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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당근 Dec 01. 2021

제주 한달살이에서 제일 먼저 한 일

제주에 도착해 공항을 나서니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공항에서 한 시간 넘게 걸려 호텔(길게 머물 숙소의 날짜가 맞지 않아 며칠간 묵기 위해 구했던 숙소)에 도착했을 땐 날은 이미 캄캄했다. 방에 들어가 밖을 내다보니 이따금씩 차들이 지나가는 도로만 휑하게 보일 뿐 예약할 때 사이트에서 봤던 바다는 보이지도 않았다. 어두워서 그럴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제주에 와 있는 것인지 실감이 나진 않았다.

혼자 여행하는 건 처음인 데다 사실 뭘 할지 아무런 계획도 준비도 없이 왔기에 이 밤에 뭘 해야 할지 몰라 살짝 난감했다. 친구와 함께였다면 당장 저녁을 먹을 맛집부터 찾아갔겠지만, 근처에서 한 끼를 대충 때우고(절대 거르는 법은 없다) 얼른 들어왔다. 번화가에 자리한 숙소는 아니라지만 제주의 밤은 왜 이렇게 일찍부터 불빛 하나 없이 캄캄한지 더 돌아다니고 싶어도 다닐 수도 없었다.

서울에서라면 초저녁이라 할만한 시간, 숙소에 들어와 다음 날 일정이나 세우자 싶었다.     


‘내일 뭐부터 하지?’


제주에 왔으니 푸른 바다부터 봐야 하지 않을까. 요즘 뜨는 핫플이 어디라더라? SNS를 둘러보며 다른 이들이 올린 멋진 사진 속 풍경과 맛있다는 식당 등이 어디인지 검색했다. 며칠 머물다 가는 여행이라면 꼭 가고 싶었던 곳 위주로 일정 짜기가 오히려 쉬울 것 같은데, 내게 한 달이라는 시간이 있다고 생각하니 이 시간을 어떻게 채워 가야 할지 더 고민스러웠다.

그러다 문득 도서관이 생각났다. 짧다면 짧은 한달살이지만 생활하는 데 꼭 필요한 물건들을 챙기다 보니 짐이 많아져 읽으려고 가져온 책은 두 권이 전부고, 기본적인 제주 여행책 한 권 없었다.

물론 인터넷으로 여행에 필요한 온갖 정보를 얻을 수 있다. 하지만 뭐든 책으로 먼저 배우는 것이 편안하고 익숙하기 때문일까. 인터넷으로 맛집이나 핫플, 교통편 등의 정보들을 많이 찾긴 해도 관련 책을 한 권이라도 전체적으로 쭉 훑어보아야 조각조각 흩어져 있던 그 단편적인 정보들이 전체적으로 윤곽이 잡히고 정리가 되는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검색해 보니 숙소 가까운 곳에 시립 도서관이 있었다. 제주도민이 아니어도 회원가입을 하면 얼마든지 도서 대출이 가능하고, 제주도 곳곳에 있는 공공도서관들을 모두 이용할 수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숙소 창문 밖으로 저만치 멀리 푸른 바다가 보였다. 제주에 왔구나 이제야 좀 실감이 났다.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동네 마실 나가듯 간편한 복장으로 도서관으로 향했다. 도서관은 잘 가꾸어진 공원 안 한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도서관 앞에 야자수라니! 그래, 여기 제주지?’     


쭉쭉 뻣은 야자수의 이국적인 풍경에 또 한 번 제주임을 실감하며 안으로 들어갔다. 요즘은 제주에 잠시 살러 온 외지인들도 도서관을 많이 이용하는지 직원분이 한달살이 왔냐고 물으시며 친절하게 도서관 이용 방법을 알려 주셨다.

제주 여행의 길잡이가 될 여행책과 가볍게 읽을 에세이, 눈에 띄는 그림책을 골라 잠시 읽다 갈 요량으로 햇살 가득 들어오는 창가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귤나무에는 노랗게 익은 귤들이 올망졸망 달려 있었다. 게다가 창문을 살짝 여니 들려오는 새소리.     


‘이게 뭐라고,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책을 빌려 숙소로 오는 , 제주에  도착했냐며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한달살이 첫날 무얼 하고 있냐고 묻길래 도서관에 다녀오는 중이라 했더니 친구가 피식 웃었다.     


“뭐야, 제주에 가서 겨우 처음 찾아간 곳이 도서관이야?”

“그러게, 갈 곳 천지인 제주에서 도서관부터 왔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주 멋진 핫플에 다녀온 것처럼 기분 좋은 제주 첫 나들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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