고하고 있다 4월 3일 이후 봉화는 이따금 오름 곳곳에서 피어오르고, 마을에는 나무 판때기에 먹으로 쓴 ‘단선반대’가 툭툭 떨어지기도 한다
제주 읍내 중학교에서는 4월 7일 자로 학생들에게 ‘통학 증명서’를 발급한다 해방 후 나이든 학생들이 많았던 탓에 등하교 때 학생들이 애꿎게 경찰관에 붙잡혀 가는 일이 발생할지 몰라서다 이때 학생들도 좌익 세력의 민주애국청년동맹(민애청)이나 우익 세력의 대동청년단 등에 들어간다 학생들은 좌익이 무엇이고 우익이 무엇인지, 민주주의가 무엇이고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살기 위해 어디든 붙어야 할 판이다
5·10선거의 성공적 실시를 지상 목표로 삼은 미군정
그런 만큼 그들은 이 사건의 대응에 민감하고 강도가 높다
미군정은 안으로는 경찰의 파견과 경비대 병력을 갖추며
육지 경찰 1700명을 제주로 내려 보낸다
또한 서청 단원 500명을 제주로 보낸다
그러나 응원 경찰 등에 의한
무지막지한 작전은 민심을 자극 시킨다
이 작전은 수많은 도민을 오히려 산으로,
산으로 피신하게 만든다
분노는 더욱더 거세지고 있다
이때 미군정은 모슬포에 창설된 경비대 제9연대에도 진압 작전에 참여할 것을 명령한다 그러나 제9연대는 이 사건을 제주도민과 경찰 및 서청, 극우 청년 단체 사이의 충돌로 여긴다 제9연대는 ‘선 선무, 후 토벌’ 처음에는 회유하고 그 다음에 토벌한다는 원칙을 세우고 무장대와의 평화적인 해결 방안을 모색하려고 한다
본격 진압 작전을 추진하는 미군정은 4월 말,
두 차례에 걸쳐 대대적인 수색 작전을 펼친다
정찰을 위한 연락기를 띄워 상황을 파악하고
제주읍 부근을 수색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장대 지도자와 평화 협상을 추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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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4월 28일 제주도 서남부 대정면 구억초등학교 교원실에서 제9연대장 김익렬과 무장대 총책 김달삼 간의 팽팽한 담판이 벌어지고 있다 4·3 무장봉기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마지막 기회다
우여곡절 끝에 이루어진 이날의 협상는
4·3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갈림길이다
새파란 20대의 김익렬과 김달삼
때론 거칠게 때론 날카롭게 신경전이 오가면서
4시간 동안 불꽃 튀는 논쟁이 오간다
그렇게 진행된 이날 회담에서 이들은
결국 타협점을 끌어내고, 전투 중지를 합의한다
우선 72시간 안에 전투를 완전 중지할 것
산발적인 충돌이 있으면 연락 미달로 간주하고
5일 이후의 전투는 배신행위로 본다는 것
이것이 그 합의의 첫 번째 조건이다
둘째, 무장해제는 점차적으로 하되
약속을 위반하면 즉각 전투를 재개한다
셋째, 무장해제와 하산이 이루어지면
주모자들의 신병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날의 평화 협상은 결국 실패로 돌아간다
예측할 수 없었던 일이 벌어진다
이 일이 있은 지 불과 사흘만인
5월 1일 오전 9시경 제주읍 오라리
전날 무장대에게 피살된 여인의 장례식이 열리고 있다
경찰 서너 명과 서청·대청 단원 30여 명이 참여한다
매장이 끝나자 트럭은 경찰관만을 태운 채 돌아간다
오라리 출신 대청 단원 등 우익 청년 단원들은 그대로 있다
이들은 오라리 마을로 들어가면서 좌익 활동가로 알려진 사람들의 집을 골라 5가구 12채의 민가를 불태운다 오후 1시경, 우익 청년 단원들이 마을을 빠져나갈 때 무장대 20명가량이 총과 죽창을 들고 이들을 추격한다 이때 인명피해는 없다 이 시각을 전후해 마을 어귀에서는 이 마을 출신 경찰관의 어머니가 피살된다 다시 무장대가 떠난 오후 2시경, 경찰기동대가 나타나 총을 쏘며 진입한다 그러자 주민들은 산 쪽으로 와다닥 도망친다 이때 한 여인이 경찰의 총에 맞아 숨진다
이 ‘오라리방화사건’에 대해 김익렬 연대장은
경찰의 후원 아래 일어난
서청·대청 등 우익 청년 단체들이 저지른 방화라고
미군정에 보고한다 그러나
김익렬의 보고는 철저히 묵살당한다
경찰측에서는 무장대의 행위라고 주장한다
가장 먼저 내 목숨을 희생해서라도 평화 협상을 이끌어내야겠다고 했던 김익렬로서는 어이없는 일이기도 하다 미군정의 통제 아래 있던 군인이다 제주 주둔 맨스필드가 위에 있고, 그 위에 딘 군정 장관, 그 위에 하지가 있는데, 그 지휘 계통을 무시하고 어떻게 협상을 할 수 있겠는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허가 받은 협상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참 기이한 일이 벌어진다
이 사건은 미군 촬영반에 의해
동영상으로 생생하게 찍혀 있다
미국립문서기록관리청에 보관된 4·3 기록영화
<제주도의 메이데이> 동영상
불타는 마을 오라리를 공중에서 찍고 있다
오라리로 진입하는 경찰기동대의 모습도 보인다
뒤이은 5월 3일 귀순자들을 향해
괴한들이 총을 발포한 사건이 벌어진다
나중에 이 괴한들은 경찰서 소속이라는 것이 밝혀진다
경찰에선 이 사건을
경찰을 가장한 무장대의 기습 사건이라고 주장한다
끝내 이날 미군이
경비대에게 총공격을 명령하면서 협상은 깨진다
이후 제주도는 걷잡을 수 없는 유혈 사태로 치닫게 된다
4·28평화협상에 참석했던 9연대 이윤락 중위, 그는 뒷날 “오라리 사건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제주 학살을 점화시킨 역사적 계기가 된 사건” 이라고 회상한다
5월 5일 군정 장관 딘 소장은 비밀리에
김익렬, 조병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긴급 제주 회의를 연다
그러나 이 최고 수뇌부 회의에서 조병옥 경무부장이
경찰의 실책을 주장하는 김익렬 연대장을
공산주의자로 몰아붙이며 육탄전을 벌인다
평화적 해결 방안 찾기는 물거품이 된다
다음 날, 김익렬 연대장은 전격 해임된다
후임에 박진경 중령
수원에서 창설된 11연대가 추가 파병된 것이다
박진경, 그는 연대장 취임 때
“폭동 사건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제주도민 30만을 희생시키더라도 무방하다”는 발언까지 한 인물이다 전임 김익렬 연대장의 증언록에 기록된 사람이다 이제 강경 진압만이 기다릴 뿐이다 이러한 연대장 교체는 5·10선거를 앞두고 제주 사태를 조기 진압하기 위한 미군정 수뇌부의 조치다
무장대측도 강경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4월 3일 무장봉기 이후 한라산은
인간의 손에 의해 오랜 세월 자물쇠로 채워지는 몸이 된다
그동안 제주 섬이 간직해왔던 아름다움은
온갖 고통의 곡절로 채워지게 된다
제주 섬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폭풍우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다
온 섬이 눈부시도록 찬란한 봄날
산야는 봄물로 질펀하였으나 핏빛 울음을 머금어야 한다
시리도록 푸른 섬의 4월은 그렇게 급격히 스러져간다
섬은 끝내 무참하게 짓밟힐 위기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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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오월의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어머니 젖가슴 같은 오름으로 올라 젖을 빨기 시작한다
얼기설기 움막을 짓고 잠시 피난 생활을 한다
손에 보따리와 대바구니를 든 사람들
아이를 업고 안은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진다
말과 소도 짐을 실어 나른다
가재도구와 일주일치가량의 식량을 들고 오른다
걸을 수 있는 사람들은 거의 모두 산에 오른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지만 불안해서
남들을 따라 산으로 간다
노릇노릇 익어가는 보리밭을 지나 산으로 간다
5·10선거에 참여하지 않기 위하여 산으로 올라간다
이윽고 5월 10일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을 위한 선거일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사람들은 산에서 젖은 하늘을 본다
무장대는 투표소를 공격하고 인명 피해는 전국에서 가장 심하다
전국 대부분의 도시에서 소요와 유혈 사태가 빚어진다
이날 제주도는 전국에서 유일하게 5·10단독선거
거부 지역으로 역사의 장에 기록 된다
해방된 땅에서 조국이 쪼개지는 것은 안 된다
제주도 민중의 마음이 강하게 표출된다
제주도의 3개 선거구 중 2개 선거구가 무효처리 된다
제주도 선거 결과는 미군정의 입장에서는 실패다
그들에겐 치명타다
제주도의 선거 거부는 미군정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다
경무부장 조병옥은 극렬하게 제주도의 이 사태를 비난한다
당혹한 미군정은 탄압하는 정책을 진행시킨다
중산간 마을 주민들이 희생되기 시작한다
5월 20일경, 미군정은 야전군 출신의 브라운 대령을
제주 현지 최고사령관으로 파견한다
경비대와 해안경비대, 경찰, 미군을 통솔하도록 한다
제주도 사태를 무력으로 진압하고
재선거를 성공적으로 치르려고 한다
이즈음 제주도지사 유해진이 해임된다
이렇게 늦은 경질은 미군정 인사 정책의 실책이다
6·23재선거마저 치를 여건이 되지 않는다
선거는 무기한 연기 된다
한라산 진달래는 검붉은 계절을 토하고 있다
지독한 허기와 두려움 속에서 풀꽃들이 자지러지게 핀다
사람들의 삶은 허둥지둥 쫓기는 날의 연속이다
무자비하고 대대적인
강경 진압 위주의 작전을 전개하던 박진경 연대장
대령으로 고속 진급하여,
진급 축하연을 가진 이튿날 새벽
그는 그의 부하 문상길 등에 의해 암살당한다
미군정 수뇌부는 큰 충격에 빠진다
브라운 대령이 제주도 최고 지휘관으로 내려와
경비대와 경찰의 작전을 진두지휘하는 과정에서 일어난다
1948년 7월경, 제주의 경찰 병력은 약 2000명으로 불어난다
응원 경찰이 대거 파견된다 사태는 더욱 악화된다
경찰이 주민들에게 가한 행위는 가혹하다
죽으려야 죽을 수 없고, 살려야 살 수 없다고 절규한다
제주도민들의 목소리가 망망대해 온 섬을 울리고 있다
먼 곳의 총은 무섭지 않지만 가까운 총부리가 무섭다고 외치는
그들을 감싸줄 곳은 어디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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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7월 15일 제11연대가 9연대로 재편된다
연대장은 송요찬 소령이 임명된다
송요찬은 미군이 ‘강인하고 용감한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이다
제주 섬은 유혈이 낭자하나 8월 15일 대한민국정부는 수립된다
9월 9일 북쪽에서도 정부가 수립된다
민족의 분단 체제는 이렇게 확정 되고 만다
8월 초순에 김달삼·강규찬 등 무장대 주요 지휘관 6명은
황해도 해주의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에 참석하기 위해
제주도를 탈출한다
김달삼 후임으로 무장대 사령관은 28세의 이덕구가 된다
일본의 입명관대를 나와 조천중학원 역사 교사로 재직하다 입산한 사람
무장대는 장기적인 전투 준비에 돌입하기 시작한다
맹렬하고 무차별적인 강경 토벌 전에 돌입한 송요찬
10월로 접어들면서 더 본격적인 공세를 벌여나간다
정부 수립이 진행되는 동안 잠시 토벌을 중단한 군인과 경찰
‘토끼몰이 식 수색 작전’으로 죄 없는 주민들을 마구 죽인다
1948년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제주도는 지옥이 된다
온 섬이 지하처럼 캄캄한 어둠의 감옥이 된다
섬의 미래는 보이지 않는다 컴컴한 동굴이 된다
섬의 운명은 이제 제주 주민들의 손을 떠나버린다
1948년 10월 경비대총사령부는 제주도경비사령부를 신설한다
토벌작전을 더욱 강화한다 사령관에는 제5여단장인 김상겸 대령
무차별적으로 사람들이 붙들려가고 사람들이 사라진다
섬은 이제 학살 터가 된다 비명의 공간으로 휘청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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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10월 17일 전과에 열을 올리는 송요찬
그는 이윽고 자신의 명의로 포고문을 발표한다
군은 한라산 일대에 잠복하여 천인공노할 만행을 감행하는 매국 극렬분자를 소탕하기 위하여 10월 20일 이후 군 행동 종료 기간 중 전도 해안선부터 5킬로미터 이외의 지점 및 산악 지대의 무허가 통행금지를 포고함. 만일, 차 포고에 위반하는 자에 대하여서는 이유 여하를 불구하고 폭도배로 인정하여 총살에 처할 것임.
해안선으로부터 5킬로미터,
제주도는 계란처럼 생겼지
그러니까 계란의 껍질부분에만 통행을 허용한다는 말
계란 알맹이의 땅에 있는 사람은 모두
폭도로 인정하고 총살한다는 것
이 얼마나 무섭고 가혹한 포고문인가
그러니까 글쎄
해안마을을 제외하고 중산간의 모든 들판이나 마을에서
사람이 보이면 무조건 발포하겠다는 이 무시무시한 작전
주민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서 통행을 금지한다는 것
아예 집에서 아무도 살지 말라는 말이 아닌가
주민들의 두려움은 말할 수 없이 깊어진다
송요찬은 서청 단원까지 군에 편입시켜 특별 중대를 만들고
그들에게 누구도 간섭 못 할 권한까지 준다
미군이 조종하는 연락기는 중산간 지대로 피신한
제주도민을 체포하거나 학살하는 데 이용된다
불태워 없애고, 죽여 없애고, 굶겨 없애는 ‘삼진 작전’
이렇게 끔찍한 대량 학살 작전이 전개된다
삼진과 삼광은 일본이 중국인을 상대로 저질렀던 대량 살상 작전이다
한라산은 무장대의 근거지가 된다 한라산은 일자무식한 사람들도
하나둘씩 식량 보따리를 싸들고 들어가는 산이다
피를 묻고 살을 묻고 뼈를 묻는 혹한의 산이다
산으로 간 사람들과 해변 마을로 간 사람들과
중산간에 그냥 어정쩡하게 있는 사람들
그 어느 삶 하나 안전할 수 없는 세월이 시작된다
송요찬의 포고문이 발표된 다음 날
제주도 해안은 즉각 봉쇄된다
제주도 계란을 아예 솥에 넣고 끓인다
토벌대는 섬의 유지들을 일제히 검속한다
싹의 중심을 지우고 무정란으로 만든다
제주도는 이제 싸늘한 공포에 휩싸인다
법원장이 연행되고
신문사 편집국장과 제주중학교 교장 등이 총살된다
11월에는 제주 출신 9연대 장병
100여 명이 군사재판도 없이 처형된다
한편, 이 무렵
미국과 대한민국 정부를 초긴장상태로 몰고 간 사태가 벌어진다
제주 초토화 작전을 앞두고 제9연대 지원을 위해
제주로 출동을 명령 받은 제14연대가 돌연
여수에서 총부리를 돌려 제주도 출병을 거부한다
이것이 바로 10월 19일의 여순사건이다
군 당국은 10월 20일부터 해군 함정 7척을 동원
제주와 육지의 뱃길을 막아버린다
제주도 포구의 모든 어선에 대해 바다로 나가지 못하도록 명령을 내린다
제주도는 이제 육지와 완전히 단절되고 만다
제주도 계란을 담은 솥은 이제 솥뚜껑으로 완전히 봉쇄된다
며칠 만에 서둘러 여수와 순천을 진압한 정부는
제주도에 대한 진압작전의 고삐를 더욱 옥죄어온다
여순사건에 직접 개입했던 미군도
제주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 주시한다
미군 고문관들은 진압 작전에 참여한 모든 부대를 돌면서
작전 계획을 수립한다
여순사건 진압과 더불어 제주도를 향해
정부는 무조건 진압을 명령한다
이후 섬은 휘몰아치는 피바람으로 아비규환이 된다
송요찬 제9연대장은 제주도경비사령관 김상겸 대령이
예하 부대인 여수 14연대의 사건에 문책을 받아 해임되자
제주도경비사령관까지 맡아 해군 함정도 자신의 지휘 아래 두는
진압군의 총책임자로 등장한다
로버츠 준장은 참모총장 채병덕 대령에게 “해안경비대의 순찰에도 불구하고 공산주의자 잔당이 제주도와 남해안의 작은 섬으로 피신하는 징후가 있다”며, “정찰과 경계를 강화해 문제가 될 대규모 집결을 막아야 한다”는 전문을 보낸다
섬의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사람들의 가슴은 더욱 타들어간다
이제는 과연 누구에게 기대야 할 것인가
한라산과 오름 자락 아래 사는 사람들의
심정을 헤아려주는 이는 이제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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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부터 10월까지 주민들은 무차별적으로 끌려간다
밭에 풀 메러 가다가 끌려가고
밭에 보리 베러 가다가 끌려가고
들에 꼴 베러 가다가 끌려가고
밭에 조 수확하러 가다가 끌려가고
눈만 뜨면 불안한 이야기들이 마을을 떠돈다
10월 말경 무장대는 주로 경찰지서나 면사무소를 습격한다
우익 인사나 경찰 가족을 지목하여 살해한다
무장대의 보복전 와중에 죄 없는 주민들이 희생되기도 한다
송요찬은 제9연대 병사 17명을 체포해 6명을 처형한다
애월면 고성리 부근에서 135명을 사살한다
교래리 부근에서 하루에 130명을 사살한다
민간인을 폭도로 몰아가며 무차별 학살한다
그렇게 무차별적인 대량학살이 섬을 무섭게 휩쓴다
토벌대는 중산간에서 잡혀온 청년들을 고문한다
고문에 못 이긴 청년들이 아무 이름이나 대는 바람에
애먼 사람들의 희생도 늘어난다
사람을 죽이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 없어진다
죽이면 그냥 죽을 수밖에 없는 이 어두운 세상
토벌대원들은 또한 제주의 방언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들에게 비친 제주 사람은 언어 소통도 안 되는 이질적인 존재다
토벌대가 나타나면 어디에든 숨어야만 한다
토벌대가 명단을 부르면 불려나가 죽도록 맞다가 총살을 당한다
해변마을로 가라해서 내려가면
폭도 마을 주민이라며 툭하면 끌려가 고문을 당해야만 한다
먹을 것이 없어 비참한 소개 생활을 해야만 한다
섬의 공동체는 그렇게 위태로워진다
서로가 서로의 목숨을 보호해주지 못한다
섬은 공포로 질린다
제주도는 극한 운명에 처한다
중산간 마을의 목숨은 한 치 앞도 예견할 수 없다
캄캄한 바다는 끝없는 재앙에 몸을 뒤척인다
끝내 제주 섬은 곧 광란의 바람이 거칠게 휘몰아친다
지독한 더 지독한 지옥 불이 온 섬을 덮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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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간 사람들은 해안 마을로 급하게 내려가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죽어도 마을을 떠나지 않으려는 사람들도 있다
어찌 하루아침에 살던 집을 버리고 떠날 수 있겠는가
늙고 병든 부모는 집에서 죽겠다며 손사래를 치고
집과 농토, 애써 키운 소나 말이 아까워
가까운 야산으로 피하는 이들도 있다
낮에는 토벌대 세상, 밤에는 무장대 세상이 된다
무장대가 습격하고 가면 토벌대가 들이닥치고
토벌대가 가고 난 마을에는 무장대가 들이닥친다
중산간 마을 사람들은 이제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어머니가 토벌대에게 죽음을 당하고 아들은 무장대에게 죽는다
아버지가 토벌대에게 죽음을 당하고 아들은 무장대에게 희생된다
그런 와중에서도 가장 잔혹한 희생을 가져온 때는
1948년 10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 약 6개월
군경 토벌대는 무장대의 피난처와 물자 공급원을 제거한다는 구실로
중산간 마을을 모두 불바다로 만들어 버린다
주민들을 집단으로 살상한다
온 가족이 몰살당한 집안이 생겨나고
눈앞에서 희생되는 부모를 지켜보는 아이들
어린것의 죽음을 앞세운 부모들도 생겨난다
마을의 학교 운동장은 토벌대가 주민들을 집결시키는 장소가 되고
집단 학살터가 되기도 한다 산도 계곡도 오름도 소리 죽여
학살의 고통을 지켜볼 뿐이다
이승이 어디고 저승이 어딘지 구분이 없다
무장대 또한 마지막 힘을 다해 총공세를 벌인다
무장대는 토벌대 편으로 기울었다고 판단한
일부 마을을 덮쳐 무차별 학살하고 식량을 약탈한다
구좌면 세화리, 표선면 성읍리, 남원면 남원리와 위미리 등
토벌대 진영이라 해서 무장대로부터 큰 피해를 입는다
겨울이 오고 있다 1948년 11월과 12월
중산간은 그야말로 생지옥이 된다
안전한 곳은 이제 어디에도 없다
1948년 11월 13일은 그야말로 피의 날이다
애월면 소길리의 원동마을, 조천면의 교래리·와흘리 2구·신흥리,
안덕면의 상천리·상창리·창천리 등 각 마을에서 토벌대는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총살과 방화를 자행한다
자수하러 간 조천면 관내 20대 청년 150명은 ‘박성내’에서 총살된다
중산간 사람들, 한라산과 가까운 마을이었다는 이유 하나로
걸핏하면 무장대에게 식량을 올리는 등 협조했다며
토벌대에게 희생당해야만 한다
사는 동안 이보다 더 큰일이 또 어디 있으랴
이것들은 모두 1948년 10월부터 불어 닥친 광기다
그러나 이들 앞에는 더 사나운 재앙이 밀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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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11월 17일 제주에 계엄령이 선포된다
광란의 기름불에 휘발유를 확 끼얹는다
계엄령,
이 한마디는 납작 엎드려 있던 중산간 마을을
이제 아예 숨통을 완전히 끊어버리겠다는 것이다
중산간 마을 초토화 작전,
이것은 상상할 수 없는 대량 학살을 몰고 온다
토벌대는 빨갱이를 찾아낸다며 거칠게 휘젖는다
마을은 수없이 불태워지고
남녀노소 구분 없이 죽어간다
초토화,
말 그대로 모든 것이 초토화 된다
이제는 오직, 사느냐 죽느냐 시시각각 쫓기는 삶이 된다
토벌대는 노인에서부터 젖먹이까지 누구라도 가리지 않는다
결국 중산간 마을 주민 2만여 명을 산으로 내몰고 만다
어둠이 깊어지면 별만 반짝이던 시절
중산간 마을 사람들은 하늘을 보며
어느 마을이 불에 타고 있구나, 점을 친다
대밭 속에 숨었다가 하늘을 보면
저편 집에 붙은 불이 이쪽까지 마구 달려오는 것처럼 보인다
진압군은 가족 가운데 청년이 한 명이라도 없으면
입산자로 몰아세워
도피자 가족이라며 총살한다
대신 죽어야 한다 일명 대살 이다
중산간은 그렇게 무참하게 초토화 된다
주민들은 토벌을 피해 입산한다
토벌대는 재판도 없이 주민들을 처형한다
주민들의 분노와 공포는 사그라질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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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섬은 두려움으로 오그라진다
마을 주민들은 높은 동산에 보초를 세워
스스로 살기 위한 전략을 세워나간다
동이 트면 산으로 가고
땅거미가 지면 마을로 내려온다
무조건 살아야 한다
목숨만은 지켜야 한다
눈이 펑펑 쏟아져도 추운 줄 모른다
신발도 신었는지 말았는지 감각이 없어진다
중산간 마을인 중문면 영남마을
땅이 좋아 조 이삭이 어린아이 팔뚝만 하고
고구마를 심어도 사람 머리만큼 자란다던 이 마을엔
16가구에 90여 명이 살았으나 미처 피신하지 못한
50여 명이 희생당하고 마을은 사라진다
중산간의 동쪽 끝에 자리한 조천면 선흘리가
불바다가 된 날은 그해 11월 21일
군인들이 텅 빈 마을에 불을 지르고 돌아간 뒤
숨어있던 주민들에게 소개령이 전해진다
주민들은 화산 용암의 흔적이 생생한 숲 ‘선흘곶’으로 피신한다
허나 11월 25일부터 연 사흘째 주민들이 은신한
도틀굴(반못굴), 목시물굴, 밴뱅디굴이 발각되어
수많은 주민들이 즉결 총살된다
토벌대는 총살 후 휘발유를 뿌려 시신을 태우고
일부는 끌고 가 속칭 북촌리 ‘엉물’에서 학살한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선흘곶은 이렇게 슬픈 역사의 숲이 된다
집들이 불에 탈 때 불씨가 날아와 몸체까지 데인 흔적을
지금도 간직한 ‘불칸낭’이 된 후박나무는 아직도
그날의 상처에 몸을 비튼다
이때 미 고문관의 한 기록은 1948년 11월 21일부터 30일까지
열흘 동안 얼마만큼의 가공할 만한 살육이 행해졌는지를 보여준다
제9연대의 전투일지는 일부 과장되거나 일부 누락된 보고가 있을지라도
기록상으로 학살당한 사람만 615명 그러나 이 시기
제9연대는 무장대로부터 총 12정과 칼 11자루밖에 획득하지 못한다
희생자 수와 노획한 무기를 비교해보면
전과로 기록했을 615명이 무장대가 아니라
대부분 비무장 민간인이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해 12월 말에 표선 백사장은 붉은 바다가 된다
그야말로 핏빛으로 물들고 만다
9연대에 의해 끌려나온 토산리 주민 157명이 한꺼번에 죽는다
그 겨울 바다는 비명으로 얼어붙는다
함덕 서우봉 모래밭도 그러한 피의 밭이 된다
산도 무섭고 경찰도 무서웠던 중산간 주민들
결국 숨을 데라곤 어둠의 동굴뿐이다
땅속 굴은 추위를 막아주고 얼마간 사람들을 지켜준다
살아도 산목숨이 아니다
굴에서 발각되면 더 깊은 산속으로 다시 달려야 한다
밖에서 불을 지른 어떤 굴에서는 연기에 질식되면서
서로 얼크러져 숨을 거두기도 한다
캄캄 절벽 같은 동굴을 휘덮는 화염을
손톱으로 긁다가 끝내는 한 줌 재가 된 사람들
맨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리다 푹푹 쓰러지던 사람들
하얗게 때죽나무꽃 뚝뚝 지듯 떼죽음의 한라산
애처롭고 서럽고 슬픈 세월 굽이돌아도 끝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가엾은 사람들
1948년 겨울은 무지막지하게 눈이 내린다
굴 밖에는 하염없이 눈이 내려 쌓이고
아득히 먼 곳에도 눈이 내리고 또 눈이 내린다
중턱까지 눈으로 휘덮인 한라산의 광대한 가슴은
새하얀 벌판이다
토벌대를 피해 산으로 올라간 사람들은
집채만 한 눈을 파내 움막을 짓는다
그리고 눈 위에서 토끼처럼 도망친다
뛰다보면 움푹 파인 구렁에 빠지기도 하고
짐승처럼 네발로 기어야만 한다
새하얀 눈밭 위에 검붉은 핏자국이 새겨진다
무장대의 습격으로 애꿎은 주민들이 희생되고
토벌대의 집단 학살로 꽃잎처럼 목숨이 떨어진다
통곡의 바다가 된다
몸집이 큰 소년들은 더 위험하다
돼지우리에 숨었다가 살아났으나 얼굴에 화상을 입었던 한 소년은
동료들은 다 죽었는데 자신이 어떻게 치료를 받을 수 있었겠냐고 한다
생과 사는 1분도 아닌 1초 같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은 순간순간 이다
산에서 도망쳐 달리다가 총 맞아 죽는 건
고통이 짧으니 오히려 행복이란 말도 나온다
초토화의 재앙과 살육은 제주도의 지도 속에서
130여 개의 중산간 마을을 지워버린다
가난했으나 이웃끼리 정이 넘치던 어머니의 땅
사람들은 죽거나 쫓기듯이 사라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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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남편이 산에 갔다고 동생이 갔다고 형이 갔다고
심지어는 사위가 산으로 갔다고 해서 희생당한다
도피자 가족 수용소가 있던 세화리에서는
젖먹이도 빨갱이라며 젖을 주지 못하게 한다
도피자 형이 있다고 하여 수업중인 초등학생을 데려가 총살한다
차라리 무서운 꿈이었으면 싶다
지옥에서 홀로 살아남은 사람들도 악몽이었기를 바란다
넋이 나간 듯 무서워 눈물도 나지 않는다
매일 숨을 곳을 찾아 헤매는 ‘쥐 같은 삶’ 이다
12월에 접어들면서 토벌대는 한라산 소탕 작전에
온갖 총력을 기울인다
주민 3000여 명을 동원해 한라산을 샅샅이 뒤진다
자수하러 내려온 사람이나 붙잡힌 사람을 앞세워
은신처를 가리키게 만들기도 한다
그들은 하루에 105명을 사살하고
일제99식 소총 10정과 칼 1자루를 빼앗는다
무차별 소탕 작전은 이때 절정으로 치닫는다
무장대의 습격을 받으면 반드시 토벌대의 보복이 이어지고
무장대 또한 우익에 대한 보복을 멈추지 않는다
초토화 작전은 무장대의 힘을 빠르게 약화 시키고 있다
식량을 확보하기 위한 무장대와
토벌대로부터 죽음을 피하려는 주민들은
산으로도 붙을 수 없고 산 아래로도 붙을 수 없다
이곳저곳 숨을 곳을 찾아 헤매다 토벌대에 붙잡혀 죽고
무장대에 의한 주민 학살도 그치지 않는다
이 과정에서 체포된 사람들은 군법회의에 선다
재판은 형식적 이다 1948년 12월
군법회의에서는 민간인 871명이 유죄판결을 받는다
기록으로만 봐도 12월 2일부터 6일, 12월 12일부터 20일까지
군인 사망 11명과 부상 8명을 제외하고
‘적’으로 분류돼 사살된 도민은 677명, 체포된 사람은 162명
노획한 총은 22정과 칼 55자루다
토벌대가 사살하거나 체포한 ‘적’ 수와
노획한 무기와의 심한 불균형은 무엇을 말하는가
무저항 상태의 민간인을 무차별 학살한 것은 아닌가
이 많은 사람이 그들이 말하는 ‘폭도’ 일까
이는 무차별적인 진압 작전을 펼쳤음을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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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토화 작전의 광기를 눈치 챈 꽃들도 숨을 죽인다
중산간 사람들은 꼭꼭 숨었으나 시신은 해초더미처럼 쌓인다
1948년 12월 9일 애월면 광량리에선 아들 대신 죽겠다고
나섰다가 부자가 함께 죽기도 한다
그해 12월 말 9연대가 철수한다
함병선 중령이 지휘하는 제2연대가 그 자리를 접수한다
제주 사람들의 두려운 마음의 불꽃은 잦아들지 않는다
엉키고 뒤엉키며, 숨 막히는 1948년이 그렇게 간다
1949년은 매몰찬 칼바람과 함께 온다
제2연대는 주둔 초기에
피신한 주민들이 내려오도록 설득한다
하지만 곧 강경 토벌 작전으로 치닫는다
숱한 민간인들을 재판도 없이 즉결 처형한다
도대체 그 많은 사람들은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1949년 1월 해안마을을 빙 둘러가며 성담을 쌓는다
고사리 손부터 여인들과 노인들까지 동원된다
어떤 여인은 성담을 쌓다가 남편의 시체를 보고도 말할 수 없다
눈물을 흘릴 자유조차 없다
성을 쌓다 보니 검은 고무신짝들이 쌓여 있다
모두가 주검들이 신었던 신발들 이다
가슴은 찢어졌으나 아무 말을 하지 못한다
죽기 아니면 살기였던 주민들은 성담을 쌓은 후에는
매일 밤마다 돌아가며 보초까지 서야 한다
퍼붓는 빗속에서도 여자라고 그냥 봐주지 않는다
남편이 부재중인 만삭의 여인도 보초를 서야만 한다
비가 오고 안개 껴서 으스스하던 날
남편의 죽음을 슬퍼할 새도 없이
갓난애를 집에 재워두고 나와 보초를 선다
하지만 제대로 보초를 서지 못한다고
지서에 끌려가 죽도록 매를 맞는다
퉁퉁 불은 시신들을 보고 잠을 못잔다
그렇게 피바람이 휘몰아친다
그해 1월 10일과 12일 남원읍 의귀리와 수망리
이날은 하루아침에 아이들의 운명을 바꾸어 놓는다
졸지에 부모 잃은 아이들은 소년 가장이 되기도 하고
어느 경찰의 수양딸이 되어 성을 바꾸기도 한다
80여 명의 주민들이 죽는다
거기서 곧 아기를 낳은 여인도
이름조차 호적에 올리지 못한 아이도,
소년도, 아버지도 생을 다한다
새벽에 무장대의 습격을 받자
무장대와 내통했다며 토벌대는 이들을 몰아세운다
무장대와 주둔군의 전투 한가운데서 주민들은 도망 다닌다·
애꿎은 마을 사람들은 당시 토벌대로 내려온 2연대 군인들에 의해
남원읍 의귀국민학교에 수용됐다가 집단 학살 당한다
남원리·수망리·한남리
농사짓던 사람들은 3개의 구덩이에 암매장 된다
누가 누구의 유해인지 모를 이 시신들의 구덩이는
그로부터 54년이 지난 2003년에야 파헤쳐진다
어려서 부모를 잃은 아이들은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어
마을 사람들과 유골을 수습하고 이들은 비로소
그들이 살던 땅, 수망리 위령공원에 안치된다
의로운 넋들이 한자리에 있다고 해서 ‘현의합장묘’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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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산 기슭마다 언 땅을 뚫고 나오는
복수초도 겁에 질려 숨을 죽인다
땅속에서 그렇게 숨만 쉬며 살던 사람들도 있다
초토화 작전으로 주도권을 장악한 이승만 정부는
1949년 3월 제주도지구전투사령부를 설치한다
막바지 토벌작전에 승부를 건다
유재홍 사령관은 전투를 하면서도 귀순 작전을 펼친다
한라산 일대에는 3월 초부터 귀순 권유 전단이
집중적으로 뿌려진다 선무공작원들은
산에서 내려오면 살려준다며 산야를 돌면서 방송을 한다
산에서 떨던 어린이들, 노인들, 여인들 많은 입산자가
헌 헝겊을 찢어 나뭇가지에 매단 백기를 앞세우고 가족끼리 내려온다
당시 작전과정에서 희생된 민간인과 자진 하산한 자
체포되어 포로가 된 자가 거의 1만여 명에 달한다
하산한 주민들은 제주 읍내 주정 공장과 서귀포 단추 공장 등에 갇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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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1949년 겨울이 지나간다
간발의 차로 삶과 죽음의 경계가 왔다갔다하는 겨울
바람까마귀 떼만 비린 주검 위에서 인간을 대신해 울부짖는다
희망은 보이지 않아도 그나마 산 자는 살아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고향집으로 향한다
불타버린 고향 마을로 돌아가
움막 같은 ‘함바’를 짓고 오글오글 삶을 영위한다
주민들이 직접 성담을 쌓고 새로 재건한다
마을마다 비좁은 수용소 같은 함바의 삶 역시 고통 이다
너무나 불결한 위생 때문에 홍역 앓던 두 아들을 한꺼번에 잃는다
한라산 검은 어둠 속에서 별들은 총총하지만
아무도 별들을 아름답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렇게 처절한 비명의 아수라장을 뚫고
속절없이 봄은 피어난다 너무나 아픔 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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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령부는 4월 중순 이전에 무장대를 완전히 소탕하려고 한다
이른바 ‘빗질 작전’이 시작된다
이 무렵 무장대는 250여 명으로 추정된다
희생자의 80퍼센트 이상이 토벌군에 의해 희생된다
무장대에게 희생된 사람은 약 10퍼센트 정도다
무장대가 노인과 어린아이까지 학살한 것은 용납할 수 없다
세력이 거의 소진되어갈 무렵
굶주림에 처한 무장대는 식량을 뺏으러 마을에 들어간다
보초 서던 주민을 살해하기도 한다
이미 쇠잔할 대로 쇠잔해진 무장대는
이제 거의 수를 셀 정도가 된다
1949년 4월 9일 이승만 대통령은
정부 수립 이후 처음으로 제주에 내려온다
유재용 대령 등을 격려하고 수만 명이 운집한
관덕정 광장에서 도민들을 대상으로 연설을 한다
“아직도 반도가 남아 있다는 말을 들으니 섭섭하다”며
하루 속히 사태의 진압을 촉구한다
이어 5월 10일에는 재선거를 치러 국회의원을 뽑는다
재선거는 1년 전과 달리 무사히 치러진다
5월 15일에는 제주도지구전투사령부가 해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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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년 6월 8일 관덕정 광장에 엄청난 사람들이 몰려든다
십자가 틀에 묶인 시체 하나가 있다
고개는 한쪽으로 비뚤어져 내려왔고
자그마한 키의 사내 하나가 예수처럼 매달려 있다
시신의 윗옷 주머니에는 숟가락이 하나 꽂혀 있다
무장대 사령관 이덕구의 주검 이다
“이덕구의 말로를 보라”며
토벌대가 전날 사살한 무장대 사령관의 주검이다
그의 최후를 보러 나온 사람들로
관덕정은 다시 한 번 북적거린다
그의 죽음이 의미하는 것은 크다
그것은 무장대의 저항이 거의 끝났음을 알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평화는 오는 것일까
또 다시 섬을 강타할 거센 태풍이
한반도의 운명과 함께 오고 있다
섬사람들은 까맣게 모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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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겨우 한숨을 좀 돌리고 있다
하지만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한다
1950년 7월 8일 전국적으로 비상계엄령이 선포된다
정부는 7월 16일 제주 주정 공장에 육군 제5훈련소를 설치해
신병을 양성 한다
모슬포 육군 제1훈련소의 수많은 제주 청년도 전쟁터로 나간다
3000여 명의 제주 청년이 해병대 3,4기로 자원입대 한다
1만여 명의 제주 청년들이 한국전쟁에 참여한다
살기 위해서는 군대에 가야 한다
어떤 이는 억울하게 찍힌 빨갱이 낙인을 지우기 위해 간다
국가의 인정을 받는 길은 전쟁에 나서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제주 청년들의 군 입대는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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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 정권은 인민군에 동조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전국적으로 예비검속이란 이름으로 또 다시 잡아들인다
제주 섬은 또 한바탕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이미 훈방됐거나 석방된 사람들을 다시 잡아들인다
그렇게 예비검속으로 인한 희생자와 형무소 재소자
희생자는 3000여 명에 이른 것으로 추정된다
유족들은 아직도 그 시신을 대부분 찾지 못하고 있다
예비검속의 회오리바람은 너무나 큰 학살을 불러온다
1950년 7월 말부터 8월 말 예비검속자에 대한
군 당국의 집단 학살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진다
예비검속자들은 정뜨르비행장(제주비행장) 알뜨르비행장(모슬포비행장)
등지에서 처형되거나 바다에 수장당한다
자신들이 파묻히게 될 운명도 모른 채 끌려간 사람들은 구덩이를 판다
비행장의 거대한 구덩이들은 그렇게 그들을 숨긴 채
반백 년 넘는 세월을 입을 다물어버린다
허둥대며 가족의 얼굴을 찾으려 애를 써도 찾을 길 없다
1950년 8월 20일 새벽 5시
모슬포 절간고구마 창고에 갇혀 있던 사람들이
같은 날 새벽 2시에는
한림어업조합 창고에 수감되었던 사람들이
끌려나와 총살당한다
그 학살터는 대정면 상모리 섯알오름
이곳은 일본군이 탄약고로 쓰던 곳이다
군경의 삼엄한 경비로 유족들은 지척에 있는 부모와 형제자매
남편과 부인의 시신마저 수습할 수 없다
울음마저 목 놓아 소리 낼 수 없다
학살된 지 6년이 지나서야 1956년 모슬포 지역 유족들은
비로소 132구의 시신을 거두는 것이 허락된다
허나 이미 살은 썩어서 누구의 시신인지 알 수도 찾을 수도 없다
유족들은 대정면 상모리에 시신들을 안장하고
‘백 할아버지의 한 자손’이라며 ‘백조일손지지’라 명명한다
한림어업조합 창고와 무릉지서에서 구금되었던 희생자 유해 63구
이 억울한 뼛골들은 유족들이 총살 현장에서 비밀리에 시신을 수습하여
금악리에 묻고 속칭 ‘만벵듸공동장지’라는 묘역을 조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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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에서 살아 돌아온 사람들은
목숨을 건진 것만으로도 스스로 위안을 삼아야만 한다
군법회의 대상자들은 곧바로
서대문·마포·대전·대구·목포·인천·전주 형무소로 수감된다
이들 형무소 재소자들 가운데 극히 일부는 형기를 채우고 출소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 행방불명 된다
제주에서 이송된 4·3 관련 재소자는
일반 재판 수형인 200여 명과
군법회의 수형인 2350여 명으로
이들 2500여 명 대부분은
다시는 고향 땅을 밟을 수 없다
유가족들은 그들을 행방불명 희생자로 신고한다
이들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었는지 알 길이 없다
하지만 대부분 북한군 점령 직전
대한민국 국군에 의해 총살당한다
4·3으로 1954년까지
형무소에 수감됐던 사람들은 수천 명에 이른다
무슨 죄를 지었는지
얼마나 감옥살이를 해야 하는 지도 모른 채
갇혀 있어야만 했던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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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3년 1월 말 유격전 특수부대인 무지개부대가 투입된다
3개월 동안 일곱 차례에 걸친 한라산 토벌 작전이 진행된다
이때 무장대는 거의 소멸된다
지역 주민이 담당했던 마을 성곽 보초 임무도 없어진다
1954년 9월 21일 마침내 한라산의 빗장이 열린다
짙푸른 가슴을 활짝 열어젖힌다
제주도경찰국이 한라산 금족 지역을 완전히 해제한다
한라산 전면 개방을 선언한다
사건의 처음부터 말없이 지켜보았던 한라산
흐느끼듯 검은 능선들만 들썩이던 한라산
1947년 3·1절 발포사건이 일어난 지 7년 7개월 만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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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들에게 젖을 물리던 한라산이 길을 떠난다
꿈에라도 보고 싶은 백두산을 만나려고 순례길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