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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인 Apr 15. 2020

버스, 어디까지 타봤니?

달마다 떠나는, 횡성으로의 버스 여행.




 한 달에 한 번, 자주 횡성에 가는 나에게 지인들은 종종 묻는다.

"집에 왜 그렇게 자주 가?",

"너 또 횡성 가?"


"응. 나, 또 횡성 간다!"




 


 과거의 나에게 '고속버스'란 '여행'이라는 연결고리를 만날 때에만 달캉- 고리가 채워지는 특별한 이동수단이었다.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길의 리무진 버스가 그랬고, 학창 시절 친구들과 함께 탔던 수학여행 버스도 그랬다. 중국에서 먼 도시로 여행을 떠날 때 탔던 버스가 그랬고, 폴란드에서 체코로 국경을 넘을 때의 2층 버스가 그랬다. 한국에서 타본 고속버스라고는 친구들과 함께 서해로, 동해로 떠났던 두세 번이 고작. 내 기억 속의 버스는 모두 여행으로만 연결된다.


 나도 몰랐다. 내 평생 이렇게 버스 터미널에 자주 들락날락하게 될 줄은, 고속버스를 한 달에 한 번은 꼭 타게 될 줄은, 이렇게 시외버스 시스템에 통달하게 될 줄은. 부모님이 횡성으로 이사를 가시면서, 우리 자매는 횡성으로 갈 여러 방법을 탐구했다. 주민분들께 보통 어떤 루트로 서울에 가시는지 여쭤보기도 했고, 더 편히 그리고 빨리 갈 수 있는 방법을 인터넷상에서 찾는 족족 시도해 보기도 했다. 어떤 방법으로 가는지에 상관없이, 출발지는 동서울 터미널로 같았다. 동쪽인 강원도로 향하는 대부분의 버스는 이곳에서 출발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와 언니의 버스 여행이 시작됐다.






 맨 처음 버스를 타고 집에 가던 그 날은, 지금에 와서야 생각해 보건대 가장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횡성에 도착했던 날이다. 언니와 나는 강원도 원주 행 버스를 탔다. 횡성으로 간다면서, 웬 원주 행 버스? 이유는 단순했다. 횡성으로 가는 버스는 저녁 7시가 막차인데, 원주로 가는 버스 막차는 밤늦게까지도 운행했기 때문이었다. 원주로 가는 승객이 많은 만큼, 매 시간마다 출발하는 버스가 있을 정도로 원주행 버스는 배차 간격도 촘촘하다. 원주도 횡성도 같은 강원도이니까, 지도를 보고는 가깝겠거니- 단순하게 생각한 것이 실수였다. 원주 행 버스 의자는 90도 각도를 꼿꼿이 유지한 채 뒤로 젖혀질 생각을 하지 않았고, 무릎 앞으로는 겨우 주먹 하나 들어갈 정도로 앞 좌석과의 여유 공간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치명적인 건, 원주에 내려서 횡성까지 차로 40분을 더 가야 했다는 사실이다. 두 번 다시 이 방법으로 집에 가지는 않으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이날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창 밖으로 보았던 고양이를, 가족들은 지금까지도 이따금 얘기하곤 한다. 캄캄한 늦은 밤, 차도 별로 없는 도로 위를 고양이가 정말 빠르게 지나갔기 때문이다. 달리거나 뛴 것이 아니라 고양이가 말 그대로 경보를 했다. 진짜다. 어찌나 빨리 걸어가는지 다리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데, 분명 뛰지는 않았다. 다들 웃기다며 와하하 웃었던 기억. 비록 집에 가는 데에 예상외로 시간은 조금 더 오래 걸렸지만, 우리는 잊지 못할 추억을 하나 얻었다.



 수많은 시도 끝에, 현재 가장 애용하는 방법은 횡성을 경유하는 버스를 타는 것이다. 평창으로, 강릉으로, 삼척으로 각 목적지로 향하는 승객 틈에 끼어 탄 우리는 경유지인 횡성 안흥에서 내린다. 재미있게도 다른 승객은 대부분 동쪽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다. 모두들 여행을 앞두고 한껏 꾸민 차림에다 들뜬 얼굴이다. 꺄르르 웃음소리가 들려온다. 언니와 나는 그들과 다소 다른 행색을 하고 온갖 짐을 바리바리 짊어진 채 피곤에 절어있지만, 집에 곧 도착한다는 생각에 우리 역시 들떠있기는 마찬가지다.


 달리는 버스 안. 나는 엄지와 검지 손가락으로 코를 잡아 콧속으로 바람을 훅 불어넣는다. 억지로 하품을 하기도 한다. 버스가 오르막 길을 본격적으로 오르기 시작하면, 기압 차이 때문에 먹먹해진 귀를 가볍게 풀어주는 것이다. 집이 가까워 온다는 뜻이기도 하다.



(왼) 버스에 오르기 전, 인사를 하고 있다. (우) 종이 티켓. 2020년 현재 버스 요금이 1200원 인상되었다.





 부모님의 귀농 후보지는 사실 두 곳이었다. 지금의 집이 된 '강원도 횡성'과 또 다른 한 곳은 바로 '강원도 정선'. 보통 서울에서 횡성까지는 버스로 빠르면 1시간 20분, 차가 많이 막힐 때에는 2시간 정도 소요된다. 서울에서 정선까지는 버스로 꼬박 3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만약 우리가 정선으로 가게 되었다면 집을 오가는 길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또 이렇게 자주 오가지 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어쩐지 아찔해지는 기분마저 든다. 같은 서울 내에서도 먼 곳까지는 한 시간이 훌쩍 걸리는 걸 생각해 보면, 1시간 반이면 도착하는 횡성은 꽤나 가깝게 느껴진다.


  서울과 횡성을 오가는 1시간 반, 창 밖 너머를 멍하니 바라보며 그곳에서 있었던 일을 가만가만 되짚어 본다. 버스나 차를 탔을 때 핸드폰을 보거나 책을 집중해서 읽으면 바로 속이 메슥거리는 탓이다. 나의 차멀미 덕에 핸드폰도 잠시 가방 속에서 쉴 시간을 얻었다. '이번에는 횡성에서 이런 일이 있었지. 예전엔 지금과는 달랐었는데. 내 인생도 이사를 계기로 많이 변했구나.' 이런저런 사색에 빠져 있다가 까무룩 잠이 든다. 버스로 한 시간쯤 부지런히 달렸을까. 온통 산으로 둘러 쌓여있던 창 밖 풍경이 어느새 도시의 불빛으로 가득 차 있다. 횡성에서 있었던 일들이 마치 반짝이는 꿈을 꾼 듯, 다른 세계에 잠시 들어갔다 나온 것처럼 느껴진다.



 버스 안에서의 사색은 삼 년 동안 매달 꾸준히 이어져왔다. 지금까지 머릿속에서 생각으로만 존재했던 그곳에서의 이야기들을, 차근차근 하나씩 풀어내 보려 한다.





시골과 도시를 오가는 삶, 세 번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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