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를 예측하는 글의 힘, 책의 힘.
1991년에 나의 첫 책이 발간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5학년 8반 친구들과 함께 글을 쓰고 엮은 학급 교지를 만들어 배포했다.
그때 나는 공동 작가이자, 편집자였고, 발행인이었다.
1991년 3월 2일.
29살의 선생님이 5학년 8반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칠판 앞으로 곧장 걸어간 그는 분필을 잡더니 이렇게 썼다.
'더불어 사는 삶'
5학년을 시작하던 첫날 우리는 선생님의 이름 대신 '더불어 사는 삶'을 먼저 기억해야 했다.
덕분에 12년간의 학창 시절 중 1991년은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해가 되었다.
학년이 끝나갈 무렵 학급 교지를 만들자고 제안한 선생님은 아이들의 글을 모으고 편집과 발행을 맡을 몇 명의 아이들을 골라냈다. 편집과 발행을 맡은 우리는 방과 후 학교, 집, 선생님 댁을 오가며 겨울 내내 머리를 맞대었다. 오돌토돌한 표면의 주황색 아트지가 겉표지로 선택되었고, 속지는 A4 용지에, 활자는 각자의 손글씨였다. 인쇄소에 원고를 맡겨 책으로 만들어 내는 일을 선생님이 맡아주신 것 이외에 모든 과정을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해내었다. 책이 완성되어 반 아이들에게 한 권씩 나누어주고 나 역시 한 권을 소장하였다. 이 책은 아직도 우리 집 보물창고 속에 자리하고 있다.
나의 두 번째 책은 1999년에 발간되었다.
대학교 1학년 때 가입한 동문회에서 매년 발간하는 동문회보가 그것이다.
다시 나는 작가 중 한 사람이 되고, 편집자가 되고 발행인이 되었다.
그때 모두가 적어내야 했던 글의 공통 주제는 '10년 후 나는 어떻게 되어있을 것인가' 였는데, 몇 년 전 동문회보를 다시 열어보았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1999년의 나는 2009년의 내가 더 많은 경험과 배움을 위해 해외에서 살고 있을 것 같다고 예언했다. 그로부터도 4년이 지난 후에야 미국으로 오게 되긴 했지만 소름이 돋았다. 지금부터 10년 뒤에 나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를 예측하는 일에 매우 조심스러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그것 또한 이루어질 것이므로.
2021년, 내 생애 세 번째 책이 곧 발간을 앞두고 있다.
이번 책은 내 글로만 채워지며 편집자와 발행인은 내가 아니다.
지난 4월 한국을 잠시 방문했다.
코로나 시국에도 불구하고 한국에 가야만 할 중요한 이유가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꼭 실현시키고 싶었던 일은 브런치 속 내 글을 발견하고 단행본 출간을 권했던 출판사의 편집자를 만나는 일이었다.
서울에서 머무르는 일정은 겨우 3일밖에 안되었지만 나는 그중 반나절을 편집자와의 만남을 위해 썼다.
서울에서 만나도 좋다는 편집자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문정동에서 지하철로 합정역까지 간 후 버스를 잡아타고 기어이 파주 출판단지로 향했다. 파주에 대한 나의 오래된 환상과 호기심이 몸을 일으켰고, 내 책이 탄생될 곳을 순례해야만 할 것 같은 묘한 주인의식이 발걸음을 떼게 했다.
편집자와 직접 얼굴을 대면하는 일은 내게 의미가 깊었다.
책을 계약하는 과정에서 두어 번의 줌 미팅을 갖기는 했지만 나는 그를 꼭 직접 만나보고 싶었다. 내 책은 곧 내가 될 것이므로, 내 글들을 엮어 책으로 만들어 줄 이에게 나의 참모습을 알게 하는 일은 중요했다. 책을 만든다는 공동의 목표를 향하고 있지만, 함께 일을 하는 와중에 생길지 모를 불필요한 오해를 막기 위해서도 나는 그를 꼭 만나 친분을 나누고 싶었다.
얼마 전 책의 표지와 내지가 완성되고 제목이 결정되었다.
출판사와 계약을 맺은 외부 디자이너가 결정한 내 책의 표지와 내지의 색깔은 다시 주황색이다.
이것을 우연이라 해야 할지 필연이라 해야 할지. 마냥 뭉클하다.
책이 무사히 출간되면 나는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을 다시 만나 뵐 계획이다.
내 책을 전달하고 10살의 내게 출간의 기쁨을 알게 해 주었던 그 경험에 감사 인사를 드릴 것이다.
나의 과거가 나의 현재가 된다.
나의 현재는 나의 미래가 되겠지.
지금을 나답게 살아야 할 이유, 그 깨달음이 새삼 무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