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시작 이후 이제 20년 전통을 자랑하는 시리즈가 된 <분노의 질주>. 20년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전자 제품 훔치는 남자와 경찰, 두 남자의 소박한 브로맨스를 시작으로 이제는 정부보다 더 신뢰하는 해결력을 갖춘 스피드 일당으로의 진화. 블록버스터로 성장했다.
스핀오프인 <홉스 & 쇼> 이후로는 2년, 정규 시리즈인 8편 이후로는 4년. 세계 최초로 북미보다도 거의 한 달을 먼저 개봉한 <분노의 질주 9 더 얼티메이트> 는 어땠을까.
STORY
시골에서 평온하게 살고 있던 도미닉 가족. 그런데 미스터 노바디로부터 긴급협조 요청이 들어온다. 어느 요원의 변절로 세계의 모든 무기를 통제할 수 있는 장비가 도난당했으니 이를 막아달라는 것. 그리고 그 요원의 정체는 도미닉의 남동생 '제이콥'. 동생을 막고 세계 평화를 위해 다시 힘을 합쳐 질주에 나서는 일행은 이번엔 어떤걸 쳐부수며 활약할까.
너무 거창한 제목이 아닐까...
이번 9편이 반가운건 가장 많은 시리즈를 만들었고, 이를 블록버스터로 승화시킨 감독 '저스틴 린' 의 컴백작이라는 것. 그런데 이미 7,8편에서 규모 자체를 크게 벌려놓았다보니 이번작의 스케일은 그렇게 와닿지 않았다. 오히려 초반부 추격씬에 거의 모든걸 쏟아넣었다 해도 될 정도로 이 시퀀스의 스피디함과 긴박감은 기존 시리즈에서 봐왔던 쾌감 그대로다.
그러나 이후 런던 시내 추격, 후반부 반격 시퀀스는 무언가를 크게 쳐부수는 규모도 작지만 자동차와 사물을 활용하는 방법이 너무 소극적으로 느껴졌다. 강력 자석을 활용해 공격과 방어를 오가는 방식은 액션 영화로써 물론 놀랍긴 하지만 이미 우리는 전작에서 '화물선, 공중 낙하, 잠수함 격파' 등 훨씬 어마어마한 것들을 봐왔기에 이들의 활약 무대가 매우 좁게 보였다는 것.
언급한 소재들은 모두 민간인들이 드문 곳에서 넓은 공간을 배경으로 자유롭게 나다닐 수 있는 것이었으나, 이번 9편에선 시내를 중심으로 진행되기에 <분노의 질주 5 언리미티드> 에서 보였던 금고 추격 시퀀스 보다도 더 얌전한 수준의 전개를 보여준다. 그랬기에 부제는 <더 얼티메이트> 인데 이것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제목에 비해 너무 얌전하지 않았나 싶다.
많은 이들이 궁금해하던 우주 진출? 이미 많은 패러디짤이 다니고 있는데, 우주는 정말 요~~~만큼만 나올 뿐이며 이야기거리로 다루기도 뭐할 정도의 수준으로 그려진다.
반가운 인물들을 이 정도로 밖에...
이미 '홉스 & 쇼' 는 스핀오프에서 집중 다뤄졌기에 이번작엔 나오지 않는다. 단, 쿠키 영상에 '쇼' 가 다음 임무를 위해 준비하는 장면은 좋았다. 이번 작엔 반가운 인물들이 나오긴 하나 그들은 까메오 수준에 그친다. 생사도 알 수 없는 '미스터 노바디' 는 영상 출연, 강력한 빌런으로 재등장할 줄 알았던 '사이퍼' 는 그냥 특별 출연과 고문 담당 정도로..
가장 큰 이슈는 죽은 줄 알았던 '한' 의 컴백인데, 문제는 그의 스토리를 너무 요상하게 꼬았다는 것. 이미 우리는 <도쿄 드리프트> 이후 성공이 불명확했던 시리즈인지라 6~7편에서 그의 죽음이 사실은 '쇼' 와 관련이 있었다는 사실을 대충 납득했다. 아니, 납득 하려 했다. 마치 과거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엑스맨 시리즈> 의 세계관을 재정립한 것과 같은 효과.
그러나 알고보니 그의 죽음엔 '미스터 노바디' 가 있었으며, 무려 몇 년이나 지나서야 진행될 사건을 위해 죽음을 위장했다는 전개가 너무 억지스러웠다. 7~8편이 공개된 약 6년의 공백기간 동안 다른 이가 진행시킨 스토리를 억지로 이어가기 위해 만든 설정이 아닌가. 예상보다 그의 컴백은 그리 임팩트도, 감동도 덜 한 위치에서 그려지며 오랜만에 보는건 좋지만 뭔가 어울리지 않는 팀에 잠시 협조 요청으로 들어온 느낌이 너무 강했다.
그들은 왜 질주하는가!!
시리즈의 핵심은 무언가 지켜야 할 것이 있고, 이를 위협하는 명확한 반대 세력 '빌런' 이 있기 때문이었다. 사면을 위해, 가족을 위해 빌런과 힙을 합치든 싸우든 간절해보였던 그들의 과거 질주는 사라졌다. 메인 빌런은 대체 누구인가.
빌런은 이 장비를 획득하여 대체 무엇을 노리고자 하는지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이를 지휘하는 '돈 많은 양아치' 는 그냥 싸가지 없는 남자로 나올 뿐 과거 보스들처럼 웅장한 계획도 없고 그냥 돈 장난할 뿐. 그가 활용하려는 '사이퍼' 는 앞서 언급했듯 까메오 수준이니 말할 것도 없고. 그렇다면 '도미닉' 의 동생 '제이콥'.
이미 우리는 '존 시나' 가 이 배역을 맡는다 해서 브라이언 '폴 워커' 의 자리를 채워줄 새로운 인물 영입인가 라며 기대했다. 그러나 이번 작에 그 또한 어째서 국가를 배신하고 이 악당과 손을 잡았는지 그려지지 않는다. 그저 과거 아버지의 죽음을 두고 형 도미닉과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한 과거를 교차하고, 현재에선 서로 가진 악감정으로 형제 다툼 하는 수준.
세계를 망치려는 악당 중에 리더 도미닉의 동생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너무 위협적이라서가 아니라. 대체 무엇을 위해 질주해야 하는지 보이지 않는다. 이번 작에서 그들은 정부의 조력도 거의 받지 않으며, 오로지 자신만의 힘으로 기술자 '테즈, 램지' 조합의 서포트를 통해 앞서나갈뿐. 명확한 악당이 보이지 않으며, 그들의 특기가 없기 때문에 자연스레 액션은 보편적인 액션 영화과 같은 수준으로 보여졌다 생각한다.
그리고 너무나 쉽게 용서하고 함께 나아가는 '위 아더 월드' 엔딩.. 아쉽다..
그나마 약간의 의미를 찾자면 이건 두 형제의 다툼 외에 아래와 같은 요소가 있을 것이다.
피를 나눈 가족 VS 인연으로 이루어진 가족
20년을 거쳐 이루어진 도미닉 패밀리는 피를 나눈 친족은 아니다. 그들은 같은 목표와 위기를 헤쳐나가는 과정에 형성되었으며 그 관계는 시리즈 내내 강조하는 '가족 (FAMILY)' 로써 상징정이다. 그러나 '제이콥' 은 피를 나눈 형제임에도 이들의 가족은 아니다. 그래서 이는 진짜 혈족이 굳건하게 인연으로 이루어진 가족에 도전하는 이야기이도 하면서, 아버지의 죽음 이후 도미닉과 겨뤘던 경주에서 패배 이후 갈 곳 없던 그가 내보이는 반항이기도 하다.
이 주제에 좀 더 무게를 실었다면 다른 느낌의 9편이 됐을텐데 아쉽다.
액션 영화라는 점에서 적정 수준의 전개와 규모는 꽤 괜찮았다. 다만, 이 작품이 그 유명한 <분노의 질주 시리즈> 라는 점에서는 좀 아쉽다는 것. 이제 엔딩까지 두 작품 정도를 남겨두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이들은 어떤 이야기를 풀어나갈 건지, 시리즈가 용두사미로 끝나진 않을까 걱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