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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국 마늘 May 31. 2023

소극적인 인종차별


얼마 전, 남편과 간 바르셀로나 여행 중 생긴 일이다. 




오전 가우디 투어를 마치고 바르셀로나 해변에서 꿀맛 같은 점심시간이 주어졌다. 투어는 재미있었지만 가이드를 따라다니는 여행은 다소 압박감이 있었다. 여럿이 움직이니 시간에 딱딱 맞추지 않으면 곤란했다. 그 와중에 둘만이 즐기는 점심시간이니, 다소 느긋함을 즐길 수 있어 좋았다. 












가이드에게 추천받은 레스토랑 중의 한곳을 골라 점심을 해결했다. 2시간 가까이 주어진 점심시간이라 점심을 먹고도 시간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모처럼 해변가에 왔으니, 좀 걸을까?"




영국보다 다소 기온이 높았지만 4월의 바르셀로나 바람은 아직 서늘했다. 그 때문인지 걸은 지 얼마 되지 않아, 곧 화장실 생각이 났다. 아주 급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행 중에는 조금 가고 싶다 싶을 때, 화장실을 찾는 편이다. 급할 때 화장실을 바로 찾기 힘든 경우가 왕왕 있으니까. 




화장실에 갈 겸 커피숍을 찾았지만 생각보다 커피숍이 잘 눈에 띄지 않았다. 바르셀로나는 유명한 관광지라 영어로 된 이정표가 많을 줄 알았는데 그런 기대가 무색하게 온통 스페인어 투성이었다. 커피숍인가 하고 살펴보면 레스토랑인 곳이 많았다. 게다가 해변가라 그런지 대부분 위에 천막을 치고 야외용 테이블과 의자를 놓은 식사 공간이었다. 화장실이 딸렸을 법한 건물은 찾기가 어려웠다. 




이러다 투어 일행과 합류하기 전에 화장실을 못 가는 게 아닌가, 조급함이 들기 시작했다. 단체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혼자서 화장실 간다고 하기도 어려운데. 그런데 그때, 딱 해변가 한 가운데에 위치한 간이 화장실이 눈에 들어왔다. 그 반가움이란!




'그럼 그렇지, 이런 곳엔 꼭 저런 화장실이 있기 마련이야'




자그마한 간이 화장실 건물 앞에는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화장실은 달랑 3칸이었다. 하지만 그게 어디인가. 화장실이 있다는 게 감지덕지였다. 




한 아주머니가 그 앞에서 정확히 5칸씩 두루마기 휴지를 떼어 사람들에게 건네고 있었다. 희한한 풍경이다 싶으면서도 관리하는 아주머니가 있으니 화장실의 위생 상태가 양호하리라는 희망을 가졌다. 지저분한 화장실은 질색이었다. 




줄을 서 지켜보니, 세면대에서 손을 닦은 이후에도 아주머니에게 손 건조용 휴지를 받아야 했다. 거기까지는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그뿐만이 아니다. 사람들이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고 나오면 아주머니가 일일이 화장실 안을 들여다 보는 게 아닌가. 지켜보는 입장에서도 민망하기 그지없었다. 




급해도 여기서 큰일은 못 보겠다 싶었다. 생각만 해도 얼굴이 달아올랐다. 나의 대장 상태가 공중파를 탄다니.. 휴지는 또 어떻게 더 달라고 할 것인가. 스페인어라고는 '안녕하세요'와 '감사합니다'밖에 모르는데. 휴지를 이만큼 더 주세요, 그것보다는 더 필요해요, 아니, 그건 너무 많아요. 당장 능력 밖의 일이었다.  




물론 번역기라는 현대 문명이 있지만 번역기까지 돌려가며 상황을 설명하고 휴지를 요구해야 하는 상황이란, 생각만 해도 우스꽝스러웠다. 




그런 생각을 하며 순서를 기다리자니,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그런데 아주머니가 어째서인지 선뜻 주질 않는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마침내 아주머니가 천천히 다가와 아무 말 없이 휴지를 건넨다. 그런가 보다 하고 받아들었는데 내 바로 뒤에 있는 사람에게는 '올라'하면서 인사를 한 뒤 휴지를 건넨다. 




'왜 나한테는 인사를 안 하지?' 




살짝 의아함을 가지며 화장실 칸에 들어섰다. 그런데 맙소사. 좌변기에 앉는 변기 좌석이 없었다. 이렇게 당황스러울 수가. 일반 공중 화장실이면 다른 칸을 찾아 들어갔을 텐데 여기서는 그럴 수가 없었다. 




화장실 이용 후, 손을 닦고 아주머니가 나에게도 휴지를 건네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린 지 얼마나 지났을까. 아주머니는 내가 기다리고 있는 걸 뻔히 알면서 도통 휴지 건네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다른 사람들 주위를 뱅뱅 맴돌면서 다른 임무들에 충실한 듯 보였다. 순간, 뭔가 아차 싶었다. 




'이 아주머니, 인종차별하는구나.'




씁쓸했다. 스페인어를 할 줄 알면, '휴지 좀 주세요' 이야기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스페인어를 할 줄 모르거니와 지체할 시간도 없었다. 조용히 그냥 자리를 떴다. 




상대방이 나를 공격적으로 대해야만 인종차별한다고 느끼는 게 아니다. 상대방이 내가 동양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를 꺼리는 느낌, 나를 일부러 따돌리는 느낌, 있는데 내가 없는 것처럼 무시하는 느낌, 정말 다양한 형태의 소극적인(?) 인종차별이 존재한다. 








얼마 전, 요리 수업 시간이었다. 




다음 수업 시간에는 두 명씩 짝을 짓겠다고 했다. 말이 짝을 짓는 거지, 한 쪽은 설거지 담당이 되는 거라 떨떠름했다. 명목은 팀워크를 기르자는 것이었지만 사실 스티브 선생님이 적절한 수업 계획을 세우지 않아 생긴 상황이었다. 스티브 선생님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이해하면서도, 그런 수업 내용이 아쉬웠다. 




그런 생각을 하는 와중에 종이 뽑기가 시작됐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총 인원이 8명이니 반으로 갈라 4명만 뽑기를 하는 게 맞다. 그런데 8명이 전원 하나씩 뽑는다?  




나는 휴버를 뽑았고 애비가 내 이름을 뽑았다. 대체 누구랑 짝이 되라는 말인가. 그런데 이때 뜬금없이 스티브 선생님이 나보고 펀시아랑 짝을 하란다. 아니, 뽑기에서 나랑 전혀 연결이 안 된 펀시아랑 짝이 되라니. 그렇다고 펀시아가 나를 뽑은 것도 아니었다. 




펀시아는 나를 제외한 유일한 동양인이었다. 나보다 5~6살 많은 펀시아는 착하고 요리 솜씨가 훌륭했다. 하지만 영국에 20년을 살았음에도 영어가 능통하지 않았다. 그런 펀시아를 밑도 끝도 없이 나와 짝지은 것이었다.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지 몹시 헷갈렸다







평소 아무런 차별 없이 나를 대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개중에는 외국 생활이 외롭지 않을까, 배려하고 따뜻하게 대해주는 사람들도 있다. 그중에 이런 사람들과도 한 번씩 부딪히게 된다.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크게 목소리를 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슬그머니 무시하는 사람들. 




'외국 생활에 잘 적응한 아시아 여성들이 한국에서는 다소 '드세다'는 말을 듣는 여성들'이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외모와 동양인 성향으로 무시당하는 상황이 생기면 다음에 무시당하지 않기 위한 노력이 이어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런 노력이 다소 '드세다'라는 인상을 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런 상황이 한 번씩 생기면, 다음에 어떻게 목소리를 내야할 지 고민하게 되는 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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