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은 지옥이다
나는 오늘도 47개월, 19개월 아들 둘에게 양육당하고 있다.
4년 전, 나를 30년 동안 양육한 친정 부모님은 진저리 치며 예비사위에게 첫째 딸 양육권을 일임하였다. 부모님은 안방 치우는 김에 집안 대청소를 하기로 마음먹으셨는지 같은 해 둘째 딸 또한 예비사위 2호에게 넘기시고는 양말을 받은 도비와 같은 표정을 지으셨다.
그때까지만 해도 사람 볼 줄 몰랐던 현 남편 구남친은 순탄한 결혼 승낙이 본인의 매력 때문이라 믿었으리라.
부모-자식 간에도 궁합이란 게 있다는데, 나와 부모님은 함께 산 30년 중 물고 뜯은 세월이 20년 이상으로, 최악의 궁합을 자랑한다. 가끔 만나는 지금도 마찬가지며, 이제는 어긋난 궁합에 일종의 자긍심까지 느낀다.
이런 나를 거두어 준 남편에게 백팔배 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지만 남편은 어쩐지 백팔번뇌하는 표정이다.
결혼한 그 해, 우리 부부에게서 태어난 소중한 아이. 무계획이 계획인 내 인생을 대변하듯 불현듯 임신했고 대뜸 출산했다.
왜.
아무도 나에게 아이 낳기 전까지 잠이나 실컷 자두라고 이야기해주지 않은 것일까.
왜.
아무도 나에게 신생아 수면시간 20시간에 연속성이 없음을 알려주지 않은 것일까. 5분 단위로 잤다 깼다 먹다 잤다 깼다 먹는다고, 어째서, 알려주지 않은 것인가.
나는 대체 언제 자고, 너는 대체 언제 자는 것인가. 이 와중에 네 아빠는 왜 자꾸 성실하게 자빠져 자는 것인가.
태어나 처음 듣는 배앓이라는 단어. 밤마다 곧 죽을 듯이 울어대는 아기를 안고 나도 울고 남편도 울었다. 매일 밤 배앓이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검색창에 입력해 보았으나 대부분 "시간이 약이다."란 내용뿐이었고, 울며 겨자 먹기로 백일의 기적을 손꼽아 기다렸지만 아기는 우리에게 백일의 기절을 주는 극악무도를 펼쳤다.
출장이 잦은 직종에 종사하는 남편 덕분에 육아는 오롯이 나의 몫이었고, 제 자식 예쁘다 물고 빨고 하는 부모들 속에 산후우울증으로 전신을 치장한 나는 어쩐지 실패한 인생 같기까지 했다.
그렇게 내 아이 보기를 돌같이 하다 보니 어느새 돌(12개월)이 되었더라는 이야기. 그즈음 모유수유를 끊었고, 산후우울증은 언제 그랬냐는 듯 완치되었다.
허나 그 해방은 오래가지 못한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했던가!
나는 본능에 무척 성실한 인간이기에 부지런히 망각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입학한 지 3개월 만에 둘째 계획을 세우는 미친 짓을 자행한 것도 모자라 단 번에 성공하고 만다. 둘째가 태어나고 말았다.
첫째 아이는 극한 아들이었다. 공갈젖꼭지를 귀신같이 알아차렸다. 음식은 먹기보다 주로 피부에 양보하는 편이었고, 낮잠이고 밤잠이고 두 시간 이상 자지 않았고, 유행하는 전염병은 틈틈이 걸렸으며, 유행하지 않는 병도 거르는 법이 없는 바쁜 아이였다. 7개월에 걷고 8개월에 뛰었으며 돌잔치 땐 날아다녀서 건진 돌사진이 없다.
첫째 아이는 나에게 자신감을 주었다. '엄마! 할 수 있어! 엄마는 나로 인해 단련되었어. 나보다 더한 놈은 나오지 않을 거니까 안심하라고.' 하며 눈빛으로 말을 걸어왔다.
실제로 둘째는 목석에 가까운 아기였다. 움직임도 적고 울음도 짧았다. 잘 섭취하고 잘 배출하는 데다 잘 자라기까지 했다.
그러나 폐위된 왕, 첫째의 질투가 시도 때도 없이 동생을 향했다. 예기치 못한 복병이었다. 산너머 산이구나.
결혼은 미친 짓이라고?
아니, 육아는 미친 짓이다.
육아는 나를 뛰게 한다.
미친년 널뛰게 한다.
"다른 건 몰라도 착한 건 날 따라올 자가 없다." 자부하며 살아온 내 인생 전부를 부정당하는 과정, 그것이 바로 육아였다. 나는 착한 게 아니라 착한 척을 해왔었다는 것을 30년 만에 깨달았다.
나는 첫째와 둘째를 출산하며 엄마로 태어났고, 지난 4년간 엄마로 길러졌다. 스치는 바람결에도 눈물을 떨구던 유리 멘탈은 4년의 육아 트레이닝을 거쳐 강화유리 멘탈로 진화했다. 악마를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