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국 마늘 Nov 03. 2023

수포로 돌아간 A사 정규직

영국 취업 도전기

돌아오는 차 안에서 혼자 수없이 되뇌었다.


"왜, 왜, 왜 그런 말을 했을까.."


면접 후, 운전해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전반적인 면접 내용을 머릿속으로 돌려 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꺼림칙했다.




월요일, 리크루터 루크에게 연락이 왔다. 금요일에 A사 면접을 볼 수 있냐고. 베브의 추천이지만, 파이낸스 매니저 마음에도 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 밖에도, 회사가 어떤지 개인적인 인상을 설명해 주며, 꽤 괜찮은 회사라고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괜스레 우쭐해졌다. '이 회사가 나를 원하는구나', '그렇다면 연봉을 얼마 불러야 하나'와 같은 쓸데없고, 사치스러운 고민에 빠져 들었다.


루크는 성실한 리크루터였다. 수요일 다시 전화해, 내 면접 준비 상태를 확인했다. 면접 전날인 목요일에는, 자신과 모의 면접을 보자고도 했다. 이때까지 나름 루크가 준 내용들을 훑어보기는 했지만, 뭘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아니, 그보다는 절박함이 사라져 있었다. 이미 이 회사는 나를 고용하리라는 믿음과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추천받아 가는 자리인 만큼, 큰 실수만 하지 않으면 이건 따놓은 당상이다. 편하게 면접 보고 오자. 그때 베브와 면접 봤던 것처럼. 이렇게 생각했다.


베브와는 4주짜리 단기직이라 온라인으로 면접을 봤지만, 정규직 면접은 회사를 방문해야 했다. 거리는 차로 45분 정도 운전해야 하는 거리였다. 가깝지 않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김칫국 잔뜩 마심).


초행길이라 일찌감치 나섰다. 조금 길을 헤맸음에도, 10분 정도 일찍 A사에 도착했다. 막상 회사 건물에 들어서자 생각보다 회사 건물은 훨씬 괜찮았다. 깔끔하고 신식 건물에 봤던 정규직 면접과는 건물부터가 달랐다. 마음이 동했다.


'여기 되면 너무 좋겠다.'


안내 데스크에서 방문자 등록을 마치자, 면접관인 리사가 나타났다. 곧 안내 데스크 옆에 있는 널찍한 방으로 안내되었다. 룸은 넓고 환했최근에 꾸민 듯, 깨끗하고 세련된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런 환경에 도리나 난 위축되었다. 


"자신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당황했다. 이게 가장 많이 묻는 고정적인 질문이란 걸 어렴풋이 짐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답을 준비하지 않았다. 난 개인 취미 나열했다. 그나마도 이게 맞는 답인가, 스스로 확신이 없어 주저주저, 우물쭈물. 듣다 못한 리사가 내 말을 잘랐다. 다른 질문이 이어졌다.


몇 가지 질문에는 그럴싸하게 답(고 생각했다). 속으로 아직 가망이 있다고 스스로를 북돋았다. 15분쯤 이어진 면접. 리사는 나에 대한 질문을 모두 마친 듯, 이번에는 회사 측에 질문이 있냐고 물었다. 


남편은 충고했다.


"회사에 궁금한 점이 있냐고 물었을 때 없다고 하면, 난 절대 뽑지 않아. 그만큼 회사에 관심이 없다는 거거든."


그런데 난 '없다'라고 답했다. 질문하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니라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기 때문이다. 면접 시작 전에, 회사에 대한 간략한 설명을 요청해 듣긴 했다. 중간에 이미 회사 복지에 대해서도 설명을 들은 터였다. 이야기를 들을수록 괜찮은 회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난 그런 생각이 들수록 작아져만 갔다.


한국어도 아닌 영어로 면접을 보는데 어떻게 내 논지를 전달할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지도, 연습을 충분히 하지도 않았던 것이다.


그걸 깨달은 순간 아차 싶었다. 어쭙잖게 연봉을 논하려 했던 내가 너무 부끄러웠다. 어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연봉을 논하려던 게 잘못이 아니다. 그걸 언급하는 내가 자신감 있고 당당하게 그것을 피력하지 못한 데 문제가 있었다. 이건 아무리 봐도 준비 부족이었다. 면접을 보러 오는 데 너무 안일하게 생각한 게 문제였다.




면접 결과는 역시나, 탈락이었다. 씁쓸했다. 만감이 교차했다. 추천받아 본 면접이었는데.. 경력이 없는 나를 좋게 본 베브가 애써 마련해 준 자리였다. 그걸 이렇게 날려 버리다니.. 또한 중간에서 격려하고 신경 써 준 루크에게 미안했다.


루크는 불합격 소식을 전하면서도 나를 다독이는 걸 잊지 않았다. 그러나 곧 현재 내가 Volunteering을 하고 있는 컬리지에 연락해 레퍼런스를 받을 수 있는 지를 물었다. 보통 레퍼런스는 특정 회사에 채용이 결정된 뒤에, 절차적으로 받는 경우가 많다.


조금 당황스러웠지만 납득이 되었다. 추천을 받아 간 자리였던 만큼 내가 가능성만 보여 주었다면, 그 자리는 따놓은 당상이었다. 내가 경력이 없다는 것도 알고, 그쪽에서 제안한 면접이었다.


그런데 막판에 회사 쪽에서 내가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채용을 거절했다. 루크 입장에서는 어안이 벙벙한 일이었다. 나에 대한 보증이 필요했다. 내가 다른 회사에 추천할 만한 사람이라는.










작가의 이전글 임시직이 정규직 기회로 돌아오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