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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쓰당근 Jan 17. 2022

오늘의 바다

살다 보면 알게 되는 것

제주 한달살이를 하며 가장 큰 비용이 든 것은 숙소비였다. 비용에 구애받지 않는다면야 좋은 시설에 경치까지 완벽한 비싼 숙소를 고민 없이 고를 수 있겠지만, 지금은 모아 둔 돈을 쏙쏙 빼먹고 사는 백수이니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 달 치의 비용을 생각하면 마냥 모든 것이 만족스러운 숙소를 고를 수만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숙소에선 잠만 자고 한 달 내내 밖에만 쏘다닐 생각도 없었기에 편안한 휴식을 할 수 있을 만큼의 아늑한 공간이어야 했다. 그렇기에 숙소를 구하며 ’이것만은 꼭‘ 하며 고수했던 조건이 하나 있었다.


’방에서 바다가 보여야 할 것.‘


당연하겠지만 바다가 보이는 숙소는 시티뷰 숙소보다 하나같이 가격이 비쌌고, 그나마 적당한 가격의 바다 뷰의 방들은 일찌감치 예약이 차 구하기도 쉽지 않았다. 사방이 바다인 섬에서 나가기만 하면 널린 게 바다인데, 그냥 포기하고 가성비 좋은 방을 골라야 하나 싶기도 했다. 하지만 매일 아침 잠에서 깨면 바다가 보이는 창가에 앉아 따뜻한 커피 한 잔 마시는 작은 호사 정도는 누려야 ’제주‘에 있음을 실감하며 서울에서의 일상과는 다른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 같았다.

여러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수십 개의 숙소를 살펴보고 고심한 끝에, 바로 집 앞의 바다는 아니지만 창밖으로 바다가 꽤 잘 보이는 방을 선택했다.


그래서 나는 방에서 멀찍이나마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방에서 제주 한달살이를 하게 되었다.

비록 여러 건물 뒤편으로 배경처럼 보이는, 시야가 뻥 뚫린 바다 뷰는 아니었지만, 방에서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으며 편안하게 언제든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일상이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그리고 그 방에서 하루하루 보내며 알게 되었다. 바다의 색이 매일매일 다르다는 걸. 흰 구름이 뭉게뭉게 떠 있는 어느 날의 바다는 연한 민트색이었고, 구름 한 점 없이 화창한 파란 하늘의 어느 날 바다는 쨍하고 청량한 파란색이었다. 구름이 잔뜩 낀 날에는 바다색도 흑백 영화의 한 장면처럼 회색빛이 되었다. 또 이른 아침의 바다는 푸른빛으로 반짝였다가 한낮이 되면 보석을 뿌려놓은 듯 온통 은빛으로 일렁였다. 해 질 녘의 바다는 파스텔 톤의 연보라색 물감이 한 방울쯤 섞인 듯한 하늘빛이 되었다.     

바다의 색은 마치 하늘과 세트인 양 그날그날의 날씨에 좌우되는 하늘의 컨디션에 따라 시시각각 변해 가며 ’그 바다가 그 바다‘가 아닌 여러 가지 다른 모습이었다.



생각해 보면 동해 바다와 서해 바다의 색이 다르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없듯이 바다의 색이 다 다르다는 걸 이제야 새롭게 알게 된 건 아니지만, 살면서 이렇게 바다를 오래도록 바라보고 생각하며 실감해 본 적이 있던가.

알게 되었다고 해서 ’유레카!‘라고 외칠 대단한 일도 아니고, 인생에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닌 그저 새로운 환경에서 살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되고 느끼게 된 일상의 소소한 발견이 여행자의 마음을 더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다.

나이를 먹을수록 세상에 그렇게 궁금한 일도 새로울 일도 없어진다고들 하지만 앞으로도 살아가면서 새롭게 알게 되고 느끼게 되는 작은 것들에 무감각해지지는 말아야지 생각하면서, 이런 낯선 일상과 경험을 가져다주는 여행을 오길 참 잘했다,고 바다를 보며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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