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청소를 하다가
에어컨 필터 불이 들어왔다. 오늘보다 더 이전인 것 같은데 모른 척했다. 날이 더워서 잠시라도 작동을 멈추고 쉽지 않았다. 이상하게도 오늘 아침은 눈이 지나치지 못하고 더 선명하게 보였다. 방문을 열고 거실에 나오면서 눈은 에어컨으로 간다. 아무도 없는 거실이 적당하게 시원하다. 인버터 방식의 에어컨은 수시로 켜고 끄는 것보다 일정 온도로 맞혀 두고 계속 가동하는 게 전기세 폭탄을 피한다고 해서 최대한 켜두고 생활한다.
밤새 비가 한바탕 내리고 부슬비가 내리길래 오늘은 환기도 하고 필터청소도 하기로 했다. 창을 모두 열고 에어컨 필터를 분리해서 욕실에서 세척하고 욕실 입구에 수건을 깔고 선풍기를 틀어뒀다.
우리 집은 10년 된 아파트지만 방마다 에어컨 설치를 할 수 있게 되어 있어 거실에 하나, 아이들 방에 1대씩 이렇게 3대가 있다.
이사를 하기 전 21평에 살 때 아이들이 커가면서 우리 부부는 거실 생활을 많이 했었다. 여름에 많이 더우면 거실에서 지내지 하며 안방은 에어컨을 포기했다. 다른 집은 안방에 필수라는데 우리는 반대다. 근처에 비슷한 연식이라도 작은방에 설치가 안 되는 집들이 있더라.
오랜만에 에어컨을 끄고 자연 바람을 맞는다. 습하고 끈적하다. 바람이 많이 불지도 않는다. 커피를 한 잔 내려서 소파에 앉았다. 덥네. 습관처럼 뜨거운 커피를 들고 앉은 나를 보고 피식 웃음이 난다. 이렇게 더운데 뜨거운 커피냐? 작은 선풍기를 얼굴로 향하고 커피를 마신다. 그 바람이 그래도 시원했다. 하길 잘했어. 계속 눈에 띄는 점검등을 봤다. 세척된 필터를 끼우기 전까지 램프가 커져있을 것이다.
빗방울이 난리다가 폭풍처럼 몰아친다. 열어 둔 창들을 순서대로 닫는다. 덥다. 창은 닫고 에어컨은 킬 수 없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또 버틸만하다. 언제부터 에어컨을 팡팡 틀었나? 사실 아직도 마음 놓고 틀어 보지는 못했다. 내가 시원하게 지내면서 한편으로는 다음 달 전기요금이 걱정된다.
아이들이 지금보다 어리던 여름에는 에어컨이 있는 공간에 가족이 모두 모였다. 그래봐야 4명이지만 지금은 대부분 2~3이다. 남편도 바쁘고 큰아이도 기숙사에 가 있다 보니 아들은 방에서 게임을 하고 나는 거실에서 글 쓰고, 책 읽고 티비도 본다. 둘이 있는데 에어컨 2대가 돌아간다. 그래도 내가 거실에 있으니 아이가 한 번씩 나와 이런저런 수다도 떨고 같이 넷플릭스 영화도 본다. 만약 안방까지 에어컨이 있다면 모두 하숙생처럼 지낼 것 같다. 머지않아 더 개인적으로 살 것 같다.
남편은 집이 넓어져서 쓸쓸하다고 했다. 이사 전에는 다 같이 지내는 시간이 많았는데 이사를 하고는 아이들은 자기 방에 들어가 있다. 어느 날은 네 식구가 한집에 있지만 모두 다른 공간에 있다. 혼자 있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나를 고민하는 시간이 생긴 것이다. 개인이 먼저가 되었다. 집보다 아이들이 자라서 자연스럽게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공간이 필요하다. 엄마의 공간이 부엌이 아닌 방이면 좋겠다. 왜 부부는 같은 방을 써야 할까? 어느 순간은 오롯이 혼자 있고 싶다. 누구의 방해나 간섭 없는 시간이 필요하다 느끼면서, 또 각방을 쓴다는 부부를 보면 굳이 왜?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마음이 왔다 갔다 아직은 모르겠다. 그래도 내 방이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