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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미 Dec 14. 2020

그 공사, 꼭 해야 하나요?

사는 데가 지은 지 20년도 지난 아파트라 지하주차장에 엘리베이터가 없다. 건물 밖으로 나와 연결 계단을 따라 내려가야 한다. 나이 든 부부가 앞서 계단을 내려가고 있다. 걷기 불편한지 옆으로 비스듬히 발을 내딛는다. 관절이 약해진 거겠지. 머지않아 나도 그럴 거란 생각에 그들의 더딘 걸음을 재촉하고 싶은 마음을 주워 담는다. 


날이 추우니 직장에 데려다 주마는 남편의 말을 냉큼 받아먹었다. 아침음악프로그램을 들으며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는 따뜻한 차 안이 아늑하다. 평화롭다. 만사가 잘 풀리는 중은 아니지만 틈틈이 누리는 안온함이 삶의 긴장을 느슨하게 한다. 세상에 호의적인 시선을 보내는 긍정적 효과도 있다. 맨 몸으로 겨울을 나는 가로수가 늘어서서 출근을 호위한다. ‘살아서 하늘을 쓸더니 죽어서 땅을 쓰는 수수 빗자루’였던가. 시가 떠오르는 출근길이라니. 나무는 한 치의 머뭇거림이나 혼란 없이 시간을 지난다. 


차창 밖으로 붉은 장식을 두른 건물들이 뒤로 달아난다. 12월은 크리스마스의 달인 것 같다. 한 해가 소진되어간다는 아쉬움에 더 강렬한 색을 찾는 걸까. 맑은 날이어도 가을의 그것과는 다르다. 옅은 회색이 도는 푸름이다. 겨울이 한 겹 깔려 있다. 기온이 낮아 땅이 단단할 텐데 곳곳에 공사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꼭 필요한 공사일까. 생활에 크게 불편하거나 사고의 위험이 있어서가 아니라면 수시로 땅을 파헤치고 구조물을 바꾸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싶다. 그저 보기 좋으라고 하는 법석이라면 더더욱. 시간을 앞서 가려는 유행은 옷가지나 전자제품에만 국한된 게 아닌가 보다. 


근무하는 기관이 스마트 주차관제시스템 설치 공사 중이다. 웬만한 규모의 사업장이라면 이미 있는 시설이긴 하다. 유독 이곳의 설치가 마땅찮다. 드나드는 차량의 정보를 파악하고 주차요금 징수로 지방세수에 도움이 될 것이다. 굳이 그래야 하나. 관공서의 주차장은 공공재이니 무료로 개방하면 좋겠다. 스웨덴의 한 학생은 어떤 것에 행복을 느끼느냐는 질문에 자국의 거의 모든 공공재를 무료로 누리는 것에 그렇다고 했다. 가장 살고 싶은 나라 중 하나로 꼽히는 데는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도 소득지수로만 따지면 ‘꽤 사는’ 나란데. 


주차 관리가 필요하다면 담당 직원을 고용하면 된다. 인건비 절약 차원이라고? 기계 값은 얼마나 할까? 기계는 감가상각이 있을 테니 언제까지 사용 가능하지도 않은데 말이다. 일자리 확대가 당면과제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지자체 관계자가 일자리를 줄였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최신식 시설을 갖춘 관공서가 아니다. 시민의 삶의 질을 개선하기 위해 애쓰는 관청이다. 낡은 건물일지라도 그곳에 가면 갑갑하고 머리 아팠던 일에 도움을 받거나 해결되어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오는 그런 곳. 별생각 없이 근무하던 장소가 새삼스럽다. 


필요를 만들어 내는 세상이다.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내가 얻으려는 것, 이용하려는 것이 정말 필요한 것인지에 대해. 필요를 앞세워 절차를 까다롭게 만들고 ‘스마트’라는 미명 하에 테크놀로지에 취약한 이들을 소외시켜서는 안 된다. 대형마트 쇼핑은 물건을 쓸어 담는 기분이지만, 재래시장에서는 사람을 느낀다.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든든함 같은 것. 단순하게 사는 일이 예상보다 복잡하다. 어느 장면, 어느 풍경에나 시절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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