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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미 Feb 03. 2021

자동차를 바꾸는 일

 큰 아이가 세 살 때 처음 승용차가 생겼다. 6년 뒤 처분할 때 중고차 매매 업자로부터 택시 영업을 했느냐는 농담을 들을 정도로 많이 타고 다녔다. 남편은 수시로 직접 세차를 하고 차계부에 엔진오일 교환 기록도 했다. 어쩌다 차가 비나 눈을 맞기라도 하면 왁스로 구석구석 닦을 정도로 애정이 각별했다. 


 둘째를 낳고 반년 뒤 살고 있던 서울 변두리 다세대 주택을 떠나 수도권 신도시 중형 아파트에 전세를 얻어 이사했다. 그 후 어느 때부턴가 차에 쏟던 남편의 애정이 슬슬 식어가기 시작했다. 급기야, 소형차는 아이의 안전에 취약하다느니, 소형차가 호텔 정문 앞에 서면 주차요원이 거들 떠 보지도 않는다느니 해가며 그동안 애지중지했던 차를 헐뜯기까지 했다. 늘어나는 그의 흡연 량이 걱정이던 나는, 금연을 하면 중형차를 사겠다고 공약했는데, 남편은 그날로 담배를 끊었다. 해놓은 말이 있기도 하고 아파트 주차장 대부분을 차지하는 중·대형차 사이에서 우리 차가 유독 볼품없게 느껴지기도 하던 참이었다. 가까운 대리점을 찾아가 덜컥 중형차를 계약했다. 자동차 가격이 살고 있던 아파트 전세금의 절반에 육박했다. 영업사원이 가죽시트를 옵션으로 구매하면 차 값이 비싸지니 구입 후 개별적으로 바꾸라 일러줬다. 한 여름 아파트 주차장에서 공업사 직원이 차 문짝을 다 떼어놓고 땀을 뻘뻘 흘리며 시트를 바꾸던 장면이 눈에 선하다. 


 그렇게 중형차를 갖게 되었다. 비록 전세이긴 해도 중형 아파트에, 중형차, 마치 중산층에 진입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런 우쭐함도 잠시, 매달 수십만 원에 이르는 할부금과 기름 값, 껑충 뛴 보험료에 자동차세까지… 가계부를 펼 때마다 손이 덜덜 떨렸다. 아이들이 어려 교육비 지출이 적었던 시기였으니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얼마 감당하지 못하고 새 차의 주차장은 중고차 시장이 되었을 것이다.


 가랑이가 찢어질 듯 부담스러웠던 우리 중형차는 내가 사고를 당하면서 폐차되고 말았다. 신호대기로 정차 중이었는데 마을버스가 뒤에서 들이받는 바람에 운전석에 있던 나는 차와 함께 8차선 도로 사거리를 대각선으로 스키드 마크를 그리며 밀려났다. 차 트렁크가 맥주 캔처럼 찌그러졌다. 밀려나던 짧은 순간이 마치 슬로 모션처럼 눈앞에 펼쳐지던 기억이 있다. 죽기 전에 그렇다는 생각도 났었다. 천만다행으로 나는 특별한 외상을 입지 않았다. 의사나 보험회사 직원 모두 하늘이 도왔다고 입을 모았다. 폐차장으로 실려 간 차는 구입할 때 십 분의 일에도 못 미치는 값으로 처분되었다. 


 중형차를 소유하던 10여 년 동안 우리는 호텔에 가보지 못했다. 그러니 호텔 정문 앞에 있다는 발레 파킹 직원이 문을 열어주는지 확인할 기회 역시 없었다. 지금도 가끔 그때 중형차를 사기 전에 먼저 소형차를 타고 호텔 앞에 가봤어야 하는 건 아니었나 하는 의구심이 든다. 그랬다고 달라질 건 없었겠지만. 내가 전세금 절반에 이르는 중형차를 샀던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어쩌면 차종에 따라 달라지는 호텔의 서비스나 남편의 금연, 아이의 안전 때문이 아니라, 가진 걸로 나를 보여주려던 허세가 아니었을까. 그럴듯한 것들을 핑계 삼아 내 욕심을 키우려던 건 아니었을까. 그게 맞지 싶다. 


 지금 우리는 소형차를 탄다. 할부금도 끝났다. 출퇴근도 대중교통을 이용하다 보니 차를 탈 일이 많지 않다. 차는 차일뿐 그게 나를 나타내는 건 아니라는 걸 이젠 안다. 나한테 별 관심도 없는 세상에 집으로, 차로 나를 과시하는 건 공허하고 기운 빠지는 일이다. 그럴 시간과 에너지로 나 자신을 채우고 키우는 일이 훨씬 만족스럽다. 차를 키우는 일은 내게 중요하지 않다. 무엇보다, 자동차는 지구 건강에 해로운 존재다. 가끔 주차장에서 혼자 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고급 차를 본다. 얼굴도 모르는 차주인의 욕심을 가늠해보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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