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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미 Feb 09. 2021

임플란트

 어, 밥을 먹던 남편이 벌떡 일어나더니 화장실로 향한다. 잠시 후에 식탁으로 돌아와 다시 숟가락을 든다. 또 그런 거지? 뻔하다는 듯 내가 물었고, 응, 힘없는 대답이 돌아온다. 두 해 전에 해 넣은 임플란트가 말썽이다. 치아 모양의 인공치관이 단단히 붙어있지 않고 자꾸 빠진다. 가까운 치과에서 시술한 거니 바로 가서 처치할 수도 있으련만 그가 차일피일 미루기만 하니 자꾸 채근하기도 뭣하다. 

 

 남편은 이가 약하다. 스무 살 무렵부터 치통으로 고생하면서 하나씩 발치를 하는 바람에 결혼할 무렵엔 이미 어금니가 몇 개 안 남을 지경에 이르렀다. 연애 시절, 데이트를 하던 중 치통이 심해 주문한 음식을 다 먹지도 못한 채 잔뜩 인상을 쓰고는 둘이 손을 잡고 하염없이 걸은 적도 있다. 가난한 대학생이 치과에 못 가는 건 치료 공포 때문만은 아니었다. 다음 학기 등록금 마련이 불안한 마당에 치통은 진통제로 버텨야 하는 아픔일 뿐이었다. 내 고뿔이 남의 죽을병 보다 앞선다는 말대로 나는 그저 힘들겠구나 하고 짐작만 할 뿐 몇 개 남은 어금니로 음식을 씹는 그의 고충을 헤아리지 못했다.


 결혼을 하고서도 한참이 지난 뒤 적금은 없지만 빚도 없는 시절이 되고서야 그의 치아에 마음이 쓰였다. 허리춤을 잡아끌다시피 해서 찾아 간 치과에서는 해 넣어야 할 임플란트가 열두 개랬다. 사랑니를 제외하고 성인의 치아가 스물여덟 개인 걸 감안하면, 그는 그동안 전체의 절반이 조금 넘는 이로 음식물을 씹어 넘겨 생명활동에 필요한 에너지를 얻어 온 셈이다. 짠한 마음에 남편의 치아가 찍힌 엑스레이만 우두커니 쳐다봤다. 형편이 닿는 대로 임플란트를 해 넣기 시작했다. 잇몸이 무너진 자리도 있어서 인공잇몸이식 수술을 하기도 했다. 그럴 때면 서너 달 사이에 몸무게가 쑥 줄어들어 결혼 전과 비슷한 상태가 되기도 했다. 제대로 먹지 못했기 때문이다. 


 남편에게 지난 몇 년은 임플란트 수술의 시대였다. 이제 남은 세 개만 하면 인공일망정 스물여덟 개의 단단한 치아를 지닐 수 있는데… 그놈의 돈이 협조를 하지 않았다. 카드 할부로라도 마저 해 넣자는 내 말에 그는 완강히 도리질을 했다. 임시로 하고 있는 틀니도 괜찮다고, 지금 그런데다 돈 쓸 때가 아니라고. 치과엘 가게 되면 틀니 자리에 임플란트 하자는 권유를 받을 테고, 자존심 강한 성격에 그런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은 거다. 그러느니 차라리 아예 치과에 발을 들이지 않는 쪽을 택한 거겠지. 나라면, 일단 떨어진 치관이나 고정해 주세요, 남은 건 좀 더 있다 할게요, 했을 텐데. 남편은 그럴 주변이 못된다.


 그는 입 안에 빈자리를 여기저기 둔 채 설컹설컹 음식을 씹어 억지로 소화시켜 생긴 힘으로 가족의 생계를 이어왔다. 그동안 허허로운 게 입 안 뿐이었겠는가. 이따금 남편이 내뱉는 깊은 한숨이 이(齒) 없는 자리에서 생겨난 빈 바람 같아 나도 모르게 내 입 안을 혀로 훑어보기도 한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대신해 줄 수 없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먹는 거, 싸는 거, 죽는 거. 한 가지 더 추가해야겠다. 내 이를 빼서 줄 수도 없으니 작전을 짜는 중이다. 치과에서 특별 할인 이벤트를 한다더라, 그동안 좀 모아 준 게 있으니 남은 임플란트마저 할 수 있다,라고. 우선 치과와 말을 좀 맞춰놔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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