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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미 Sep 10. 2021

글을 기다리다

“띠링~ 작가님, 혹시 글쓰기를 자꾸 미루게 되나요? 그렇다면 주저 말고 ‘글쓰기 약속 알림’을 활용해 보세요!(앱 최신 버전에서 사용 가능)”


  어떻게 알았지? 어떻게 알긴, 뻔하지. 올린 적이 없는데. 글을 쓰긴 써야겠지…….     


“띠링~ 작가님 글이 보고 싶습니다. 무려 60일 동안 못 보았네요. ㅠ_ㅠ”


  어, 벌써 시간이 그렇게나 흘렀나? 그렇군. 글을 써야지. 어떤 글을 쓴담…….     


“띠링~ 작가님, 지난 글 발행 이후 구독자가 한 명 늘었어요. 그런데 돌연 작가님이 사라져 버렸답니다. ㅠ_ㅠ 기다리고 있는 독자들에게 작가님의 새 글 알림을 보내주시겠어요?”


 한 명이 늘었다고? 100명도 열 명도 아닌 한 명! 눈물이 흐르는군. 독자들이 내 글을 기다리기는 할까? 믿을 수가 없네. 천 리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당연한 옛말은 사람을 아득하게 만든다. 부정적인 생각은 내다 버리고 희망을 가지라는 뜻이겠지. 그나저나 글은…… 써야지.     


“띠링~ 작가님 글을 못 본 지 무려 120일이 지났어요. ㅠ_ㅠ 작가님 글이 그립네요. 오랜만에 작가님의 시선이 담긴 글을 보여 주시겠어요 ꂨᵕꂨ”

 

 내 시선이 담긴 글……. 내게 시선이 있기는 한가? 하기야 그건 내가 잘 모르지. 120일이나 지났구나. 글을 쓰지 않고도 한 계절을 지낼 수 있구나. 그동안 뭘 했나? 살림살이를 간수하고, 끼니를 잇고, 동네 도서관에 책을 빌리거나 반납하느라 들락거리거나 때로는 유쾌를, 때로는 우울을 핑계로 맥주잔을 들이켜고, TV 뉴스에 등장해 갑론을박하는 이들을 향해 코웃음을 날리거나……. 그리고 문득문득 ‘글을 써야 하는데’ 하면서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거나 했지, 아마.     


 소소한 일상을 소재 삼아 쓴 짧은 글을 플랫폼에 올렸었다. 부끄러운 마음이 컸으나 글을 쓰고 누군가 내 글을 읽는다는 뿌듯함이 있었다. 온라인 서점에서 한 작가의 인터뷰 글을 읽었다. 그의 글이 읽고 싶어졌다. 시립도서관 전체를 검색해가며 읽어치웠다. 좋은 책이면 사지 그랬느냐 할 수도 있지만, 인세 이외의 호구지책이 있는 작가의 책은 웬만해선 구입하지 않는다.


 두툼한 장편소설부터 기껏해야 원고지 서 너 매 정도의 짧은 글에 이르기까지 글의 길이는 그가 하려는 이야기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떤 이야기든 첫 문장이 무엇이든 그 안에 ‘사람’이 있었다. 답을 말하지 않고 질문을 던지는 작가가 있었다. 그동안 플랫폼에 올린 내 글을 다시 읽었다. 하소연, 억울함, 잘난 체가 지천이었다. 겸손이 아니다. 내 글에 ‘라이킷’을 눌러 준 독자들 앞에서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소리 없이 빠져나왔고, 이따금 글 재촉을 하는 담당자의 알림에 고개만 주억거릴 뿐이었다. 앱을 지웠어야 했나.


 앱을 지우지 못한 이유가 있겠지. 미련이어도 좋고 희망이어도 좋다. 시시껄렁한 핑계를 반성문처럼 늘어놨지만 결국 나는 다시 쓴다. ‘120일’ 알림을 받고는 지하철 좌석에 앉아 손바닥만한 수첩에 흔들림체로  쓰고 있으니까. 승객이 많다. 승객 수만큼의 이야기가 있다. 사람이 이야기다. 세상을 보고 삶을 보고 ‘사람’에 대해 이야기하는 날을 상상한다. 다시 시작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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