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과제하면서 읽은 책의 서평 남겨보려 해요.
과제 리스트를 살펴보면서 ‘전쟁 같은 맛’으로 최종적으로 선정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제목이었다. 처음 책이 출시되었을 때 yes24에 홍보 배너를 보고 이 책을 읽어봐야겠다 생각했었다. 당시 나는 미국계 한인 작가들의 책에 관심이 있었고 이 책은 소설이 아닌 논픽션이라 순위가 계속 뒤로 밀려났다. 대학교수인 저자가 어머니의 회고록을 쓴 것이기에 조금 딱딱하고 무거울 것 같았다. 과제를 위해 책장을 펼치고는 그간의 고민이 무색하게 책을 읽어 나갔다. 논픽션이지만 소설 같고 책의 내용들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었다. 책을 읽고 출판사에 올라온 보도자료를 보면 저자 외 가족들은 사실과 다르다며 소설 같은 이야기라고 주장하는 것 같기도 하다. 또 한편으로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저자와 그 지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전쟁 같은 맛이라는 제목이 한 번 더 와닿았다. 세상은 우리가 아직도 성 노동자, 기지촌 등 밝지 않은 곳은 더 아래로 묻어 두려 한다는 걸 확인했다.
"전쟁 같은 맛"은 그레이스 M. 조가 쓴 책이다. 작가는 사회학, 인류학 교수이며 선원인 백인 아버지와 기지촌에서 일하던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이다. 외국인 혐오가 심했던 워싱턴주의 작은 마을에서 자랐다. 열다섯 살 때 활동적이던 어머니의 조현병 발병을 경험하게 되면서 어머니의 존재와 생애가 개인적, 학문적 인생의 지표가 되었다.
작가 자신의 가족사와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로 한인 이주여성인 그레이스의 어머니 군자를 중심으로, 전쟁, 이민, 가족 관계, 조현병(정신질환)에 관해 이야기한다. 주요 인물인 어머니 군자는 이민 1세대 여성이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겪은 후 기지촌에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가고 백인 남성과 결혼하여 미국으로 이주해 또다시 힘든 환경에서 살아간다. 저자의 어머니인 군자의 이야기를 통해 조현병을 이야기하며 이 병이 그녀의 삶과 가족 관계에 미친 영향을 기록하고 연구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자신의 가족사를 돌아보고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가족의 이야기를 하나씩 재조명한다. 작가는 어머니의 삶과 경험으로 이민자가 겪은 인종차별, 권력 구조, 가족의 중요성을 탐구한다. 이 책은 어머니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이어지고 저자인 그레이스의 개인적 경험을 통해 개인의 문제이지만 나아가 사회문화적 문제로도 바라보게 되며 이 분야를 연구한다. 어머니의 조현병이 역사적, 사회적 환경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며, 개인의 정신질환을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대학교수라는 저자의 직업이 책 출간으로 이어진 것은 아닐까?
이 책의 제목이 왜 전쟁 같은 맛일까? 책을 접하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이다. 남편은 그저 호기심을 주려고 그러는 것 아니냐? 진짜 전쟁이 뭔지 아냐고 물었다. 남편은 요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세상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나도 표지만 보고는 알아보긴 어려웠다. 책장을 넘기다 그레이스와 엄마 군자의 대화 중 엄마 군자가 어린 시절 겪었던 전쟁 구호품 분유를 떠올리며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에서 어렴풋이 제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엄마, 음식은 잘 잡수고 계세요?” 내가 물었다.
엄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단백질은요?”
엄마는 다시 고개를 끄덕이고, 코를 킁킁거렸다. “나한테 분유를 주더라.”
“아, 그래요?” 나는 놀란 척하며 말했다.
“그 맛은 진절머리가 나.” 엄마는 말했다. “전쟁 같은 맛이야.”
p.32
그레이스의 어머니 군자는 눈부시게 아름다웠고 야성미와 카리스마가 넘쳤던 사람이었다. 저자가 열다섯 살 때 활발하던 어머니가 조현병 발병으로 ‘오키’라는 목소리를 듣기 시작하면서 세상에 문을 닫고 소파에 몸을 맡기고 집에만 있는다. 나는 집에만 있던 엄마 군자를 일본에서 한국으로 다시 미국으로 계속 의도치 않게 이동하였던 삶의 불안감이 내 집 소파에 몸을 맡기게 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봤다.
엄마는 마치 “왔던 곳으로 돌아가”라는 외국인 혐오자들의 말을 따르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당신이 온 곳을 짚어내기란 쉽지 않았고, 그래서 엄마는 돌아갈 곳이 없었다. 엄마는 일본 제국주의 치하에 일본으로 강제징용된 한국인 가정에서 태어났고, 해방 후 한국으로 돌아가 전쟁과 분단, 미국의 점령을 겪은 뒤 미국인 아버지와 동침했다는 죄로 추방당했다, 엄마는 내면으로 움츠러들며 당신을 이 갈등의 장소로 다시 데려가, 자기 존재를 짓이겨 무無가 되어 사라져 버리고 싶어 하는 것만 같았다. P.20
엄마의 삶은 추방의 연속이었다. 유년기는 식민 지배와 전쟁으로 점철되었고, 만년엔 조현병과 씨름하며 홈리스가 될 뻔하기까지 했다 단 하루라도 머물 곳이 없었던 적은 없지만, 당신 집이 없어 임시 거처를 전전하거나, 오빠네나 우리 집에서 같이 사는 등 늘 불안정한 처지였다. P.32
이 외에도 책 속 구절을 조금 담아 본다. 다른 책들과 다르게 문장을 수집한다거나 문장이 아름답기보다 책 속 구절 중 기억에 남는 부분을 함께 기록해 본다.
사는 동안 내게는 적어도 세 명의 엄마가 있었다. P.16
첫 번째는 내 유년기의 엄마. 이 아름다운 엄마를 나는 너무나도 사랑하며 따랐다. 카리스마 넘치고 노련한 미시 정치가였던 엄마는 아버지 고향 농촌 마을에서 인정받기 위해 지치지도 않고 투쟁을 벌였고 그렇게 해서 아이들의 삶은 더 나아졌다. P.17
입양 기관은 부모가 없는 아이들에게 가정을 찾아주기보다, 자녀를 원하는 가족에 아이를 찾아주기 시작하면서 수많은 학국인 입양 아동을 서구 국가로 끊임없이 공급했다. 한 전직 사회복지사는 이러한 관행에 대해 공개적으로 발언했다. 내 일을 잘못 이해한 거죠. 그래놓고 생모가 아이를 포기하게 만드는 게 내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많은 한국인은 미국을 빈곤이나 인종차별이 없고, 누구나 크게 성공할 수 있는 신화적인 장소라고 상상했다. P.59
아버지는 태어난 지 1년 만에 부친의 실종을 겪었고, 모친 그레이스 재혼할 때까지 10년 동안 홀로 아이를 키웠다. 아버지가 엄마에게 끌렸던 건 엄마를 향한 것이었던 동시에 그만큼 당신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이기도 했다. 왜 엄마와 결혼했는지 물었을 때 아버지는 내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네 엄마는 네 오빠랑 둘만 있었잖아. 그 애한테 제대로 된 가정을 만들어주고 싶었단다.” 아버지는 눈물을 가까스로 삼켰다. P.109
10여 년이 흐른 뒤에야 나는 엄마의 가장 큰 소원이 가수가 아니라 교육받은 사람이 되는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P.111
외가 식구들 중 아들한텐 고등학교와 대학에 진학하는 특권이 주어졌지만, 엄마는 어렸을 때부터 여자는 남자를 위해 봉사하고 가족을 위해 희생해야 한다고 배웠다. P.112
엄마의 유일한 인생 목표가 자녀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는 것이었음을 알게 되면서 내가 느낀 개인적인 부채감도 있었지만, 다른 한편으론 사회가 엄마에게 진 빚도 있었다. 음식을 만들고, 화장실을 청소하고, 자녀를 양육하는 이민자들에게 미국 사회가 진 빚. 국가 안보의 최전선에서 제 몸과 성노동을 바쳤지만, “노고에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단 한 번도 듣지 못한 수많은 젊은 여성에게 한국 사회가 진 빚도,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이들은 감사의 말을 듣기는커녕 오히려 빚을 진 사람들에게 사회악의 근원 취급을 받고, 근절의 대상이 되었다. P.116
멀리 떨어진 대학에 진학하며 두게 된 거리, 새로 접하게 된 생각과 비판적 사고는 결국 엄마의 조현병이 생기게 된 원인을 찾는 길로 이어졌다. 새로운 것을 배워가면서 내가 품은 한은 엄마의 한과 더 끈끈히 엉켰고, 감정적 응어리가 쌓이고 또 쌓이며 내가 살면서 내리는 결정에 더 많은 힘을 실었다. 우리의 한을 풀어내려 할 때마다, 나는 1986년으로 되돌아갔다. 열다섯살에 나는 사람들이 엄마를 한 번 쓰고 쉽게 내버릴 수 있는 존재대로 된 기회를 가져보지 못한 채 이 땅 위를 유령처럼 떠돌게끔 방치됐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P.236
사람이 아닌 사물 취급을 받으며, 엄마는 당신 삶이 쓸모없다는 메시지에 둘러싸여 있었음이 틀림없다. 그건 주변 사람들이, 한국 사회가, 심지어 당신의 가족이 보낸 메시지였다. 엄마는 한국을 탈출했지만 미국 사회에서도 당신이 쓸모없는 존재로 여겨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회색빛 나라, 이 폭력적인 위탁 가정....우리 목을 흙으로 채우고, 우리가 그걸 삼키는 법을 배우면 욕심이 많다고 비난하는 이 땅. P.333
치즈버거는 생존과 종속의 복합적 상징물이었고, 한국인들이 굶주리는 와중에 미국인들은 남겨서 버릴 수도 있는 사치품이었다. 엄마에게 치즈버거는 미국이 줄 수 있는 모든 희망과 가능성을 상징하기도 했다. 미국의 제국주의는 엄마의 무의식에 선명한 자국을 남겼고, 음식에 대한 갈망으로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동시에, 엄마는 음식을 즐기면서 군사화된 정신세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덜어낼 수 있었다. 치즈버거는 병증인 동시에 치료법이었다.
나는 엄마를 위해 요리하는 여러 해 동안 나 자신의 정신적 탈식민화 과정을 거쳤다. 우리가 함께 나누었던 식사는 감정적으로 힘에 부쳤던 대학원 일을 버텨낼 수 있게 나를 보살펴주었다. 엄마가 나를 보살폈던 것이다. P.434
<전쟁 같은 맛>은 한국 현대사의 역사를 개인의 삶을 통해 보여준다. 또한, 개인의 정신 질환을 개인의 문제로만 치부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이야기한다. 나는 몇 년 전부터 성평등, 성인지에 관심이 생겼다. 이 책은 내가 흥미롭게 보는 분야들이 책 한 권에 정리가 되어 있어 어렵지 않게 한 권을 빠르게 읽었다. 한편으로는 이 모든 것을 한 사람의 가족에게 있던 일이라는 것에서 마음이 아프다. 현재는 그 당시보다 나아진 현실이지만 아직도 우리는 아이들을 입양 보내고 군부대 내 성폭행, 혼인빙자 관련 사건들을 심심치 않게 본다. 나의 일이 아닌 남의 일이라 취부 했지만 어쩌면 내 가족 지인들에게 있었던 일이 아닌지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겠다. 개인적인 일이라면 한없이 개인적이지만 이것이 수면 위로 올라와 공론화가 되면 너무나 큰일이 되는 것인데 이 부분을 용기 내어 이야기 한 저자가 멋있고 고맙다. 개인의 문제에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더 좋은 세상, 뒤로 퇴행하는 세상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최근에 읽은 책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다. 독후감을 이렇게 4장이나 쓰기도 해서 책을 덮었다 다시 펴는 일이 많기도 했지만 내용도 나쁘지 않았다. 오래된 전공서적보다 현시대에 있는 책이라 과제를 하면서도 불편하거나 어렵지 않은 마음으로 했다. 책의 내용은 현재도 진행 상황이니 조금 씁쓸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우리 엄마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 반대로 우리 아이들은 나를 어떻게 바라보고 어떤 모습으로 비쳐지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개인에서 사회로 넘어갔다가 다시 개인으로 돌아온 나는 아직 평범한 40대 엄마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