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집너구리 DHMO Oct 27. 2022

[세계 성당 방문기] 도쿄 순심회 마츠바라 성당

가톨릭 마츠바라 교회

カトリック松原教会


- 등급 : 본당

- 소재지 : 일본 도쿄도 세타가아구 마츠바라 2-28-5(東京都世田谷区松原2-28-5)

- 관할 : 천주교 도쿄대교구 / 천주교 순심회

- 찾아가는 길 : 케이오선/이노카시라선 메이다이마에역에서 도보로 5-7분



(이 글의 원문은 2021년에 작성되었습니다)

바야흐로 해외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었던 때의 이야기입니다. 그때는 도쿄로 출장도 퍽 자주 다녔는데, 주말이 끼어 있는 경우도 왕왕 있었습니다. 그런 날이면 일정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아직 미사가 있는 성당을 찾아 나서곤 했습니다. 마츠바라 성당을 그렇게 찾아나서게 된 것은 성지주일이 맞물린 주간이었습니다. 천주교 신자이거나 천주교 전통에 익숙한 이라면 알겠지만, 예수가 예루살렘에 나귀를 타고 들어갈 적에 사람들이 나와 그를 반기며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었던 일을 기념하는 주일을 일컬어 성지(聖枝), 즉 '성스러운 가지' 주일이라고 합니다. 보통 이 날 미사에서는 신자들에게 나뭇가지를 나누어 주고 예수의 예루살렘 입성을 재현하는 예식을 진행하며 가지를 흔드는 전통이 있습니다. 한국은 너무 추워서 종려나무가 잘 자라지 않기 때문에 보통 측백나무 등의 가지를 나눠 줍니다.

메이다이마에 역은 밤에도 사람이 많이 타고 내립니다.

회사가 있는 신주쿠에서 마츠바라 성당까지 가기 위해서는 신주쿠 지하 던전으로 내려가 케이오선을 타야 합니다. 도영 지하철 신주쿠선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케이오선 및 신주쿠선 승강장 안내표를 열심히 따라가면 되지만 사실 그리 쉬운 여정은 아닙니다. 괜히 신주쿠역 지하 통로를 '던전'이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신 일단 열차를 타면 그 다음은 쉽습니다. 10분 조금 덜 되는 시간만 가면 바로 오늘 내릴 역인 메이다이마에(明大前) 역이 나옵니다. 유수의 사립대학 중 하나인 '메이지 대학(明治大学)' 캠퍼스 바로 앞에 있는 역입니다. 여기서 남쪽 출구로 나와 어둔 골목길을 걷다 보면 머지않아 제법 긴 담벼락이 등장합니다. 이 담벼락을 빙글 돌아 들어가면 성당 입구가 나옵니다.

이렇게 스쳐지나가는 기찻길을 따라 걷습니다.
그러면 어둠 속에서 이렇게 성당 담벼락이 나타납니다. 뭔가 80년대스러운 성당 게시판도 보입니다.


성당 건물은 야트막하니 꼭 학교를 연상케 합니다. 저 문으로 들어가 오른쪽으로 꺾으면 바로 성전입니다.

마츠바라 성당은 엄밀히 말하자면 천주교 도쿄대교구 소속이 아니라, 벨기에 출신 사제가 중국에서 처음 창립한 수도회인 '원죄없으신 성모성심 수도회(CICM)', 일본말로는 '준신카이(淳心会, 순심회)'의 소교구 소속입니다. 그 탓인지 성당 부지에 들어서면 성당에 왔다기보다는 무슨 학교 마당에 들어온 것 같은 느낌을 받게 되는데, 아닌 게 아니라 이 부지 안에는 성당과 수도회 건물, 그리고 수도회 기숙사 건물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수도회 건물을 학교와 똑 닮게 지어 놓은 탓에 그러한 기분이 더욱 강하게 듭니다.

놀랍게도 이곳에서는 진짜 종려나무 가지를 줍니다. 성당 내부는 간소하면서도 정갈한 맛이 있습니다.


예배당에 들어갈 때 아니나다를까 연세가 지긋한 여성 신자분들이 물에 담근 가지를 나눠 줍니다. 종려나무가 무려 자생하는 일본의 특성상 한국처럼 어설프게(?) 측백나무 등으로 대체하지 않고 정말로 종려나무 가지를 끊어 놓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작은 실랑이가 있었습니다. 천주교 전통에는 성지 주일에 받은 나뭇가지를 집에 잘 보관했다가 이듬해에 다시 모아 태우고, 여기서 나온 재를 사순 초 재의 수요일 때 이마에 바르는 예식을 할 때 사용합니다. 그런데 한국에 돌아갈 때까지 이 가지를 가지고 가기에는, 이게 생가지(?)다 보니 검역에 걸려서 어차피 버리게 될 것 같더란 말입니다. 그래서 가지를 나눠 주시던 신자분께 사정을 말씀드리고 정중히 받지 않겠다고 했더니, 한사코 가지 하나를 안기시면서 "아유 그래도 귀국하기 전까지 호텔 방에 어디다 잘 전시해 두면 되죠!"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차마 더 이상 물리기가 면구스러워, 그러마고 하며 가지를 받아 예배당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한국에서 천주교 성당이나 개신교 교회에 가 보신 분들이라면 이른바 '교회 의자'라고 불리는, 여러 사람이 앉을 수 있게 길다랗게 만들어진 나무 의자에 익숙하실 것입니다. 거의 대부분의 성당과 교회들이 이런 길다란 나무 의자를 사용하고 있는 한국과는 달리, 재미있게도 일본의 성당들은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예배당이 아닌 한 개인용 의자를 여러 개 나열해 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순히 비용 절감을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여러 명이 다닥다닥 앉지 않아도 되는 점은 마음에 들다가도 소지품이나 책자를 올려둘 만한 받침대가 없다는 것은 영 불편합니다. 이곳 마츠바라 성당 또한 그런 곳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의자 앞에 대강 가방을 내려놓고, 무릎에 주보를 얹었습니다.


또 하나, 웬만한 것들이 모두 전산화되어 아무리 작은 동네 성당이라도 성가 안내까지 전부 전광판으로 해 주는 한국과는 달리, 마츠바라 성당은 성가 안내판이 완전히 옛날식입니다. 사진에서 보실 수 있겠지만, 미사 때마다 자릿수가 적힌 판을 갈아끼워 두는 식으로 성가 번호를 표시해 두고 있습니다. 여러모로 한국인에게는 생소한 광경입니다만, 오히려 정겹기조차 합니다. 어떻게 보면 지극히 일본답다고 할 수 있는 이 성당의 주임 신부님은 무려 필리핀 분입니다. 나이가 지긋한 필리핀 출신 신부님이 유창한 일본어로 미사를 진행하는 가운데 유일한 한국인 하나가 그 사이에 끼어 있었던 셈입니다. 누가 들으면 퍽 진귀한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겠지만, 동아시아 쪽으로 여행이 잦은 한국인이라면 종종 경험하곤 하는 일들입니다. 심지어 한국에서도 공단지대 근교에 있는 성당에는 종종 동남아시아나 인도 쪽 출신 신부님들이 근무하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세계 어디서나 같은 교리에 같은 전례를 지키는 종교이다 보니 이런 일도 있습니다.


미사가 끝나고 나오니 어느덧 늦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신주쿠로 돌아가 회사 앞의 식당에서 간단히 요기를 한 뒤, 맥주 한 잔과 안줏거리를 사서 들어왔습니다. 별스럽기까지는 않았더라도 퍽 흥미로웠던 하루가 이렇게 또 저뭅니다. 


그래서 받아온 가지는 어떻게 했느냐고요? 물론 한국에 가지고 돌아오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성당 신자분의 당부대로,소중히 숙소로 가지고 돌아와서 장식할 곳을 찾다가 이윽고 전화기 뒤에 예쁘게 장식해 두기로 했습니다. 체크아웃하면서 치워지기는 했겠지만, 어찌 되었든 잘 장식해 두었으니 나름대로는 만족스러웠습니다.


사실은 좀 더 높은 데 전시해 두고 싶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국부사적관, 타이베이 역에서 고양이마을 허우퉁까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