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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산 Oct 25. 2024

나의 습작기(習作期)의 시(詩) 아닌 시(詩)

― 윤동주 시인과 함께 마지막 순례를 떠난다 012



작가의 꿈삶글 & 시인의 꿈삶글



1.


한강 작가의 벼락같은 노벨문학상 수상으로

작가와 시인들에 대한 관심이 이어지고 있다

나도 지금껏 열흘동안 한강 앓이를 하고 있다


나는 시월 이맘때쯤에 제주도에 왔다

가장 놀라운 것은

길가에 피어난 억새꽃이었다

육지에서는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환하게 피어있는 억새꽃을 보지 못했다

산에 올라가야 억새꽃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바로 길가에서 억새꽃을 보았다

가을 오후 네 시의 평화로를 달리는데

길의 양 옆에서 손을 맞잡겠다는 의지로

반짝이는 억새꽃들이 춤을 추고 있었다

지금처럼 길을 넓히기 전의 평화로는

이름도 서부산업도로였고

꼬불꼬불한 시골길처럼 다정한 길이었다

바다의 윤슬처럼 반짝이는 억새꽃 물결

동화 속 같은 꿈의 물결 속으로 꿈결 속으로

나를 끝없는 환상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었다


그때의 꿈결 같은 환상을 찾아서

다시 새별오름에 왔다

그런데 새별오름 억새꽃이

예전만 못하다

몇 년 들불축제를 하지 않은 탓이다

다른 풀들 때문에 억새꽃이 줄어든 느낌이다

그도 그럴 것이

들불축제 전에는

새별오름에 억새가 많지 않았다

제주도 억새꽃은 산굼부리가 유명했다

들불축제로 새별오름에 불을 놓으면서

억새꽃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렇다

불을 놓지 않으면 새별오름에는

다시 억새꽃이 줄어들 수밖에 없으리라


제주도에서 억새꽃이 가장 유명한 곳은

산굼부리였다 그런데 교통여건이 좋은 

새별오름이 서서히 억새꽃의 성지가 되고 있었다

나는 해마다 이 새별오름에서

억새꽃들과 함께 춤을 추었다

하지만 나는 산굼부리와 새별오름의

억새꽃만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냥 길가에 피어있는 억새꽃이 좋다

언제라도 반갑게 손을 흔들어주는 눈빛이 좋다


몇 년 들불을 놓지 않으니 자연으로 돌아간다

자연의 회복력이 대단하다

인간만 없어지면 우리 지구는 살아날 것만 같다


새별오름에 오면 억새꽃만 보는 것이 아니라

꼭 재미있는 사연을 간직한 무덤들도 둘러본다

제주도의 무덤들은 대부분 산담이 있다

제주도 무덤들의 산담에는 대부분 문이 있다

산담을 보면 제주도 사람들의 삶과 죽음에 대한

인식을 어느 정도는 짐작을 할 수 있다

제주도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삶과 죽음이

그렇게 멀리 있는 존재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한강 작가의 품격과 품위에 대하여 생각한다

그리고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에 대하여도 생각한다

인간의 존엄에 대하여도 생각을 깊이 한다

또한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사람들도 생각한다


작가의 꿈과 삶과 글에 대하여도 깊이 생각을 한다

시인의 꿈과 삶과 글에 대하여도 깊이 생각을 한다

예술가의 꿈과 삶과 글에 대하여도 깊이 생각을 한다


2.


나는 꿈을 참 많이 꾼다

꿈은 내 삶과 내 정신의 거울이다

잠을 자기 전에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꿈의 내용이 결정되는 듯하다

그리고 잠을 많이 자면 다양한 꿈을 꾼다

또한 평소에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꿈의 빛깔과 꿈의 형식이 달라진다

내가 꾼 꿈을 모두 기록할 수만 있다면

나는 아마도 진작에 노벨문학상을 받고도 남았을 것이다

나는 내가 꾼 꿈을 모두 기록할 수 없다

때로는 내 생각이 너무 무서워서 기록할 수 없고

때로는 나의 생각이 너무 부끄러워서 기록할 수 없고

때로는 나의 생각이 너무 천박하거나

너무 잔인해서 모두 기록할 수 없다

꿈은 그래도 어찌 되었던지

나의 생각과 나의 꿈과 나의 희망과

나의 현실을 반영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또한 우리들의 도덕과 법치와 윤리와

보편적인 생각을 뛰어넘는 경우가 많다

초월하는 경우가 많고

현실보다 더욱 세세하고 구체적인 경우가 많다


그렇게 많은 꿈을 꾸면서도

나는 나의 꿈을 잘 요리하지 못했다

그러나 한강 작가를 보라

한강 작가는

자신이 꾼 꿈을 가장 아름답고

가장 의미 있게 요리를 잘하는 사람이다

환상적 리얼리즘은

꿈을 가장 잘 요리하는 꿈의 셰프들이

만들어내는 꿈의 요리라고 할 수 있다


한강 작가를 거칠게 읽으면 다음과 같다

한강 작가는 자기 관리를 참으로 잘한다 


1970년 전남 광주 출생

1992년 윤동주 문학상 당선

1993년 연세대 국문과 졸업

1993년 시인 등단

1994년 소설가 등단

2007년 《채식주의자》 

- 이 작품으로 2016년 맨부커상 수상

2014년 《소년이 온다》

- 5.18 광주 민중항쟁을 소년의 눈으로 다룬 소설

2021년 《작별하지 않는다》

- 4.3 항쟁을 다룬 작품으로 2023년 메디치상 

2024년 10월 10일 노벨문학상 수상


< 노벨위원회 발표문 >


한강의 주요 국제적 돌파구는 소설 <채식주의자>(2007, 채식주의자, 2015)에서 나왔습니다. 


세 부분으로 구성된 이 책은 주인공 영혜가 음식 섭취 규범을 거부할 때 발생하는 폭력적인 결과를 묘사합니다. 고기를 먹지 않기로 한 그녀의 결정은 다양하고 완전히 다른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녀의 행동은 남편과 권위주의적인 아버지 모두에게 강제로 거부당하고, 수동적인 신체에 집착하는 비디오 아티스트인 처남에게 성적으로나 미학적으로 착취당합니다. 


결국 그녀는 정신과 진료소에 입원하게 되고, 그곳에서 그녀의 여동생은 그녀를 구출하고 '정상적인' 삶으로 되돌리려 노력합니다. 그러나 영혜는 위험하면서도 유혹적인 식물계의 상징인 '불꽃나무'를 통해 표현되는 정신병적인 상태에 더욱 깊이 빠져듭니다.


좀 더 줄거리를 바탕으로 한 책은 2010년에 출간된 <바람이 분다, 가라>('The Wind Blows, Go')입니다. 이 소설에는 슬픔과 변화에 대한 갈망이 강하게 담겨 있는 우정과 예술성에 관한 크고 복잡한 소설입니다. 


극단적인 삶의 이야기에 대한 한강의 신체적 공감은 점점 더 강렬해지는 은유적 스타일로 인해 더욱 강화됩니다. 


2011년 <희랍어 시간>(Greek Lessons, 2023)은 취약한 두 개인 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매력적으로 묘사합니다. 


일련의 충격적인 경험으로 인해 말을 할 수 없게 된 젊은 여성은 시력을 잃고 있는 고대 그리스어 교사와 연결됩니다. 각자의 결점으로부터 깨지기 쉬운 연애가 발전합니다. 이 책은 상실, 친밀감, 그리고 언어의 궁극적인 조건에 관한 아름다운 명상입니다.


극단적인 삶의 이야기에 대한 한강의 신체적 공감은 점점 더 강렬해지는 은유적 스타일로 인해 더욱 강화됩니다. 


소설 <소년이 온다>(2014, Human Acts, 2016)에서 한강은 이번에 자신이 자랐고 수백 명의 학생과 비무장 민간인이 살았던 광주에서 일어난 역사적 사건을 정치적 기반으로 삼고 있다. 1980년 한국군이 자행한 학살 사건에서 살해된 인물, 역사의 희생자들에게 목소리를 내고자 하는 이 책은 이 사건을 잔혹한 현실화로 직면함으로써 증인문학의 장르에 접근한다.


한강의 스타일은 간결하면서도 환상적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장르에 대한 우리의 기대에서 벗어나며, 죽은 자의 영혼이 육체에서 분리되어 자신의 소멸을 목격하게 하는 것은 그녀의 특별한 방편이다. 어떤 순간, 묻힐 수 없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시체들을 보며 텍스트는 소포클레스의 안티고네의 기본 모티프를 떠올리게 된다.


<흰>(2016, The White Book, 2017>에서는 한강의 시적 스타일이 다시 한번 지배적입니다. 이 책은 서사적 자아의 누나였을지 모르지만, 태어나고 몇 시간 만에 세상을 떠난 사람에게 바치는 애가입니다. 


흰색 물체에 관한 일련의 짧은 메모에서 작품 전체는 이러한 슬픔의 색을 통해 연관적으로 구성됩니다. 이것은 또한 설명된 바와 같이 이 책을 소설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세속적인 기도서'로 만듭니다. 서술자는 상상 속의 자매가 살도록 허용되었다면 그녀 자신도 태어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론합니다. 책이 마지막 말에 도달하는 것도 죽은 자들을 언급하면서입니다. '그 하얀 것, 그 모든 하얀 것 안에서 나는 당신이 내놓은 마지막 숨을 들이마시겠습니다.'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2021년 < 작별하지 않는다>(“We Do Not Part”)로, 고통의 이미지 측면에서 백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이 이야기는 1940년대 후반 대한민국 제주도에서 일어난 학살 사건을 배경으로 전개됩니다. 그곳에서 어린이와 노인을 포함해 수만 명이 부역자라는 혐의로 총살당했습니다. 이 책은 화자와 그녀의 친구인 인선이 사건이 발생한 지 오랜 시간이 지나서 친척들에게 닥친 재난과 관련된 트라우마를 안고 함께 애도하는 과정을 묘사합니다. 응축된 만큼 정확한 이미지를 통해 한강은 현재에 대한 과거의 힘을 전달할 뿐만 아니라, 집단 망각에 빠진 것을 밝히고 자신의 삶을 변화시키려는 친구들의 끈질긴 시도를 똑같이 강력하게 추적합니다. 책 제목을 빌려준 공동 예술 프로젝트에 대한 트라우마. 유전된 고통과 마찬가지로 가장 깊은 형태의 우정에 대해서도 이 책은 꿈의 악몽 같은 이미지와 진실을 말하려는 증언 문헌의 경향 사이에서 매우 독창성을 가지고 움직입니다.


한강의 작업은 고통의 이중 노출, 즉 정신적 고통과 육체적 고통의 대응이 동양적 사고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2013년의 <회복하는 인간>에서는 치유를 거부하는 다리 궤양과 주인공과 죽은 여동생 사이의 고통스러운 관계가 관련됩니다. 진정한 회복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으며, 고통은 일시적인 고통으로 환원될 수 없는 근본적인 실존적 경험으로 나타납니다. <채식주의자>와 같은 소설에서는 간단한 설명이 제공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일탈행위는 주인공이 침묵을 지키고 있는 가운데, 백지상태에서 거부하는 형태로 갑작스럽고 폭발적으로 발생합니다. 


단편 소설 <유로파>(2012, 유로파, 2019)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작품에서는 자신이 여자로 가면을 쓴 남자 서술자가 불가능한 결혼 생활에서 헤어진 수수께끼의 여자에게 이끌립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당신이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다면 당신의 인생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라고 물을 때 내러티브 자아는 침묵을 지킵니다. 여기에는 성취나 속죄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녀의 작품에서 한강은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규칙에 맞서고, 그녀의 모든 작품에서 인간 삶의 취약성을 폭로합니다. 그녀는 육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의 연결에 대한 독특한 인식을 갖고 있으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되었습니다.


- 노벨위원회 위원장 앤더스 올슨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상을 받는 사람에 대하여 생각을 한다

상을 주는 사람에 대하여 생각을 한다


한강 작가는 이제 작품 쓰기에만 몰입하면 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고 있을까? 나는 아직도 김성백 시인을 잘 모른다. 그의 고백을 한 번 들어보자.


김성백 2020년 7월 2일


2018년 가을, 계간 <시현실>에서 신인상을 받으며 문예지에 시를 발표하기 시작했다. 오는 2020년 가을호 <시와 사람>, <동리목월>, <시와 경계>에 5편을 더 수록하게 되면 얼추 세어보니 2년 동안 58편을 발표한 셈이다. 주변에서 선배들이 시집 준비 안 하냐고 물어 온다. 사실 봄부터 준비해 왔다고, 몇 번 미끄러졌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냥 웃었다. 시인들도 잘 안 보는 잡지에 왜 시를 계속 내는지 잘 모르겠다. 고료도 잘 안 주는데. 시집 역시 왜 내는 건지. 팔리지도 않는데. 인정욕구에 사로잡힌 내부자들만의 품앗이... 영화 <패터슨>의 주인공처럼 시작노트는 개에게 맡겨버리는 게 상책인지도 모르겠다. 예전 시인들은 타인의 슬픔에 먼저, 오래 반응하는 자였는데 요즘 시인들은 자신의 슬픔에만 과민하게 반응하더라는 어느 노시인의 말이 생각난다.

거액을 끌어모아 커피숍을 시작했다가 5년 동안 죽어라 고생만 했다. 악마 같은 인간들 때문에 살의를 품기도 했다. 이래서 사람이 사람을 죽이기도 하는구나 생각도 했다. 프리랜서로 십수 년을 일하다 보니 세상물정을 몰랐던 내가 바보였다. 결국 백수가 되어 도서관에 틀어박혀 책만 읽었다. 소설과 인문서적. 우울증을 견디는 데는 사실 책은 별 도움이 안 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시집을 보게 되었고 미친 듯이 시집을 읽어나갔다. 서대문이진아도서관에 있는 시집은 한 번씩은 전부 보았다. 2017년 말부터 신춘문예에 도전하기 시작했다. <시현실>로 등단(정말 싫은 표현이지만)한 이후부터는 문학상에도 응모하기 시작했다. 족히 삼십여 곳에 응모한 것 같다. 오늘도 우체국에 가서 수주문학상 원고를 접수했다. 이제 우체국 직원이 나를 알아본다. 창피하지만 웃어주었다.


나는 퇴짜에는 일가견이 있다. 얼마나 많은 거절을 당했는지 모르겠다. 대학 4학년때 방송 3사 입사시험으로 시작된 <퇴짜의 역사>, 특히 영화를 만들겠다고 설치고 다녔던 시절엔 밥 먹은 횟수만큼 퇴짜를 맞은 것도 같다. 지나고 보니 돈 버는 재주가 없는 사람은 문학적 재주도 없는 것 같다.  

그동안 발표했던 시와 꼬불쳐둔 비장의 신작들을 정리해 보았다. 우울함을 잊어보려고 시작한 시 쓰기가 여기까지 왔구나. 참으로 어설프고 시시한 이 잡문들...  시도 에로스와 비슷하다. 보는 걸로 만족하지 못한다. 남의 시를 읽고 내 시를 다듬는 시간은 평온하고 즐겁지만 세속적인 욕망과  질투심을 어쩔 수가 없구나. 상도 받고 싶고 유명한 출판사에서 시집을 내고 싶고, 자랑하고 싶고, 우쭐대고 싶고, 신문에도 나오고 싶고, 비웃어주고도 싶은, 이 철딱서니 없는 속물근성으로 무슨 대단한 시를 쓰겠다고 이러는지 나도 참 답이 없다.

일단 니카노르 파라처럼 백 살 넘어까지 시를 쓸 수 있다면, 어지간한 평작 몇쯤은 건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잠들기 힘든 밤이다.



장례식



제76주기 여순민중항쟁 합동 추념식

10.19 사건, 반란에서 사건으로

그래도 여기까지 왔으니 다행이다

광주민주화운동, 제주사삼항쟁

여순민중항쟁까지, 우리들의 나라

우리의 나라는 이렇게 여기까지 왔다

너무나 많은 피와 아픔과 울음으로

끝끝내 여기까지 오고야 말았다

우리는 여기서 결코 멈출 수는 없다

우리는 여기서 멈춰서는 절대 안 된다

미국과 소련이 마음대로 갈라놓은

우리들의 국토와 우리들의 마음을

하루빨리 통일시켜야만 할 것입니다

우리 민족의 살길은 오직 통일뿐입니다

유족회장님의 눈물 나게 가슴 아픈 말씀

여섯 개의 점으로 새겨져 있는 위령비

"당신이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은 장례식이 되었습니다"ㅡ한강

네 살 때 아버지 잃었다는 할아버지 편지

전라도 사투리 같은 찬식이,

보도연맹 가입으로 억울하게 죽은 아버지 생신날

돌아가신 찬식이 아버지의 편지가,

아, 나를 울리고 땅을 울리고 하늘을 울린다

부용산 산허리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맨발



한라산에서 내려온 물이

이호테우해변에서

맨발 걷기를 한다

어두운 땅속을 

오래도록 걸어온 물도

용천수가 되어

쌍원담 문수물이 되어 

부처님의 맨발이구나

20241019 오늘은

여수민중항쟁의 날이구나

우리들의 역사는 아직도

군화를 벗지 못하고 있는데

파도소리도 맨발이고

빗방울도 맨발이고

배들도 맨발이고

등대불빛도 맨발이다

꽃들도 맨발이고

아기 울음소리도 맨발인데

나는 아직도 마음의

신발을 벗지 못하고 있구나

우리는 모두가 맨발로 왔다가

버선발로 저승길을 걸어가는데

저승길도 맨발로 걸어가는

영혼들이 참으로 많구나

세상에는 아직도 맨발이 참 많구나



밥과 약과 주사



천고마비의 계절에도 나는 살이 빠진다

나무들은 이제 잎을 하나씩 떨어뜨리고

높아진 하늘에 푸른 꿈의 주사기 꽂는다


나는 이제 주사기가 너무 무섭다 잎  지고

뼈만 남은 몸에 찔러대는 주사기의 바늘

벌써 며칠째 금식에 약만 폭식하는 나날


이제는 나비 바늘 꽂을 핏줄도 안 보인다

병원 복도를 걸어가는 바퀴 달린 나무들

주렁주렁 열려 있는 비닐팩 피와 포도당


정규경기는 오대 오 무승부로 끝이 나고

드디어 승부치기 경기가 시작되는데

정맥에 연결된 나비바늘과 링거의 긴 줄

링거팩에서 뽑은 주삿바늘로 혈서를 쓴다

뼈만 남은 몸에서 골수의 바닥까지 쏟는다

그렇게 겨울 눈싸움처럼 눈덩이 날아온다


나에게는 지금 확실한 돌파구가 필요하다



실유카와 승률조개



참 엉뚱한 꿈을 꾸었다

한승원 작가의 문학관을 건립하고 있었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두 아들이 덤프트럭 기사로 나왔다

나는 두 아들을 꼭 안아주었다


나는 한승원 작가가

한강 작가의 아버지가 되고

한강 작가의 대변인이 되어

좀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강문학관 건립을 거절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꿈속을

빠져나와 화장실에서 보았다


시월에 실유카 꽃이 환하게 피었다

승률조개에서 파랑새가 날아올랐다


나는 한강 작가도 위대하지만

나는 한강의 아버지

한승원 작가에게 더 많이 배운다




핵폭탄과 핵폭꽃




요즘 우리나라의 핵폭탄은

한강 작가와 김건희 여사다

나는 두 사람 모두 잘 모른다

그들 모두 참 열심히 살았다

나도

그들 만큼 열심히 살았을까

비행기 먹구름 속으로 간다

저 먹장구름 뒤에 눈부신

햇살과 구름 이불 있으리라

천사의 나팔꽃 악마의 나팔꽃

선의 꽃과 악의 꽃이 꽃 피리라



실유카와 승률조개




참 엉뚱한 꿈을 꾸었다

한승원 작가의 문학관을 건립하고 있었다

그런데 참 이상했다

두 아들이 덤프트럭 기사로 나왔다

나는 두 아들을 꼭 안아주었다


나는 한승원 작가가

한강 작가의 아버지가 되고

한강 작가의 대변인이 되어

좀 슬프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강문학관 건립을 거절했다는

기사를 보았다 꿈속을 막

빠져나와 화장실에서 보았다


시월에 실유카 꽃이 환하게 피었다

승률조개에서 파랑새가 날아올랐다


나는 한강 작가도 위대하지만

나는 한강의 아버지

한승원 작가에게 더 많은 것을 배운다

부모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한승원 작가와 김인호 시인에게 배운다

김도수 시인과 나희덕 시인에게 배운다




고추와 고춧대




나는 이제 겨우 꽃을 피우는데

벌써 뿌리를 뽑아버리면 나는,

나는 이제 가까스로 풋고추인데

벌써 뿌리를 뽑아버리면 나는,

나는 이제 겨우 정신을 차렸는데

벌써 뿌리를 뽑아버리면 나는,


벌써 고춧대를 뽑고 있었다


고춧대에는 아직도 꽃이 피고

꽃에서 고추가 열리고 있고

어린 고추가 자라 풋고추가 되고

풋고추가 온 힘을 다하여 익고

익은 고추도 더 빨갛게 익어가는데

너무 빨리 고춧대를 뽑고 있었다


뿌리까지 뽑힌 고춧대에서도 악착같이

꽃을 피우고 몸을 붉게 익히고 있었다




* 돌아보니 나에게도 습작노트가 많이 있었다

  윤동주 시인보다 더 많은 습작노트가 있었다

그동안 나는 자신감이 없어 도망치기만 하였다

저렇게 뽑혀버린 고춧대도 꽃을 피우고 끝끝내

악착같이 푸른 풋고추를 빨갛게 익히고 있는데  




제멜바이스 효과


헝가리의 산과 의학자. 산욕열이 시체를 만진 의사의 손에 묻은 유기분해물질의 흡수에 의한 일종의 흡수열이라고 단정하고 예방법으로 조산에 임하는 사람의 손을 염화칼슘액으로 씻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통해 1847~1849년에는 산욕열 발생률을 1/10로 감소시키는 데에 성공하였다.  


반대론자들에게 밀려나 1855년에 귀국한 후 부다페스트대학 산과학 교수를 역임하고, 1861년에 《산욕열의 원인 ·개념 ·예방》을 저술하였다. 빈 교외의 정신병원에서 죽었다.



코스모스

총균쇠

사피엔스

문명의 붕괴



몽유병



ㅇㅇㅇ 시인을 꿈속에서 만났다

내가 응모한 심사를 했다고 하며

말했으면 당선이 되었을 거라며

미리 말하지 않아서 아쉽다 했다

꿈인지 생시인지 나는 알 수 없다


그렇게 나는 몽유병으로 망했다


꿈속을 겨우 빠져나와 생각하니

나는 내가 너무나도 수치스럽다

나는 내가 너무나도 치욕스럽다


이 막막함

이 혼돈

이 어둠을

나는 과연 뚫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시인은 정신을 팔아서



시인은 정신을 팔아서

먹고사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정신이 썩으면

무엇을 먹고살아야 할까


노동을 할 만한 손도 없고

사기를 칠 만한 입도 없다



팔아야 살 수 있는 세상



세상에는

몸을 파는 사람이 있고

노동을 파는 사람이 있고

정신을 파는 사람이 있다


나는 무엇을 팔 수 있을까


세상에는

죄를 파는 사람이 있고

사기를 파는 사람이 있고

치욕을 파는 사람이 있다


나는 무엇을 팔 수 있을까


세상에는

웃음을 파는 사람이 있고

울음을 파는 사람이 있고

그늘을 파는 사람이 있다


나는 무엇을 팔 수 있을까


세상에는

물건을 파는 사람이 있고

종교를 파는 사람이 있고

나라를 파는 사람이 있다


나는 무엇을 팔 수 있을까


세상에는

전쟁을 파는 사람이 있고

죽음을 파는 사람이 있고

희망을 파는 사람이 있다


나는 무엇을 팔 수 있을까


나는 무엇을 팔아서 살 수 있을까

꿈이라도 팔아서 꿈을 살 수 있을까

꿈을 팔아서 더 큰 꿈을 살 수 있을까


내도 알작지의 몽돌이  되어

밤새 죄를 씻어도

나의 어둠은 씻어지지 않는다



너무나 부끄러운 날이다



오늘은 참으로 치욕적인 노을이다

도저히 얼굴을 치켜들지 못하겠다



꿈과 현실



꿈은 잠들기 전에 생각한

생각의 실마리를 타고 들어가

나의 무의식과 나의 의식이 만나

또 하나의 내가 태어나서

새롭게 살아가는 정신의 삶이다

그 꿈속의 삶은 때로는

현실의 억압된 자아를 반영하기도 하고

현실에서는 실현할 수 없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관념을 부수기도 한다

그리하여 어떤 꿈은 현실보다 자유롭고

어떤 꿈은 현실보다 더 아픈 삶이 될 수도 있다


내 의식 속에 숨어 있는 죄의식이 꿈으로 나타나면 악몽이나 흉몽이 될 수도 있고


또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나 그리움이 발현하면 아름다운 꿈이 될 수도 있다


꿈속에서는 현실과 맞지 않는 일도 일어나고 또한 현실을 반영해 주는 일도 일어난다 그리하여 나는 꿈속에서 지은 죄 때문에 오늘도 괴롭다





나의 습작기(習作期)의 시(아닌 시()

나의 습작기(習作期)의 시(詩) 아닌 시(詩)』목차(目次)



한 시인의 시적 세계는 유년시절의 경험과 청소년 시절의 경험이 많은 영향을 끼친다. 윤동주 시인의 인격 형성과 시적 세계의 구축은 만주와 디아스포라와 명동 마을과 김약연의 독립정신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고토회복과 이상촌 건설과 인재교육을 위하여 만주로 건너갔던 선각자들의 후손, 민족운동과 기독교 민족교육의 본거지가 되어가는 명동촌, 이토 히로부미를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한 안중근이 천주교 신부들로부터 협조를 거부당한 뒤 김약연의 도움으로 몰래 권총으로 사격 연습을 한 곳도 명동촌의 뒷산이었다고 한다. 조연현 선생님의 <해방의 등불 된 '간도의 대통령'>이란 글에서도 잘 증언하고 있다. 그리하여 장로가 된 김약연 선생님에 대한 일제의 탄압은 일찍부터 시작된다. 특히 <무오독립선언서>에서 밝혔듯이 일제에게 독립을 청원하는 것이 아니라 '육탄혈전'으로 독립 '전쟁'을 해서 무력으로 일제를 몰아내야 한다는 더욱 적극적인 의지를 피력했기 때문에 일제의 입장에서는 무장투쟁의 본거지를 그냥 두고만 볼 수 없었다.


1920년 청산리 전투에서 패배한 일본은 북간도 민족운동의 근거지로 자리 잡았던 명동학교를 불태우고, 무장투쟁을 주장해 온 교장 김약연을 체포한다. 김약연은 1920년 쉰둘의 나이에 체포되어 2년 동안 옥살이를 한다. 1923년 출옥해 폐허에 임시 건물로 지어진 명동학교를 유지했지만 이듬해 흉년으로 운영난에 시달린다. 1925년 용정의 은진중학교와 통합하여 명동중학교는 문을 닫는다. 윤동주 시인은 1925년 4월 그대로 유지되었던 명동소학교에 입학한다.


1929년 예순한 살의 나이로 김약연은 평양신학교에 다니며 목사 안수를 받는다. 목사이면서도 사회주의자 이동휘와 손을 잡았으며 서일 등 대종교 지도자들과도 협력했다. 중국인들이 그를 '간도의 한인 대통령'이라고 부를 만치 포용력 있는 지도자였다. 1930년 예순둘의 김약연은 명동교회 목사로 돌아온다. 당시 열세 살이던 윤동주와 송몽규는 이때부터 규암 김약연에게 <맹자>와 <성경> 등을 배우고 1931년 3월에 명동소학교를 졸업한다. 1932년부터 1934년까지 규암 김약연은 은진중학교에서 성경과 한문을 가르친다. 그리고 1938년 2월에 용정의 은진중학교와 명신여고의 이사장으로 취임한다. 규암은 이미 존경받는 목사이며 민족지도자였지만 말이 아니라 삶 자체로 모범을 보였다. 교장이면서도 천 평쯤 되는 밭농사를 직접 지었고 거름을 등에 지고 다니면서 황무지를 개척했다. 가을에는 농군들과 함께 밤새워 타작을 하는 등  제자들을 가르치는 모습이 마치 공자가 제자들에게 도를 행하는 것과 흡사했다고 증언하는 사람들이 많다. 1942년 10월 29일 용정시 자택에서 돌아가셨는데 "내 모든 행동이 곧 나의 유언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일흔넷의 일기로 별세하셨다. 


나의 습작기(習作期)의 시(詩) 아닌 시(詩)에는 윤동주 시인이 연희전문학교 입학 전중학생 시절에 쓴 글들이 담겨 있다지금으로 치면 고등학생정도일 것이다. 1934년 12월부터 1937년 3월까지 창작한 윤동주 시인의 습작기의 시들이 담겨있다윤동주 시인이 1917년 12월 30일생이니 18세에서 21세 사이에 쓴 글들이다그 나이에 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그리고 당신은 그 나이에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나의 습작기(習作期)의 시(詩) 아닌 시(詩)를 읽어보면 윤동주 시인은 그전부터 시를 쓰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아마도 그전에도 계속 시를 쓰고 있었으나 이 노트를 준비하여 쓰면서 본격적으로 시인이 되겠다는 결심을 하고 시를 썼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앞의 글에서도 거론했듯이 그 결정적이 계기는 아마도 친구 송몽규의 이른 등단이었을 것이다.

 

나의 습작기(習作期)의 시(詩) 아닌 시(詩)에는 59편의 시가 실려 있는데 주로 동시가 많다그리고 제목이 없는 시도 있고 제목만 있는 시도 있다또한 윤동주 시인이 자필로 쓴 목차에는 36편의 제목만 적혀있다그러니까 그야말로 윤동주 시인 개인의 습작노트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윤동주 시인이 살아생전에 공식적인 등단 절차를 밟아서 등단한 시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습작노트도 더욱 소중하게 다루어지고 있을 것이다아니우리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런 자필 습작노트를 볼 수 있어서 더욱 의미 있는 일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노트의 표지에 인쇄된 밀러의 비너스 때문에 자꾸만 나의 아프로디테 생각이 난다그리고 어머니 생각이 난다나는 사실 밀러의 비너스보다 빌렌도르프의 비너스를 더 좋아한다나는 어쩌면 지금도 나의 아프로디테보다 나의 어머니가 더 보고 싶은지도 모른다아마도 눈물의 양과 눈물의 깊이 때문일 것이다아니다시 한번 더 깊이 생각하니 오래된 것일수록 더욱 좋아하는 나의 취향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윤동주 시인에게 청년문사 송몽규가 있었다면 나에게는 누가 있을까나는 지금 누구에게 열등감을 느끼고 있을까나는 지금 누구를 부러워하고 있을까문득 생각나는 이름들이 있다이병률 시인과 정끝별 시인과 나희덕 시인과 김기택 시인과 이병률 시인은 1987년에 같이 출발을 하였고정끝별 시인은 1988년에, 나희덕 시인과 김기택 시인은 1989년에 같이 출발을 하였다하지만 지금은 모두가 너무 먼 곳에 있다이병률 시인은 같은 해에 예대문학상에 나는 예장문학상에 각각 당선되었고, 정끝별 시인은 문학사상 신인발굴로 함께 등단을 하였으며, 나희덕 시인과 김기택 시인은 같은 해에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의 나의 삶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구석기시대 조각으로, 오스트리아 다뉴브강에 있는 빌렌도르프에서 1909년 철도 공사 때 발견된 돌로 만든 여인상(女人象)이다. 높이 11Cm의 조그만 계란형 돌에 유방·배(腹)·둔부·성기(性器) 등을 과장되게 표현한 특징을 갖고 있다. 이 조각상은 출산(出産)과 풍요를 기원하면서 만들었다는 추정이 전해지는데, 이에 '출산의 비너스'라고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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