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괜찮은 사람인가?
남자들은 미용실을 한 달에 한 번, 최소 두 달에 한 번은 머리 커트를 하러 간다. 남들보다 나는 머리카락이 유독 빨리 자라서 한 달만 지나도 머리가 덥수룩해지고 지저분해진다. 거기다 곱슬기도 심하고 새치가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세심하게 관리를 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기본적으로 한 달에 한 번은 꼭 커트를 하러 간다. 세 달에 한 번씩은 새치 염색을 하고 곱슬기를 없애려 볼륨 매직도 한다. 염색이나 매직, 클리닉이 겹칠 때에는 한 달에 2~3번은 미용실에 간다. 그만큼 관리를 잘해주고 내 머리 상태를 잘 알아주는 미용실로 가야 한다. 가격이 비싸더라도 나의 요구를 들어줄 수 있는 미용실이라면 그 미용실만 간다.
3년 동안 꾸준히 다녔던 미용실이 있었다. 나를 담당해주는 헤어 디자이너 선생님은 커트를 하러 갈 때마다 말하지 않아도 내가 어떤 스타일을 원하는지, 곱슬기가 어느 정도 올라와서 언제 매직을 하면 좋을지 말해주었다. 물론 조용하게 머리를 하고 싶어 하는 나의 대화 스타일도 알고 계셔서 필요한 말들만 해준다. 그러던 어느 날 나를 담당해준 선생님이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고 난 주인을 잃어버린 한 마리에 강아지가 되어버렸다.
미용실에 나를 담당해준 선생님이 없으면 굳이 그 미용실을 다닐 필요가 없었다. 새로운 안식처가 필요했다. 정말 오랜만에 다른 미용실을 알아보게 됐고 마음에 드는 곳을 찾는 일은 쉽지만은 않았다. 여러 군데를 돌아다녀 본 결과 괜찮은 곳을 찾게 되었다.
새롭게 정착한 미용실은 나쁘지 않았다. 쾌적하고 조용한 내부, 요란스럽지 않은 움직임. 앞으로 다닐 미용실로 괜찮았다. 나를 담당해줄 헤어 디자이너 선생님은 원장으로 계신 선생님이었고 나이는 많아 보이지 않았다. 낯가림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완벽한 외향형 사람인 거는 확실하다.
곱슬기가 머리를 뒤덮었고 새치도 눈에 보일 정도로 많이 올라와서 2주 간격을 두고 한 달에 두 번이나 미용실을 가게 됐다. 한 번은 새치 염색, 한 번은 곱슬머리를 피기 위한 볼륨매직. 염색은 시간이 꽤 걸리다 보니 디자이너 선생님과 대화를 많이 하게 되었고 '유미의 세포들'이란 드라마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나에게 질문을 했다.
"고객님, 혹시 여자 친구 있으세요?
훅 들어오는 질문에 당황했다. 지금까지 여러 미용실을 다니면서 많은 헤어 디자이너 선생님들을 만나봤지만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은 헤어숍에서 여자 친구가 있냐는 질문은 처음 받아봤다.
"아, 아뇨. 여자 친구 없어요."
대답을 들은 디자이너 선생님은 곧이어 내 나이까지 물어봤다. 뭐지? 여자 친구의 유무를 묻는 곳은 처음이었는데 나이까지 물어보는 곳도 처음이었다. 이런 질문에 대해서 불편한 점은 없었다. 단지 당황만 했을 뿐. 28살이라고 대답을 들은 선생님은 갑자기 여자 소개받을 생각이 있냐고 물었다. 갑자기 소개?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은 헤어숍에서 소개? 처음에는 의심이 들었다. 일종의 고객 유치 방법인가? 단골손님을 만들기 위한 마케팅인가? 여러 의심들은 판단을 흐려지게 만들었고 확실하게 대답하지도 못했다. 디자이너 선생님은 당황한 나를 보고 이유를 설명해줬다.
자신이 담당하는 고객 중에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분이 있는데 자신이 다니는 회사가 전부 여자들 뿐이라고 한다. 회사 내에 남자 직원이 별로 없다 보니 이성을 만날 곳이 없는 여자들이 많아서 디자이너 선생님에게 고객들 중에 괜찮은 남자가 있으면 소개를 시켜달라는 부탁을 했다고 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이유를 듣던 중 의문점이 하나 들었다.
'근데 내가 괜찮은 남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