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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아 Jun 28. 2024

난이도가 있지만 지속적인 행복

오티움, 문요한

 행복을 원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인데 많은 사람들이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행복을 누리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특히 남이 가진 것과 내가 가진 것을 비교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이 비교의 대상이 나올 것이다. 행복은 비교가 아님에서 시작하기에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비교부터 하지 않는 연습을 해야 한다. 하지만 사람은 혼자 살지 않기에 비교로부터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가장 맛있는 것을 먼저 먹어라”라는 말은 행복을 미루면 행복의 감각이 녹슬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한다. 아끼다 똥 된다는 말과 비슷하게 너무 좋은 것도 아끼고 미루다 보면 똥처럼 쓸모 없어지게 되는 경우가 종종 일어나기도 한다. “언제 행복하다고 느끼느냐?”라는 질문에 지금이 행복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지 궁금하지만 지금의 행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고 지금에 집중해야 한다.


 행복은 생각도 아니고 태도도 아니다. 행복은 기본적으로 이성이 아니라 감정이다. 긍정적 감정의 복합 상태가 행복인 것이다. 행복은 물질로도 채울 수 있지만 그 효과가 오래갈 수 없는 이유가 행복은 이성이 아닌 감정이기 때문이며 물질적인 만족이 감정의 포화도를 오랫동안 지속하는 데 한계가 있기에 더 가지고 싶고 더 많이 소유하고 싶은 욕심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지금 이 순간을 충족시켜 주는 만족이 행복감을 오래 지속시킬 수 있는 비결이라고 생각한다.



 오티움은 ‘내 영혼에 기쁨을 주는 능동적 여가 활동’으로 정의할 수 있다. 오티움은 경험이 아닌 체험으로 나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이자, “무엇을 할 때 기쁘세요?”라는 질문에 끊임없이 답을 구하는 것이다. 또한 오티움은 진정한 자기 자신과 만나는 시간으로 무엇을 하든지 무엇이 되든지 ‘최고의 나’를 만나는 시간이다. 꼭 위대하거나 거창할 필요는 없으며 진정한 내가 최고의 내가 되는 순간이다. 최고의 내가 되는 순간, 최고의 나라는 것을 아는 순간,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오티움을 아는 사람은 태어난 김에 어쩔 수 없이, 마지못해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삶을 직접 하나씩 만들어가는 삶을 산다. 오티움은 정답이 없는 자신만의 세상이자 그 세상을 만들어 가는 과정이기에 비교하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단순히 있고 없고라는 존재의 유무가 있을 뿐이다. ‘소유냐 존재냐’라고 물었던 에리히 프롬의 질문처럼 존재하는 것이 오티움이며, 존재하는 삶이 곧 행복한 삶이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배우며 항상 생존의 기로에서 수많은 선택을 하며 성장한다. 외적으로 성장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내적 성장을 하지 못한다면 온전한 인간으로 성장했다고 표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오티움은 바로 이 내적 성장을 채워주는 연료이며, 내면의 즐거움으로 행복의 수치를 높여주는 행복의 원천이다.


 오티움을 알지 못한다면 진정한 즐거움을 누리지 못했으며 최고의 내가 주는 기쁨을 알지 못한다. 진정한 즐거움과 최고의 나를 만났다는 것은 점점 행복에 물들고 있다는 증거이다. 오티움은 한순간을 말하지만, 동시에 지속적인 순간을 말한다. 능동적인 여가 활동을 뜻하는 오티움은 한순간이자 지속적인 순간으로 순간의 즐거움과 지속적인 즐거움을 주는 행위이다. 즐겁지 않다면 여가가 아닐 것이며, 스스로 내가 선택한 여가가 아니라면 절대 즐거울 수가 없을 것이다.



 논어 술이편에서는 ‘낙이망우’를 통해 즐거움으로 근심을 잊어야 한다는 교훈을 준다. 즐겁지 않다면 행복할 수 없기에, 진정한 즐거움인 오티움은 행복으로 가는 길에서 만나는 ‘최고의 나’의 또 다른 모습이자, 나라는 존재가 참 괜찮은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기쁨이자 위로이다. 오티움이 무엇인지 보다 그 오티움이 진정한 즐거움인지, 최고의 나를 만날 수 있는지가 더 중요하다. 홀로 있어도 행복한 오티움의 주는 진정한 즐거움은 관계 밖에서도 관계 안에서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이는 행복이 편파적이 아님을 말하며 균형 속에서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인간 사이의 인간, 홀로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이 지향해야 할 행복은 밖에만 있지 않고, 그렇다고 해서 안에만 있는 것도 아니다. 또한 남이 줄 수 있는 것도 아니며 내가 발견하고 나만이 누릴 수 있는 능동적인 여가 활동을 통해서 진정한 즐거움과 최고의 나를 만나는 오티움을 체험할 수 있다. 오티움은 일상의 기쁨에만 그치지 않고 제2의 인생과 인생의 버팀목이 되어 행복의 점진적 과부하를 느끼게 한다.


 순간이 모여 인생이 되는 것처럼 점진적으로 행복에 물들어 가는 일상의 기쁨인 오티움으로 점차 행복해지는 최고의 나를 만나는 순간이 많아질수록 인생에서 네고티움은 사라지고 오티움으로 채워지는 마법이 일어날 것이다. 인생에서 절대 거저 얻어지는 것이 없듯이 어려움을 통해 누리는 오티움의 순간은 어려운 일을 해결했다는 만족감과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의 축적으로 어제보다 더 성장한 나를 만나는 기쁨이 주는 난이도가 있지만 지속적인 행복이다.



https://brunch.co.kr/@ilikebook/200

23년에 읽었던 것보다 더 많은 시간과 생각이 필요한 24년의 오티움 재독, 이제 점점 재독의 맛을 알아가는 것 같다.



오티움 / 문요한 / 위즈덤하우스 /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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