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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가레보시 Mar 23. 2024

장송의 프리렌

시간의 상대성 속에서 움직이며 되살아나는 장면들


지난 2023년부터 올해 2024년 1분기까지, 가장 주목받았던 TV 애니메이션을 꼽는다면 <장송의 프리렌>을 꼽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시간의 상대성 속에서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고,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주제 의식을 영상 예술로서 화면에 옮기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애니메이션으로서’ 정적인 만화의 순간들을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도록’ 그려내는 실력적인 부분까지, 모나지 않은 곳이 없었다. 물론 아쉬운 점이 전혀 존재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1급 마법사 시험 편은 나의 취향에 그다지 맞지 않는 점이 여럿 있었지만(이는 후술하도록 하겠다), 그마저도 작화라는, 애니메이션의 오리지널리티와 이를 훌륭하게 보좌하는 연출을 통한 정석적이고 화려한 화면 구성으로 눈감을 수 있도록 만들었다. 따라서, 나는 생각한다. TV 애니메이션 <장송의 프리렌>은 원작 기반 애니메이션의 모범과도 같다. 이 작품이 선사하는 감동은, 시간의 상대성이 자아내는 각본적인 감동보다도, 원작의 장면들을 생생하게 재창조하는 애니메이션 예술의 정신적 감동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글에서는 바로 그것에 대하여 풀어나갈 것이다.


시간의 상대성에 내재된 삶의 의미

그럼에도 작품의 주제에 대한 이야기를 소홀히 한다는 것은 제작자에 대한 예의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TV 애니메이션 <장송의 프리렌>은 시간의 상대성과 그 안에서 탄생하는 수많은 삶들의 방향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작품이다. 엘프와 인간의, 각각 상대적인 시간 감각 속에서, 그 차이를 깨닫고 끝내 상대성을 뛰어넘은 삶의 본질과 의미를 찾아내는 것, 그것이 바로 <장송의 프리렌>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이다. 이를 강조하기 위해 작품 초반의 시간은 야속할 정도로 빠르게 흐른다. 작품의 시작부터 마왕을 토벌하기 위한 모험은 끝이 나고, 이후 수십 년 간의 세월은 단 수분 동안 흘러간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비정하지 않다. 오히려, 앞으로 이어질 마음들이 표현되도록 만드는 시발점이 된다. 그렇다면, 빠르게 흐르는 시간을 통해 찾아내는 삶의 의미, 본질이란 무엇인가? <장송의 프리렌>은 이야기한다. 삶이란 곧 기억이라고. 우리는 기억하고, 기억된다. 기억이야말로 삶의 대명사이다. 생물학적으로는 삶을 다했더라도, 우리는 기억 속에서 삶을 이어간다. 프리렌의 모험은 극명한 시간의 상대성을 통해 그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프리렌은 기나긴 수명을 갖고 있는 엘프로서, 100년을 사는 것을 기적에 가까운 장수로 받아들이는 인간과는 차원을 달리하는 시간관념을 갖고 있다. 그녀에게 있어 수십 년 전은 최근에 지나지 않지만, 인간에게 있어 수십 년이란 강산이 수 번은 변화하는 세월이다. 그런만큼, 프리렌에게 있어 동료들과 함께한 10년 간의 모험은, 이후 홀로 떠돌며 동료들에게 무관심했던 수십 년의 세월은 찰나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수십 년 만에 재회한 동료들과의, 혜성을 다시 보기 위한 모험과, 그 끝에서 맞이하는 용사 힘멜의 죽음은 프리렌을 변화시킨다. 힘멜의 죽음을 계기로 프리렌은 그를 기억하기로 결심한다. 그것은 곧 힘멜이라는 존재가 영원히 살아가도록 만들겠다는 결심과도 같다. 기나긴 수명을 지닌 엘프인 프리렌이 힘멜을 기억하는 한, 그의 존재는 영원히 숨쉬게 되리라. 이를 실현시키기 위해 <장송의 프리렌>이라는 작품이 택한 것은 회상, 즉 기억을 기반으로 한 현재와 과거의 오버랩이다. 그리하여, 프리렌은 마왕을 물리치기 위해 ‘함께’ 떠났던 모험을 다시금 떠나게 된다. 여기서 <장송의 프리렌>은 흥미로운 수를 둔다.


<장송의 프리렌>은 프리렌의 결심을 계기로 기억의 범위와 함께 그 연관고리까지 늘리는 시도를 한다. 프리렌은 힘멜을 중심으로 하이터, 아이젠과 같은 동료들과의 추억도, 그들과 ‘함께하며’ 얻었던 수많은 경험과 만남도 전부 기억하고자 한다. 그런 프리렌을 뒤따르는 존재들도 있다. 하이터의 제자이자 양녀와도 같은 페른과, 아이젠의 제자이자 양자와도 같은 슈타르크, 이들의 존재로 기억의 연관고리는 늘어나고, 삶의 본질과 의미 역시 명확해진다. 그 끝에서 기억의 방식은 순환한다. 프리렌과 페른, 슈타르크 세 사람은 기억한다. 그렇게 그들은 살아간다. 여기서 엘프의 특성은 ‘기억함’을 ‘기억됨’으로 이어낸다. 기나긴 수명을 지닌 프리렌은 먼 훗날 페른과 슈타르크가 떠나가도 그들을 기억할 것이다. 결국 삶이란 사동과 피동의 순환이다. 기억하는 자들은 기억된다. 그렇게 우리는 삶을 이어낸다. 우리 인간은 흐르기에 아쉬우면서도 값진 삶을, 기억해 붙잡아보려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TV 애니메이션 <장송의 프리렌>은 그러한 인간의 본능을 판타지로 미화하여, 빠르게도 지나간 저마다의 이야기를 새삼스레 돌아보게 한다.


원작 기반 애니메이션이라는 질문에 대한 모범 답안

그럼에도 <장송의 프리렌>이 훌륭한 이유는 앞서 이야기한, 주제에 대한 미화적 표현보다도, ‘애니메이션’이라는 예술 플랫폼에 대한 탁월한 이해도에 있다. 주제의 표현이 흔들릴 때에도, 애니메이션의 정체성만큼은 결코 흔들리지 않고 작품을 지탱한다. 그 정체성이란 바로 작화이다. <장송의 프리렌>은 그중에서도 ‘원작 기반 애니메이션’이라는 질문에 대한 모범 답안과도 같은 작화를 선보이고 있다. 오리지널 애니메이션의 작화와 원작 기반 애니메이션의 작화에는 중대한 차이점이 있다. 개성 발휘의 선이 바로 그것이다. 전자에서 작화적 개성의 선은 자유롭다. 처음부터 끝까지 제작진에 의해 자유롭게 컨트롤 될 수 있다. 트리거의 애니메이션들을 그 예시로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후자는 그렇지 않다. 원작이 엄연히 존재하는 한, 작화의 개성은 원작의 분위기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발휘되어야 한다. <장송의 프리렌>의 제작진들은 그 사실을 정확하게 캐치해냈다. <장송의 프리렌>은 분명 타 애니메이션들에서는 감상하기 힘든 다양하고 개성적인 작화들이 그려져 있다. 하지만, 그들은 어떤 순간에도 선을 넘지 않는다.


<장송의 프리렌>의 작화는 전부 원작 속 장면들을 강화하고 보완하여 효과적으로 화면에 옮겨내기 위한 의도가 담겨 그려지고 있다. <장송의 프리렌>의 작화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강화’와 ‘보완’이다. 제작진은 정지컷으로 이루어진 원작 만화의 장면들을 영상화하면서, 어떻게 하면 그 장면들을 애니메이션적으로 가장 돋보이도록 만들면서도 원작을 해치지 않을 수 있을지에 대하여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 고민에 대한 결과가 앞서 이야기한 키워드들이다. 제작진은 원작의 좋은 장면들을 ‘강화한다’. 정지된 컷에 단순한 움직임을 불어넣는 것에 그치지 않고, 더 자연스럽고 인상적인 움직임을 통해 시청자를 매혹한다. 대표적인 장면으로 페른과 슈타르크의 사교 댄스 장면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원작 속 하이라이트 장면에 움직임을 불어넣음과 동시에, 그 움직임을 극한까지 세공한다. 어떻게 하면 더 실제와 같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춤을 그려낼 수 있을지 줄곧 고민한 티가 물씬 난다. 동시에, 보완도 이루어진다. 원작에서는 잠시 스쳐나갈 뿐이거나, 빈약했던 장면들을 화려하게 되살려낸다.


액션 장면들을 그 예시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원작 만화 <장송의 프리렌>의 액션은 그다지 흥미를 불러 일으키지 못한다. 이야기를 진행시키기 위한 최소한의 연출만이 존재할 뿐, 액션으로서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지는 못한다. 그러나, TV 애니메이션 <장송의 프리렌>은 그렇게 버려진 액션마저도 소중하게 건져올려 되살려낸다. 흥미를 불러 일으키지 못하는 액션을 눈길을 사로잡는 화려한 기법들로 사실상 재창조하여 영상화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놀라움을 금치 않을 수 없다. 여기서 우리는 깨달을 수 있다. TV 애니메이션 <장송의 프리렌>이 추구하는 것은, 원작에서 이어지는 주제보다도 애니메이션 그 자체라고 할 수 있는 작화를 원작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최대로 구현해내는 작업이라는 것을. 더 대표적인 예시와 함께 깊이 들어가보자. 사실 <장송의 프리렌>의 2쿨 ‘1급 마법사 시험 편’은 재미없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주술회전>의 교토 대 도쿄 학교 대항전이 재미없는 것과 비슷한 이치이다. 진행은 없고, 훗날 활약할 새로운 캐릭터들의 소개를 겸하며 끝없이 벌어지는 싸움은 지루할 뿐이다.


실제로, 1차 시험 파트는 적어도 나에게는 애니메이션조차 별로였다. 작가도 그것을 알았는지, 시험이 진행되는 동안 프리렌으로 하여금 끝없이 참가자들을 힘멜과의 추억과 겹쳐보도록 하여 분위기를 환기하고자 하지만, 그것조차 반복되면 지루해질 뿐이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의 제작진은 작화와 연출만으로 상술한 단점들을 전부 상쇄해낸다. 원작의 조잡한 액션을 화려한 작화로 보완하여 눈길을 사로잡은 다음, ‘마법은 이미지의 세계’라는 슬로건을 증명하는 연출로 결투라는 장르적 요소를 파헤쳐 시청자로 하여금 마법사들의 분투에 의미를 가지고 몰입할 수 있도록 만든다. 그렇게 2차 시험 파트는 훌륭하게 남았다. 이것이 바로 강화와 보완이자, 원작 기반 애니메이션이라는 질문에 대한 모범 답안이다. ‘어떻게 하면 원작의 단점은 죽이고 장점만을 극대화하여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인가’라는 예술적인 질문에 고민하고, 또 고민한 끝에 ‘그려진’ 애니메이션. TV 애니메이션 <장송의 프리렌>은 그런 작품이기에 프리렌에 의하여 기억되고 추억되는 용사 힘멜처럼, 우리 시청자들에게 기억되고 추억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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