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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서 Jan 25. 2020

시식



그곳은 길을 가다가 우연히 들린 횟집이었다 주인 아저씨는 시식 행사 중이니 여기 서서 회를 먹어보라고 말했다 회를 시식한다는 건 이상했지만 무료라는 말에 아저씨가 말하는 자리에 섰다
아저씨는 생선 한 덩이를 가져오더니 칼로 사정없이 내려치기 시작했다 그건 회를 뜬다기보단 돼지 앞다리살을 자르는 것에 더 가까워 보였다 곧 생선들이 난도질돼 도마에 널브러졌다
권하는 대로 회 -그걸 회라고 부를 수 있다면- 를 한 점 집어 입에 넣었다 의외로 부드럽고 쫄깃했는데 정말 맛이 있어 그러는 건지 기대치가 낮아서 그러는 건지 그것도 아니면 무료라서 그러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어때요?


아저씨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맛있다는 나의 대답에 그는 지금 손님이 한 명도 안 와 걱정이라며 대체 무엇이 문제인 것 같냐고 다시 물었다 나는 한참을 고민하다 회 뜨는 방법이 독특하니 창가에서 회 뜨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어떠냐고 제안했다

그러자 아저씨는 고개를 저었는데 자신은 원래 이렇게 회를 뜨지 않으며 이것은 단지 시식을 위한 것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평소에는 어떻게 치느냐고 다시 물었더니 이번에 그는 포장돼 있는 회를 한 접시 가져왔다
그것은 영락없는 토마토 파스타 모양이었다 내가 할 말을 잃고 바라보자 아저씨는 접시를 감싸고 있던 랩을 벗겨 더 자세히 보여줬다 아무리 봐도 파스타였다

어때요?


아저씨가 물었다 나는 그제야 내가 들어온 곳이 파스타 집이란 걸 깨달았는데 그러자 아무 말도 할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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