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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국 마늘 Jun 08. 2023

영국에서 깻잎 기르기


요 며칠 눈부신 햇살에 '많이 따뜻해졌나 보다' 하고 정원에 나갔다. 잡초를 뽑을 심산이었다. 그랬더니 여전히 쌀쌀한 바람에 닭살이 호로록 돋는다. 배신감에 눈물이 찔금 날 때쯤, 엉거주춤 잡초 뽑던 손길을 거뒀다.



'역시 너무 춥다, 후퇴다!'



최저 기온 8도, 최고 기온 18도. 요즘 영국은 풀이 자라기 딱 좋은 날씨다. 뜨겁게 쏟아지는 햇살과 이에 질세라 주기적으로 흩뿌려지는 비. 정말이지 안성맞춤으로 고안된 듯한 기후다, 영국 여름은.



그런 여름과 나는 애증 관계다. 기다렸던 여름이건만, 쉬지 않고 자라는 풀 때문에 정원 일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쉬이 자라는 잡초는 뽑았다는 말이 무색하게 어느새 훌쩍 자라 있다. 이를 즐길 수 있다면 좋겠지만 아직까진 무리다.



온갖 꽃이 가득한 예쁜 정원을 보면 기분이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스스로 그런 정원을 가꿀 엄두는 나지 않는다. 그런 정원을 가꾸려면 얼마나 손이 많이 가는지를 알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정원은 잠시라도 돌보지 않으면 금세 티가 난다.



그런 정원에 좀 더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깻잎이었다. 깻잎이 너무 먹고 싶은데 영국에서는 깻잎의 'ㄲ'도 찾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깻잎을 심어야겠다!'



재작년, 한국에 갔을 때 깻잎 씨앗을 구해 왔다. 다이소에서 1000원이면 살 수 있었다. 이걸 영국에서는 구할 수 없다는 것이 슬플 따름이었다. 깻잎 사는 김에 무, 대파 등 몇 가지 한국 채소 씨앗도 덩달아 구매했다.



'이제 영국에서도 먹고 싶은 야채를 먹을 수 있겠구나!'



룰루랄라, 희망에 부풀어 깻잎과 무, 대파를 정원 뒤켠에 심었다. 그런데 토질이 안 맞는 건지, 아니면 기후가 맞지 않는 건지 무와 대파는 그다지 잘 자라지 않았다. 작게나마 자란 무를 뽑아 깍두기를 만들어 봤지만 무가 단단하기만 하고 맛이 없었다. 고스란히 버려야 했다.



다른 영국 집에서는 무성히 자란다는 깻잎도 우리 집에서는 그다지 크게 자라지 않았다. 그나마 무릎 크기 정도 자라 주워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모른다. 그런 깻잎은 작년 여름, 쏠쏠한 별미 반찬이 되어 주었다.



올해도 깻잎을 심었다. 실내에서 싹을 틔운 뒤, 화분에 심어 밖에 나 두었다. 그런데 어라, 좀처럼 싹이 나지 않는 게 아닌가.



'왜 싹이 안 나지?'



실내에 들였다 다시 밖에 내놓기를 반복했다. 밖의 기온이 너무 찬가 싶어서였다. 애가 탔다. 매일 초조하게 깻잎 화분을 몇 번씩 들여다보았다.



그러다 며칠 전, 드디어 깻잎이 작은 초록 고개를 살짝 내밀었다. 하나, 둘. 매일 한 두 개씩 늘더니 어느덧 8개의 싹이 쫑긋 흙 사이를 비집고 나왔다.



"자기야, 깻잎 싹이 났어. 저거 봐봐!"



마치 복권에라도 당첨된 듯 호들갑을 떨었다. 남편은 먹지도 않는 깻잎이니, 신이 날 이유가 없었다. 그래도 내가 좋아하니 옆에서 흐뭇해한다.














깻잎의 순조로운 싹트기에 힘입어 고추도 길러 보기로 했다. 주말에 가든 센터에서 고추 모종을 사 왔다. 산 김에 교회 친구 리샤 것도 하나 더 사고, 상추 모종도 샀다.














내친김에 선인장용 흙도 구매했다. 몇 해 전에 구입한 선인장이 몸집이 부쩍 커졌던 것이다. 남편은 분갈이해주면 몸집만 자꾸 더 커진다면서 만류했다. 하지만 한 번 눈에 띄고 나니, 그대로 둘 수가 없었다.



'말은 못 하고 얼마나 갑갑할까.'



큰 화분으로 옮겨 주니 기분 탓일까, 한결 선인장들이 안락해 보였다. 무럭무럭 자라길.



한국에서 지냈다면 이렇게 식물에 관심을 가졌을까? 우선 정원이라는 걸 갖지 못했겠지. 정원이라는 공간이 있고, 먹고 싶은데 구하지 못하는 야채가 있으니 자연스럽게 하나 둘 길러 본다. 아직은 수확이 적지만, 점차 기르는 노하우가 생기겠지.



당장 정글 같은 정원부터 좀 수습이 필요하다. 이번엔 후퇴했지만 다시 도전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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