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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당근 Dec 07. 2021

울 엄마 미역국보다  맛있었던 보말국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는 레지던스 호텔에 머물고 있지만, 제주에 와서 며칠 간은 미니 냉장고와 커피포트 하나만 달랑 있는 호텔에 머물렀다. 코로나 때문인지 호텔 조식은 제공되지 않아 삼시세끼를 다 사 먹어야 했다.

처음에야 맛집 많은 제주에서 이것도 먹고 저것도 먹어 보고 좋겠다 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혼자 하루 세끼를 다 사 먹는 일은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그쯤 되면 하루 두 끼로 때울 수도 있겠으나 그동안 엄마가 해 주던 세끼를 꼬박꼬박 얻어먹고 몇십 년을 살아온 터라 아침을 거르면 기운이 없으니 어쩌겠나. 집 나오면 고생이라더니, 아무튼 빵이라도 사 두었다가 아침은 꼭 챙겨 먹었다. 그나저나 제주엔 어찌나 빵 명장이 많은지, 어딜 가도 무슨 명장의 베이커리, 몇 년 연속 맛집 블루리본을 받은 베이커리 등 자타가 인정하는 빵순이로서 가야 할 빵집도 먹어 봐야 할 빵도 많긴 했다.

아침을 빵으로 부실(?)하게 먹었으니 점심은 맛집에서 든든하게 먹겠다는 일념으로 뚜벅이임에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거리도 마다하지 않고 여기저기 열심히 찾아다니며 먹었다. 그런데 다니다 보니 혼자서   있는 식당은 한계가 있었다. 요즘이야 혼밥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혼밥   있는 음식의 종류도 많아졌지만 아예 2 이상으로 파는 음식도 많아 내가 선택할  있는 식사는 단품으로 먹을  있는 음식이 대부분이었다. 누군가는  서서 먹는 흙돼지 집에 씩씩하게 들어가 혼자서도 고기를 지글지글 구워 먹거나 횟집에서 모듬회에 매운탕까지 시원하게 먹고 다니기도 하겠지만, 혼밥은 주로 패스트푸드 정도로 했던 초보 입장에선 그런 음식은 아예 리스트 밖에 있었다.  기준에서 혼자 가서 먹을  있는 맛집을 찾다 보면 흙돼지 돈가스나 수제 버거,  요리와 분식 정도?

원래 그런 음식을 좋아하는 편이라 처음엔 ‘와우! 비주얼 죽이고. 맛집 맞네. 맞아.’ 하며 열심히 사진을 찍어 대며 맛있게 먹었다. 그런데 며칠 매끼를 그리 먹으니 배는 불러도 속이 편안하게 채워지는 느낌이 아니었다.  


‘아, 엄마가 끓여 주는 된장찌개에 밥 먹고 싶다.“


매일매일 먹어도 질리지 않는(사실 집에선 지겹게 또 이 찌개냐 반찬이냐 하며 밥투정을 하는 철딱서니였다) 집밥이 그리웠다. 불과 며칠 만에. 그렇게 해서 그날은 구경이고 맛집이고 됐고, 우선 밥이랑 뜨끈한 국물을 먹어야겠단 생각으로 숙소를 나섰다. 관광지가 아닌 그냥 동네에 모여 있는 여러 식당 중 한 곳을 적당히 골라 들어갔다.

동네 청년들 모임인지 동창 모임인지 대여섯 명의 남자들이 모여 왁자지껄하며 점심부터 뭔가 큰 전골 요리에 소주를 한 잔씩 하고 있었고, 점심시간이 지난 시간이어서일까 다른 손님들은 없었다.

순간 잘못 들어왔나 싶었지만 주방에서 ” 명이세요?“라고 묻는  목소리에 얼떨결에 혼자라고 대답하곤 엉거주춤 구석 자리에 앉았다.     


”혼자는 보말국밖에 안 돼요.“


주인아주머니의 단호박 같은 목소리.

메뉴판을 보니 오리주물럭, 오리두루치기, 오리탕, 돼지두루치기, 보말 칼국수, 보말국, 육해군된장찌개 등 뭔 맥락인가 싶게 다양한 음식을 팔고 있었지만 내가 고르기도 전에 내가 먹을 메뉴가 정해졌다.      


’그래, 제주 하면 보말국이지.‘     


사실 선택의 여지가 있었어도 보말국(보말이 들어간 미역국을 보통 보말국으로 부르는 모양이다)을 골랐을 거라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보말국을 주문했다.

큰 통에 미리 끓여 놓고 파는 건지 패스트푸드보다 빠르게 나온 보말국.

잘 들어온 것이 맞는지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길로 음식을 스캔하며 먼저 국물부터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었다.     


”오~“     


절로 감탄사가 나오는, 부드러우면서도 깊은 감칠맛이 입안에 가득 퍼졌다. 흰 쌀밥에 먹는 부드러운 미역국과 적당하게 익은 배추김치와 아삭한 석박지, 그리고 새콤달콤한 오이무침에 짭조름한 멸치볶음까지 뭐 하나 나무랄 데 없는 맛이었다.

그때부터는 가게 안의 아저씨들이 큰 소리로 웃고 떠들거나 말거나 ’고독한 미식가‘의 주인공처럼 ’정말 맛있어! 이건 마치 집 나간 오감이 돌아오는 듯한 맛이구만.‘ 내심 감탄하며 혼자만의 만찬을 즐겼다.

엄마가 해 주는 집밥이 그리워 들어간 식당에서 먹은 그날의 보말국은, 비밀이지만 울 엄마의 미역국보다 아주 조금 더 맛있었다.      


p.s 엄마, 미안! 내가 며칠 너무 느끼한 것만 먹고 다닌 탓일 거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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