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라이킷 14 댓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오요 Jul 30. 2021

자살 생존자들에게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질문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제시카의 눈에서 굵은 눈물이 쏟아진다.

그녀의 눈물은 면담을 진행하는 내내 이어졌다.

벌써 세 번째였다.

그녀의 친한 친구를 자살로 잃은 것은.

그녀 역시 여러 번 자살을 시도한 경험이 있고 그 경험들 중간중간 여러 차례 자해도 했다.

그녀는 자살 고위험군 환자이다.

나는 울음을 그치지 못하는 제시카에게 물었다.

당신이 뭔가를 달리 행동했다면 그가 자살하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지,

그의 자살에 일말의 죄책감이나 책임감이 드는지.

그녀는 자신이 친구를 좀 더 잘 챙겨보았다면 그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며 펑펑 운다.

나는 그런 그녀의 생각에 동의할 수 없다.

그래서 그녀에게 아래와 같이 말해주었다.

아무리 미리 예측하려고 노력하고 예방하려 해 봐도 막을 수 없는 것이 타인의 자살이다. 자살을 예측하기 위한 척도들은 때로 그저 수치에 불과하다. 인간의 마음은 수시로 바뀌는 흐르는 강물과 같으므로 타인의 행동을 예측하는 일은 매우 어렵다. 이런 인간의 특성이 우리를 유일무이하고 그 자체로 가치 있는 존재로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타인의 자살을 미리 알고 막겠다는 것은 우리 자신에 대한 과대평가이고 오만이다.

또한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고 좋은 환경에서 보살핌을 받고 있다고 해서 자살을 막을 수 없다. 사람의 마음은 복잡하고 깊다. 모자랄 것 없는 풍족한 환경에서 진심 어린 보살핌과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해서 삶의 의미가 자동적으로 주어지는 것도, 우울증에 절대로 걸리지 않는 것도 아니다. 타인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때론 자기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그런 마음의 사건들이 존재한다. 무기력감이 들겠지만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한다.

가장 중요하게 알려주고 싶은 사실은, 당신으로 인해서 그가 하루라도, 단 한 시간이라도 더 오랫동안 이 세상에 머무를 수 있었을 거라는 것이다. 나 때문에, 내가 어찌해주지 못해서 그가 떠났다고 생각하지 말길 바란다. 아마도 당신이 그의 삶 속에 있었기 때문에, 그의 일부가 되어준 그 시간들 덕분에 그는 조금 더 행복했고, 조금 더 이 세상에 오래 머물렀을 것이다. 그를 잃은 상실을 진심으로 아파하고 슬퍼하는 당신 덕분에 그가 조금 더 힘을 내고 지금껏 버텼을 것이다. 이것은 진실이며 당신이 꼭 기억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나는 그녀에게 술이나 마약을 멀리할 것을 당부했다. 술이나 마약은 우리의 이성적 판단력을 흐리게 하고 우리를 더욱 감정적이고 충동적으로 만든다. 결국 나중에 후회할 일을 저지르게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자살 사고가 있는 이들에게 술을 권하는 것은 그들을 자살로 내모는 행동과도 같다. 술은 기분 좋을 때만 마셔야 한다. 혹시라도 술을 먹을 계획이라면 누군가와 함께, 취하지 않을 만큼만 마시고 술이 완전히 깰 때까지 서로의 곁에 있어주어야 한다.

2주 뒤에 다시 만난 제시카는 조금은 밝아진 모습이었다.

여전히 슬픔 속에 있지만 자살 충동에서는 벗어났다.

당분간 그녀와 2주마다 만나 삶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자살 생각을 더 낮출 수 있을만한 약을 찾는 일에 고심할 것이다. 힘들 때 언제든지 연락하라는 말과 함께 그녀를 보내며 멀어지는 뒷모습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그녀를 안전하게 지키는 일. 그녀를 살아있게 하는 일.

불가능해 보이고 불가능할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이것이 내 의무고 내 일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