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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요 Jul 30. 2021

사랑받지 못한 그대

26살의 클레어는 아직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자신을 버린 생모를 원망하고, 자신의 존재를 끝내 알지 못한 생부를 용서하지 못한다.

클레어는 자신을 입양한 양부모로부터도 방치되었고 돌봄을 받지 못했다.

그녀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아무도 그녀 곁에 있어주지 않았다.


클레어는 그들을 원망하고, 여전히 그들의 사랑을 갈구한다.

미워하면서도 사랑하는 양가감정 속에서 그녀는 죄책감을 느끼고 스스로를 혐오한다.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한 자신을 도저히 사랑할 수 없다. 삶은 무가치하고 무의미하다.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대학을 다니고 간호사가 되겠다는 꿈을 꾸었다가도 우울과 불안에 시달려서 학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고 자존감은 낮아져만 갔다. 정신과에서 약물치료와 면담치료를 오랫동안 받았지만 증상은 악화와 호전을 반복했다. 삶이 비참하게 느껴질 때는 일시적으로 환청과 환시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녀는 세상 밖으로 나가는 일이 너무나 두려웠다. 또다시 누군가에게 버림받을 것이므로.


클레어는 오늘도 우울감을 호소한다.

그녀가 호소하는 우울감의 원인은 매번 같다.

나를 사랑해야 했던 부모, 나를 사랑하기로 약속했던 부모로부터 외면당한 기억이 불쑥불쑥 그녀의 일상을 파고들어서이다. 그녀의 면담치료를 담당했던 심리치료사가 최근에 일을 그만두면서 클레어는 자신의 트라우마를 재경험하고 있었다. 마음을 나눈 누군가로부터 또다시 버림받았다고 그녀는 생각한다.


과거는 우리의 일부이고 우리는 그 기억에서 평생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과거는 과거에 머물러야 한다.

과거의 상처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우리는 배워나가야 한다. 과거가 현재의 발목을 잡고 있어서는 안 된다.


세상에 완벽한 부모는 없다.

그렇기에 우리는 더욱더 세상 밖으로 나아가 새로운 사람들과 어울려야 한다.

집안에서 웅크리고 앉아 과거의 상처를 되새김질하고만 있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세상 밖으로 나가 새로운 사람들, 좋은 어른들을 만나야 한다.

채워지지 않은 부모의 자리를 대신해줄 수 있는 좋은 어른들은 집 안이 아닌 세상 밖에 있다.

그들은 내게 가르침을 주고, 내게 따뜻한 정을 나누어줄 수 있으며, 나를 성장하게 한다.

나의 이웃이, 스승이, 치료사가, 선후배가, 친구가 결핍되었던 엄마의 역할, 아빠의 역할을 나눠 맡을 수 있다. 그리고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줄 수 있다. 타인을 위로함으로서 우리는 스스로 위로받는다. 또다시 버림받을까 두렵고 사랑받지 못할까 무서워서 자신 안의 세상에만 갇혀 지낸다면 상처는 영원히 치유될 수 없다.  


또한 나는 클레어에게 내가 그녀의 삶 속에 있음을 알려주고 용기를 낼 것을 독려했다.

병원의 치료팀이 당신을 아끼며 당신의 행복을 빌고 있음을, 당신을 돕기 위해 여기 있음을 재확인시켜주었다. 다만 우리는 당신 삶의 조력자일 뿐 당신의 삶을 바꾸고 움직이게 하는 것은 오직 당신만이 할 수 있는 일임을 명확히 했다. 그러니 힘을 내서 세상 밖으로 나가라고, 두렵더라도 사람들을 다시 만나고 사랑받고 사랑하라고. 당신의 삶에 건강한 어른들을 들이라고 해주었다.


세상에 완벽한 관계는 없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약속한 부모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상처 받고 상처 주며 퇴행하고 성숙한다. 이것이 삶이다.

다만 고통 속에서도 세상에 대한 믿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나에게 좋은 영향을 줄 누군가가 세상 밖에 있다는 것.

그들을 통해 나다운 삶을 스스로 만들어갈 힘과 용기를 얻을 수 있다는 것.

나 자신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것.


무슨 일이 있어도, 어떤 고난 속에서도 우리는 우리 자신과 타인에 대한 믿음만은 끝까지 놓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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