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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Nov 28. 2024

하루 기록의 힘

일기

일기. 하루를 기록하는 행위는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삶에 있어서 큰 힘이 되어준다.

새벽녘 일어나 잠도 잘 오지 않아 예전에 쓴 일기를 무심코 읽어보았다. 드문드문 기록한 것이긴 하지만, 나름대로 진솔하게 하루를 기록한 과거의 내가 대견스러웠고, 그때 가졌던 고민과 생각들이 되살아났다. 별로 많지 않은 분량이라 근 4년 치를 내리읽게 되었다. 처음 직장을 가졌던 설렘과 업무에 대한 부담감, 연인과의 만남까지 축약된 삶의 향방이 요약되어 있었다. 그리고 현재의 내 삶의 모습이 어떠한 과정을 거쳐서 여기까지 왔는지 이해가 되었다.


기록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내 모습이 쉽게 이해되었을까?

우리는 자기 삶이지만, 어쩌면 자기의 삶조차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바쁜 삶을 살다 보면 내가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되었는지 이해하기가 참 어려울 때가 있다. 나의 과거를 돌아보지 않고서는 내가 하는 행위조차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많은 것 같다. 하물며 내 삶조차 이해하기 쉽지 않은데, 타인의 삶을 이해하기는 더욱 어려운 일이라 생각한다. 하루를 기록하고, 나중에 그 기록들의 여정을 다시 되짚어 보면 내 삶의 궤적을 스스로 이해할 수 있다.


흔히들 삶의 의미나 지향점, 좀 더 노골적으로는 왜 사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방향성이 보이지 않고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르는 스스로의 삶을 두고서 느끼는 근원적인 불안감을 인간은 가지고 있다. 간혹 현재를 즐기고 아무런 걱정이 없어 보이는 사람들에게 고요와 정적을 틈타 불현듯 존재 자체에 대한 의문이 엄습한다. 일기는 그 불안한 여정을 그대로 보여주고, 그 불안한 여정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게 한다. 과거 인간관계 때문에 고민한 모습, 직장에서 업무적인 어려움, 연인과의 마찰, 부모님과의 갈등 이 모든 것을 접하며 겪은 고민과 때로는 나타나는 기쁨에서 흐릿하게나마 내가 가고 있는 방향을 희미하게나마 볼 수 있다.


남에게 보여줄 필요가 없으니 솔직한 기록일수록 훌륭한 기록이다.

간혹 우리는 자체적인 검열을 하고 기록을 한다. 기록은 솔직하고, 노골적이고, 때로는 자신의 부끄러운 것까지 쓸 수 있어야 그 진가가 더 발휘된다. 선조들이 남긴 기록의 가치들도 노골적일수록 역사적 가치가 높아지는 만큼, 한 개인의 기록도 가장 부끄러운 것까지 기록할 수 있을수록 가치가 높다고 생각한다. 예전에 이라크 전쟁에 참전한 미군의 수기를 읽은 적이 있는데, 정말 '이런 것까지 썼다고?' 싶을 만큼 원초적인 내용들이 많았다. 그리고 느낀 점은, 상당히 많은 수필들이 취사선택한 내용 위주로 기록하며 어떤 면에서는 참 솔직하지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명하지 않은 한 미군의 회고록이었지만, 지금까지 읽었던 수기들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책이었다. 인생은 원래 거칠고, 부끄러울게 많고, 아름다울 수만은 없는 것이다. 하물며 본인에게조차 솔직하지 못한 기록은 말 그대로 잘 쓴 소설에 불과하다.


고독할 시간을 찾고, 노골적인 부끄러움을 가지고서 기록해야 한다.

바쁘다는 핑계, 어쩌면 핑계 이상으로 머리 아픈 미디어 매체의 노출 속에서 홀로 있는 시간은 참 많지 않다. 항상 우리는 미디어와 광고, 인간관계에서 벗어나기 힘든 삶을 살고 있고, 거기에 파묻혀 스스로를 잊기가 참 쉽다. 길지 않은 하루 10분이더라도 고독히 스스로를 마주할 시간을 찾아야겠으며, 그리고 스스로의 노골적인 부끄러움을 기록해야겠다. 인류는 우주를 개척하려고 하겠지만, 한 개인에게 있어서 본인의 삶 보다 더 큰 우주가 있을까 싶다. 그런 드 넓은 삶에서 나침반 하나 없이 헤엄쳐 간다면 참 외롭고 고단한 여정이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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