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국 마늘 Jun 25. 2023

마흔한 살에 딴 영국 회계 자격증


며칠 전, 자격 증서가 집으로 배달되었다. 처음엔 배달된 소포를 보고 '이게 뭐지?' 했다. 얼마 전 마지막 시험 합격 소식을 들었지만, 이렇게 자격 증서까지 보내주는 건 몰랐기 때문이다. 




자격증서를 받고 근무 중인 남편에게 사진을 찍어 보냈다. 바로 돌아온 답장, '축하해!' 




이 자격증을 따는 데에는 남편의 격려와 지지가 컸다. 내가 얼마나 열심히 공부했는지, 바로 옆에서 지켜본 남편이었다. 












영국에 와서 산 지 만 5년이 되어간다. 그런데 그 어떤 때보다 이 자격증을 따면서 크게 한 걸음 도약한 기분이다. 좀 더 영국 사람들과 동등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랄까. 




처음에는 회계 자격증이라니, 수업을 따라갈 수는 있을까 걱정이 되었던 게 사실이다. 




"해 봐, 해 보고 아니면 그만둬도 되니까."




뭐든지 실패가 두려워 도전조차 꺼리는 나였다. 그런데 '꼭 따라'가 아닌, '아니면 그만둬도 되니까'라는 남편의 말이 도리어 나를 도전해 보도록 부추겼다.  



'그래, 해 보고 아니다 싶으면 다른 걸 찾으면 되니까. 해 보기도 전에 겁부터 먹고 안 하는 건 아니야.'



첫 수업을 앞두고, 남편에게 노트와 펜을 좀 사 와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샤프 한 통, 색색이 볼펜 세트 한 통을 노트와 함께 가득 사 들고 돌아온 남편.




"열심히 해 봐, 화이팅."




'아니, 펜은 하나면 되는데 뭘 이리 많이 사 왔어.' 핀잔을 주려다 가슴이 뭉클해졌다. 남편이 어떤 마음으로 이것들을 골랐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내가 남편보다 나이도 많은데. 남편은 마치, 아이 학교 보내는 학부형이라도 된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첫 수업 때는 역시나, 잔뜩 긴장했다. 전혀 수업을 못 따라가면 어쩌지. 와들와들와들. 물론 이를 대비해 소형 녹음기도 미리 구매했지만. 




강사에게 양해를 구하고 수업을 녹음했다. 자리도 맨 앞자리에 앉았다. 엄마는 늘 말했다. "공부 잘하려면, 맨 앞에 앉아서 선생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한다." 지금도 엄마의 그 말씀이 귀에 맴도는 것을 보면 유년기의 지침은 참 중요하다. 




처음엔 영어 수업이라니, 회계 용어는커녕 잡담 내용도 100프로 이해가 힘들었다. 아니, 어디로 튈지 모르는 잡담이 더 어려웠다. 제대로 알아듣고 있는 건가 반신반의였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문제 풀이였다. 이론 설명을 듣고 문제를 같이 풀어보는데, 산수 계산이 많았다. 선생님이 문제풀이하는 것을 지켜보면 어떤 내용을 어떻게 계산하면 되는지 짐작이 갔다.  




수업을 듣고 두 달 즈음 지났을 때, 첫 시험을 보게 되었다. 나름 틈틈이 공부했지만 충분한 걸까, 확신이 들지 않았다. 수업 시간에 예상 문제도 풀었지만 실제 시험이라는 사실만으로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어찌어찌 시험을 보고 돌아왔지만, 결과를 받기까지 3주라는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아휴, 턱걸이라도 좋으니 통과만 하면 좋겠다.'




정확히 3주가 지난 목요일. AAT 웹사이트에 시험 결과가 발표됐다. 붙었을까, 떨어졌을까, 혹시 붙었다면 점수는 어떻게 나왔을까. 얼른 아이디와 비번을 넣고 로그인했다. 




시험 결과는 100점 만점에 88점(70점 이상 통과)! 생각보다 높은 점수였다. 훌쩍 자신감이 붙었다.




'이렇게, 이 정도 공부하면 되는구나.' 




두 번째 시험에서는 99점을 받았다. 같은 반의 영국인 친구들도 받지 못한 점수였다. 외국에서 한국인이 수학만큼은 지지 않는다더니. 왠지 한국 교육 시스템의 효과를 톡톡히 보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차례차례 시험을 치러, 5월 말에 마지막 4번째 시험을 치렀다. 결과는 합격. 자격 증서에는 'Distinction'이라고 적혀 있었다. 이는 내 점수가 상위 10프로에 해당된다는 의미이다. 







기간 






AAT 레벨 2는 인근 컬리지에서 수업을 들으면서 땄다. 약 10개월 과정인데, 학생들의 요청으로 좀 과정을 빨리 끝냈다. 작년 9월에 수업을 듣기 시작했는데 5월 말에 마지막 시험을 보고 6월 초에 시험 결과를 받을 수 있었다(9개월 소요). 







난이도






AAT는 영어로 수업을 듣고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회계라는 과목의 특성상 영어가 다소 부족하더라고 커버할 수 있는 부분들이 많다. AAT 레벨 2 시험은 대부분이 객관식이다. 주어진 문제를 어떻게 계산해 푸는지만 이해한다면, 충분히 시험을 치를 수 있다. 




AAT 레벨 2는 총 4개의 시험으로 이루어지는데 이 중에, Business awareness라는 과목이 있다. 이 과목에 서술형 문제들이 있어 개인적으로 이 시험이 가장 부담스러웠다. 




하지만 AAT는 시험을 통해 수험자의 문제 해결 능력을 보는 것이지, 영어 실력을 보는 게 아니다. 따라서 서술한 문장이 문법이 틀리거나 스펠링이 틀려도 감점하거나 하지 않는다. 채점자가 이해할 수 있는 정도의 영어 문장으로 해답을 적절히 서술했다면 점수를 받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이 시험을 준비하며 영어 실력도 늘은 것 같다. 







자격증으로 할 수 있는 일






AAT 자격증은 꽤 공신력이 있다. 영국 이외에도 대다수의 영어권 나라에서 인정받는 자격증이다. 자격증을 따면 AAT 협회, 컬리지 등에서 일을 연계해 주기도 한다. 무엇보다 회계 직종은 수요가 많기 때문에 취업 사이트에서 쉽게 구인 글을 찾을 수 있다. 장부 담당자(Ledger clerk)이나 회계사 보조(Assistant accountant)와 같은 일에서 AAT 회계 자격증을 요구하는 곳이 많다. 







한국 전산 회계 자격증 vs 영국 AAT 자격증






AAT 자격증은 한국의 전산 회계 자격증에 견줄 수 있다. 전산 회계 자격증에 1, 2, 3급이 있듯 AAT에도 3개의 레벨이 있다. AAT는 레벨 2~4까지 있는데, 레벨 4가 가장 어려운 시험이다. AAT의 경우에는 세무 및 회계 개념이 포함되어 전산 회계 자격증보다 폭이 넓은 느낌이긴 하다. 







AAT 레벨 2 이후 






AAT 레벨 3, 레벨 4를 공부할 수 있다. AAT 시험에 이어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는 경우도 많다. ACA, ACCA, CIMA 등 회계사 시험은 AAT 레벨 4 자격증이 있는 경우, 일부 시험을 면제해 주기도 한다. 




AAT 레벨 3는 레벨 2와 마찬가지로 4개의 시험을 본다. 레벨 4는 총 8개의 시험으로 모든 시험에 서술형이 대폭 많아진다고 들었다. 보통 컬리지에서 레벨 2,3는 각각 1년 과정으로, 레벨 4는 2년 과정으로 진행한다. 












작가의 이전글 영국에서 깻잎 기르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