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루 Dec 24. 2023

갈비탕 한 그릇의 온기

지인에게 한 어리석은 조언을 후회하며

어제는 취업에 번번이 떨어져 힘들어하는 친구를 만났다.

군대에서부터 알고 온 지인인데, 그때부터도 성실하고 마음씨도 참 좋았던 친구였는데 생각보다 취업 준비기간이 점점 길어졌다. 전공을 바꿔가면서 취업이 잘 되는 직종으로도 전환을 했는데 생각만큼 취업이 만만치 않은 것 같았다.


운 좋게도 나는 취업을 했지만, 친구의 사정이 남 일 같지는 않았다.

나 역시도 취업 준비 시절, 밤늦게 잠에 들러 누워있으면 이상하게 속이 먹먹하고, 취업이 안되면 당장 다음 달은 어떻게 할지 많은 고민을 했던 게 떠올랐다. 물론 취업을 하고 나서는 또 다른 걱정거리가 생겼지만 그때만 해도 취업만 된다면 머든지 괜찮다는 생각이었다.


추운 겨울날,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 두 공기와 갈비탕, 달큰한 파김치를 같이 먹으며 허기를 채웠다. 

주머니 사정이 비교적 더 넉넉한 내가 사기로 했는데, 사주면서도 훗날에는 이 지인이 취업하고 내게 밥 한턱 산다고 연락 오길 바랐다. 비싼 것을 안 사도 되니, 이제 취업해서 한 턱 쏜다는 소식을 정말 듣고 싶었다. 마음씨도 좋고, 성실히 삶에 임하는 지인이 아직 이 사회에서 제대로 된 경제활동을 하지 못한 것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지인의 얘기를 들으면 취업 과정에서 겪은 억울한 일도 많았다. 

업체 담당자의 실수로 인하여 면접장에서 본인이 자기소개서에 거짓말을 했다는 오해도 받았고, 일정이 번번이 맞지 않아 면접 당일 제대로 준비를 못하여 고배를 마신 것도 많았다. 내가 그 입장이라면 정말 속상할 것 같았다. 지인의 어려운 집안 사정도 잘 알고 있던 터라, 청년 실업이라는 단어 안에 담긴 개인의 깊은 속사정이 지인을 통해 더 많이 와닿았다. 사람들마저 사정은 다를 테지만, 어떤 사람은 여유로운 환경 속에서 쉽게 취업도 하는 것 같고, 어떤 사람은 상대적으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 취업하기가 참 더디었다. 안타깝게도 지인은 후자에 속했다.


어줍잖은 충고를 하지 말자 다짐했건만, 끝내 나는 지인에게 어리석은 충고를 해버렸다.

지인은 내게 한참 하소연을 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자신의 불우했던 환경과, 취업하면서 마주친 여러 불공평한 사회에 대해 토로했다. 한편으로 그 마음을 너무 잘 알지만, 다른 한편으로 그런 모습과 마음 가짐이 진정으로 지인에게 도움이 되진 않을 것 같아 솔직한 내 생각을 전달했다. 내가 생각했던 지인의 몇 가지 안타까운 점은 우선 너무 적은 곳, 매번 2~3곳의 소위 좋은 직장에만 지원을 한 것이었고 그 외에는 서류를 잘 내지 않았다. 물론 남들이 말하는 최상의 직장에서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겠지만, 너무나 좌절해 있는 지인에게는 어디든지 우선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정 마음에 안 들면 이직을 준비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전했다.


그리고 그 말을 하고 난 뒤, 참 많이 후회했다.

지인이라고 내가 말한 것들을 몰랐을까. 그러나 불우했던 환경, 남들보다 혜택이 적었던 그의 삶에서는 조금이라도 좋은 직장에서 일하며 그간의 고생을 보상받고 싶었던 것일 텐데 나는 이제 현실과 타협하라고 종용하는 꼴이 되어버렸으니... 그 말을 하고서 그 아픔을 말없이 들어주는 사람이 되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나 자신을 반성했다. 구체적인 해결책을 내주기보다는 말없이 그 아픔을 들어주고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감사할지 생각했었던가. 돌이켜보면 나 역시도 종종 힘들고 지칠 때가 있곤 했다. 그때마다 해결책이나 방법을 몰랐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런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아파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어 참 감사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픔을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그 자체에는 힘이 있어 고통받는 이의 마음을 얼러만져 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인은 나의 어리석은 충고를 듣고도 불편한 기색 없이 잠자코 듣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나의 어리석은 행동을 후회했고, 참 미안했다.


그렇게 짧은 만남을 뒤로하고 돌아오는 길, 다시 아픔을 견디며 버텨야 하는 그가 잘되길 기도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이라곤 사실 갈비탕 한 그릇과 진심 어린 기도 밖에는 없었다. 우리 모두는 저마다의 인생의 주인공이기에, 대신 그 역경을 헤쳐줄 수 없으며, 타인은 그가 오로지 역경을 잘 헤처 나가길 응원하고 기도할 수 밖에는 없다고 생각이든다. 어리석은 충고를 한 나 자신을 반성하며, 힘든 겨울을 보내고 있을 지인에게, 갈비탕 한 그릇만큼의 온기라도 전해줄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작가의 이전글 회사 밖의 나의 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