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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 애 Feb 09. 2023

신혼 여행 중 에어비앤비 호스트랑 영어로 한판 뜨다

에어비앤비 환불받고 본격적으로 시작된 런던에서의 신혼여행

 지난 게시글에서 알아차린 분들도 계시겠지만 패딩턴 역 이후로 다음날 아침까지는 사진이 단 한 장도 없었다. 공항, 기차, 역을 나와 처음으로 발을 내디딘 런던이건만 우리는 사진 찍을 여력 따위 없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난관에 겁먹어 마음을 추스르느라 바빴으니까. 14시간 비행 + 길거리에서 비 맞기 30분. 온갖 긴장이 풀린 우리는 다음날에 대한 걱정과 그래도 잘 곳이 있어 다행이라는 안도감을 함께 느끼며 스르륵 잠이 들었다.

신혼여행 첫날밤 급히 투숙한 호텔에서의 첫 아침 식사

 다음날, 런던에서의 첫 아침을 맞았다. 아직 여행 기분을 느끼기에는 우리에게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많이 남아 있었지만 그래도 해가 떴기에, 체크 아웃 시간까지는 우리 짐과 우리 몸을 맡길 곳이 있으니까, 어제보다는 훨씬 기분이 나았다. (그래서인지 이 날 아침부터는 사진이 존재한다.) 일단은 묵었던 호텔에서 아침 식사를 해결하기로 했다. 우리가 묵었던 호텔은 큰 호텔은 아니었지만 1층에 카페를 운영하고 있어서 간단하게 조식을 먹을 수 있었다. 정신없는 와중에 조식을 챙겨 먹은 이유는 분노를 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전투 식량과 같은 개념이라 할 수 있다. 눈뜨자마자 확인한 휴대폰에는 아무 메시지도 없었다. '그래도 자고 나면 호스트가 연락을 하겠지.'라는 실낱 같은 희망은 사라졌다. 나의 자비는 거기까지였다. 오늘 아침 연락이 와서 '어제의 일은 미안해. 고생 많았겠구나.'라고 하면 모두 용서하려 했건만 나의 수많은 부재중 메시지와 전화에도 호스트는 아무 연락이 없었다.


"다 부숴버리겠어."


 빵을 우걱우걱 씹으며 전투력을 상승시켰다. 어젯밤 우리가 그렇게 애타게 두드리던 숙소 문 옆에는 에어비앤비 사무소 같은 것이 있었다. 어둑어둑하고 비가 내리고 있었지만 똑똑히 보았다. '저 사무실이 우리 숙소를 관리하는 곳일지도 몰라.'라고 기억에 새겨 두었으니까. 아침을 든든히 챙겨 먹은 우리는 다시 우리가 예약한 숙소로 향했다. 여전히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하지만 옆 사무실에는 직원이 출근해 있었다.


"Excuse me -"


 밝은 얼굴로 인사하며 들어갔지만 내 눈은 이미 살짝 돌아 있었다.


"혹시 이 옆에 있는 에어비앤비를 이 사무실에서 관리하니?"


"응, 맞아. 무슨 일이니?"


 맞다고? 맞다고 고개를 끄덕이며 그 순진 무구한 눈과 마주치자마자 나는 속사포로 영어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나는 원래 어제 체크인하기로 되어있던 투숙객이야. 그런데 호스트가 숙소에 들어가는 법을 보내준 문자가 깨져서 왔지 뭐야? 그래서 에어비앤비에 등록된 번호로 전화도 여러 번 하고, 메시지도 보내고 문자도 보냈는데 아무 연락이 되지 않았어. 비도 오는데 우리는 우리 짐을 들고 한참을 밖에 서있었지. 결국 들어가지 못해 지금 다른 숙소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오는 길이야. 우리는 정말 정신적으로도 피해를 입고 새로운 숙소에 돈까지 썼어.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해 줄 생각이니?"


 출근하자마자 들이닥친 매서운 아시아 여자를 만난 그는 꽤나 당황하고 미안한 기색을 보였다.


"어어, 정말 미안해. 진짜 곤란했겠다. 너희가 예약한 숙소 주소를 좀 알려 줄래?"


"그래. 여기 어플에 주소가 있어. 바로 여기야. 이 옆."


"여기는 우리가 관리하는 숙소가 아닌데?"





....???





"우리가 관리하는 숙소는 왼쪽이야. 네가 예약한 숙소는 오른쪽..."


...!!!




 와우. 내가 애먼 사람을 잡았군?

사무실은 잠시 고요해졌다. 나는 무척이나 당황했지만 너무 부끄러워 그것을 티 내지 않으려 노력했다.

짧은 순간 속에 나는 잠시 마음을 추스르고 이 대화를 어떻게 마무리 지어야 하나 생각했다.


"그렇구나. 화내서 미안해. 혹시 내가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에 대해 연락할만한 곳이 있을까?

너도 에어비앤비를 운영하는 것 같으니까 혹시 고객센터 번호 같은 것을 아니?"


"기다려봐. 내가 찾아줄게. 여기 런던 에어비앤비 고객센터 번호니까 이 쪽으로 전화해 봐."


"정말 친절하구나. 고마워. 많은 도움이 되었어."


"잘 해결되길 바랄게!"


"응! 좋은 하루 보내!"


 여유로운 척 'Have a good day'까지 하고 그 사무실을 나왔다. 당황했던 그의 눈에는 '저 아이가 내 고객이 아니라 다행이다.'라며 안도하는 기색이 보였다.


"지애야, 너 영어를 이렇게나 빨리 말할 수 있는 사람였구나."


 사무실 문을 나서자마자 신랑이 감탄을 내뱉었다. 사실 나도 내가 이렇게 영어를 빠르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인 줄 몰랐는데 내 몸에 흐르는 전투 유전자가 전시 상황임을 감지하고 능력치를 올려준 것 같았다.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당장 오늘밤에 잘 숙소도 정해져 있지 않은 상황이니까. 다시 숙소로 돌아온 우리는 조식을 먹은 카페에 다시 앉아 아까 그 친구가 준 에어비앤비 고객센터로 전화를 했다. 친절한 직원이 받았고 나는 차근히 상황을 설명했다. 에어비앤비 직원은 예약한 금액을 전부 에어비앤비 적립금으로 환불해 주겠으며 어제 숙박한 금액도 에어비앤비에서 보상해 주겠다며 여러 가지 증거 자료를 메일로 보내달라고 하였다. 역시, 글로벌한 기업은 다르구나. 만족스러운 대처에 마음이 놓이기 시작했다. 처음 예약한 숙소는 결국 묵지 못하는 것으로 결론이 났다. 이제 이다음을 어떻게 하지?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오늘 여기서 하루 더 묵자.

그리고 맨체스터 다녀와서 묵을 에어비앤비를 찾아 예약하는 게 나을 것 같아."


 사실 런던에서의 일주일 일정 중에 맨체스터에서의 하루 일정이 끼어 있었다. 그래서 일정 중간에 맨체스터로 가서 1박을 하고 올 예정이었지만 짐을 옮기는 것도 번거로울 것 같아 에어비앤비는 도착부터 떠나는 날까지 예약을 해놓고 맨체스터에는 간단한 짐만 가지고 다녀올 예정이었다.


 신랑 말대로 이미 호텔에서 하루 묵어버린 상황에서 굳이 11일부터 16일까지의 숙소를 잡을 필요는 없어 보였다. 그리고 당일 체크인 가능한 에어비앤비 찾기도 하늘의 별 따기였다. 게다가 이미 숙소로 고생을 한 터라 숙소 예약에 신중을 기하고 싶었다.


"그래, 그럼 오늘 여기서 하루 더 묵으면서 오늘 하루 동안 천천히 숙소를 찾아보자."


 나의 동의를 얻자마자 신랑이 숙박을 하루 연장하기 위해 프런트로 갔다.




"우리 하루 더 묵으려고 하는데 가능할까?"


"그럼, 가능하지!"


"혹시 이왕이면 지하가 아닌 방으로 옮길 수 있을까?"





 아무래도 신랑은 좁은 지하에 머무르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다행히 지상에 남는 방이 있어 옮겨주겠다고 하였다. 우리는 지하에서 올라와 창문이 있고 캐리어를 놓고도 간단히 간식을 먹을 수 있는 테이블과 의자가 있는 조금 더 넓은 방으로 옮기게 되었다.


 그제야 마음의 여유가 조금 생기는 기분이었다. 지하에서 지상에 올라온 우리 상황처럼 절망 속에 있다가 이제 빼꼼 조금 더 나은 상황으로 올라온 듯했다. 저녁은 근처 레스토랑에서 사 먹기로 했다. 봉골레를 시켰으나 맛은 뭔가 조금 불어버린 해물 칼국수 같았다. 썩 맛있지는 않았지만 분위기가 좋았고 직원들이 친절해 이제야 여행 온 기분이 나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런던에서 사 먹은 저녁 식사

 오후 내내 여러 가지를 꼼꼼히 살펴 여러 에어비앤비 호스트에게 연락을 돌렸다. 예약이 불가하다고 답장을 준 호스트들 마저 우리 사정을 듣고 안타깝다, 대신 사과한다 등 위로의 말을 전했다. 그중 한 호스트가 예약이 가능하다고 대답을 해주었고 우리는 맨체스터에서 하루를 보내고 온 뒤 그 에어비앤비로 체크인하고 일정을 확정했다. 모든 것이 다시 정리되었고 이제 불안한 상황은 모두 사라졌다. 단 하루 사이지만 정말 지옥에서 천국을 오간 기분이었다. 그래도 이 사단 중에 한 번도 큰 소리를 내지 않은 우리라는 것이 감사했다. 이제 자고 일어나면 맨체스터로 떠난다. 다시 한번 여행이 시작되는 기분이라 꽤나 설레는 마음으로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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