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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요 Jul 31. 2021

길 위의 분노를 다스리는 법

정신과 의사가 되었기에 망정이지 

다혈질, 욱함을 빼놓고 내 성격을 묘사하는 건 반칙이다. 

나의 단점을 알아차리고, 그 단점이 성취를 이루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음을 이해하게 되면서 내 단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욱한 게 뭐. 이게 난데 뭐. 하면서. 


서른이 넘어서 처음 운전면허를 딴 것은 미국에 와야 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계속 살았더라면 차를 사지도 운전면허를 따지도 않았을 것이다. 

미국행이 결정되면서 나는 운전에 대한 두려움에서 반 강제로 벗어나야 했다. 

미국에 살면서 차가 없다는 것은 두 다리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주차장도 넓고 길도 넓고 넓은 길에 비해 차가 적은 미국에서 운전을 시작하여 어느 정도 여유로운 마음으로 길 위로 올라타게 되었지만 여전히 운전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드라이빙의 즐거움을 알기 전에 누군가 내가 탄 차를 박아버리는 교통사고를 먼저 경험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누가 달려와 내 차를 치지는 않을까 하는 피해의식이 내 불안의 중심에 여전히 자리하고 있다. 무의식적으로 나를 피해자로 먼저 만들어버리는 고약한 습관이 아직 고쳐지지 않은 것이다. 이런 불확실성,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 대한 공포가 크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길 위에서 드러날 내 욱한 성격의 바닥을 직면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컸다. 누가 칼치기하면 내 존재감을 무시당한 것 같아 화가 났고, 난데없는 경적 소리를 들으면 누군가 나를 뒤에서 툭 건드린 것 같은 불쾌감이 들었고, 부앙~ 소리를 내며 곡예하듯 운전하는 이를 보면 경멸감이 불쑥 들었다. 


당연하겠지만 운전에 대한 두려움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 내게 오는 많은 환자들이 운전에 대한 두려움을 호소한다. 나는 그럴 때마다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 


'누군가 내게 경적을 마구 울린다고 해도 그건 나를 공격하는 메시지가 아니라 당신보다 내가 먼저 위험을 알아차렸으니 사고 나지 않게 조심하라는 뜻일 거예요. 내가 사고 나지 않도록 다른 이들이 나를 지켜주는 수단인 거죠. 다른 운전자들을 믿어보려고 노력해봐요. 그들은 나보다 운전 경력이 많고 나보다 운전을 잘하고 나보다 더 기민하게 위험에 대비하고 있다고 말이에요. 그러면서 나도 그들을 지켜주고 보호해주기 위해 경적을 사용하고 주의를 기울여 운전을 하는 거죠. 운전은 팀워크예요. 우리는 길 위에서 서로를 지켜주는 존재예요.' 


누군가 깜빡이도 없이 칼치기를 하면 실제로는 내 존재와 내 차의 존재를 절감하고 있다는 뜻이다. 존재감이 없었다면 그냥 직진했을 테니. 누군가 쓸데없이 경적을 울려대면 내가 감지하지 못한 위험을 그가 대신 나를 위해 감지했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내가 사고 나지 않도록 지켜준 것이다. 부앙~ 소리 내며 곡예하는 차를 보면 엉덩이에서 부앙~ 소리가 나는 운전자인가 보다 한다. 화장실이 정말 많이 급한 것이다. 


같은 상황이라도 조금 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해석하고, 내가 알아차리지 못한 어떤 상황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타인을 믿고, 세상은 아직 괜찮은 곳이라고 생각하는 노력을 먼저 한다. 정 안되면 상황을 웃음거리로 만들어버린다. 유머는 어둡고 힘든 마음을 순식간에 환하게 밝혀준다. 길 위에서 양보받았고 내 실수를 너그러이 용인해주었던 친절한 운전자들도 늘 잊지 않으려 한다. 나도 그런 운전자가 되어야지. 누군가의 하루에 친절을 선물해야지. 경쟁적으로 운전하며 스트레스받고 에너지를 소모하기보다는 그 시간을 나만의 노래방으로 전환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다. 노래 부르면서 화를 내는 일은 불가능하다. 


운전 전에 긴장과 불안감이 너무 심한 환자들에게는 약을 쓴다. 졸리는 부작용이 없으면서도 불필요하게 높은 긴장감을 조금 낮춰주는데 쓸만한 약들이 있다. 약의 효과는 미미할 수 있지만 그에 따르는 플라세보 효과는 크다. '이 약을 드시면 운전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 낮아질 거예요. 그리고 제가 했던 말 상기시키면서 운전하세요. 우리는 서로의 안전을 보장해주기로 약속하고 길 위에 들어섰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요.' 


얼마 전에 road rage를 주제로 한 영화 unhinged를 보았다. 

조금 과장된 설정이긴 해도, 반사회성 인격장애인 사람을 길 위에서 건드리면 어떤 하루가 펼쳐지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영화이다. 미국은 총기와 마약이 일상인 나라이므로 운이 나쁘면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 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해 후에 큰 화를 불러서는 안 된다. 우리를 사랑해주는 이들을 위해서도 우리는 스스로를 지키고 보호해야 한다. 우리는 소중한 존재들이다. 


출퇴근 왕복 1시간을 나는 길 위에서 쓴다. 

'오늘도 잘 부탁드립니다. 걱정 마세요, 나도 당신을 지켜줄게요.'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길 위에 올라탔을, 같은 시간 같은 공간에 존재하며 나와 나란히 길을 달리는 동지들에게 오늘도 마음을 다해 인사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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